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도 병마사 윤숙의 기록은 우연하게 발견 되었다,
인지를 못하였는데, 영종도에 있는 철비를 보러 가서 비석을 보았는데
그곳에서 윤숙의 선정비를 보고 울산에 있는 병영과 관계되는 인물인 것을 알았지만, 경상좌도병마사와 직접적인
선정비가 보이지 않았는데 군위 화산산성에 윤숙의 선정비를 보았기에 글을 쓴다.
윤숙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는 좌도병마사 기록이 보이지 않지만 승정원 일기에는 부임한 날은 보이지 않고
벼슬이 체직된 기록은 남아 있다.
승정원 일기 내용
숙종 35년 11월 21일 정해 10/16 -- 1709년 康熙(淸/聖祖) 48년尹淑이 慶尙左兵使에서 遞差되어 옴
○ 護軍尹淑, 慶尙左兵使遞來。--
위의 기록에서 보듯이 경상좌도 병마사 제수된 기록은 없고 벼슬이 갈려서 돌아가는 기록만 남아 있다.
윤숙의 선정비는 화산산성 북문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어 쉽게 갈수 없는 곳이다.
대부분의 답사자들은 보지 못하고 오는곳이다.
비문의 아래와 같다.
제는 병마절도사 윤공 숙 비
華山天險也 己丑歲 故節度使 尹公淑 爲築城
計先作虹霓門使 慧輝斗晴又 設軍需寺皆捐俸
以募工無絲毫病民事未幾歲飢停役尹公又遞至
今數十年無有繼之者國家保障之地未免虛葉惜哉
姑記首事梗槩以告後來請君子
都監 僧 彩學
譯文
화산은 천연적으로 험한곳이다.
1709년 故 병마절도사 윤숙 께서
성을 쌓을계획을 세워 먼저 홍예문을 세우고
혜희와 두청에게 군수사를 짓게 하였다.
녹봉을 내어 석공을 모집하므로 실끝 만큼
백성에게 폐해을 주지 않았다.
공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흉년이 들고
공사를 중지하고 윤공 또한 체직되어 떠난 후
수십년이 되었지만 일을 계승 할 사람이 없으니
국가 안보의 요새지가 허섭함을 면하지 못하니
애석하다.
상기의 줄거리를 기록하여 후세에 여러 군자에게
알리고자 한다.
도감 승 채학
위의 글에서 보듯이 윤숙이 떠난 후 바로 비를 세운 것이 아니고
윤숙이 1713년이후에는 벼슬기록이 없기에 그 이후로 사망한것으로 보이고
비석은 1725년에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화산산성에 있는 군수사의 내력을 알수 있는 기록이 있어 아주 중요한
정보라 생각한다.
울산에 있는 좌도 병마사 윤숙이 직접 가서 감독은 자주 못 하였지만 화산산성이 국가 보안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 울산에 벼슬을 한 인물을 하나 더 찾아낸것에 만족한다.
화산산성에 몇번을 갔지만 이제 알아 낸 경상좌도병마사 자료를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밀교문화원전임연구원
벽라 옥산
이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