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AI라는 영화가 상영 된 적이 있다.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人工知能)이란 말이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반갑기도 하고 한편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인공지능이 영화의 주제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에서였다.
한때 인공지능 프로그램 LISP라는 것을 공부하면서 Artificial Intelligence에 심취 한 적이 있었다. 약 15년 전쯤 얘기다. 그때 의사나 증권전문가, 고급기술자의 지능을 컴퓨터에 담아보려는 시도를 해 본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하나의 꿈으로 끝냈다.
나는 아직 AI라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줄거리를 얘기를 통해서 듣고 있다. 영원히 단 한 사람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는데, 아이를 잃은 부모의 양자로 입양된다. 그런데 이 로봇은 죽은 줄만 알았던 친아들이 살아나자 결국 버려지게 된다. 이후 피노키오 동화처럼 진짜 사람이 되어 양어머니의 사랑을 되찾으려는 인공지능 로봇의 파란만장한 모험을 그린 것이라고 듣고 있다.
(오른쪽 사진 : 엄마가 로봇 양아들을 초기화 하고 있다)
동화 같은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너무도 완벽하게 구현된 인공지능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특정한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부딪치는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는데 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난 AI 로봇의 알고리즘 작동과정은 이렇다.
- AI 로봇의 목적: 어머니를 영원히 사랑하는 것 (그러나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목적달성에 난관을 겪는다.)
- 로봇이 포착한 문제점: 자신이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것.
- 로봇이 발견한 문제의 해결책: 피노키오 동화 속에 등장하는 요정을 찾아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이 로봇은 당초 만들어질 때는 버림받을 때를 상정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엉뚱한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버림을 받았을 때를 대비해 자폭기능 이래도 갖추었어야 하는데.
이것이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점인 것 같다. 대부분의 인간은 한 가지 목적을 두고서도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와 논리 과정을 거친다. 경우에 따라선 처음 정해진 목적을 포기하고 다른 목적을 선택할 만큼 인간의 두뇌는 유연하게 움직인다. 두뇌에는 미리 정해진 알고리즘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영화에 등장하는 AI는 존재 이유 자체가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있다. 미리 정해준 목적에 맞도록 움직이는 것이 AI의 유일한 존재 이유인 것이다.
인공지능의 탄생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1950년경 앨런튜링(Alan Mathison Turing)이란 사람이 유니버설 머신(Universal Machine)을 고안하면서 시작된다. 전문가들이나 풀 수 있는 어려운 수학 문제라도, 푸는 방법을 알려주고 중간에 계산을 할 수 있는 연필과 종이까지 준다면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도 풀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을 한 것이다.
올바른 지시(instructions)와 사고과정을 단계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공간(memories)을 제공한다면 누구나, 어떤 대상이나 주어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 한 것이다. 인간이 풀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문제는 아주 단순한, 기계적인 사고 과정으로도 해법을 재현(답습)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여기에 대해 튜링은 기계가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한다면, 실행의 오류를 수정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습득하여 기계는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과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튜링은 이른바 튜링 테스트(Turing Test)라는 실험을 통해 앞으로는 인공지능 기계가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듣고 말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튜링 테스트란 격리된 두 개의 공간 안에 사람과 컴퓨터를 놓아두고 양측에 번갈아 질문을 던져 어느 쪽이 기계고 어느 쪽이 사람인지 가려낸다는 내용이다. 실험 결과 사람과 기계의 구분이 힘들 경우 인공지능의 성능이 우수하다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론과 현실 사이의 장벽
튜링의 이론적 낙관 때문에 1950년대 인공지능 연구는 엄청난 인기를 끈다. 당시엔 컴퓨터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1958년에는 컴퓨터가 20년 안에 서양 고전음악까지 작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음성 인식이라든가, 인공적 대화, 두발로 걷기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 정도는 수년 안에 완성될 것 같았다.
1955년 다트머스(Dartmouth) 대학의 수학과 조교였던 존 맥카시(John McCarthy)가 당시 다트머스 대학의 인공지능 연구 컨퍼런스를 위한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록펠러 재단에 보낸 편지에서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문구를 처음 사용하는데, 이를 기화로 artificial intelligence란 말이 널리 퍼지면서 인공지능(AI)이 업계 표준어로 굳어진다.
1960년대 들어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개발이 촉망 받는 벤처사업으로 급부상한다. 당시 소프트웨어 공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컴퓨팅 업계는 금방이라도 인간의 지능에 근접한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있었다. 이런 과학자들의 낙관덕분에 1980년대까지 인공지능 산업 분야에는 엄청나게 많은 자금이 투자된다. 이런 기초적인 기술개발 분야에 일반금융권까지 투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벤처투자 열풍이 그러하듯, 이때의 열풍은 별다른 소득 없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1980년대 많은 수의 인공지능 벤처 회사들이 주저앉았고, 투자자들은 엄청난 돈을 날리고 말았다.
초기의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업계에선 인공지능 개발에 대한 차가운 회의론이 번지기 시작 한다. 인간이 푸는 모든 종류의 논리문제를 기계적으로 답습하기란 (이론상 가능할지는 몰라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술의 최 정점에 와있는 인공지능.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는 기계인간을 개발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물론 이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긴 하지만. 현재 인공지능 개발은 수많은 분야로 나뉘어 전문화, 분업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 채팅 로봇, 체스/바둑/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웹 에이전트 등은 현재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단면들이다.
물론 아직은 어느 분야도 완벽한 형태의 인공지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술의 최전선에 이 인공지능이 와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어 도전 해볼만한 가치있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