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11년 4월24일[일]
산행경로 : 백화사-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문수봉-대남문-문수사-구기계곡-구기탐방지원센터
산행시간 : 5시간16분 소요[촬영,휴식,식사시간 포함]
기상조건 : 맑음, 최저:6.1℃, 최고:13.9℃, 강수량:0.0, 적설량:0.0
참가명단 : 서울의 산악인 최선배님과 둘이서...
산행여건 : 북한산 의상능선은 북한산성의 서쪽부분을 차지하며, 의상봉(502m)에서 시작하여 용출봉(571m)나월봉(657m)과
문수봉(715.7m)까지 8개 봉우리를 거느린 능선이다.5년만에 다시 찾은 듯하다.
북한산 뒤편에 숨은벽 능선과 더블어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북한산의 양대능선으로 바위길이 곳곳에 있어서
짜릿한 릿지도 체험 해볼 수 있는 조망이 뛰어난 아름다운 능선에서 봄 산행의 묘미를 느껴 본다.
따스한 봄날이라 서 너시간 암릉에서 여유로운 조망을 즐기며 이어가니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겨울이 다시
찾아 온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등산객이 그리 많지 않아서 멋 진 암릉들을 조망하며 여유로운 산행을 한다.
산악소개 :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한북정맥의 끝 자락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높게 솟은 수려한 명산으로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불려 온 북한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신으로 인수봉,만경대와 함께 뿔처럼 솟아있어 과거에는 삼각산이라 불렀다.
또한,부아악(負兒岳),화산(華山),화악(華岳),삼각산(三角山)이라고 불렀다.
인수봉뒤에 튀어나온 바위가 마치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과 같다하여 삼국시대에는 부아악이라 불렀다.
세 암봉을 비롯하여 노적봉이 거대한 바위 군락을 이루고 그 위로 상장봉,아래로 보현봉에 이르기까지 20여개의
화강암봉이 산 전체에 산재되어 높이로 치자면 태산준령이 아님에도 우람한 산세와 기상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산계곡(백운동계곡),삼천사계곡,진관사계곡,구기계곡,정릉계곡,우이계곡 등 10여개의 골짜기가
굽이쳐 맑고 수려한 경관을 자아낸다.
서울의 총 면적 중에 26%가 산지인데,산지 면적중 25%에 달하는 39.7km2를 점하는 북한산은 북의 백두산,
남의 지리산,동의 금강산,서의 묘향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오악에 포함되어 있는 명산으로 북한산에 오르면 도봉,남산,
관악산 등 서울 근교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쾌청한 날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서해바다와 강화도,영종도 등의
섬들까지 조망할 수 있다.
200여년 역사를 간직한 북한산성은 사적16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성 안에는 원효암,상운사,태고사,국녕사,봉성암 등
유서깊은 사찰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대표적인 유적지인 진흥왕순수비,국가 보물인 승가사의 마애석가여래좌상,
삼천사의 마애여래입상,태고사의 원증국사탑비,보우국사사리탑 등 수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도심 속의 자연공원이자"녹색 허파"로 불리우는 북한산은 1983년 도봉산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1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의상능선은 기묘한 암릉들로 의상봉으로 올라 문수봉으로 이어가면서 좌로는 원효봉,염초봉,백운대 너머 인수봉과
신선봉,앞으로는 노적봉과 만경대,아래로 용암봉까지 신선들이 노니는 비경으로,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고,
오르는내내 우측의 비봉능선의 비봉과 향로봉,족두리봉 자태에 흠뻑 빠져들어 발 길을 멈추게 된다.
또한,행궁지로 군사요충지로 14성문속에 군량미와 병기들을 숨기던 천혜의 요새인만큼 경관들이 빼어나다.
산행후기 : 지난 2월에 한라산을 함께 산행한 서울산악구조대에 오랜세월 몸 담은 최선배님께서 내혼자 산행 한다는 걸 알고서,
선약을 취소하고 불광역까지 먼저 마중을 나오셔서 반갑게 맞이한다.토요일도 의상능선을 홀로 산행을 하셨다.
개인적으로 5년여만에 다시 가 본 의상능선의 기억이 어렴풋한데 둘만이 즐기는 릿지와 암릉마다 올라서서
주변의 암릉들을 바라보며 역사와 릿지길,그리고 재미있는 산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엮어 주시니 너무 즐겁다.
암릉 언저리마다 바람이 세차서 겨울날씨를 연상케 하지만 산사나이들의 산우의 정으로 걸어가는 그 길은
마음마저 포근하다.바람을 등지고 마주앉아 시원한 맥주 캔 한병을 나누어 마시니 그 맛 또한 잊을 수 없다.
분재같은 소나무에 돌덩이들을 포개 놓은걸 일일이 치우신다.옅은 토양에 햇살이 머금도록 배려하는 손길이
진정,인명을 구조하는 일만이 아닌 자연을 사랑하는 진정항 산악인으로 다시금 느껴진다.
수 없이 올랐던 인수봉과 종종 홀로 오르는 릿지길들을 가리키며 북한산의 애정을 진하게 느끼게 한다.
디카를 받아들고 산행내내 포즈를 잡으라시며 추억을 담아 주시기 바쁘다.문수봉에서 4월초 불수사도북때
종주한 그 길을 둘러보며 대남문으로 내려서서 연등이 가득한 문수사에서 스님께서 주신 곡차 한 잔 하며 잠시 쉰다.
구기계곡에는 진달래가 만개하고 아래쪽에는 벗꽃들과 개나리가 하산길을 반긴니 더없이 행복하다.
선배님의 수십년 단골식당에 들러 식사와 막걸리 한 잔을 들어 산우의 정을 담아 반가운 재회의 시간을 가진다.
"전화 한번 받아보게!네?...어? 형수님,반갑습니다.잘계시지요? 함께 산행을 못해서 아쉽네요.다음에 꼭 초대하지요."
마음을 담은 글을 적어 식당 벽면에 흔적을 남겨본다.지하철로 걸어가는 그 길에는 이별의 아쉬움이 왠지 무겁다.
"선배님,너무 감사합니다.다음에 또 산에서 뵙겠습니다.형수님과 늘 건안 하십시오.
전철이 떠나는 창 너머에서 끝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속에 행복했던 추억들을 오래토록 담아두고 싶어진다.
산행지도 :
불광역에서 4번 출구로 내려서 버스를 타고 백화사쪽으로 이동을 하고서 산행길로 접어든다.09:20~
조금만 올라가면 백화사가 나온다.초파일이 다가옴에 백화사의 연등이 도로변 산행길 입구까지 걸려있다.
북한산 둘레길이 생겨서 족두리봉쪽에도 지난날의 하산길들이 휀스로 다 막혀있고 새로 길을 정비한 것같다.
들머리에서 최선배님과...
09:24~
날씨가 따스했던지 북한산에도 진달래가 활짝 피어나고...여기서 십여분동안 스트레칭을 한다.
의상봉 오름길에 사람얼굴 모습의 바위에서...10:12~
암릉을 타고 오르는 등산객들...
아!~ 그저 감탄사만...암릉 슬랩에서 잠시 포즈를 잡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서 중심을 잡기가 힘든다.
렛츠,고고!!!...파이팅!~
백운대와 노적봉사이 만경대까지 너무나 멋지다.
원효암,염초봉,백운대,만경대,노적봉이 멋 진 위용을 자랑한다.
백운대,만경대,노적봉...
용출봉과 용혈봉...
우측으로 펼쳐진 비봉능선은 불수사도북때 족두리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다.
하늘이 너무나 푸르고 푸르다...의상봉 좌선바위에서...
의상봉 정상에는 표시 말뚝만 있다.10:41~
정상의 헬기장은 자리가 협소해서 안착이나 할려나?...프로펠러가 나뭇가지에 닿지 싶은 느낌이....
북한산성 안에 자리했던 주요 사찰들은 대부분 1712년 성능(聖能) 스님이 북한산성 도총섭이 된 이후에 승병이 머무르는
군영(軍營)으로서 창건되거나 중창이 되었다. 북한산성 가사당 암문 아래에 자리한 국녕사도 1713년 승병(僧兵)의 군영이라는
목적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당시 승군들은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승군이 머무를 수 있는 도량은 필수적이었다.
창건 이후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군(義僧軍)이 폐지 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후 노역에 지친 많은 스님들이 떠나게 되어 한국전쟁 이후까지 폐허로 남게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녕사가 편안하면 나라가 편안하다”고 한다. 이는 도성의
외곽에서 수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던 국녕사의 역할을 잘 표현한 말인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 보경(寶鏡) 스님에
의해 법등을 다시 밝히게 된 국녕사는 1991년 화재로 소실이 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지금의 국녕사는 1998년 폐허를 딛고 가람을 중창한 것이어서 예전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그러나 사찰의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호국의 의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10:49~
북한산성의 가사당암문으로 내려서며...
암릉을 내려서서 산성길을 따라 가사당암문으로 금새 갈 것이다.
삼천사로 내려서는 응봉능선의 응봉인갑다.
뒤 돌아 본 막내인 의상봉 암릉의 근육질을 보니 윗쪽의 형님들은...ㅎㅎㅎ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은 이름없이 암문으로 불리우는 문이었다.
의상봉 능선에 위치한 암문은 노출되지 않은 숨은 문으로,적들 몰래 전령이나 시체들을 운반하할 때 사용한 문이라고 한다.
보통문과는 다르게 암문은 성곽을 뚫어 놓기는 했지만 목문 같은것으로 막혀 있지는 않다.복원을 하지 않은건가?...
국녕사를 내려다 보면서...
좌로는 원효봉과 염초봉이,앞으로는 노적봉이,우측으로는 용암봉이 북한산의 심장부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의상대사가 도를 닦던 의상봉을 올라서 우측의 원효대사가 도를 닦던 원효봉을 바라본다.
시공을 초월하여 두 대사님을 알현하는 상상해 본다.아미타불 관세음보살!~~~~ㅎㅎㅎ
용출봉(湧出峰), 또는 속금산(束金山)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이산의 특징과 매력은 기묘한 형태로 갖가지 아름다운 형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11:10~
불수사도북때 이어 간 비봉능선에 사모바위와 비봉,향로봉,족두리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용혈봉과 증취봉이 어여오라 손짓하는듯 하다.
노적봉 뒤로 만경대가 위용을 드러내고 아래쪽에 유서깊은 노적사가 자리한다.
"가노라 삼각산아!다시보자 한강수야!~"세월은 흘러도 삼각산은 말없이 그자리에 또 한세월 우리네를 푸근히 안아 줄 것이다.
원효대사께서 깨달음을 위해 머눈 곳이라 원효봉이다.암릉 좌측 중턱에 원효암이 있고,잘록한 곳에 북문과 상운사가 자리한다.
자명은 산자수명, 즉 산이 붉고 물이 맑아 산천의 경치가 극히 아름답다.
해인은 해인삼매, 모든 더러움이 깨끗히 사라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가 일심법계다.
바람과 파도 없고, 그래서 바다가 거울처럼 고요해지면 모든 삼라만상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듯이,그러한 경지가 해인삼매라 한다.
즉, 마음의 바다에서 지혜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번뇌의 파도라 하였으니,
그 원인은 어리석음이라는 바람때문이다.
어리석음이라는 바람이 잦아들고 그로 인해 번뇌의 파도가 잠잠해지면 지혜의 바다(海)에 도장을 찍듯이(印)
한없는 시간, 끝없는 공간에 삼라만상 일체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이것이 해인삼매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깨달음이라 했다.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에서 깨달음이라....
용혈봉의 기묘한 바위...
내려다 본 용출봉...
2007년7월29일 중부지역에 천둥을 동반한 낙뢰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자리에서 4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은 자리다.
이날 서울ㆍ경기도 지역에는 모두 8000여 번의 벼락이 떨어졌다. 사고가 일어난 오전 11시45분~낮 12시5분 사이 북한산 인근에만 200여 번의 벼락이 쳤다. 사고를 당한 등산객은 벼락 사이에서 등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상청 관계자는 “낮에 천둥 번개와
함께 많은 비가 쏟아진 것은 최근 남부 지방에서 고온 현상이 계속된 가운데 상층에는 러시아 연해주 쪽에서 찬 공기가 들어오면서 온도 차가 생겨 대기가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벼락은 적란운(소나기구름)에서 발생하며 태양표면 온도의4~7배다.
언제나 안전산행에 대한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유명을 달리하신 산우님들의 명복을 빌어 본다.
그 후 북한산 용혈봉 옆 용출봉에는 피뢰침이 세워졌다. 용출봉이 더 높기 때문에 그 쪽에 세운 것 같다.11:25~
용혈봉에서 바라 본 삼각산의 위용과 노적봉 아래의 유서깊은 노적사가 자리한다.고려시대부터"삼각산"이라 불렸다.
우측의 능선에 대동문이나 보국문에서 내려서면 태고사가 나온다.
태고사(太古寺)는 고양시 북한동 15번지 북한산성 안에 자리한 한국불고 태고종 사찰이다.
이 절은 고려 충혜왕 복위 2년(1341)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국사가 창건하였다.
보우국사는 당시 옆에 있는 중흥사(重興寺)의 주지이기도 했는데, 이후 5년간 태고사에 주석했다고 한다.
세월의 모진풍파의 아픈 산처를 안은 그 곳을 가 볼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발 길을 옮긴다.
강아지가 어찌 저기를 올라 갔을꼬...? ㅎ~
집채만한 바위가 떡하니 가로 막아 선 뒤를 돌아가니 작은 말뚝에 정상표시가 있다.11:36~
바람을 없는 자리를 골라 부침개를 안주삼아 시원한 캔맥주을 마시며 여유로이 쉬어간다.
아랫쪽에 바스락 거림에 내려다보니 청솔모도 이른 점심을 챙기나 보다.
북한산성의 옛 모습이 존치된 성벽...
현재, 노적사가 있는 이 지역은 본래 진국사 (鎭國寺)있던 곳이다. 조선조 영조 년간에 발간된 1745년 북한지 (北漢誌) 책자에
따르면 “ 진국사는 노적봉 아래 중성문 안에 있는데 총 85칸으로 승(僧) 성능(聖能)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보이는 성능스님은 북한산성 축성 당시의 모든 기록을 남긴 북한지 책자를 저술한 고승이다. 1712년에 이 사찰을 창건한 것도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성곽을 유지, 보수, 관리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퇴락한 진국사를 다시 중창하면서 사찰명을 노적사로 했고, 조선조 후기의 석사자상과 석조미륵불이상을 옮겨왔다. 이후 대웅전과 요사채, 삼성각 등을 차례로 중창불사
하여 북한산의 대표적인 사찰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에 대웅전의 명칭을 적멸보궁으로 개칭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게 된 것이다. 현재, 국가지정 전통사찰 제 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계란바위?투구바위?...소나기가 오면 비를 피하는 천연 대피소다.
우측 바위를 타고 올라서면 일명,"사랑바위"라는 넓직한 자리에 열여명이 둘러앉아 식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부왕동암문(扶旺東暗門)은 나월봉과 증취봉 사이 산 능선 해발521m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 암문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이다.
최근가지 성문 우측에는 "소남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듯이 이 암문(暗門)은 처음에는 소남문(小南門)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추정되며,근처에 원각사(圓覺寺)가 있었기 때문에 원각사암문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다.
그리고,부왕동(扶旺洞)이란 이름은 성안 동쪽에 있는 부왕사(扶旺寺)로 내려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던 이름으로 보인다.
의상능선과 비봉능선 뿐만 아니라 주변 곳곳을 세세히 설명하시는 최선배님...
넘어 온 의상능선의 암릉들을 되 돌아 본다.막내인 의상능선은 우측으로 숨어 있다.
뒤 돌아 본 앞쪽의 증취봉아래의 사랑바위는 여기서만 볼 수 있다.오붓하게 점심을 즐기는 모습이다.
나월봉으로 오르는 암릉 서쪽이라 바람이 불어도 눈이 몰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초봄까지는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나월봉의 멋진 바위에서...12:33~
서쪽 구기계곡의 골짜기 바람이 세차서 암릉위에서 조망하며 걸어 갈려니 너무 위험하다.
눈 감고도 지나 가실 선배님...
바위가 요상한데,무어라 작명을 하고픈데....바닥으로 꽂 힌 산신제때 돼지머리 같다.요기서 산신제를...ㅎㅎㅎㅎ
오랜세월 인수봉에 손떼를 뭍 힌 선배님의 인수봉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리라...
삼각산을 배경으로 가야 할 문수봉을 바라보며...
만경대를 지나서,아니면 도선사에서 올라와, 우측으로 용암문,동장대,대동문,보국문에서 그 너머 칼바위능선을 잠시 바라
볼것이며,이어서 대성문,대남문을 지나 문수봉에 다다를 것이다.오늘은 문수봉에서 문수사를 거쳐서 구기계곡으로 하산한다.
암만 봐도 또 보고픈 삼각산...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멋 진 인수봉이 모습을 드러낸다.아!~삼각산아!!!....
우측에 나한봉이 보인다.
아래쪽에서 찍으면 매바위와 에스컬레트로 보일건데...ㅎㅎㅎㅎ
끈질긴 생명력...
가사당암문으로 갈 것이다.
토끼굴인가? 여우굴인가?...아주 옛날에는 어떤 놈들이 들락거렸겠지...토실한 산토끼를 상상해 본다.
친절한 표지판...
암쪽의 응봉능선을 뒤로 사모바위,비봉,향로봉,족두리봉이 이어진 비봉능선이 또렷하다.
나월봉 가는길에 자꾸만 돌무더기를 덮는 바람에 손수 헤쳐내시며 하시는 말씀,"나무와 토양에도 볕도 쬐야지,헤쳐내면 또 덮네"
수십년동안 북한산 지킴이로 애정을 가지다보니,그냥 스쳐가는게 없다.
우측의 용암봉 뒤로 도봉산 자운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월봉에서 되 돌아 본 의상능선...
나월봉에서 비봉능선을 배경으로...12:55~
우람한 근육질의 문수봉...
우측 바위봉우리가 아마도 석문이 있는 곳일게다.
볼록하게 솟은 비봉과 앞쪽에 사모바위,우측의 희멀건 암릉이 향로봉이고 그 아래쪽이 족두리봉이다.
멋 진 문수봉의 북측 절벽...
뒤 돌아 본 의상능선...암릉 좌측의 뾰족한 곳이 용출봉이다.벼락 맞을만도 하겠다.
조금은 휑하게 느껴지는 나한봉이다.그러나,북한산 산우님들이 산신제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나한봉에서 바라 본 삼각산...13:10~~
나한봉에서 바라 본 응봉능선과 그 너머의 비봉능선...
우람한 근육질의 문수봉 암릉...
대남문이 지척이다.
성곽이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비상 출입구이다.
북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격전지로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변자호란의 외침을 당하여 한양 도성을 방어 하고자 숙종 37년에
석성으로 수축되었다.13:14~
청수동암문에서 문수봉을 지나서 대남문이 나온다.
먼저 문수봉에 오른다.
문수봉을 3주만에 다시 찾으니 느낌이 또 새롭다.13:18~
원래는 저 곳에 있어야 할 문수봉 정상표지가 편의상 현 위치에 말뚝에 표시되어 있다.
문수봉에서 내려다 본 비봉능선...
문수봉에는 바람이 너무나 거세다.그러나,마음만큼은 너무나 여유롭다.
대남문에서 구기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지는 사자능선의 보현봉(727m)...
문수봉 아래의 문수사...
북한산성은 삼국사기에 132년(백제 개로왕5년)에 이미 나타나 있고,신라는 이 곳의 비봉에 진흥왕의 순수비를 세우기도 했다.
삼국시대때 고구려,신라,백제가 최대의 공방을 벌인 격전지중의 하나였다.
오랫동안 삼각산으로 불렀으나,숙종때 대대적으로 축성이 이루어진 이후 북한산으로 불렀다.또한 북한산성이 된것이다.
대남문이 보인다.
암릉 능선에서 부는 거센 바람이 초겨울 날씨마냥 변덕스러워 등산객들의 부상이 잦은 날이다.경찰산악구조대의 응급처치중...
대남문을 내려서면서...13:30~
보현봉은 서울의 '정신유산' 으로 케이블카 설치 안된다.
이를 좀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보면 백두산에서 부터 시작된 에너지가 거의 고갈되어 도봉산에서 강력하게 증폭되고 그것의 격한 기운이 우이능선을 타고 오면서 조금 안정을 이루다가 인수봉에서 다시한번 증폭되고 산성 주능선을 거침없이 달려오는데 이
기운이 워낙 세차기 때문에 중간에 이를 걸러주는 변전소 역할을 하는 중조산(中祖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풍수적으로 서울이
성립될 수 없는데 보현봉이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산이다. 보현봉은 살기등등한 삼각산의 에너지를 정제하고 순화시켜 서울의 주산(主山)인 북악산에 이르게 하는 서울을 보호하는 풍수지리상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봉우리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나라에 변고가 있을때 국왕은 신하를 보현봉으로 보내 천문을 관측하게 하였다.
역사유산이나 자연유산도 소중하지만 정신유산 또한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은 한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현봉은 우리에게 있어서 소중한 자연유산이면서 동시에 정신유산으로서의 함의도 품고 있는 것이다. 선조들 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실 지도 모른다. 보현봉을 건들면 나라가 흔들릴 수 도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109년(고려 예종 4) 묵암(默庵) 탄연(坦然)이 창건하였다.
탄연은 고려 때 신품사현(神品四賢)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서예가(書藝家)로, 이곳의 암굴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목격하고 문수암(文殊庵)이라는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13:35~
문수사에는 문수굴로 불리는 천연동굴이 있다. 이 동굴법당은 영험이 있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도 그의 어머니가 멀리 황해도 평산에서 이곳까지 와, 동굴 속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에게 치성을 드린
끝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인연으로 4 · 19 직전 이승만 박사가 당시 82세의 고령을 무릅쓰고 이곳을 방문하여 ‘문수사’ 현판을 직접 썼다고 하며, 당시 스님들과 함께 찍었던 빛 바랜 흑백사진도 절에 남아 있다.
이 때 이승만이 쓴 문수암이라는 현판이 요사에 걸려 있다.
대웅전의 문수보살상은 고종의 비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가 모신 것이고, 석가모니불은 영친왕 이은(李垠)의 비인
이방자(李方子: 1901∼1989)가 모신 것이다. 특히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어 나한도량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의 어머니가 이 절에서 나한에게 백일기도를 한 뒤 이승만을 낳았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한양의 정신유산인 보현봉...
부상입은 등산객을 결국 호송하는 구조헬기...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져 있는 비봉이 손 끝에 잡힐듯 하다.
비봉옆의 빨간 지붕이 승가사다.
구기계곡에서 쳐다 본 사모바위와 비봉...
비봉과 사모바위로 가는 승가사쪽 갈림길과 만나는 곳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잠시 쉰다.
승가사쪽 계곡물과 구기계곡물이 합수하여 물소리가 제법이다.
개나리가 화사하게 피어 걸음도 가볍다.
버들치도 개울물에 활개를 친다.
진달래도 질세라 시샘을 하고...
승가사쪽 암반 계곡...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고,그냥 이뻐서...
벗꽃과 개나리가 환상적인 하모니로 봄을 연출한다.
구기동 먹거리촌에서 봄을 안으며...14:40~
"원대로"식당에 들어서니 화투장시계가 3시를 넘어선다.친절하고 인상좋은 아주머니는 먼저,맛깔스런 반찬에 막걸리를 낸다.
모처럼의 재회로 산우의 정을 담아 나누는 막걸리 한잔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선배님,감사합니다."
선배님과의 인연을 맺은지 어언 삼십년이 다 되가는 식당이라 주위를 둘러보니 연예인들도 다녀 간 흔적을 많이 남겨 두었다.
젓 물린 아이가 벌써 장가 갈 나이가 되었으니...나도 두장이나 마음을 담아서 흔적을 남겨 본다...ㅎㅎㅎ
선배님,감사합니다.
지하철로 가는 길에는 벗꽃과 개나리가 화사하게 피어나 걸음이 가볍다.
러시아 공관 담벼락의 텃밭에는 상추와 봄 꽃들이 싱그럽다.
최선배님과 오랜세월 인사를 나누는 등산속옷 파는 아줌마께서 질 좋은 등산용 속옷을 세벌이나 싸게 주신다.땡큐우!~
이북5도청이 보인다.연등과 벗꽃들이 내마음을 더 푸근하게 하는듯 하다.
서울역에서 도원친구의 제동으로 창수형님과 재회의 잔을 기울이다가 동호회의 대간11구간팀인 "백두팀"이 도착하여 반가움에
다시 자리를 옮겨 산우의 정을 나눈다.피곤하실건데도 함께 자리해서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대간길에 수고 많았습니다.
부득히 1시간 연장하여 대구행 KTX로 가는길에 친절한 아저씨 한분이 끝까지 안내한다.누구지?...ㅎㅎㅎ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 이승철
첫댓글 갑자기 아름다운 산행 게시판에 볼거리가 넘치는 군요.감하였습니다.
우리카페 산행의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신 듯 하네요.
동원님의 산행하시는 멋진 모습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저 산을 좋아할 뿐입니다.
자주 산과함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히야동원님 포스작열 전 두어봉우리 넘고도 헥헥거리는데....
대구에서부터 올라와...저 썸배님과 저리도 많은 봉우리를 딸랑 둘이서 날았다는 거 아닙니까
어디 동원님이랑 겁나서 산행하겠습니까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저도 두어봉우리 산행을 즐깁니다.
의상능선의 멋진 절경에 허우적거리다보니 그랬나봅니다.늘 건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