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뉴스에 삼척에 산불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건조주의보와 경보가 내려진 지역이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진화(鎭火)에 너무나 어려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다시 뉴스를 보니 그 불은 잡히지 않은 채 매우 넓은 지역을 태우고 있고 민가(民家)에도 위협이 될 만큼 크고 넓게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소방방재청과 민간 소방관, 그리고 공무원과 군인들이 불 속으로 뛰어들어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산불의 원인을 화목 보일러나 농가의 소각 작업에서 비롯되었다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불씨는 참으로 작았었을 것입니다. 늘 하던 대로 주의를 기울이며 했었겠지만 기상청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전한 대로 건조하고 바람이 불 때에는 몇 배의 주의와 생각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결과로 수많은 짐승의 보금자리가 파괴되었고, 귀한 목초들이 타버렸고, 그 후유증은 앞으로 계속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복음으로 들어와 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와 같이 ‘악의를 품고 올가미를 씌우려는 속셈’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려는 모습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이나 생각을 강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에게서 아주 작은 트집이라도 잡으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은 가정과 본당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공동체에서 분열과 분쟁의 불씨가 됩니다. 그 불씨가 사랑과 자비로운 마음에 메말라 있고 세속의 거친 유혹의 바람이 불어대는 상황에 놓인 공동체와 구성원들에게 떨어졌을 때에는 큰 불이 되어 공동체와 형제들의 마음을 태워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게 됩니다. 더 이상 그 안에서 생명과 사랑이 싹트고 자라나 열매 맺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가지려는 의도에서 표징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께 대한 미움과 불만으로 어떻게 해서든 트집을 잡으려고 그것을 요구했었을 뿐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대로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야고 1,6-7)”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마르 8,12)’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어떤 마음과 의도로 대화하려고 하는지를 먼저 성찰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뢰와 생명과 사랑을 함께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불만과 불신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