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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다이에서 오랜만에 만난 김병현. 몸도, 공도 좋아졌지만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해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전에는 몸이 안돼서 공을 던지지 못했는데, 지금은 몸이 됐는데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
라쿠텐 골든 이글스 소속인 김병현은 마치 기자가 찾아가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무려 23일만에 9회말 마무리로 등판했다. 1이닝 동안 삼진 1개, 안타 1개, 내야땅볼 등으로 타자 4명을 상대하며 깔끔한 피칭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정말 갑작스런 등판 통보에 제대로 몸도 풀지 못하고 올라간 상태임에도, 마운드에서 내뿜는 김병현의 자신감이 타자들한테 제대로 먹혔다는 사실이다.
경기를 마치고 김병현과 함께 리후에서 센다이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평소에는 기차를 타고 센다이 시내에서 리후야구장까지 출퇴근한다는 그는 시골 간이역의 평화로운 정서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고 말한다.
김병현과의 정식 인터뷰는 리후야구장을 방문하기 전날인 8월 8일 이뤄졌다. 센다이 역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승용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 차림이었다.
자신이 단골로 이용한다는 한국음식점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하고 그 음식점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고층아파트가 나타나자, “내가 저 아파트 15층에 살아요. 그런데 아직도 밤에 잘 때 건물이 흔들릴 때가 많아요. 어휴, 그럴 때마다 긴장되죠.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라며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지진 후유증에 대해 토로한다.
라쿠텐 유니폼을 입고 지낸 한 시즌동안 또 다시 굴곡 많은 인생을 경험하고 있는 김병현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인다.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가?
“마음을 비워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운드에 올라가본 지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운동을 많이 하고, 마운드에도 자주 올라가야 내가 야구선수라는 느낌이 드는데, 유니폼 입고 출근해서 스트레칭하고 피칭 연습하고 간단히 런닝한뒤 벤치만 달구다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몸도 이상이 없고, 선수도 뛰고 싶어 하는데, 감독이 왜 마운드에 올려 보내지 않는 건가.
“시즌 개막 직전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한 뒤 2군에서 재활에만 매달렸다. 그 후 몸 상태가 좋아졌고, 한동안 매 게임 등판하며 경기 감각을 끌어 올렸다. 2주동안 계속 공을 던지다보니까 조금씩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간혹 한두 개는 내가 만족할 만한 공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감독이 날 마운드에 세우지 않았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내가 감독이 아니니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즈음에 코칭스태프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한 번은 미팅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유니폼을 갈아입다가 미팅실로 뛰어가면서 벨트를 채우며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감독이 날 보고 큰소리로 화를 내셨다. 통역이 전달한 내용에 의하면, 신성한 야구장에 오면서 벨트도 제대로 채우지 않고 들어온 데 대해 지적을 했다는 것이다. 벨트를 채우며 미팅실로 들어간 게 아침부터 감독이 화를 낼 정도의 대단한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야구장이 신성한 곳이라고 해서 여기 일본 선수들은 야구장에서 침도 안 뱉나. 그렇다면 야구장에서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가면 안 된다. 그런 곳에서 야구를 배운 조지마는 시애틀 시절 타격훈련할 때 모자를 거꾸로 쓰고 훈련했다.”
-그렇다면 감독이 일부러 더 화를 내고 야단을 쳤다고 생각하나.
“추측일 뿐이다. 내 입장에선 잘못한 게 없었고, 벨트 문제로 아침부터 그렇게 화를 낼 사안이 아니었기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독이(나무라 카오루)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선동열 감독님이랑 함께 생활했다고 하시더라. 한국에서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고 해도 일본에 오면 2군으로 내려간다는 말을 하면서 내 감정을 자극하곤 했다. 이건 순전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국의 좋은 선수들을 데려가서 조금의 실수가 보이면 제대로 활용하지 않거나 기다려주지 않고 2군으로 내려보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2군에 있어서가 아니라, 여기 와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니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어쩌면 라쿠텐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라쿠텐과의 연봉 계약할 때 특별한 조항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 연봉 협상을 할 때 구단측에서 얼마를 원하는지 물었다. 그래서 구단이 요구하는 대로 받아들이겠다고 하니까 1년 + 1년에다 바이아웃 조항 등 조금 거창한 계약 내용을 제시하더라. 그런데 내가 그런 조건을 받아들이기가 불편했다. 내 공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 무조건 돈만 많이 받고 싶지 않았다. 괜히 잘못했다가 날 구단에 소개해준 사람한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옵션이야 앞으로 내가 잘해서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미니멈’을 달라고 했다(30만 달러). 야구가 안 되면 몇 달 뒤에 잘라도 된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구단에선 오히려 내가 잘 됐을 때 일본 내 다른 구단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더라.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 편으로는 계약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만족할 만한 공이 나오면 1년 뒤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돈을 받고 내 몸을, 내 공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니까 은근히 너무 양심적으로 계약을 맺었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등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마냥 기다리기가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김병현. 월급 받는 게 미안해서 돈을 주지 않아도 되니까 자신이 필요없으면 내보내달라는 얘길 전한 적도 있었단다. 김병현이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고 본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그렇게 해서 팀 훈련에 합류했고, 시범경기 때는 좋은 투구의 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3년동안 혼자 운동을 하다가 단체 훈련을 하니까 조금씩 몸이 좋아지더라. 선발이 아닌 불펜이라 1이닝, 2이닝 정도는 막을 수 있겠다 싶었다. 컨디션이 올라왔을 때는 145km의 직구 스피드가 나왔다. ‘아, 이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군 선수들을 상대로 어떤 공을 던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발목 부상을 당한 것이다. 부상에서 회복하고, 계속 감독의 호출만 기다렸다. 빨리 올라가서 던져야 스프링캠프 때 찾았던 감을 잊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급기야 코치를 찾아가 기회를 달라는 얘기를 꺼냈다. 마냥 기다렸다가는 득도의 경지에 오를 것만 같았다. 내 말이 받아들여졌는지 그 후 2주가량은 매 경기에 등판했다. 자주 등판하니까 다시 감각이 살아나는 듯 했다. 그러다 아까 말한 것처럼 그 ‘벨트 사건’으로 감독이 날 이상하게 봤는지, 다시 등판을 시키지 않더라. 그렇게 기다리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새 시즌이 한 달 반 밖에 안 남았다.”
-몸이 좋아지니까 이번엔 마음이 복잡해지는 일이 생겼다. 등판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 정말 창피했다. 미국에선 필요 없을 땐 과감히 정리한다. 그런데 일본은 자르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나한테는 하루하루가 금쪽같은 시간인데, 그저 시간 때우는 사람마냥, 하릴없이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 너무 힘들었다. 만약 이전의 나였더라면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팀을 나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면 사랑스런 내 딸과 아내가 날 기다리고 있고, 어느새 난 우리 가족들의 가장이었다. 그 책임감이 이전처럼 쉽게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1군 용병제도가 ‘4명 등록, 3명 동시 출전’으로 제한돼 있는데, 1군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이 용병 제도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글쎄, 그건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 세 명의 용병들도 모두 좋은 상태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배운 건 단 한 가지다. 바로 인내심. 앞으로 한 달 반 정도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기자가 야구장을 찾아간 날, 때마침 김병현은 23일만에 1이닝을 던졌다. 전날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몸도 제구력도 모두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 피칭이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오래만에 한 피칭치곤 나름 만족감을 드러낸 김병현이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올 시즌 모두 몇 이닝 등판했나.
“너무 적다보니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웃음). 올해 점수 준 게임을 설명하는 게 낫겠다. 첫 등판 때 외야플라이성 공이었는데 좌익수가 뛰어오면서 다이빙하다가 놓쳤다. 그래서 3루타가 됐고 1점을 줬다. 그 다음 게임에선 9회 주자 2루에 1아웃 상황이었다. 수비수들이 제자리에 있었더라면 잡을 수 있는 공을 전진수비하는 바람에 놓쳤다. 1점 추가! 그리고 3점 홈런 한 개 맞고, 그 다음 게임에서 주자 3루, 한 타자 삼진잡고 투아웃 상황이었는데, 감독이 갑자기 투수 교체를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안타가 나왔고 1점 득점이 됐다. 올시즌 동안 모두 6점을 내줬다. 내가 마운드에 올라가면 통역이 내 등판 횟수를 줄줄 외운다. 워낙 외울 숫자가 적다보니 그게 술술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시즌 끝나고 라쿠텐과의 재계약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 시즌에 어디서 뛸 건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겠다.
“정말 고민이다. 전반기까지 1군에서 뛰어보고 좋아지면 미국으로 건너가려 했는데, 1군에 오르지 못하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솔직히 중간에 한국행을 타진해보기도 했다. 한국에서 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넥센으로 가야한다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나 한국행은 개인적으로 좋은 결정은 아닌 것 같다. 아직 난 미국에서 제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제대로 점을 찍어야 새로운 도전도 해보는 게 아닌가.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김병현이 이렇게 유야무야 미국 무대에서 사라지는 게 싫다.”
-지난 1월에 딸이 태어났다. 카카오톡 이름이 ‘보석이 아버지’인데, 딸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
“민주다. 아내가 한국과 센다이를 오가며 지낸다. 지진과 방사능에 대한 걱정으로 아기가 한국에서 신생아 시절을 보내다 얼마 전에 아내가 아기를 데리고 센다이로 왔다. 그나마 가족들이 같이 있으니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야구선수로서의 자존심이란 게 아이 앞에선 맥을 못 추더라(웃음). 아기랑 아내가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는 걸 보면 ‘에휴’하는 한숨과 함께 행복감이 물밀듯하다. 내 야구가 잘 되고, 진로 문제가 브레이크 없이 풀려간다면 가족들한테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내 마음이 복잡하니까, 가족들한테 그렇게 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가 없었더라면 지금 생활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혼인신고는 했지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아내 머리에 언제쯤 면사포를 씌워줄 예정인가.
“올해 좋은 마무리를 했더라면 겨울에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올해는 힘들 것 같다. 결혼식 얘기만 나오면 아내한테 절로 미안해진다. 잘 참고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라 더더욱 미안해진다.”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김병현 패밀리. 아내 한경민 씨, 딸 민주, 그리고 아빠 김병현이다. 김병현은 아내와 혼인신고를 했지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야구를 통해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후 아내에게 그 미안한 마음들을 모두 갚겠다고 말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결혼하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결혼보다는 본격적인 교제를 하기까지 힘들었다. 내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내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거의 쟁취한 거나 마찬가지다(웃음). 정말 고맙고 감사한 사람이다. 한때 모델이었다는 타이틀 때문에 선입견을 갖고 계시는 분들도 있던데, 천상 여자고, 영원한 나의 베프다.”
-올시즌 FA가 되는 이대호 선수에 대해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알려졌다. 한국 스타플레이어들의 일본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게 팀, 감독과의 궁합이다. 이대호든 알렉스 로드리게스든 뛰지 못하고 벤치에만 앉아 있다면 똑같은 후보 선수일 뿐이다. 난 옛날에 몸이 아파서 뛰지 못한 적은 있었어도 아프지도 않은 데 뛰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 처지에서 후배들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실력있는 선수라면 가급적 일본보다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보길 권유하고는 싶다.”
인터뷰 다음날 리후야구장에서 김병현과 함께 센다이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또다시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자신이 센다이에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곧장 센다이=지진과 연결시켜 걱정하는 친척들이 많다고 말하는 그는 지진에 두려움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등판을 하지 못하는 아픔이라며 어렵게 속내를 꺼내보인다.
아이 아빠가 돼서 그런지, 김병현한테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삶의 여유가 물씬 풍겨나왔다. 일본에서의 야구 생활이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변과 낯선 체험의 연속들이지만, 가족을 든든한 백그라운드로 둔 지금은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센다이역 앞에는 김병현의 전화를 받고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가족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아내 한경민 씨와 딸 민주 양. 민주를 품에 안으며 연신 뽀뽀를 해대는 김병현의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다. 차분한 이미지의 한 씨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세 사람이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했다. 비로소 ‘김병현 패밀리’가 공개되는 순간이다.
2군경기가 끝나고 나와보니 팬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다린다. 비록 잦은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해도 라쿠텐 팬들한테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출신 투수로 기억되고 있었다. 김병현은 일일이 사인에 응하며 라쿠텐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김병현 미투 Q&A
로또복권
한국무대로 오시면 넥센으로 오셔야되는데 김병현 선수에겐 넥센이란 이미지가 궁금합니다.
“글쎄요, 솔직히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아요. 제가 알고 있는 넥센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게 넥센의 전부라는 생각은 안 해요. 유니폼을 입는다면, 어느 팀이라도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본에 있다보니 팀도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아직 제 입장에선 넥센이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수가 없어요.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ilmare0ss
힘들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을 텐데, 그게 언제였나요? 그리고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해요.
“이전에도 분명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지금 떠올려보면 옛날 일은 추억이고 현재가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게임을 계속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견디기 어렵네요. 못 참을 것 같았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여기까지 왔고, 시즌이 불과 한달 반 밖에 안 남았어요.”
ilmare0ss
국내 선수중에 연락하고 지내는 선수는 누구입니까?
“두산의 (김)선우 형이요^^.”
ilmare0ss
‘무릎 팍 도사’로부터 출연 섭외가 없었나요? 섭외가 들어온다면 출연할 의사가 있나요?
“전 거기 나갈 레벨이 안 돼요(웃음).”
Born_to_K
김병현 선수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팬인데요, 현재 구위에 본인은 만족 하시는지, 그리고 전성기때 마구로 불리었던 프리즈비 슬라이더랑 업슛은 지금도 던질 수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프리즈비 슬라이더는 체력이 달려서 그동안 던지지 못했는데, 라쿠텐 와서 계속 경기 등판했을 때는 한두 개씩 나오기도 했어요. 지금은 다양한 구질보다는 1이닝을 잘 막아야 하기 때문에 슬라이더, 체인지업, 직구 위주로 정확하게 던지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코알라
일본가셔서 싱커를 다시 배우셨다는데 실전에서 효과를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구메지마 캠프 때 일본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미스터 잠수함’ 야마다 히사시 전 주니치 감독으로부터 싱커를 배운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한테 맞지 않는 것 같아 캠프 때 외에는 던져본 적이 없습니다.”
로이
김병현 선수 기사를 보면 자기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공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항상 말씀하시던데 김병현 선수가 생각하는 ‘만족할 만한 구위’란 도대체 어떤 건가요?
“제가 던지는 게 직구인 줄 알면서도 타자가 못 쳤을 때, 가운데로 들어가는 공인 줄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하고 스트라이크 당할 때, 만족감이 느껴집니다. 전 공의 스피드보다 힘과 컨트롤이 좋아지는 걸 더 우선시해요.”
리암
김병현 선수 광팬입니다. 김병현 선수는 ‘내 꿈은 선발투수이다’라고 항상 말씀하셨죠. 과거에 선발 보직에 강한 집착을 보이셨던 구체적인 이유와 선발 보직의 꿈이 지금 아직도 유효한지 묻고 싶습니다.
“전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해요. 미국에서 계속 선발투수로 생활했더라면 아주 오랫동안 좋은 투수로 기억됐을 거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제 공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불펜으로 밀려나면서 1회부터 9회까지 항상 대기 상태로 지내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일본은 경기 시작 후에도 라커룸에서 마사지 받다가 5회 정도 돼서 불펜에 나가 몸을 풀면 되는 시스템이지만 미국은 1회부터 덕아웃에 나가 앉아 있어야 했어요. 시범경기 까지 합해서 거의 200게임을 그렇게 생활하고 나면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어요. 다른 선수는 몰라도 선발 투수 체질에 몸이 맞춰져 있던 저로선 참 많이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사람이 간사한 게, 지금은 그렇게라도 등판만 할 수 있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1회부터 대기하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더라고요. 대기하고 있다가 한달 가까이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는 일 보다는요.”
난누구여긴어디
성공한다면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은가요?
“아직 멀리 안 봤어요. 물론 가끔 욕심은 나죠. 여기서 메이저리그 중계하는 걸 선수들과 같이 보다 보면 마쓰이도 나오고 이치로도 등장해요. 또 내가 아는 선수들이 경기에 출전했을 때, ‘나도 저기서 뛰었었는데…’라는 생각도 들죠. 미국 야구를 보고 있으면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뒤섞이는 것 같아요.”
슈팅스타즈
메이저리그에서 꼭 꼭 꼭 다시 성공하세요!! 언제나 응원할게요. 성균관대에도 한번 놀러와 주시면 안 될까요?^^
“모교니까 당연히 가봐야죠. 시즌 마치고 한 번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dk00123
최고의 포수 마이크 피아자를 상대로 첫 세이브 획득하셨을 때의 기분은 어떠하셨나요?
“그냥 무덤덤했어요. 전 피아자보다 이치로를 처음 상대했을 때가 기억나요. 야구를 잘 하는 선수라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이치로를 상대로 좋은 공이 들어갈 때는 짜릿한 기분이 느껴지더라고요. 파울플라이로 싱겁게 끝이 났지만 타석에 들어섰을 때 저도 그렇고 이치로도 그렇고 기 싸움이 만만치 않았어요. 처음에 공을 던져봤을 때 타석에 선 타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느낌이 오거든요. 스윙하는 걸 봐도 판단이 서고. 이치로는 참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선수였습니다.”
honun
지진이나 방사능 공포가 제일 심한 곳이 센다이 지역인데 김병현 선수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새벽에 가끔 한 번씩 내장이 흔들릴 정도 심하게 요동칠 때가 있어요. 당연히 기분이 안 좋죠. 이렇게 잠들다가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뭐, 어쩔 수 없죠. 지금은 라쿠텐 소속이니까 센다이에서 지낼 수밖에요.”
알만도
결혼 전과 결혼 후는 어떻게 다른가요? 야구를 하기에 더 도움이 되나요?
“생각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제가 원래 머리 쓰는 걸 잘 못하는데, 자꾸 머리를 쓰게 되고요. 책임을 져야 하는 가장이니까 아무래도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래서 남자가 결혼하면 철이 든다고 하나 봐요.”
cafebuono3
자신에 대한 소문이나 기사 중 가장 억울했던 것은?
“사람들이 절 처음 만났을 때 주로 이런 반응을 나타내세요. ‘어? 얘기 들은 것보단 좋으시네요? 전혀 이상하지 않으신데요? 아주 괜찮으세요’ 등등의 말을 하시죠. 한 마디로 듣기와는 딴 판이라는 내용인 것 같은데, 사람들의 이런 반응을 보면 ‘도대체 뭐가 괜찮은 거지? 날 얼마나 나쁜 사람으로 봤으면 저렇게 얘기를 할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언론을 통해 비춰진 안 좋은 이미지가 있긴 있나 봐요.”
소녀어깨
야구선수로서, 특히 투수로서 큰 키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언더로 투구 하시는지?언더 투구는 언제 결정하신 건지 알고 싶어요.
“중학교때 투구 폼을 바꿨어요. 언더로 했을 때가 좀 더 멀리 나가고, 폼도 부드럽다는 얘길 들어서요. 옛날에는 이강철 선배님 따라하려고 많이 흉내를 냈었어요. 선동열 감독님 투구폼도 연구한 적이 있었고요.”
올해는기필코
넥센 히어로즈를 살 생각이 있나요?
“하하하, 제가, 어휴, 요즘 물건 구매할 때 거의 할부로 사요. 3년동안 놀아서 모은 돈도 많이 까먹었어요. 앞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도 구단을 살 정도는 안 될 것 같은데요?”
BK
메이저리그 일본리그 두 리그를 경험해보셨는데. 선수생활의 마무리는 어디서 하고 싶나요. 항상 김병현 선수를 응원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조용히 야구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가정이 생기니까 멋진 마무리보다는 야구선수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라고 바뀌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저도 야구인을 넘어 생활인이 돼가는 거죠.”
BK
선수생활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팀에서 생활했을 때와 학교다니면서 친구들과 장난치고 놀고 그랬을 때가 가장 많이 생각나요.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요. 힘든 시기는, 외국에서 생활하면 다 힘든 것 같아요.”
김병현에게 KIA타이거즈란? 항상 그립고 마음의 고향같은 팀이라고 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Ysw
마지막은 고향팀인 KIA타이거즈에서 뵐 수 있겠죠?
“하하, 마음은 항상 그렇게 갖고 있죠.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제가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넥센으로 가느냐, 다른 팀으로 가느냐, 이런 문제들도 제 선택권 밖에 있습니다. 단, 이번 시즌 마치고 동계훈련을 할 때, 어느 팀으로 들어가서 선수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어느 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괜히 이상한 소문이 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요. 제가 자주 이런 얘길 하는데, 한국에서 공을 던질 때 마지막이 한국이 아닌, 잘 던질 수 있을 때 한국 마운드에 서고 싶어요. 그건 꼭 지켰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 인생도 더 이상 꼬이지 말고, 잘 풀렸으면 합니다. 고향팀은 항상 마음의 그리움으로 남아요. 그래서 항상 애틋해지는 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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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너무 아쉬운 인재다! 애리조나 마무리때 선발욕심을 왜 내가지고 ㅜ.ㅜ
왜 bk 임?
김병.
ByungHyun Kim 병현킴
삼진왕~병현 +삼진 K
아하 지금까지 몰랐음....무식한게 죄요 ㅋㅋㅋㅋㅋㅋㅋ 본 투 케이군요.......근데 뭐가 정확한건가요.....
탈삼진 기계 (K)에서 유래
기아와라!
지명권은 현대에 있는게 아닌지??
김좆키!~
BK 전성기 포스 쩔었는데..ㅠㅠ 재활 꼭 성공하세요!!
와이프 참 하게 생기셨네....^^
경민아~~~~~~~~~ㅠㅠ
근데 기아로 가는게 맞지 않나요? 잘 못 알고 있었나;;ㅠ
제가 알기론 현대 그래서 넥센
해외선수 지명에서 당시 현대가 지명한걸로..그 지명권은 넥센에게 아직 유효하게 있는걸로 압니다.. 실제로 미국으로 가기전에 프로에서 지명을 받았던 선수들은 그지명했던 팀으로 복귀한걸로 아는데(아마 봉중근과 최희섭으로기억)그렇지 않은 선수들을 일괄적으로 프로구단에서 지명한걸로 아는데..그떄 김병현지명한게 현대였음..
부인 정말 짱이쁘다ㅎㅎ 반드시 부활하리라 믿습니다 BK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