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참전 2번째 수기
1기 전 수천
忠誠文學 통권 8호(2019년)에 1번째 월남참전 수기를 게제 후 2번째 수기를 적고자 합니다.
● 배트남 전쟁은 1960~1975년 까지 북베트남과 남배트남 민족 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군과 미국의 베트남의 통일을 위한 전쟁 이였다.
한편,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 이다.
1964년 9월 의료진을 중심으로한 비전투요원을 파견한 것을 시작 으로,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 30여만 명의 전투병력을 베트남에 파병 했다.
그 과정에서 1만6천여명 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많은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피해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 배트남 전쟁의 개요를 살펴보면
1945년 베트남 민주공화국 수립 →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재네바 협정) → 1964년 통킹만 사건 → 1965년 미국 북베트남 폭격개시 → 1973년 파리평화 협정(미군철수) → 1975년 사이공 함락 →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수립으로 이어졌다.
● 필자는 1971년 4월부터 1972년 5월까지 파월 맹호사단 1연대 6중대 1소대 장으로 근무 하였다.
당시 작전 기록 일부는 충성문학 8호(2019년)에 게제 한바 있어 省略하고, 동기생들의 현황 일부를 소개 하기로 한다.
3사1기 동기들의 월남 참전 인원은 모두 201명으로 임관 인원의 26%가 참전 했다.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들 중에 전공을 세워 받은 훈격을 살펴보면 유명한 안케 패스 작전의 자랑스런 이무표(당시) 중위의 태극무공훈장을 비롯 하여 화랑무공훈장 11명, 인현무공훈장38명, 무공포장10여명 등 수상 하였다. 이는 우리 모교의 조국, 명예, 충용의 교훈을 이어받은 정신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최근 월남 동기들의 소식을 보면, 이 무표 동기는 광양에서 등산, 골프 등 운동을 즐기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파월 교육을 함께 받은 이 재봉 동기는 교육대(당시 오읍리)수료 후 백마부대로, 필자는 맹호부대로, 보직되어 1년의 파월 기간을 마치고 각각 귀국하였다.
● 다시 만나는 인연
월남에서 귀국하여 필자는 군수기지사령부 경비단 해안소대장(청사포)으로 보직을 받았다.
경비단에 전입 신고 후 해안 중대에 도착해 보니 반가운 인연을 다시 만나다
3사관학교 교육시 같은 내무반에서 1년여간 동거동락한 이재봉 동기생, 파월 교육대(오읍리)에서 약 1개월간 함께 교육 받으며 일과 후 사지에 간다는 이유로 저녁마다 맥주집 점호 취하던 친구, 파월 귀국 후 해안 소대장으로 같이 근무하고, 대위 진급 예정자로 OAC(고등군사반) 교육을 같은 기간에 받고, 공부는 평소 실력으로 하고, 저녁마다 광주 황금동 맥주집 점호를 취했던 이재봉 친구와의 추억이 엊그네 같은데 . . .
그 후 친구는 전역 후 한양에서 한전 예비군 지휘관으로 착실히 근무하고 성실하게 잘 살았다. 약 2년전 재봉 친구가족 별세 소식에 문상 슬픔을 나누었는데, 최근 재봉이 친구의 건강에 이상이 있어 통원 치료를 받는다 하여 마음이 많이 아프다. 수일 전에는 건강이 많이 호전되고 있다는 희소식에 다소 마음이 놓인다.
재봉아, 친구야!
부디 快癒하여 다시 만나 쇠주 한잔 하고 싶다!
아울러 월남 참전 전우들 모두와 동기생 여러분, 영천하버드 3사인 모두의 健勝을 祈願합니다. 3사인 파이팅!
( 맹호 소대장 시절 분대장들과 한컷. 중앙 : 필자)
3사 1기 임관, (예)중령 주월 맹호사단 소대장(1971)
무공포장(1971) 보국훈장 삼일장(1985)
3사 경남동문회 명예회장 충성문학 경남지역 고문
첫댓글 2024년도 충성문학 편집에 반영하겠습니다.
늘 수고가 많습니다!
忠誠文學의 무궁한 발전을 祈願합니다 ❤️
우리 아버지도 월남전에 참전하셨어요
반갑습니다 💕 강건 하시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