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뇌물 먹어도 다시 복직”
⊙ 노조 내부 징계규정은 비리에 관대하고 내부 비리를 외부에 제보할 경우에는 엄격
⊙ 항운노조는 불법파견 업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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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감만부두 컨테이너선하역작업장. 부산시 동구 초량 소재 부산항운노동조합 전경(오른쪽). |
“썩을 만큼 썩었어요.”
지난 1월 말 부산시 서면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난 전직(前職) 부산항운노동조합 간부는 “노조가 권력화하면서 썩을 만큼 썩었다”며 내부 비리를 구체적으로 고발했다.
부산항운노조가 “취업·승진을 미끼로 장사를 한다”는 사실은 부산지역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항운노조 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노조가 가지고 있는 ‘하역인력 독점공급권’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하역(荷役)회사는 종업원을 직접 고용하지 못하고 노조에서 조합원을 공급받는다.
부산의 경찰과 검찰은 곪을 대로 곪아 있는 항운노조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해 왔다. 그 결과 검경(檢警)은 ▲2005년 4월 취업 등 명목 4억원 수수 노조 전·현직 위원장 등 31명 구속 ▲2007년 7월 승진·취업 명목 20억원 상당 금품수수 상임부위원장 등 364명 검거(구속 15명) ▲2010년 3월 취업명목 3억원 금품수수 부산항운노조위원장 구속 ▲2013년 1월 인사청탁 및 취업명목 6억원 상당 금품수수 제1항업지부장 등 6명 검거(구속 2명) 등의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기자가 부산에서 만난 부산지방경찰청 수사과 형사는 “수년 동안 비리 척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항운노조에 돈을 주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산시민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부산시민들이 항운노조에 들어가려고 뇌물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직 항운노조 간부에게 이유를 물었다.
“부산항운노조에 한 번 들어가면 61세까지 항만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부산항 하역작업은 노조가 독점합니다. 작년에 정년이 1년 연장됐습니다. 일단 노조에 들어가면 한 달에 300만~400만원은 쉽게 벌어들입니다. 현장 반장이 되면 일하지 않고 지시만 하는데도 700만원은 거뜬히 벌어들여요. 취업·승진 장사로 얻는 돈은 별도 수입이죠. 벌어들이는 돈을 노조원들이 골고루 나누면 좋은데 간부가 독식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북한 노동당처럼 간부들이 독식(獨食)해서 내부 불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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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운노동조합 조직체계도. 성(姓)을 제외한 이름은 삭제. |
“돈을 줘도 3~4년 기다려야”
부산항운노조에 가입하려면 어느 정도의 뇌물이 필요할까. 뇌물이란 은밀하게 주고받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을 알기는 어렵다. 액수 역시 다를 수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부산시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는 A씨는 “항운노조에 들어가려면 돈을 주고도 3~4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3년 전에 친구가 아들을 취업시키려고 6000만원을 노조 반장에게 건네줬는데 작년에 (노조에 가입시켜 주지 않고) 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A씨는 “1억원을 뇌물로 준 사람이 기다리지도 않고 노조에 가입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부산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올해 1월 부산항운노조 조합원들의 인사청탁 및 비조합원들에 대한 취업미끼 명목으로 6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부산항운노조 간부 6명을 검거했다.
부산항운노조 제1항업지부장 우모(55)씨, 제2항업지부 반장 배모(46)씨, 부산항운노조 PNC지부장 송모(45)씨, 제1항업지부 사무장 한모(50)씨, 제1항업지부 반장 신모(52)씨, 부산항운노조 적기지부 반장 최모(42)씨 등 6명은 배임수재·사기·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로 검거됐다.
경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수차례에 걸친 항운노조 취업·승진 비리에 따른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노조간부들이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 고급 아파트 및 명품시계를 구입하거나 유흥비로 사용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착수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뇌물로 사용된 1억1000만원 상당의 고급시계·황금열쇠 등을 공개했다.
경찰은 “검거된 항운노조 간부들이 ▲제1항업지부 사무실에서 정년퇴직 예정자인 김모씨 등 2명에게 ‘정년연장이 보장되는 노조위원에 임명해 정년을 3년 연장시켜 주겠다’며 5500만원을 수수(收受)하고 ▲조합원 주모씨 등에게 조장 승진을 시켜 주겠다며 7400만원을 받고 ▲제1항업지부 주차장에 취업을 희망하는 최모씨에게 항운노조에 취직시켜 주겠다며 1200만원을 받았다”고 혐의 사실을 밝혔다.
수사결과 항운노조 간부들이 일용직 근로자에게 동원비 명목으로 매일 1만원씩 7800만원을 착복한 사실도 드러났다. 항운노조는 항만 인력공급권을 가지고 있어, 독점적으로 일용직 근로자를 공급했다. 노조 간부들은 주간(晝間) 일당 12만9000원, 야간 16만6500원을 받는 일용직 근로자들에게서 조합비 2% 이외에 동원비 명목으로 1만원을 강제로 공제했다.
경찰에 따르면, 항운노조 간부들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조합원에게 수사에 협조하면 힘든 작업장에 보내겠다고 협박하고 출석요구 시 뒷일을 책임지겠다며 잠수(潛水) 지시를 했다. 또 부산경찰청 입구에 잠복하며 수사를 위해 출석하는 조합원들을 확인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
노조 간부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부산항운노조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최근 경찰이 발표한 뇌물 사건을 ‘취업 비리’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취업 사기’에 불과합니다. 즉 개인비리 사건입니다. 노조(조직) 차원의 비리가 아니라 돈을 노리고 개인이 벌인 사기 사건이었습니다. 간부 몇 명이 돈을 받은 것이지 윗선에 상납한 사실은 없습니다. 2005년 이후 비리 근절을 위한 자정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현재 노사정 합동으로 채용 문제를 투명하게 처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비리엔 솜방망이, 내부 비리 제보엔 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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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운노조 규약과 징계규정. |
경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취업난을 이용해 경제적 약자를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부산항운노조의 불법적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 수사로 항운노조의 취업 장사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산시민은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현직 항운노조 반장급을 접촉했다. 그는 “기자와 만나기만 해도 노조에서 쫓겨난다”며 은밀한 접촉을 요구했다. 그는 “돈을 받은 노조 간부는 감옥에 가더라도 월급이 그대로 지급되고 형을 마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복직되지만, 조직에 불리한 증언을 경찰에 한 조합원은 쫓겨나기 때문에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항운노조 비리 사건을 수사한 형사(그는 향후 수사를 위해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했다) 역시 “과거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았던 노조 간부가 복직되었다가 같은 혐의로 다시 처벌받는 경우가 많다”며 “항운노조의 경우 비리로 형사처벌을 받아도 다시 복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항운노조 간부가 뇌물을 받고 형사처벌을 받아도 아무 문제 없이 복직할 수 있는 것은 관대한 조직의 규약(規約)과 내부 징계규정 때문이다. 기자는 부산항운노조의 징계규정과 규약을 입수해 주요 조항을 분석했다.
항운노조 징계규정 제9조는 경고, 취업중지, 정권(停權), 무기정권, 제명 등으로 징계유형을 규정하고 있다. 또 제9조는 경고 및 취업중지는 위원장 직권으로 처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합원이 뇌물을 받아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경우 어떤 징계를 받게 될까.
규정에 따르면 설령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징계를 피할 수 있다. 우선 제14조는 형사상 금고(禁錮) 이상의 실형을 받은 자는 정권 또는 무기정권, 제명(징계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처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합의 이익을 위해 실형을 받은 경우 (징계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예외 규정까지 있다.
징계에 이르는 과정도 험난하다. 제5조에 따르면 ‘조합원의 징계는 조합 인사위원회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가부(可否)투표로써 의결하고 결정된 사항은 2일 이내에 위원장에게 통보하고 위원장은 징계 당사자에게 3일 이내에 통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항운노조 징계규정은 금품수수 등 비리 사건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은 반면 언론과 사법기관에 조직의 비리를 제보할 경우에는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우선 제12조에서 ‘업무상 형사사건을 대내(對內) 처리하지 않고 진정 고소하여 지역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자’는 정권 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신문, 방송, 인터넷 및 유인물 등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조합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킨 자’는 제명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직 내부 비리를 언론 등에 제보하거나 사법기관에 신고할 경우 징계하도록 악용될 수 있는 조항들이다.
이와 관련, 항운노조는 “내부 징계가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비리 등으로 조직의 명예를 훼손한 조합원이 다시 노조에 복귀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과거 노가다로 불렸던 노동자로서 먹고살게는 해줘야 할 것 같아 재취업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노조에서 조합원을 징계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이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는다고 해서 월급을 주지 않거나 퇴출시킬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금품을 받았던 노조 간부가 감옥에서도 월급을 받는다는 주장이 있는데, 형이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 징계하지 않았던 과거 이야기입니다. 요즈음은 1심 선고가 나면 항소 여부와 관계없이 징계합니다. 또 지부장의 경우 선거로 선출됩니다. 설령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더라도, 선거로 다시 당선될 경우 제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내부적으로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올해 5월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되면 징계규정을 획기적으로 보완할 예정입니다.”
“노조 간부 족벌체제 심각”
항운노조는 사회의 비난만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조직 내부의 불만도 크다. 특히 노조 간부들의 지나친 욕심에 대한 조직 내부의 반발도 크다. 항운노조 현직 반장 B씨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항운노조 조직 내부에서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노조 간부들이) 자기 족벌(族閥)체제로 권력을 남용해서 비리가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퇴사한 아들을 다시 반장으로 재취업시킨 경우가 있습니다. 퇴사를 하게 되면 퇴직금과 1년반의 노임을 받습니다. 규정에 따라 5년 동안 재취업을 못하는데, (자신의 아들을) 다시 취업시켰어요. 족벌체제로 운영해 (친인척을 탈법으로 입사시켜서) 노조원 임금이 다운되어 불만이 많습니다.”
—돈만 내면 조합에 가입할 수 있나요.
“돈을 미리 받았으니 (노조에 가입시키지 않고) 일단 임시직으로 일을 시켜요. 그러다 보니 원래 10명이면 되는데 20명이 일하는 곳도 있어요. 노임만 깎여서 불만이 많아요. 3년이 지나도록 노조에 가입되지 못해 퇴직금도 쌓이지 않고 해서 불만이 많아요. 지부장에게 돈을 주고 들어온 사람의 경우, 지부장 선거가 3년마다 있다 보니 다들 불안하죠. (돈을 준 지부장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조합 가입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현금으로 2~3단계 거쳐 수수
뇌물은 은밀하게 전달되게 마련이다. 전직 항운 노조 간부 C씨는 “항만노조의 금품수수는 은밀하게 이뤄져 적발이 어렵다”며 금품전달 과정을 자세히 증언했다. 그가 밝힌 뇌물 제공 과정은 다음과 같다.
“취업·승진 등을 명목으로 노조 간부들이 돈을 받습니다. 검찰, 경찰의 수사가 십여 년 동안 이어지면서 노조 역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우선 현금으로만 받습니다. 또 (취업 희망자로부터) 직접 돈을 받지도 않습니다. 항운노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노조 간부의 친척과 접촉해야 합니다. 돈은 2~3단계를 거쳐서 노조 간부에게 전달됩니다.
액수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서 종종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노조 간부의 친·인척이 자신보다 적은 돈으로 노조에 가입한 경우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령 액수에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노조 가입만 시켜 주면 비리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문제는 돈만 받고 노조에 가입시켜 주지 않고 임시직으로 채용한 경우에 발생합니다. 일단 임시직으로 일하면 조만간 노조에 가입시켜 주겠다고 회유하는데 (노조 가입 전) 3~4년 동안 4대보험, 퇴직금 등에서 제외되고 노조 가입 여부도 불확실해서 자연스럽게 불만이 폭발합니다.
사실 과거에 항운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은 학력이 매우 낮아요. 하지만 요즈음은 최소 전문대 이상이거든요. 그래서 불만이 많은 것 같아요. 최근 경찰 수사 역시 돈을 내고도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이들의 제보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일단 노조에 들어가면 승진을 위해서 간부들에게 돈을 써야 합니다. 반장이 되면 정말 하는 일 없어요. 전화로 지시만 하면 돼요. 그래서 지부장에게 반장시켜 달라고 돈을 전달해요. 지부장은 선거로 뽑아요.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치열하게 선거가 치러져요. 반장은 거의 지부장 마음대로거든요. 부산항만이 비리가 심한 것은 한 번 말뚝을 박으면 평생 그곳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일이 쉽고 수입이 좋은 지부에 조합원이 되면 평생 거기서 일해요. 한 번 좋은 곳으로 가면 평생 쉽게 돈을 벌 수 있으니 다들 돈을 써서라도 좋은 곳으로 가려 해요. 인천, 울산 등은 순환하도록 하고 있어요.”
부산항운노조 조직체계도 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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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4일 부산항운회관에서 열린 부산항운노조 신임노조위원장 취임식 및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조대의원들이 개혁작업을 통해 도덕성을 회복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을 다짐하고 있다. |
기자가 입수한 부산항운노조 조직체계도에 따르면 부산항운노조는 28개 지부로 세분화되어 있다. C씨는 “부산항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굳이 지부를 쪼개 놓을 필요가 없다”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부를 잘게 쪼개 놓은 것이다”고 주장했다.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 썩는 것은 당연하듯 권력을 독점하면 그 폐해(弊害)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고질적인 부산항운노조 비리는 부산항 부두근로자의 채용권과 인사권을 노조가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항은 노조 가입 근로자만 부두에서 일할 수 있는 클로즈드숍제(closed shop制)로 운영한다. 항만의 클로즈드숍은 1500년대 이후 유럽 열강이 식민지를 건설할 때 지역주민들을 회유할 목적으로 도입했다. 식민지 주민들에게 이권(利權)을 나눠준 것이었다. 부산항의 클로즈드숍은 130여 년 전 부산항이 개항할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항만 클로즈드숍 전통은 과거 인력(人力)에 의존하던 항만 하역 작업이 기계식 부두 작업으로 대체되면서 하역회사가 직접 근로자를 고용하는 오픈숍제(open shop制)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부산항운노조의 법적 지위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다. 일부 노동법 학자와 노무사들은 “부산항운노조가 노동법이 금지하고 있는 불법파견 업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을 법원이 인정할 경우 항운노조는 존립 근거를 잃게 된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5조는 항만하역사업의 경우 근로자파견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항운노조가 근로자를 고용해 하역업체에 보내고, 노조원이 하역업체의 지휘·명령을 받고 일을 한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부산항운노조는 불법파견 업체?
기자는 국내 대표 노무법인 소속 D노무사에게 법률자문을 요청했다. D노무사의 법률검토를 문답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항운노조 법적지위 논란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요.
“항운노조와 그 소속 노조원의 법률관계가 핵심적인 쟁점입니다. 항운노조는 직업안정법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을 하는데, 근로자공급사업의 경우 항운노조와 노조원 사이의 계약은 단순히 노동조합과 노조원 사이의 관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항운노조가 업무를 수행하는 행태를 보면 항운노조와 노조원들과의 관계가 단순한 조합원과의 관계가 아닌, 노조가 노조원을 지휘·감독하는 고용관계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만일 노조와 노조원 사이의 관계가 고용관계이고,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하역업체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면 이는 법률상 ‘파견’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파견근로자보호에 관한 법은 항만에서의 하역작업은 파견금지 대상으로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법원이 ‘노조와 노조원 사이에 고용관계가 있다’고 인정한 사례가 있나요.
“최근 항운노조와 관련된 법원의 판결을 보면, 항운노조와 노조원 사이의 관계가 단순한 노조와 노조원 사이의 관계가 아닌 사업주와 근로자의 관계, 즉 근로계약 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결정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고용관계가 인정되면 항상 파견이 되고 불법파견으로 인정된다는 것인가요.
“고용관계가 인정되면 하역업체에서 일을 하는 방식이 법적 쟁점이 됩니다. 하역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일을 할 때 하역업체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면 파견으로 인정될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불법파견이 됩니다.”
—부산항운노조의 경우도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인가요.
“부산항운노조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형태를 보면, 부산항운노조도 노조원을 지휘·감독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됩니다.”
—불법파견이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근로자들에겐 어떤 혜택이 있나요.
“최근 사내하청과 관련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와 동일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즉 파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노동청에서 시정 지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운노조에서 시정을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는데, 최근 개정법에 의하면 과태료는 항운노조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막대한 금액이 될 것입니다. 또한 법원으로부터 파견으로 인정받을 경우 노조원들은 항운노조가 결정한 사항에 대해 노조의 근로자로서 노동관계법령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문제해결 방법은 무엇인가요.
“노동관계법령, 민사소송 등 종합적인 법률검토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노조원이 자신의 법적 지위를 법원, 노동청 등 관계기관에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결국 법원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반면 항운노조 불법파견 의혹에 대해, 노조측 노무사는 이렇게 반박했다.
“부산항운노조는 직업안정법에 따라 근로자 공급사업 허가를 받아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을 하역업체 등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과 조합원 사이에 고용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노조는 조합원에게 임금을 주지 않습니다. 핵심은 ‘누가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느냐’입니다. 임금은 하역업체·창고업체가 조합원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노조가 고용주(사용자)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조합원이 법원에 ‘종업원 지위확인 가처분신청’을 할 수는 있습니다. 어렵겠지만 설령 법원이 이들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고용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일부 사안을 볼 때 근로자로 볼 수 있다’고 결론이 나면 항운노조는 법원이 지적한 사안을 당연히 시정(是正)할 것입니다. 때문에 조합 전체가 불법파견을 하고 있다고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용수 위원장, “불법파견 아니다”
부산항운노조는 자신들이 단지 노조일 뿐 임금 지급이나 작업 지시는 하역업체가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부산항 현장 취재 결과 작업 현장의 조합원들은 “노조에서 임금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련의 의혹에 대해 지용수 전(前) 부산항운노동조합 위원장(現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유독 부산에서 비리 사건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2005년 비리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 직선제 등 조직이 민주화되었습니다. 그 이후 상납(上納)관행이 사라졌어요. 그 전까지 뇌물을 받을 때 ‘윗선에 상납해야 한다’며 돈을 받았어요. 최근 불거진 사건은 조직과는 관계없는 개인비리입니다. 현재 제도 개혁을 위해 노사정(勞使政)이 인력수급관리위원회를 만들어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다만 부산항운노조는 조합원이 7500명이라 조합이 이들을 모두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상용화(하역사별 상시고용)가 되면 비리가 원천적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상용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희도 하역회사가 조합원을 모두 고용해 준다면 상용화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역회사 입장에서는 일이 계속 있는 것도 아닌데 조합원을 상시 고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이 없어도 노임(勞賃)을 계속 줘야 하니까요.”
—조합이 불법파견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조합이 불법파견 업체라면, 제가 사업주였다는 것인데 말이 되지 않죠. 저는 조합원의 선출로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영리를 위한 사업주가 아닙니다.”
—노조에서 노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조합원이 있는데, 이 경우 파견으로 볼 여지가 생깁니다.
“노임은 해당 하역회사가 주는 것입니다. 저희는 (편의를 위해) 대행(代行)만 할 뿐이죠. 이를 조합원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부산항운노조의 경우 법률관계가 복잡해 법원이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전까지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조합이 명확한 법률 규정과 절차에 따라 구성되고 운영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법원이 결론을 내기 전에 정부가 교통정리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부산항운노조는 2005년 비리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당시 노조는 자체 개혁안을 내놓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비리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부 역시 부패 척결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정부는 노조 비리가 근절되지 않자 항만인력 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개혁안을 잠시 추진했지만 노조의 반발로 결국 흐지부지됐다. 기자가 부산에서 접촉한 노조 직원, 항만 관계자, 대학 교수 등은 공통적으로 신분 노출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노조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현실적으로 부산에서 노조개혁을 공개적으로 주장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부산지역 경제는 현재 심각한 위기다. 부산 경제는 신발, 목재, 섬유 등 호황기를 이끌었던 산업들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한국의 두 번째 대도시라는 자부심도 여러모로 인천에 밀리면서 사라지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자식들의 취업길이 막히자 부산의 부모들은 돈을 써서라도 자녀들을 취업시키려 한다. 뇌물은 주로 노조 간부의 친인척·지인을 통로로 전달되고 있는 듯하다. 항운노조 또는 노조 간부가 어려운 부산경제로 고통 받는 부산시민들을 위해 특권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시민들과 나눌 수는 없는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