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나무는 한자로 ‘갈’이요, 등나무는 ‘등’이어서 둘을 합치면 ‘갈등’이고 원래 ‘갈등’하면 일이나 인간관계가 까다롭게 뒤얽혀 풀기 어려운 상태, 혹은 상반되는 생각의 충돌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두 나무가 서로 얽혀,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이를 같이 올라가 햇빛을 받고 잘 살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칡 나무와 등나무가 소나무를 타고 올라갑니다. 서로 햇볕이 많이 드는 쪽을 차지하려고 안간 힘을 쓰며 기어오릅니다. 가녀린 솔잎들은 무성한 칡과 등의 잎에 가려서 말라버리고 솔가지는 삭정이가 됩니다. 100년 묵은 소나무도 갈과 등이 타고 오르면 몇 년 못가서 결국은 고사목이 되고 맙니다. 소나무가 무너지고 나면 갈나무도 등나무도 더 이상 올라 갈 곳을 잃고 함께 무너집니다.
갈과 등이 다투다 소나무를 죽이는 것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소나무의 쫀쫀함 때문이 아닙니다. 갈과 등의 권력투쟁 때문도 아닙니다. 이질적인 것이 한 곳에서 더불어 살아가려니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자기희생과 자기아픔을 회피한 탓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갈등(葛藤)이라 부르는데 갈등은 칡 나무와 등나무가 한 소나무를 타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산물입니다.
갈등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다를뿐더러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갈등이 일어나면 서로를 적대시하고 불화를 일으켜 자신도 상대방도 가정도 조직도 파괴하고 맙니다.
칡 나무와 등나무가 함께 한 곳에서 살아 가려면 먼저 소나무를 살려야 하듯 사람도 가정과 조직 속에서 행복과 번영을 누리려면 갈등을 피해가며 먼저 가정과 조직을 살려 내어야 합니다. 갈등의 조짐이 보이면 미리미리 그것을 예방하고 먼저 소나무를 살려 내는 일에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갈과 등이 지켜야 할 규칙을 스스로 만들고 누가 통제하지 않더라도 그 규칙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갈과 등이 한 소나무를 의지해 살면서 소나무를 죽이지 않고 번영하려면 어떤 규칙이 필요할까요? 개인의 양심과 도덕률에만 맡겨 두어도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잘 해 낼까요? 또 참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어 끝까지 인내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갈등이 없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눈에 보이는 이(利)만 쫒아서 행동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利), 불리(不利)를 계산하지 말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利), 불리(不利)를 계산해야 합니다. 그 계산풀이는 어쩌면 함께 살아가면서 겪게 될지도 모를 갈등환경을 아예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 나가는 현명함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모든 새롭게 출발하려는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소나무를 더욱 더 잘 자라게 만들면서 함께 살아 낼 규칙으로서 어떤 것들을 정하여야 하는지 각자가 마음속으로 정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정한 그 룰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건 남을 탓하지 않는 자기와의 약속 입니다. 재갈공명도 요상한 재주로 사람을 속인 짓거리만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요지부동의 군율부터 만들었지요. 그걸 못하면 남과 더불어 살면서 참 행복을 지켜 내기가 어렵습니다.
갈나무와 등나무는 소나무에 얽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마음에 얽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퍼온글...........
첫댓글 葛藤 = 軋轢 이게 없다면 세상을 무슨재미로 사나용? .^^ 주님의 나라가 오시도록 남을 배려해 보면 이런 용어들은 거리가 멀어지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