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을 기다렸다.
지난 안개낀 수원지를 돌고 난 후부터 봄비를 기다렸다.
어제 아침부터 주말에는 비가 내린다고 예보를 듣고, 저녁에 일찍부터 잠을 청했다.
어렴풋이 잠이 깨기 시작하는 새벽부터 베란다에서부터 봄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야지 정기훈련이 사직동 06:30분으로 정해져 있었다,
'과연 오늘 같은 날 누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나 염려는 안 하기로 했다.
오늘은 혼자다, 정모에 가믄 틀림없이 거의 환자 수준의 행님, 누님들만 보일 것이다.
조금도 늦는 법이 없고, 빈틈없고, 절제된 환자 수준의 행님, 누님들은 인자 그만 봤으믄 좋겠다.
가야지에 뉴 페이스 등장 안하나?
쫌 모지라고, 약간 떨어지고, 한편으로 괴팍하면서 내하고 비슷한 골통.
삼류인생의 동생 하나 있었으믄 좋겠다.
농담 그만.
나설려니, 조금 멈칫한다.
기다리던 비였지만, 막상 맞을려니, 쫌 차가울 것 같다.
바람막이 등뒤에 부착된 모자를 꺼내 머리에 썻다(맞춤법 맞습니까?)
고등학교 때 비오는 날 청승맞게 혼자 방에 앉아 시험공부 하다 답답한 맘에,
집에 있는 자전거 꺼내 타고 고속도로를 비맞으며 달렸던 기억이 난다.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 노래를 목청껏 부르면서, 내리막을 두손 놓고, 두팔 벌려 타면서...,
미친놈, 지가 무슨 영화 찍는 줄 착각이나 한 듯....,
그때의 답답한 맘이나, 지금의 답답함이나, 별 차이가 없는 듯 하다.
답답함을 떨치고자 그때는 날고 싶었지만, 오늘은 달리고 싶다. 시원하게...,
달리믄서 또 오만 생각 다 한다.
나는 누군가? 오데서 와서 오데로 가나?, 지금 뭐 하고 있나?, 뭘 위해 사나? 부터 시작해서
묵묵히 비맞고 서있는 나무들. 저거들끼리도 이바구하고 살긴떼, 맞재, 우리가 못 듣는기재?
저거들 중에서도 멋있게 잘 사는 넘 있고, 옆풀때기 붙어서 삐조리처럼 사는 넘들도 있고
요새 학교 다니는 게 참 살맛 난다, 술 쫌 작작 묵고, 내도 인자 달리기, 괘도에 함 올리보자,
그라고 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버지도, 엄마도, 친구들도....,
잎눈에 머금은 물방울들이 보석이다.
산등성을 솟아 오르며 몰아치는 비바람이 돈벼락이다.
낙동강이 보였따, 안보였따 마술을 부리고 있다.
멀리 진해 근처에서 치는 천둥과, 내 머리 뒤에서 바람막이 치는 소리가
합동으로 불꽃놀이 소리를 낸다.
거의 맛이 갔다.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모르겠다. 물 흠뻑 묵은 바지는 질질 끌리고, 운동화는
찔꺽찔꺽 거린다. 도저히 달린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대로 백양산의 품속으로 안겨 들어 가고 있따.
내려오는 길에 가슴 가득 봄비 내리는 수채화를 담고 내려왔다.
누르믄 금방이라도 물감들이 주르르 흐를 것 같다.
참말로 행복하다. 집에 와서 밥을 묵는데, 내 입이 밥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다.
동양 최대의 바다 해운대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혼이 깃든 남해에서도
차향기 그윽한 보성에서도
따가운 햇살이 폴폴 해풍에 실려오는 다대포에서도
침엽수림 서늘한 가리왕산에서도
가슴속에 수채화를 그리며, 힘차게 달리면서,
넘버3의 삼류인생 드라마를 멈추지 말고 열심히 써 나가야 되겠다.
첫댓글 비 오는 새벽에 혼자 뛰었단 말이제? 어제 밤부터 계속 잠을 설치면서 바깥만 살피다가 새벽에 보니 비가 제법 많이 와서 아예 푹 자 버렸네. 8시까지...오랜만에 자 보는 늦잠이었네. 피로가 많이 쌓였나 보네. 이젠 나사가 조금씩 슬슬 풀리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아. 다시 조아 봐야지. 박광희샘 말대로 가야지에도 뉴 페이스가 많이 많이 와 주어서 활동해 주었으면 좋겠네. 감기 들지 않게 몸 관리 잘 하고 진공청소기 같다고 하는 먹성은 보기에 좋으니 너무 자책하지 말게나. 박광희샘 화이팅!
아무리 마라톤이 고독한 운동이라지만~ 낙동강을 바라보며 빗속 백양산에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자유를 만끽했구먼... 사직은 혹 누가 왔을까봐? 우산 쓰고서리 둘러봤더니, 사직엔 환자 수준의 행님, 누님들은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