마을과 마을을 잇는 평지가 계속된다. 볼튼마을에서 댄비위스크까지 고요함의 연속이다. 도로를 따라 가는 길, 두 시간 동안 차는 한 대도 지나지 않았다. 도로 양 옆으로 수풀이 우거졌고, 한쪽은 드넓은 밭, 한쪽은 울창한 숲이다. 밭에는 추수를 끝낸 건초더미들이 멋진 미술조형물들처럼 전시되어 있다.
숲에선 늦여름의 새들이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짹짹거리며 날아오른다. 헬멧에 완전 무장을 한 사이클 족들이 서너 명씩 무리 지어 지난다. 그들이 달리며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가 새소리와 어울려 상큼한 메아리를 남긴다.
아무 상념 없이 머리를 텅 비우고 걷는다. 마냥 편하고 포근한 길. 헨리 스테드만의 가이드북에는 이 길을 이름 대신에 한 줄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It may be road, but it is at least a very, very quiet one.(도로가 맞긴 맞다, 그러나 너무나, 너무나 고요한 길이다)’
‘잉글비 안클리프(Ingleby Arncliffe)’는 꽃의 마을이다. 입구에서부터 빨강, 노랑, 분홍의 아기자기한 꽃들이 만발했다. 길가에 핀 꽃들인데 누군가 잘 가꾼 모양새다. 예쁜 꽃들로 화사한 마을은 고요한 안클리프 숲으로 이어진다.
숲이 끝난 자리, 시야가 확 트이며 광활한 대지가 나타났다. 앞으로 5일간 내가 밟고 지나야 할 요크셔 북부 지방이다. 바다는 물안개와 구름에 가려 모호하지만 대지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5일 후 만날 북해가 저 너머에 있을 것이다.
고원지대의 적막 대신 문명의 소리 들려와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맞으며 언덕을 오르는 순간, 눈 아래 낙원이 펼쳐진다. 아담과 이브가 누비고 다녔을 에덴동산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야트막한 구릉과 능선이 겹겹이 반복되고, 기다란 돌담들이 엄격한 경계를 만들고 있다. ‘스카스 우드 무어(Scarth Wood Moor)’라 불리는 이곳에서 지극히 영국적인 풍경을 만난다.
드넓은 초원이 보라색 물결로 넘쳐나는 이 찬란함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무어랜드의 헤더(heather) 꽃물결인 것이다. 보라색 물결을 가르는 얇고 가느다란 샛길에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트레커들이 가고 있다. 모두가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향하고 있다.
세 번째 국립공원에 들어섰다. 잉글랜드 요크셔 험버주의 북동지역을 이루는 거대한 황무지 무어랜드, ‘노스요크 무어스(The North York Moors)국립공원’이 시작되었다. 해발 200m를 더 올라 세 개의 돌무덤이 성스런 자태를 드러낸, ‘라이브 무어(Live Moor)’의 정상에 섰다. 요크셔 북부 지방을 좀더 장엄하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다.
해발 400m를 더 오르면, 세 번째 황무지인 ‘칼톤 무어(Calton Moor)’에 닿는다. 북해(The North Sea) 정상에 이른다. 아이리시해를 바라보며 세인트비스를 떠난 지 12일, 잉글랜드를 횡단해 반대편 바다를 희미하게나마 처음으로 만난 날이다.
네 번째 황무지 ‘크링글 무어(Cringle Moor)’의 하늘에 붉은색 패러글라이더가 수놓았다. 덕분에 푸른 하늘이 더 선명해 보인다. 짙은 녹색과 진한 보라색의 무어랜드가 산을 뒤덮고, 흰 구름과 푸른 하늘 위를 파도 타기하듯 미끄러지는 패러글라이더들. 두 팔을 들어 흔들자 한 손을 흔들며 화답한다.
‘콜드 무어(Cold Moor)’를 지나 웨인스톤스(The Wainstones)에 오를 즈음, 체력이 거의 방전된 상태였다. 20분을 쉬고 다시 오르막, 해스티언덕(Hasty Bank)까지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야 했다. 어딘가에 그래도 남은 에너지가 있었기에 갈 수 있었다.
늦은 오후 햇살을 등지고 마지막 산을 거의 다 내려올 즈음, 멀리서 반가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향해 손 흔드는 이들은, 세 살 난 에드워드와 할머니 자넷 테일러 여사였다. 한 달 전 숙소를 예약하면서 이메일 세 번 주고받은 게 전부인데 한눈에 서로를 알아봤던 것이다.
숙소가 코스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서 차를 몰고 픽업을 나온 것이다. 꼬마 에드워드는 두 손을 망원경처럼 오므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꼬마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자넷 여사의 활짝 웃는 모습은 정겨웠다. 결승 라인을 눈앞에 둔 마라토너의 기분이 이럴 것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잉글랜드 북부의 내륙 깊숙한 산동네에서 나를 환영해 주는 영국인 가족이다.
숙소의 주인인 자넷 여사는 부산에서 6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 사실이 신기하면서 반가웠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남편이 한때 한국에 파견 근무했단다. 그녀는 “해운대 백사장을 다시 걸어보고 싶은데, 이젠 그런 기회가 오지 않겠죠?”라고 의미심장하게 얘기한다. 60대 후반인 자넷 여사가 아침 식탁에서 했던 말이 안타까운 여운으로 남아 걷는 내내 나를 좇아왔다.
추억 속 증기기관차가 되살아 난 그로스몬트역
작은 기차역을 만났다. 철길 옆을 흐르는 이스크강물,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떼, 뽀얀 안개에 싸인 에그톤 다리, 숲길 다음에 나타나는 오솔길과 나무로 지은 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저녁 연기까지 모든 것이 조화로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가랑비 내리는 늦은 오후의 영국 시골길에 마음을 빼앗겼다.
CTC(Coast to Coast Walk)를 개척한 영국 작가 웨인라이트는 오늘 이 코스를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외로움은 이제 끝났다. 고원지대에서의 적막 대신 문명의 소리들이 귀에 들려온다. 집들이 늘어났고 가게도 자주 보인다. 주변 풍경은 더 이상 황량하지 않다. 울창한 숲은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느릿한 기차가 주는 특유의 노스탤지어가 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어린 시절을 건드리는 추억의 소리이다. 누군가의 땀과 삽질에 의해 석탄이 들어가고 시커먼 연기와 흰 수증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증기기관차,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그로스몬트역에 들어서는 순간, 잊고 있던 ‘칙칙폭폭’ 소리가 되살아난다. 조그만 증기기관차 한 대가 역에 막 들어와 있었다.
기차 앞머리 화통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쪽 픽커링에서 이곳 그로스몬트까지 한 시간 반을 달려온 증기열차이다. 경제적 효율을 앞세우는 우리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 스마트폰 메시지 시대의 우편엽서 같은 아련함이 있다.
열차 주변에 하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그 속에서 연인과 가족들이 손잡고 열차를 내린다. 반대편에는 또 다른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듬성듬성 걸으며 역내를 배회하고 나이 지긋한 정복 차림의 역무원들이 오가고 있다. 내일이면 15일째, 영국 횡단의 마지막 날이다. 21km를 걸어온 오늘의 피로가 시골 기차역의 정겨운 풍경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20m 높이의 아담한 폭포 폴링포스, 그 옆 카페에서 진정한 고수를 만났다. 내가 15일이 걸려 온 이 길을 7일 만에 온 사내. 300km 거리를 나는 하루 평균 20km씩 걸었는데 그는 43km씩을 뛰었다는 것이다. 마라톤 풀코스 거리를 7일 동안 걸었다니, 놀랄 일이다. 온화하게 웃음 짓는 표정에서도 그의 강인한 내공이 느껴진다.
카페에서 나와 10여 분을 함께 걷다가 “이제 뛰어야 할 시간”이라며 그가 작별인사를 한다. “굿바이” 한마디를 남기며 그는 이미 저 앞을 뛰고 있었다. 반바지 차림에 두툼한 두 다리의 뒷모습은 영화 ‘300’의 영락없는 스파르타 전사였다.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로빈후드>에는 ‘일어서고 다시 일어서라, 순한 양이 사자가 될 때까지’라는 대사가 있다. 핍박 받는 민중들을 향해 불의에 굴하지 말라는 메시지이면서, 어린 아들에게 강하게 커서 세상에 당당하게 나서라는 가르침이다.
‘로빈훗’ 또는 ‘로빈훗베이’란 단어는 나에겐 특별한 의미였다. 성취해야 하고 도달해야 할 신성한 어떤 곳이었다. ‘일어서고 다시 일어서라’는 말은, 이곳 로빈훗베이까지 오는 동안 나를 격려하고 분발시켜 준 소리였다. 빗속 질퍽한 무어랜드에서 발걸음 가볍게 힘을 준 속삭임이기도 했고, 지쳐서 쉬던 풀밭에서 다시 힘차게 배낭을 짊어지게 해준 비타민이기도 했다. 산 속에서 길 잃고 혼자 헤매던 날에는 마음의 두려움을 쫓아준 강장제가 되기도 했다.
그 로빈훗베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북해의 파도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도착한 후,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2시간을 더 내려온 뒤였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오렌지색 지붕과 흰색으로 치장한 벽돌집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길게 늘어선 해안선을 따라서 여러 겹의 파도가 고요히 밀려들고 또 밀려들었다. 자그만 배에 몸을 실은 로빈훗이 저 파도를 타고 이곳에 숨어들었다가 다시 노 저어 바다로 나가곤 했다. 실존인지 허구인지 모르는 오랜 옛날의 한 인물,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다는 전설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다.
이윽고 영국 횡단길 CTC의 종점이다. 기다란 내리막 좁은 골목 끝자락의 바닷가, 지난 3년 동안 가슴속 꿈이자 로망이었던 그 이정표 앞에 스르르 기대어 앉았다.
‘The End. Coast to Coast Walk. St Bees to Robin Hoods Bay. 192miles’
배낭 깊숙한 속에서 자그마한 조약돌 하나를 꺼냈다. 여러 겹 종이에 싸여 고이고이 간직해 온 조약돌이었다. 15일 전, CTC 길을 출발하던 날 아침에 아이리시해안 절벽에서 만난 팀스씨 부부가 건네 준 선물이었다.
세인트비스해안의 조약돌 하나를 집어서 품고 있으면, 누구든 로빈훗베이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이방인인 나는 알 수 없는, 이곳 사람들의 믿음이라고 했다. 로빈훗베이에 도착하면 북해를 향해 멀리 던진다고 했다.
나는 바다로 던지기보다는 집에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를 보호해 준 것처럼, 앞으로 내 인생길에서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른 길을 잘 찾아가도록, 계속 보호해 줄 것 같았다. 팀스씨의 웃음 띤 얼굴이 떠오르고, 에너데일 다리에서 헤어질 때의 따뜻했던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스터 리, 이 조약돌이 당신을 로빈훗베이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것입니다.”
이영철 여행 작가 nudles7768@hanmail.net
한솔제지에서 30년 근무 후 2011년 퇴직해 세계 10대 트레일을 걸으며 여행기를 쓰고 있다. 현재 10곳 중 2곳만 남겨놓았다. 여행서적으로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걷는자의 행복>을 펴냈다. 블로그 : 네이버 검색창에서 ‘누들스 라이브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