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로 접어드는 11월 5일
한국문협 철원지부 주최로 철원 (상허 이태준 문학제)을 갔다
해방전 이상, 정지용 등과 함께 구인회의 좌장역활을 하며 한국문학계의 거성이였으나
해방후 월북으로 인해 선생의 이름은 물론 작품까지도 문학사 속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어
전후 세대들에게는 아직도 생소한 존재로 남아있는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조치로 인해 조금씩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월북후 더 넓은 작품세계를 펼치지 못한 채 "단편소설의 완성자"란 평가에 머물고 말았다
그의 고향인 강원도 철원땅에서 조촐하나마 추모제를 9 회째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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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 이태준) 은 월북작가이기 때문에 그동안 일반독자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었지만 그의 단편소설은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로 인해
한국문학사에서 "조선의 모파상" 이란 별명으로 불리운다
실제로 일제시대 그의 단편 소설집 "달밤"은 2만 3천부가 팔릴정도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다
처음 그분의 사진을 보고 "우와~~유럽스타일이야"~하고 감탄했을 정도로
후리후리한 키에 서구적 미남이셨던 상허 이태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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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 이태준은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조선이 일제와 합방이 되자 조국을 등지고 러시아로 망명한 부친을 따라
6살 때 블라디보스톡으로 갔으나, 그해 8월 부친의 별세로 귀국하여
함경북도 이진(배기미)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9살 때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 천애 고아가 되어 고향에 있는 친척집에 맡겨져서 자랐다
1921년 서울 휘문고보에 입학하였으나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적되어 1924년 퇴학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면서 쓴 단편소설 <오몽녀> 가 시대일보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27년 동경에 있는 상지대학 예과에 입학 했으나 곧 중퇴하고 귀국하여 이후
개벽사 기자, 조선중앙일보 기자 등을 역임하며 단편소설
(산월이 , 고향,불우선생)등을 써서 문명을 날렸다
1933년 박태원 ,이효석 등과 구인회를 조직하여 조선 문단의 한가운데 우뚝 섰으며
이화여전 교수를 역임하고 1939 년 문장을 발간하여 편집인 겸 발행인이 되기까지
수 많은 중 장편과 단편 (달밤,까마귀, 복덕방,패강랭, 영월영감) 등 명작을 발표하여
조선 단편소설의 완성자란 이름을 듣기에 이른다
그러나 1941년 4월 문장이 일제의 강압으로 폐간되자 이태준은
강원도 안협으로 낙향 , 나라가 광복되기까지 붓을 꺽고 살았다 .
1945년 8월에 일제가 망하고 조국이 해방되자 이태준은 서울로 올라왔으며
이후 조선문학가 동맹 부위원장 , 현대 일보 주간 등을 역임하며 새로운 조국건설에 참여했다
이 무렵에 발표한 단편 (해방전후)에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고뇌하는 한 지식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이태준은 1947년 44살 때 월북하여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여행을 했으며
문학예술동맹 부위원장을 지내고 장편 (농토) 중편(고향길)을 발표하여 글솜씨가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1955년 부터 시작된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 때 이태준도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어 함경남도 노동신문사 교정원으로 좌천되었다
그 이후 우리는 이태준이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바 없다
1969년경에 강원도 장동 탄광에 이태준 부부가 살고있었다는 증언이 있긴 하나 확인되지 않았으며
지금 연세로 보면 108 세, 덧 없이 가셨겠지....하고 생각하니 조촐한 추모제가 안타까웁다
그 후 남한에서는 이북문인에 대한 해금이 발표되어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2011년 11월 5일 그 의 추모제 겸 문학제가 열리고 있던 그 현장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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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다
두루미 평화관앞 행사장에 따끈한 차와 커피, 떡 등, 이런 저런 따스한 준비로
외부에서 온 객들을 대접하는 봉사자들..주최하고 주관하고 후원해준 많은 단체와
개개인들의 봉사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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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문학제 기념
< 한국문학예술 회원님들의 시낭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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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와 시낭송 행사 후
주최측이 베푼 점심식사 ,각종 나물 수북히 비벼먹는 <한식비빔밥 부페>
철원 오대쌀로 만든 맛난 떡과 과일 차 등을 마시며 아름다운 문우의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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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문우님들끼리 뭉쳤으니
기념사진 찍기는 빠질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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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제 행사가 있던 두우미평화관 앞에서의
<한국문학예술회원>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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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평화관 문학제 행사를 마치고 화강문화센타에서
극단 <태후> 주관의 이태준 추모 기념극
이태준 단편소설중 유명한 달밤" 을 공연했다
모자라고 덜 떨어진 인물이 주인공인 "달밤"
이태준 소설속 인물들은 대부분 강팍한 이 세상살이에서 소외되고 무시되는 계층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신문사 보조배달원인 황수건 도 마찬가지로 평생 소원이 신문사 원배달원이
되어보는 것인 바보위인이다. 좌충우돌 코믹한 웃음을 자아내는 내용이지만 이태준은
이작품을 통해서 단순히 웃음과 재미만 주려했던 것일까?
어쩌면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양육강식 일제식민지로 전락한 조선민족의 어리숙한
천진성에 대한 민족적 자기연민에 대한 서러운 해학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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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줄거리를 잠깐 볼까?
뭔가 모자란 황수건은 아내까지 거느리고 형님의 집에 얹혀살면서
신문사 보조배달을 하는데 그의 소원은 원 배달원이 되어 보는 것이다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잘 살아볼려고 좌충우돌 노력해보지만 모자란 판단력으로 잘 될리 없다
덜 떨어진 위인의 모자란 행세를 집주인(이태준)은 인간적으로 대해주며 배려를 해주는데
모자란 바보지만 그래도 자기에게 친절한 이태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저 남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훔쳐 집주인(이태준)에게 선물이라고 갖다 주는 등, 어긋난 순정과 의리를 나타낸다
그러나 야속한 세상살이에 바보가 설자리가 있겠는가
원배달 커녕 보조 배달원직 에도 쫓겨나고 마누라도 도망가고 참외장사도 망해버리는데 ..
달빛이 거친 비단처럼 길에 깔리던 달밤 ,
속절없는 달밤에 달빛에 서럽게 취한 그가 비틀거리며,,
사케와 ~미다카 다메아 ~카 ~~ (술은 눈물이냐 한숨이냐~~) 란 노래를 부른다
몸 둘 곳 없는 바보 황수건, 달을 보며 한소절 노래만
되풀이 하여 부르는 마지막 장면이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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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문화센타 시화전 및 시낭송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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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전쟁의 상징인 노동당사"
버스를 타고 길을 지나치는데 흉물스런 건물이 보인다
바로 분단과 전쟁의 상징인 < 노동당사> 건물이다
원래 철원군은 6/25 전쟁 전에는 북한 땅이였던 수복지구다
전쟁과 이념과 사상의 철저한 희생자" 였던 철원군의 역사
그 가슴아픈 역사의 파편처럼 노동당사의 외벽 건물은 포탄과 총탄의 흉터로
만신창이가 된 채로 오늘도 분단된 이념의 정치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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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동란 당시 피비린내나는 격전지였던 백마고지
1952년 10월6일 중공군의 대 공세에 의해 10여일간이나 계속된 백마고지 전투는
약 30만발의 포탄이 이지역에서 사용 되었으며 고지의 주인도 24번이나 바뀌었단다
이 전투에서 1만4천명이 전사한 중공군 2개 사단이 완전히 와해되었으며
국군 제 9사단은 백마고지 전투의 대승을 계기로 백마사단이라 명명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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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치열했던 전투를 뉘라서 입을 벌려 설명할까?
다만 코"를 썩게 하는 악취와 산을 이룬 시체에 놀란 입"
엄청난 포탄으로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산의 능선
사상과 이념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잔인한 전쟁을 허락했더란 말인가
어리석은 인간들이라고 한탄하기에는 희생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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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백마고지 사수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국군 제 9사단 장병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철원군 철원읍에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가 건립되었다
6/25 발발 60년 , 고인들이시여~이제는 부디 편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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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전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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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형태가 변했다는 백마고지능선
아직도 나무가 없이 황량하니 붉은 능선이 저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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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60여년~
전후 세대인 우리들에게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졌던 살육의 그날,
처참했던 기억이 생소하기만 한데 ..
무심히 바라 본 하늘에 높이 뜬 달,
퍼렇게 저물어져 가는 비끼는 하늘아래
모든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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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패망의 역사로 기억하듯이
이념과 사상으로 분단된 역사 전쟁의 아픔속에
철원 만큼 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는 도시가 또 있을까
철원만큼 유서깊고 아름다운 도시도 흔치 않다는 사실
역사와 자연이 주는 많은 이야기를 찾는 여행길에도 이만한 곳이 없다 !!!
초기인류의 흔적을 알려주는 <장흥리 구석기>
급한 여울의 레프팅이 주는 즐거운 대명사 <한탄강>
이승만과 김일성이 반씩 놓았다는<승일교>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의 전설을 간직한 <고석정>
한국의 나이야가라 폭포로 불리운다는 <직탕 폭포>
금강산 가는 길의 입구인 <용담마을>
분단한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노동당사>
깨닳음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도피안사>
예전부터 학이 많이 살고 오늘날도 습지가 발달하여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학저수지>
그리고 철원오대쌀로 유명한 철원평야의 <대야잔평>등등..
이런 가을날에 누렇게 벼가 익은 대야잔평을 바라보며 걸어보는 누리길은 또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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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을 고향으로 둔 이태준 선생님
철원은 수북지구인 까닭에 사상적으로 완고하여 아직도 선생님은
고향땅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받으시는 듯 하다
가까운 장래에 곧 통일이 도래 할테지
웃고 떠들고 돌아보는 와중에 잠깐씩 숙연해 지는 마음 ,
이런 저런 생각으로 문학제를 다녀오며
다신 사상과 이념으로 희생되는 문학인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한국문학예술 취재기자/하령
첫댓글 와우, 똘망똘망한 하령 감자의 현장 속보에 비겁하게 동행한 이내 몸은 다 타버린 군고구마 가슴이 됩니다
어머나 비겁한 동행이라뇨~무슨 말씀~
도니님이 준비하셔서 가는 길에 들려준 철원문학기행에 즈음한 철원땅 시 낭송" 감동이였답니다 ~
그 시, 시방에 올려주심이 마땅한 줄 아뢰오~! ^^
넵, 철원 문학기행 기념으로 <행사낭송시>방에 <철원 가는 길> 올렸습니다
늘 하는 소리지만 역시나가 적시나... 박식한 그리고 출중한 글솜씨에 다시 칭찬하나이다..
철원을 가먼 뭐하노... 우리 하령님 글을 읽고서야 이제사 감 잡았으니~~ ㅉㅉ
그래도 겨우 한 일이이라고는 하나 있어 하령님 밥먹는 몰카~ 옆에 있던 동우님 먹는 거 박는 거 아니라고 한소리~~
실례인줄 알지만 화가 선생님이랑 둘이서 밥 먹는 게 하도 이쁘게 보여서 올렸드니만 이 포토에세이에 한 컷을 장식 했으니
얼마나 다행이유~~ 감사합니다요....$$ 부디 일취 월장 하시라유~~~ 내사마 시조 한 수로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낙서하기로하고....ㅎㅎ
늘 칭찬 아끼지 않으시는 맘좋으신 서곡님 복 받으실껴요 ~ ㅎㅎ
아참 ~ 글구요 서곡님께서 올린 귀한 사진 몇장 허락도 없이 쌔비 넣어 썻습니당~~
그렇잖아도 주최측이 베풀어준 식사장면 사진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마침 서곡님 사진에 감솨요 (노동당사 사진두 쌔빗스용~)ㅋ ~ ^^**
이제 알았수다. 왜 어딜가면 모습이 간데 없나 했었는데 이제 알았습니다.
곁드려진 문장솜씨 그 누가 따르랴!
글자 한자 빼놓지 않고 다 읽고 그 후에
기막힌 문장하나;" 다 타버린 군고구마된 비겁한 동행인 도니의 독백."
좋은( 글과 사진) 것 많이 보게해 주십시요.
ㅎㅎ 맛난거 먹으랴 ~좋은데 사진찍으랴 ~ 뭉쳐 수다떨랴~ 혼자 사색에 잠기랴.. 바쁘고 바뻣지요~ 햇가지님 무쟈게 방가웠습니다` 맨날 기행만 다녔으면 존디 ..그쵸?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ㅋㅋ ㅋ
앗하!! 하령님 존경해요. 돌부처 탐사 다니던 때 도피안사를 갔던 기억을 하고요 그 곳에서 철불을 본 것 같아요. 그리고 궁예의 도읍지에서 목 없는 부처를 찾다찾다 영영 못 찾고 돌아오던 기억. 저녁식사 예약을 해 두었던 식당에 내려와 보니 우물가에 목 없는 돼지 한 마리가 누워 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 무식을 떨고 다녔으니 목 없는 석불이 내 눈에 들어올리 없을 것이고. 내년에는 나 좀 데려가주오. 내 카페로 빌려 갑니다요. 아멘.목탁 .
뉍! 고쿠락님 ~ 철원을 가까우면서도 강원도에선 관광지로 약간 소외된 느낌이 들죠? 정치적 군사적 느낌땜에 더 그럴꺼예요 ~ 유서깊은 유적지와 천예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철원에서의 이태준문학기행 참 좋았답니다
이번에 왜 못오셨어요 ? 담엔 꼭 오세요 ~~ 아셨지요? ㅎㅎㅎ
지난 해 11월 6일 7일 이태준문학제 행사에 다녀 왔지요 행사 끝나고 철원에서 하루 묵어가며 김상용시인 시비까지 보고 온 추억이 떠올려지네요~~하령님 덕분에 철원 마스터합니다..엄청 고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