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언제인가 제주에 사는 문우文友가 말하길 제주는 뭍과 달라서 공기에 습이 있다 했다. 바람이 날렵하고 쾌활하기보다 살갗에 잠시 머물다가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6월 초하의 정오 제주공황에서 그가 했던 말은 떠올랐다. 햇살은 투명하고 바람은 틀림없이 청량하다. 그의 말 때문인가 바람이 슬쩍 건드리고 날래게 도망하는 것이 아니고 슬그머니 기대이고 밀쳐보고 가는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는 초하의 정오바람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문우의 말 때문이거나 뭔가 다를 것이라는 초행의 제주여행객이 곤두세운 치기일 것이다. 아무튼 우리 부부가 오랫동안 고대했던 3박4일의 제주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아내의 계획은 도착 즉시 제주 동문시장에 가서 싱싱한 생선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이것이 우리의 제주여행계획이다.
렌트한 차가 자신이 모는 차종이 아니어서 아내가 조금 긴장했다. 내비게이션은 빈틈없이 명확하고 세밀하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동문시장은 한낮이라서인지 번잡하지 않다. 손바닥 넓이의 은빛갈치가 먼저 시선을 붙든다. 갈치의 은빛이 이렇게 화려한 것인지 미처 몰랐다. 어머니는 저런 놈으로 지진 갈치조림을 좋아하셨다. 아내는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갈치조림으로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좋아하는데...’ 그럴 것이다. 초입의 왁자한 식당을 지나 시장 중앙 못 미쳐 허름한 밥집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갈치조림이다. 조림은 달지 않는데 달큼하고 짜지 않는데 짭조름하고 고소하다. 이건 진짜 조림이다. 아내가 밥집 하나는 제대로 골랐다. 밥 한 공기를 더 청했다. 허리 굽고 허옇게 쇤 노인이 들어오자 여주인이 반색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방언이지만 반가움과 오랜만에 온 것을 은근 걱정하는 기색인 것은 알겠다. 어떤 경우는 말보다 몸짓이 더 많은 말을 전달한다. 우리에게는 표준어였다. 아마도 우리 여행의 맛은 표준어와 제주방언 사이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큰아이가 예약한 민박집을 간다. 대단한 세상이다. 주소하나 달랑 들고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어디든 가고 올 수 있다는 것, 더군다나 일면식도 없이 연결되어 오간다는 사실에 감탄하지만 나는 어쩐지 거북하고 어색하다. 민박집 주인은 면식은커녕 아예 나타나지 않아주는 것이 손님을 존중하는 것이고 예의(?)라는 아내의 말에 할 말이 없어 아무 말도 안 하자 아내는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약효가 너무 센가 하는지도 모른다. 동문시장에서 남서쪽으로 68km를 달려간다.
제주시의 표정은 조금 전 떠나온 서울의 모습하고 사뭇 다르다. 키 낮은 건물과 좁은 도로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옛 학생시절 지방도시의 눈에 익은 정경들 같다. 가로수 키가 낮다. 바람 탓일 것이다. 모든 개체는 주어진 환경에 기대고 포섭한다는 말은 진리다. 시내를 벗어나자 사방이 훤하다. 사방이 훤히 트였는데 시야는 먼데까지 닿지 않는다. 시계視界는 눈이 편한 느낌만큼 멀고 가깝다. 뭍과는 다르게 사뭇 무던하다. 동해를 가는 내륙의 도로에서 내 눈은 산과 계곡의 위세를 이겨내지 못한다. 높이와 두꺼움으로 산은 나를 압박하고 계곡은 가파름으로 나를 위협했다. 산과 산, 그 틈새와 끝자락에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인간의 거처는 늘 서늘했다. 길은 오직 시간을 위해 수평과 직선을 요구했고 도로는 터널과 교량으로 응답했다. 풍경은 소화되지 못하고 거북해했다. 남으로 가는, 김제에서 익산을 잇는 서해 들野은 막막하다. 그 들에 서서 석양을 대하면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이 벼락 치듯 엄습했다. 들은 다만 들로 무관심하다는 사실, 서해로 서해로 쓸려가다 종당에는 수평선으로 무화되고 마는 현실이 사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동해는 무게를 알 수 없는 두께와 두께를 알 수 없는 무거움으로 길을 끊어 주저앉게 하고, 서해는 무엇으로 되고 무엇으로 머물고 싶다는 것이 무엇으로도 머무르지 못한다는 허망으로 조여 왔다. 끓긴 길 앞에서 동해는 침묵으로 압도했고 서해는 끝없이 이어짐으로 아득했고 견딜 수 없도록 했다. 제주의 길은 무게와 두께로 숨 막히게 하는 것도 무엇으로 되고 무엇으로 머물지 못한다는 허망도 없다. 비스듬히 오르고 내려앉은 구릉과 낮은 들, 중간중간 나타나는 오름의 모습이 눈을 편하게 한다. 야트막한 언덕이 슬그머니 길을 닫고 살그머니 길을 열어 이끈다. 붙잡지도 않지만 놓아주지도 않는다. 모처럼 눈이 편해지자 육신이 편하고 편하다.
한적한, 전혀 관광지답지 않은, 집집마다 거무튀튀한 돌로 담을 쌓아 바람벽을 세운 마을에 도착했다. 멀끔한 현대식 가옥도 두서넛 보인다. 우리 숙소는 돌로 지은 키 낮은 작은 민박집이다. 대문께부터 현관까지 어깨높이 돌담이 슬쩍 휘어가며 골목길(이것을 올레라고 한다.)을 만들고 안내한다. 그 짧은 골목길이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주인 대신 맞는다는, 진심으로 잘 오셨다는 표정인 것만 같다. 아내가 현관 앞에서 전화로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묻고 있는 현실을 슬그머니 용서되도록 만든다. 벌써 모기가 있다. 아내의 종아리에 두 마리가 붙었다. 상대가 누구든 무엇이든 아내를 조금치라도 괴롭히는 녀석들은 그대로 둘 수 없다. 그의 말마따나 지은 죄가 많은 때문이다. 집안은 말끔했으나 환기되지 않은 탓에 퀴퀴한 냄새가 났다. 민박집을 나와 5분여를 달리자 바다는 눈앞에 있었다.
‘노을해안도로’는 한가했다. 아내는 비행기에서부터 지금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지속되기를, 그래서 깨끗하게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바다로 들어가는 일몰을 볼 수 있기를 간절해했다. 남쪽바다는 엷은 바람과 파란 하늘아래 갯 냄새에 자불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게 서행해도 뒤를 쫒아대는 차가 없다는 사실이 생경스러웠다. 이 생경스럽다는 감각 속에 나와 아내의 쫓기듯 살아온 삶의 현실태가 놓여있을 것이다. 부침이 놓였을 터이다. 이쁨과 믿음과 사랑을 받아본 사람, 의지할 곳 없어 외로워져본 사람, 삶의 혹독함을 견뎌온 사람, 그리고 기어코 감사하는 마음을 지켜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나는 제주 해안에서 이 사실을 현실로 되새기고 있다.
눈앞에 차귀도가 보이는 해안가에 차를 세웠다. 머잖아 일몰은 고요하게 시작될 것이다. 해안은 단조롭고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인다. 파도는 거무튀튀한 돌에 끊임없이 부딪히고 흩어진다. 끝내 다시 밀려나고 있었다. 우리네 삶은 그렇게 살아져 왔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살아낸 누군가 잘함과 잘못을 되풀이했 듯, 나 또한 잘못과 잘함을 꼭 같이 되풀이했을 것이다. 누 만년의 시간이 됨과 못됨을 견디고 반복하면서 파도처럼 오고 갔을 것이다. 여태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 느닷없는 구름이 생겨나고 아내의 기대가 어긋나듯 그랬을 것이다. 노을은 아쉬운 탄식과 함께 흑적색으로 가라앉았다. 어둠은 금방 바다를 덮었다.
마을길을 걸으며 이른 아침을 보고 있다. 맑음과 밝음, 고요가 서로를 깨우며 일으켜 세운다. 돌담의 검은 돌은 습한 물기를 머금었다. 돌담은 어깨에 못 미쳐 집 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 스스럼없음이 어색하게 만든다. 담을 이룬 돌과 그 돌들 사이는 햇빛도 바람도 스스럼없이 드나들고 있다는 것, 누구의 시선도 막지 않는다는 것, 여기도 저기도 똑 같은 거무튀튀한 돌, 같은 생김, 같은 높이라는 것, 그것들이 도무지 담장 같지 않다는, 담장 노릇을 모르는, 그래도 담을 이루고 있다는 태연함이, 실은 내가 아는 담장과 다른 것이 무안스러운 것이다. 담장은 물리적 경계이자 높고 낮은 차이와 한계 영역이라는 것, 돌과 벽돌의 완강함, 그 위에 철망이 놓여도 눈 설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신경이 무참한 것이다.
돌담 거무튀튀한 현무암의 패인 곳, 돌과 돌 사이, 모래 알갱이 몇 개에 불과할 것 같은 흙에서 다육이의 잎은 간난아이 손처럼 포동포동했다. 마을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깨어나고 있었다. 이상하지만 마을의 키 낮은 지붕들과 어깨에 겨우 미치는 돌담에서 지금 나는 세상이 평평하다는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 큰애는 애비의 못된 성질을 헤아려 서너 달 전부터 수없이 찾고 찾아 이 마을(한경면 신창리 성굴마을)에 숙소를 정했을 것이다. 이 고요한 아침을 감사하도록 했을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못마땅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초행의 여행객을 정확성과 세밀성으로 안내하는 한편 포획하여 조종하고 지시한다. 우리는 그 양가성이 거북하지만 거부하지 못한다. 일방의 소통이 주는 불쾌보다 혜택이 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내비의 말을 듣지 않기로 작정했다. 제주는 동에서 서로의 횡단은 실컷 해야 두 시간 안쪽이라는 얄팍한 타산이 부추겼을 것이다. 내비의 도움 없이 무작정 다닌다는 것은 무슨 맛일까. 시작부터 망연하고 난감했다. 한라산을 등대삼기로 했다.
한라산을 향해 가는데 초지에 말馬이 있었다. 차에서 내려 바라보고 있자 짙은 적색의 말은 천천히 걸어왔다. 말은 내가 알고 있던 말의 형상과는 같으나 달랐다. 경주마처럼 일촉즉발의 근육을 긴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전투 장면에서처럼 갑옷으로 중무장하거나 기병대의 말처럼 늘씬해 보이지 않았다. 몽고초원을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수천마리의 무리를 벗어난 외로운 기색도 없었다. 인간의 고삐에 거품을 흘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 녀석은 다만 말의 모습으로 한가했고 풀을 뜯고 천천히 걸었다. 가축으로 전전긍긍하는 것도 아니고 가축과 무관하게 짐승으로 짐승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내게 익숙한 말의 형상은 말의 것이 아니고 인간의 것에 불과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말의 한가함과 무관함은 전염되는가 나도 아내도 한가했고 무엇과도 무관해졌다.
5.16도로로 들어서자 고요하게 가느다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늘어선 삼나무들은 이제 막 기지개를 키고 근육을 풀었는가 싶다. 세면한 물 묻은 얼굴 같기도 하다. 보수라는 사람도 저 삼나무 중의 하나를 심었는지도 모른다. 중년에 만난 그는 소주를 잔으로 마시지 않았다. 국그릇으로 잔을 삼았다. 십여 그릇을 들이키고야 비로소 잔의 속도를 줄였다. 그는 5.16군사정권이 시행한 사회정화운동에 깡패로 붙잡혀 제주도로 실려 갔다. 그리고 무장군인들의 감시 속에 한라산을 횡단하는 5.16도로를 뚫는 노동에 강제 투입되었다. 작업 중 백 년인지 이백 년인지 모를 더덕을 캤고 뿌리와 그 안에 고인 쓰고 단물을 모두 먹어치웠다. 입안이 세 번 허물을 벗어야했고 술을 먹어도 취할 줄 모르는 위대한(?) 위장을 지니게 되었다.
길은 깊은 풍경과 편안을 주고 있다. 어느 곳이든 어떤 것이든 흑역사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똑 같은 성질, 똑 같은 이유, 똑 같은 구조로 반복된다. 다만 작은 다름, 작은 차이를 구하고 발견하는 데서 위안받고 소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언명에 잘 길들여져 있다. 현재는 과정이 삭제된 채 결과에 순응되어 있는 것의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를 즐거이 향유하는 데 습관화 되어있다. 그래 결과에 치인 과정은 역사가의 재배치거나 문학의 시선에서만 식은땀을 흘리며 자맥질로 남는 것이다. 발아래 서귀포가 내려다보이는 길가에 커피와 토스트를 파는 트럭이 있었다. 비와 커피와 낯선 곳에서 아무런 계획도 없는 시간이 서귀포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제주는 뭍과 다르다. 6월이면 모내기를 끝낸 논이 한 자락쯤은 있어주어야 하는데 없다. 산자락 보기 좋은 곳에 둥그런 묘 하나쯤은 보여야 하고 층을 이룬 다랭이밭이 보여야 하는데 여기는 없다. 뭍이라면 사방에 보이는 것들이다. 뭍의 마을에 꼭 한두 채는 있는 위세를 앞세운 소슬 대문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머무는 성굴마을 옛집들은 거개가 대문이 없다. 대신 반듯이 본채로 향하는 짧은 골목길(올레)이 반달처럼 굽어 있다. 뭍에서는 분명 대문이 있을 곳에 허리께 크기의 돌이 출입구 양쪽에 서 있을 뿐이다. 뼘 반 차이로 구멍이 세 개가 뚫려 있다. 성읍민속촌을 가서야 귀동냥을 했다. 뚫려 있는 구멍은 손목 굵기의 통나무를 가로질러 말이 밖으로 함부로 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고, 구멍 세 개 모두에 통나무를 걸치면 2~3개월의 외지 출타를 의미하고, 두 개를 끼워 놓으면 1~2주의 근행을 말하고, 하나만 끼우면 마을에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띠풀로 굵은 새끼를 꼬는 공동작업을 하시던, 제주를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푸념하는 아주머니의 설명이다.
작업은 다섯 사람이 한 조를 이루고 있다. 두 사람은 팔자 형태로 사이를 벌리며 새끼가 꼬아지도록 줄을 바람개비(작은 기구가 있다.)처럼 돌리며 계속해서 끌고 나간다. 저쪽의 한사람은 열심히 띠풀을 네모진 기구 속에 밀어 넣고 두 사람은 띠풀을 다듬고 추려내어 뒤를 대는 작업에 열중한다. 지금 꼬는 줄로 띠풀로 이은 지붕을 묶는다.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줄을 끌고 나가는 두 분 아주머니는 노래를 한다. 소리가 청아하다. 힘들어 보이지만 어쩐지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우리가 잊어버린, 우리라는 공동체가 각자 사용되는 물건을 서로의 손을 빌려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의 즐거움을 보는 성 싶다. 오늘의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노동을 다만 내가 생산한 물건이 누군가의 효용으로 사용되는 결과만으로 이해하는 편리한 사람들이다. 과정이 주는 정신활력과 협력이 주는 상쾌함, 성취욕의 발견은 그들에게는 불필요한 논외의 영역이다. 삶이 외로워지는 이유라면 너무 무책임한가.
제주濟州는 한자어 그대로 ‘물을 건너고서야 만날 수 있는 고을’이다. 돌 많고 비바람 억세고, 삶은 내가 말할 수 없다. 논은 보이지 않고, 밭은 돌담(밭담)으로 쌓였고, 바다는 어쩔 수 없는 터전이었을 삶에 어떻게 삶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밭담은 캐도 캐도 나오는 돌을 처리하기 위한 노동이었을 것이다. 물질은 숨비에 목숨을 맡기는 운명에 다름 아니고 비와 바람은 텅 빈 동서남북 사위에서 함부로 할켜 댔을 것이다. 그래 뭍이라면 위로 자랄 관목조차 옆으로 펴져야 했을 것이다. 지붕은 한껏 낮춰야 했고 동아줄 같은 새끼줄로 얽어매야 했을 것이다. 마을마다 신당神堂의 할망과 신목神木의 위안은 필연의 것일 터이다. 그 삶이 세계유네스코 유산이 된 것이다.
유일 신앙에 유일신의 형상은 없다. 다만 형체 없는 말씀과 공백으로 영혼을 위로하고 안식처로 삼게 만든다.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해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어떤 장소는 있다. 하등 조금도 다를 것이 없지만 그에게만은 특별한 곳은 있다. 나에게는 시골 본가의 남쪽으로 문이 난 격자무늬 모퉁이 작은 방이 그렇다. 한지를 투과한 여린 빛이 가만히 멈추는 앉은뱅이책상이 있었다. 문을 열면 토방에 겨울 햇살이 눈부셨고 바람이 일면 댓잎이 싸륵 쏴아 울었다. 그런 날이면 내 영혼이 우는 것 같았다. 제주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곳일 수 있다. 그러니 개발이네 복원입네 하지 말자. 그냥 냅두자. 산담(묘를 감싸게 두른 돌담)으로 죽은 자를 모시는 자세를 그대로 두자. 육지의 산은 겹을 이룬 두꺼움으로 두텁다 제주한라는 다만 홀로된 두꺼움으로 두텁고 두터웠다.(2023년 6월)
*후기 - 부끄러움과 염치를 무릅쓴다. 처음으로 제주여행을 했다. 적어두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기행문이 아닌 기행수필을 쓰고 싶었지만 멀고 멀다. 제주한라산은 두터움으로 말하고 싶었다. 두꺼움은 형상形象을 말하고 두터움은 형태形態를 의미할 것이다. 상象은 외형의 것이고 태態는 내면의 것일 게다. 내면이 아니면 원래의 것에 마음 심心자를 합했을 리가 없다. 아마도 기행문은 형상에 가깝고 기행수필은 형태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내식의 해석이다. 한라산은 내게 두께가 아니고 두터움으로 다가왔다. 특별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