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가슴’ 운운하는 가사는 부르기는커녕 듣기도 싫어서 중간에 눈을 감곤 했다. 그런 폭력을 행한 군부독재 그리고 시민 피해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보다는 노래 자체가 폭력으로 느껴져 더 이상 사고가 진전되지 않았다. 이후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느낌’이 여성의 몸에 행해진 폭력에 대한 회피가 아니라 폭력을 당한 여성의 몸을 전시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수단으로만 삼는 데 대한 분노이자 질문이라고 정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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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와 변미화는 5·18 항쟁에 참여한 수많은 여성들의 존재와 사연을 대변한다. 특히 ‘술집 여성들’에 대해서는 5·18에 대한 남성 작가와 교수들의 초기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록들에서 이 여성들은 주체적인 참여자가 아니라 남성-주체적 참여자의 보조자이며 ‘성스러운 항쟁’이라는 이미지를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다. 1999년 출판된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최정운 교수는 5·18 항쟁을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가 된 절대공동체’로 보았는데 ‘술집 여성들’의 합류는 절대공동체의 증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시민들은 남녀노소, 각계각층, 특히 예상치 못했던 계층의 사람들, 예를 들어 황금동 술집 아가씨들, 대인동 사창가 여인들이 공동체에 합류하는 모습에 환희를 느꼈다"고 썼다.
하지만 '환생굿'에서 김윤희는 "공동체에 합류해 시민들에게 환희를 준" 어떤 추상적 이미지가 아니다. 그녀는 온갖 종류의 노동으로 시민군 공동체가 돌아갈 수 있게 한 시민군의 일원, 그러한 죄로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일을 당한 피해자, 그러고도 '술집 여자'라는 이유로 '밥만 해 줬겠냐, 몸도 대 줬겠지'라는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자신이 한 일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라는 구체적 존재로 등장한다.
변미화 또한 마찬가지다. 남성 엘리트들이나 지역 명망가들의 기록 및 회고에서 '교복 입은 여고생'으로 등장하는 어린 여성 중에는 학생도 있었지만 버스 차장이나 노동자도 많았다. 당시 작업장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운동을 하던 젊은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이들의 존재며 했던 일은 공식 기록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여성들은 시민군이 지키고자 했던 이들 내지는 보조자로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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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여성들은 진작부터 5·18 민주화운동 기록과 제도화의 남성 중심성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1991년 5월 여성연구회가 쓴 '광주민중항쟁과 여성', 2012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이 기획해 출판한 '광주, 여성 – 그녀들의 가슴에 묻어둔 5·18 이야기'가 대표적 사례다. 한편 5·18에 참여한 다양한 여성들은 여러 경로로 자신의 경험을, 이후의 삶에서 찍힌 낙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 온 삶을 증언해왔다. 그 이야기들은 발화 당시에는 제대로 들어주는 이 없이 묻히는 듯했지만 2015년 페미니즘 대중화, 2018년 미투 이후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4년간 조사 활동 끝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조사 보고서가 우리 곁에 도착했다.(한국일보 5월 30일 자 기사 '이진희의 동행: 윤경회 5·18민주화운동조사위 성폭력 사건 조사 책임자')
첫댓글 그늘에 가려진 여성 활동이 얼마나 많을지요 그 안엔 꼭 여성을 희롱하고 몸만 취하는, 신념을 짓뭉개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더라긔… 씁쓸하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