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의 허와 실
사주팔자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특히 미래 예측이 정말 가능할까. '추길피흉(追吉避凶)'에 대한 인간 본능과 결합하기 딱 좋은데,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결과 일단 표준적인 프레임은 발견하지 못했다. 사주 해석자의 역량이나 스타일에 따라 한 사람을 살리기도 혹은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살리는 쪽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상담으로 누군가에게 굴레를 씌울 수 있다면 명리학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명리학을 공부하더라도 모두가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지에 대해선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설익은 내용으로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으로 사주명리를 다룬다면 그야말로 어린아이에게 칼자루를 맡기는 격이기 때문이다.
사주명리학이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으려면 그 실체가 제대로 전달돼야 한다. 그 핵심은 '운(運)'이라는 용어에 대한 올바른 정의다. 사주에서 운은 정(靜)과 동(動)으로 구성된다. 정적이라 함은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 즉 사주 그 자체다. 동적인 것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명주(命主)가 맞게 되는 유년(流年), 즉 10년마다 대운(大運)과 1년마다 세운(歲運)이 각각 해당한다.
사주 해석은 타고난 사주 자체의 모양새와 함께 사주마다 주어지는 대운과 매년의 세운 흐름이 어떤 화학적 결합물을 만들어낼지 밝히는 것이라 하겠다.
◆준비된 자에게만 작동한다
문제는 운에 대한 해석론이다. 사주명리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대개 운(運)이 지닌 동적인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타고난 사주는 인간이 관여하기 어려운 영역이 맞다. 하지만 유년에서 찾아오는 대운의 경우 본인의 준비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결과치가 크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운은 누구에게나 기계적으로 찾아오지만 그에 따른 열매는 스스로 준비해서 만드는 개념이다. 외부변수로서 운이 좋았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이다.
평소 자신의 기질과 장점을 활용해 자신의 상품성, 즉 목표 달성을 위한 준비 과정이 먼저 전제돼야 한다. 그것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시기(運)가 왔을 때 비로소 뚜렷한 성공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이치다. 명리학에서 시간은 변경이 불가하지만 공간은 선택적 요소로 본다. 흔히 무슨 대운이 들어오니까 어떻게 될 것이라는 형식으로 사주풀이 하지만 그 결과치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통계상으로 나와 동일한 사주를 가진 사람이 국내에 약 100명 정도 있다고 보면 되는데, 같은 대운이 들어왔다고 모두 같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는 점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사주팔자는 조건방정식
그렇다면 타고난 사주는 뭘 뜻할까. 미래의 나를 규정할 '조건방정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사주 여덟 글자 특성과 구조를 분석하면 명주(命主)의 성격과 직무 적성, 학습 능력, 사회활동 방향, 배우자와의 결합도, 삶의 태도, 일하는 스타일, 대인 관계, 재물과 조직생활과의 인연, 물질을 대하는 태도, 종교적 성향 등의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즉 일종의 '비밀 코드'다. 물론 이것으로 부를 추구할지 아니면 귀함을 따를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사주팔자 자체만으로 미래의 확정적인 내 모습은 알 수 없다.
명리공부 과정에서 '백발백중'을 자처하는 술사들을 숱하게 목격했다. 주장은 자유이겠지만 이런 접근법 자체가 명리학 대원리와는 정면 배치된다. 명리학은 음양의 공존이라는 절대 법칙에 근거하는데, 현재 시점에서 인간의 미래가 확정될 수 있다면 이는 음양 중 하나만 존재하는 구조다. 음과 양은 늘 공존한다.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1분 후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야만 세상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음양의 법칙이라 생각하면 된다.
내 미래가 사주에 의해 이미 결정되는 것이라면 누구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이 우주는 사계절이 같은 패턴으로 무한 반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결과물은 항상 다르다. 결과물이 다르다는 것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현재라는 것에 의미가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는 조건부 고차방정식 체계이며 현재 뭘 할지에 대한 선택은 자기 몫이다. 메타명리학은 결론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현 상황에 대한 원인 분석과 대안 모색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도록 돕는 컨설팅 도구라 하겠다.
필자 이재호는 미국 뉴욕대(NYU)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래에셋증권 상무, 숙명여대 멘토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주공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