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님들이나 저나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닉네임”이란 게 필요하죠.
저는 2002년 4월 인터넷의 초등학교 후배들의 동창회사이트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담쌓고 지냈었어요.
남들이 채팅을 하느니, 물건을 샀다느니 해도 별 관심없는 다른 나라 사람들 일로 여겼었
다지요.
그랬던 제가 거국적으로 사이트에 가입해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게, 2002년 4월 16일이니,
아직 채 3년이 안 된 거여요.
지금은 날마다 제 글을 기다려 읽는다는 팬(?)도 많아졌지만, 그전엔 초등학교 후배들이다 보니 별 관심 없어 하는 데도,
그저 저는 고향을 생각하고 모교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로 꿋꿋이 글을 올렸다죠.
그러다가 아름아름 통하여 동창 선후배는 물론 동기들도 알게 되었구요.
대부분 서울, 인천과 경기도 쪽에 살지만요.
저처럼 대전까지 와서 사는 동창이 별로 없는걸 보면, 그래도 우리나라가 크긴 큰 건가요?
(헤헤헤)
그랬다 저도 점차 발전(?)하여 “인터넷 카페”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졸지에 운영자로 추대(?) 되어서 나름대로 젊은 세대들과 함께 하려 애쓰기도 했구요.
회원 간에 불미스런 일을 겪고 카페 자체가 없어지는 일도 겪었는데...
좋은 면 나쁜 면을 다 체험한 “저” 였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무궁무진 하다지만, 어디고 순기능과 역기능이 같이 있는 겁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이 다르기도 하구요.
그래도 진실을 알아주고 멋진 인생을 사랑과 함께 살고자 하는 좋은 님들이 훨씬 많기에
저는 행복했어요.
여기저기 추천을 받아 가입영역을 넓힌 까닭에 지금은 제가 가입한 곳이 여러 개니... (쩝!)
제가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는 생각이 쬐끔은 드는데, 카페 구조조정을 해야 하려나...?
(하하하)
아무래도 근무 중에 잠깐잠깐 들어오게 되니 글 올리기도 바쁠 때가 많아요.
다른 회원님 글에 “댓 글” 해드리기도 쉬운 게 아닐 때도 있구요...
그렇다고, 이런 일로 매일 야근까지 할 수는 없겠구요.
집에 있는 컴퓨터는 아녜스와 아이들 차지니 제 차례는 힘들어요.
노트북에도 공유해서 인터넷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데, 그거라도 해야 하려나요?
하여간, 제 글이 님들의 생각에 탐탁지 않더라도 널리 이해하세요.
간혹 제 글의 문장이 님들에게 상처를 드리는 일도 있을 거여요.
제 본의가 아니더라도, 글자 하나 문장 한 줄이 읽는 분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이 될 수있죠.
저는 교정직 공무원 출신이지만, 가능하면 교도소 얘기를 심하게 않으려 해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게 그 사회죠.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라지만, 범죄의 죄값을 치른다는 재소자와 교도관으로 있었던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녀요.
저는 그래서 교정직을 떠난 지 14년이 되었어도, 그곳에 계신 직원 교도관 여러분들을 존경합니다.
저는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제가 겪은 일만을 알리고 평가를 받고자 합니다.
교도소 담 밖의 사회생활 얘기도 마찬가지구요.
사람마다 자기 개성과 주관이 있고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민주사회죠. 안 그래요?
어떨 땐 맞춤법이나 문법에 잘못된 낱말과 문장이 있더라도 넓으신 아량을 바랍니다.
너무 공식적인 문장도 재미 없어서 저는 가끔 의성어나 인터넷 용어를 쓰고 있어요.
어떤 님들은 그게 제 글의 매력이라더군요. 정말 그런가요?
이런 이런... 오늘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데요... (죄송!)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부터는 본론으로 들어가죠.
“용화사랑”이란 닉네임은 제가 작년 7월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제 실명(實名)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이트도 여러 개지만, 요즘 신세대는 닉네임을 많이 쓴다 해서 최근 가입한 곳에선 거의 저도 닉네임을 쓰고 있어요.
저도 4학년 6반 영계니깐...! (호호호)
어떤 님들은 제 닠의 “용화”를 여자이름(첫 사랑이나 옛 애인) 아니냐 하시던데, 궁금한
것도 많으시지...! (후후후)
제 첫사랑은 아녜스 뿐입니다요. (ㅋㅋㅋ)
“용화”는 제 처가동네 이름입니다.
아녜스와 초등학교 동창이신 용화초등학교 졸업생들이야 “용화”를 잘 아시겠지만.
그전에야 용화와 용화초등학교가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죠.
제 고향도 아니고 제 출신학교도 아니니...
그렇지만, 지금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제 아녜스의 고향이 “용화”거든요.
용화초등학교 24회 졸업생 중의 한 사람이 제 짝지 아녜스 입니다.
지금 용화에서 농사짓고 계시는 장인, 장모님은 물론
처남과 처제들도 모두 용화초등학교 출신이지요.
1년에 몇 번은 가보는 처가가 있는 “용화”인데,
속리산 기슭에 아름다움과 정겨움이 넘치는 좋은 고장입니다.
보통 속리산하면, 충북 보은쪽을 떠올리는 데,
저는 제 짝꿍을 알고서부터 화북(=용화)을 알게 되었다죠.
충북 보은쪽의 속리산 건너편에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으로 “용화”라고 불리는
동네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속리산 문장대의 정확한 행정구역은 충북 보은군(내속리면)이 아니고,
경북 상주시(화북면)입니다.
엄연한 경상도 땅인 제 처가 동네죠. (하하하)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용화”라는 마을이 몇군데 있어요.
제가 아는 곳만 해도, 충남 아산시와 충북 영동군에도 있는 데...
물론, 저의 용화는 경북 상주시에 있구요.
사실, 보은 속리산 쪽이 유명하고,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도 “용화” 쪽 보다는 훨씬
잘 갖춰져 있어요.
관광객들도 보은 쪽이 훨씬 많구요.
그렇지만, 개발은 덜 되었어도 자연미가 풍성한 그곳 용화가 좋아요.
얼마 전에는 “용화 온천” 개발이 충북도민의 반발과 항의가 심해 중지되기도 했지요.
“개발과 환경보호”가 어느 것이 우선인지 몰라도, 전국 여기저기서 문제되고 있어요.
그전의 경기도의 “시화호”가 그랬고, 지금 전북의 “새만금 간척사업”도 그렇구요.
제 외가인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도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생태계 환경이 많이 달라진다죠.
어떤 정책이든 주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겠지만, 그곳에 계신 선량한 농어민들께서
피해 보는 일은 없으면 좋겠어요.
제가 1982년 처음 용화를 갔던 때는, 보은에서 그곳까지 비포장도로라 버스로 덜컹거리며 무려 1시간 반을 갔던 그곳.
지금은 중간의 구티고개도 좋아졌고, 포장도로로 변해 너무나 즐거운 처가행이 되었답니다.
저는 1년에 장인 장모님 생신 때는 물론 몇 번은 처가에 다녀옵니다.
갈 때마다 잘해 주시는 고마우신 어르신들.
제 차 트렁크에 쌀, 고추, 된장, 참기름... 하나 가득 실어 주시고도 더 주고 싶어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사실, 대전의 할인매장이나 재래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돈 주고 살 수 있는 거겠지만...
이래서 제가 장가 잘 든 거겠죠?
오늘은 제 닉네임 소개한다는 게, 온통 처가동네 자랑이 되었군요. (하하하)
우리 남성회원님들도 대부분 장가가시고, 처가가 있으실텐데,
님들도 처가 자랑 좀 해 보세요?
오늘은 2월 2일입니다.
우리 님들 2월의 시작을 잘 하셨는지요?
그제와 어제 오전 까지는 눈이 제법 왔고 추워서 고생했는 데,
오늘은 괜찮은 날씨네요.
행복이 넘치시는 기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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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엇군요.상주라면 저의 고향 안동과 약 1~2시간 거리네요.반갑습니다.정말 참다게 소개를 하셨고 좋은 경험담 느껴보앗습니다.
용화사랑님의 가족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막~ 느껴지는군요....장문 쓰시느라 애쓰셨어요..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