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선생문집권지육(西厓先生文集卷之六) 서애(西厓)선생이 경상감사를 할 때,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도내의 묵힌 죄수를 결말 지워 방면하자고 청하는 서장이다. 그 내용은 호강(豪强)이라고 잘못 지목된 경우와‚ 무식한 품관(品官)이 권점(圈點)의 다소로 원악향리(元惡鄕吏)와 용사서원(用事書員)으로 지목한 경우와‚ 품관(品官) 때문에 인리(人吏)가 부족한 경우이다. 그리고 사민(徙民)정책에 대한 동요(動搖) 등에 대하여 선처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요청한 서장(書狀)이다.
당시 사민(徙民)정책은 조선(朝鮮) 세종(世宗)대부터 성종(成宗)대에 걸쳐 영토(領土) 확장(擴張)을 위해 평안(平安)도·함경(咸鏡)도 지역에 정책적(政策的)으로 이주(移住)시킨 정책을 말하는데 초기의 사민정책의 추진은 지원자에게 토지와 관직을 내려주고 세금을 면제해 주는 조건 등을 내세우는 등 자발적 이주정책을 추진했지만 자원자가 턱없이 부족하였다.
이후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지역에서 이주시킬 숫자를 정해놓고 파견된 관리가 직접 선발하게 하였다. 이 방식으로도 넓은 국토에 거주할 사람이 부족하자 삼남지방 백성을 평안도와 함길도 남쪽으로 이주시키고, 평안도, 함길도 남쪽 사람들을 4군 6진으로 이주시키는 방식을 택하기도 하였다.
인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상태에서 선조는 사민(徙民)정책을 거듭 행하니 반강제적으로 추진되는 이주정책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이 컸고, 사민대상자가 된 사람 중에는 자살을 하거나 자해를 해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있을 지경이었다. 이에 서애(西厓)선생이 민정의 동요를 안정시킬 필요를 느끼고 요청을 한다.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졸역(拙譯)>
1. 인천한 청결방도내죄수상(因天旱 請決放道內罪囚狀)-甲申 時爲慶尙監司
◈(원문) 本道自冬春以來 雨澤不降 今過夏至 亢旱益甚 川澤斷流 禾稼焦傷 百萬生靈 迫於轉溝. 民生遑遑 不知所出 事之悶迫 無過於此.
◉(번역) 본도(本道)에 겨울과 봄으로부터 줄곧 비가 오는 혜택(惠澤)을 내리지 않았으며 지금 하지(夏至)를 지났는데도 오랫동안 가뭄이 더욱 심하여 천택(川澤)에는 물줄기가 끊어지고 벼이삭은 타들어가 상했으며 온갖 생령(生靈)들이 구렁에 구르기에 임박하였습니다. 민생은 몹시 허둥대며 나갈 바를 알지 못하니 사태(事態)의 안타깝고 절박(切迫)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臣頃承下來香祝 就禱名山 分遣守令 連續祈告 而天意邈然 尙無感動之望. 若更數日不雨 則西成望斷 民命將絶. 伏念天道神明 灾不妄作 變異之生 必有其由 而人之所以應之者 不能合天 故天怒滋甚 此古今之明戒也.
◉신(臣)은 지난번에 내려온 향(香)과 축문(祝文)을 받들어 명산(名山)에 나아가서 기도(祈禱)하고 나누어 수령(守令)에게 보내어 잇달아 기고제(祈告祭)를 계속(繼續)하였지만 하늘의 뜻은 아득하기만 하여 오히려 감동(感動)하는 희망이 없습니다. 만약 다시 수일동안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즉 가을걷이의 희망이 끊어질 것이며 백성들의 목숨도 장차 끊어질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천도(天道)와 신명(神明)은 재앙을 함부로 일으키지 않는데 이변(異變)이 생겼으니 반드시 그 연유가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응한 것이 하늘에 부합될 수 없었고 그래서 하늘이 자못 심하게 격노(激怒)하였으니 이는 고금(古今)의 분명(分明)한 경계(警戒)입니다.
◈其他臣不敢妄言 而係干道內之事 則臣所職守 不敢不達. 竊見嶺南一道 近因調發轉運之擾 閭井騷然. 惟幸數年間 農事不至兇歉 故稍爲枝梧. 今若不幸而有赤地千里之慘 則哀此民生 萬無存保之理 而其他意外可虞之患 有非一端.
◉그 밖에는 신이 감히 망령되이 말하지 못하겠으며 관계(關係)되어 간여(干與)하는 도내의 일은 즉 신(臣)이 직무(職務)를 지키는 바이니 감히 주달(奏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만히 보니 영남(嶺南) 한 도(道)는 근래에 전운(轉運)을 조발(調發)하기에 어지러워 고을이 떠들썩합니다. 오직 다행히 수년간 농사가 흉년(凶年)에 이르지는 않았기에 그래서 조금 버텨나갈 만합니다. 지금 만약에 불행하게 벌겋게 타버린 땅이 천리나 되는 참혹(慘酷)함이 있다면 즉 이 민생(民生)을 불쌍히 여기고 보존할 이치(理致)가 만무(萬無)하니 기타(其他) 의외(意外)로 염려(念慮)할만한 우환(憂患)은 한 가지 단서(端緖)만 있지 않습니다.
◈臣以庸才 受寄一方 私憂過計 晝夜焦思. 前者祇奉救荒聖旨 謹已知委列邑 令悉心奉行矣. 至於審理冤獄一事 則尤急於弭災之道 囹圄之中 一婦抱冤 足以感傷和氣 許多拘繫 豈無拊心呼天 而吏不見察者乎? 今此旱災切迫之時 所當赦過宥罪 開釋淹滯 庶幾慰解人心 導迎和氣.
◉신(臣)의 용열한 재주로서 한 지방을 받아 맡아서 사사로이 근심하고 과하게 헤아리니 주야(晝夜)로 애만 탑니다. 전자에 구황(救荒)하라는 성지를 높이 받들어서 삼가 이미 열읍(列邑)에 알려 맡겼으며, 마음을 다하여 봉행(奉行)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억울한 옥사(獄事) 한 사건의 심리(審理)에 이르면 즉 재앙(災殃)을 그치는 방법으로 더욱 시급(時急)하니 영어(囹圄)의 가운데서 한 부녀가 억울함을 품으면 족히 화기(和氣)를 느끼고 아파하기에 충분한데 허다(許多)하게 구금(拘禁)하였으니 어찌 가슴을 쓸어 만지며 하늘에 호소(呼訴)함이 없었겠으며, 관리들은 보고 살피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이 가뭄의 재앙(災殃)이 절박(切迫)한 때에 마땅히 허물과 죄를 구원하고 용서하여 열고 구금(拘禁)에서 풀어주면 아마도 거의 인심(人心)을 위로(慰勞)받고 풀리며 화기(和氣)를 인도(引導)하여 맞이할 것입니다.
◈臣方敬順德意 申勅各邑 分辨輕重 使之決遣. 第以其間罪涉冤悶 而臣不得自擅者亦有之 不得已具由啓達 以聽朝廷處置.
◉신(臣)이 바야흐로 공경(恭敬)하고 순종(順從)하는 덕의(德意)로서 각 읍을 신칙(申飭)하기를 경중(輕重)을 분변(分辨)하여 하여금 그들을 판결(判決)하여 보내 주라하였습니다. 다만 그 사이의 죄(罪)가 원통(冤痛)하고 번민(煩悶)에 이르러서 신(臣)이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도 역시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사유(事由)를 갖추어 계달(啓達)하오며 조정(朝廷)에서 처치(處置)해주시기를 간청(懇請)합니다.
◈道內十年以來 豪强被繫者前後二十餘人. 當初罪狀尤重者 則拿鞫於京獄 已蒙宥釋 其罪犯稍輕 而鞫於鄕獄者 尙未斷決 獄中身死者五人 餘存十五人.
◉도내(道內)에서 십년(十年)이래로 호강(豪强)이라며 연루(連累)된 자는 전후(前後)로 이십여 사람입니다. 당초(當初)에 죄상(罪狀)이 더욱 중(重)한 자는 즉시 나포(拿捕)되어 경성(京城)의 감옥에서 국문을 받고서는 이미 용서(容恕)를 받고 풀려났는데 그 범(犯)한 죄(罪)가 조금 가벼워서 향리(鄕里)의 감옥에서 국문(鞠問)을 받은 자는 오히려 아직 결단(決斷)하지 못하고 옥중(獄中)에서 몸이 죽은 자가 다섯 사람이고 남아있는 자가 열다섯 사람입니다.
◈績年囚禁 累受刑訊 此輩平日罪犯 未必盡虛 惟其摘發之際 或出於風聞 或出於匿名書 故抵罪不服. 已成老獄 其中或有所犯不至甚重 推閱無據 而只以名爲豪强 故一樣訊問 不得解脫 捶楚之下 痛毒實多.
◉해를 두고 감옥에 갇혀서 여러 번 형벌과 심문을 받았으며, 이 무리들은 평일(平日)에 범한 죄가 반드시 다 허구(虛構)는 아니지만 오직 그가 적발(摘發)될 즈음에 혹(或) 풍문(風聞)에서 나오거나, 혹은 익명(匿名)의 글에서 나왔으니 그래서 죄(罪)를 거부(拒否)하고 복종(服從)하지 않습니다. 이미 노옥(老獄)이 되어서 그 중에 혹시 범한 바가 무척 중함에 이르지 않고 추열(推閱/심문)할 근거가 없으면서 다만 이름만 호강(豪强)이라 하니 그래서 한 가지 양태(樣態)로 신문(訊問)해도 풀려서 벗어날 수 없고 추초(箠楚)만 내리치니 고통의 해독이 실로 많습니다.
◈臣之愚意 似當速分輕重 除所犯顯然者外 其餘則量施䨓雨之澤 以解積鬱之冤 似於罪疑 惟輕之道爲得 而亦應災之一事也. 至於元惡鄕吏 用事書員 抄發之事 雖主於實邊 而亦出於懲惡. 今旣被抄啓聞 似難更論.
◉신(臣)이 걱정하는 뜻은 마땅히 신속(迅速)하게 경중(輕重)을 나누고 범죄(犯罪)가 분명한 자 외(以外)는 덜어주고 그 나머지는 즉 헤아려 뇌우(雷雨)의 은택(恩澤)을 베풀어 쌓인 울분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설사 죄(罪)가 의심스러우면 오직 가벼운 방법으로 얻게 하여야하니 또한 재난(災難)에 대응하는 한 가지 일입니다. 원악(元惡)한 향리(鄕吏)들에 이르러서는 일에 서원(書員)을 쓰고 뽑아내는 일에 비록 변방(邊方)을 충실(充實)히 함을 위주로 하여도 역시 징악(懲惡)에서 나옵니다. 지금은 이미 계문(啓聞)에 뽑히게 되었으니 다시 논하기 어려울듯합니다.
◈但前年抄出時 不以實罪糾摘 而專委於品官之手. 所謂品官者 率多無識之人 雜會鄕人 隨其圈點多少而虛作名目 以報守令 守令更不辨覈 一切驅入罪網. 故抱冤者尤多 極爲未安. 且摘發之後 卽時囚繫牢獄 已至經年 蕩盡財産 赤立呼號.
◉다만 지난해에 뽑아낼 때 실제(實際)의 죄(罪)를 규명(糾明)하여 적발(摘發)하지 않고 오로지 품관(品官)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이른바 품관(品官)이란 자는 대다수가 무식(無識)한사람으로 향인(鄕人)들이 잡다(雜多)하게 모았으니 그 권점(圈點)의 다소(多少)에 따라 헛된 명목(名目)을 짓고서 수령(守令)에게 보고하면 수령(守令)은 다시 변별(辨別)하여 파헤치지 않고 일체를 몰아서 죄(罪)의 그물에 넣습니다. 그래서 원한을 품은 자가 더욱 많고 지극히 미안(未安)하게 여깁니다. 또 적발(摘發)한 뒤에 즉시 묶어서 감옥에 가두어서 이미 해를 넘기기에 이르렀으니 재산(財産)을 탕진하여 빈털터리로 서서 울부짖었습니다.
◈春間將分運入送 以族隣責辦盤纏 臨發又有更覈之令 或在道追還 因復拘幽 饑餓待盡 冤聲徹天 以臣所見 誠爲矜惻. 今者又以列邑抄發不多 將重治其罪 已理身死者 妻子亦不在原免之類. 號令嚴急 人人震懼 皆有逃避之計 鄕所品官等 又欲自免其罪 互相告訐 旬月之間 遠近騷然 誠可寒心.
◉봄 사이에는 장차 나누어 운반하여 들여보내는데 친족(親族)이나 이웃에게 노잣돈을 책임지우더니 출발에 임박(臨迫)해서는 또 다시 밝히라는 명령이 있어서 혹(或)은 길에 있다가 되돌려 보내기도하고 인(因)하여 다시 구속(拘束)하여 가두어 기아(饑餓)로 죽기를 기다리니 원통(冤痛)하다는 소리가 하늘을 뚫고 신이 보는 바로도 진실로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집니다. 지금에는 또 여러 고을에서 많지 않게 뽑아내니 장차 그 죄(罪)를 거듭하여 다스리거나 이미 다스려져서 몸이 죽은 자들의 처자(妻子)들 역시 사면(赦免)되는 부류(部類)에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호령(號令)이 엄하고 급박하여 사람마다 두려워 떨면서 모두들 도피할 계획이 있으며, 향소(鄕所)의 품관(品官) 등이 또 스스로 그 죄를 사면(赦免)해주고자하여도 상호(相互)간에 들추어 고발하니 순월(旬月)의 사이에 원근(遠近)이 시끌벅적하여 진실로 한심(寒心)한 일입니다.
◈臣觀道內列邑 人吏凋殘 莫甚於今日. 雖名巨邑 而時存立役者 不過數十 至於殘邑 則往往只有數三小吏 以供百役 不成郡邑模樣 與祖宗朝人吏繁盛之日 大不同.
◉신이 도내의 여러 읍을 관찰해보니 하급 관리들의 조잔(凋殘)함이 오늘 날보다 막심(莫甚)함이 없습니다. 비록 명색이 큰 읍이라도 때맞춰 입역(立役)할 사람이 있다해도 수십에 불과하고, 잔읍(殘邑)에 이르면 즉 왕왕 다만 두세 명의 소리(小吏)만 있어서 백가지 역할을 제공(提供)하니 군읍(郡邑)의 모양(模樣)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조종조(祖宗朝)의 인리(人吏)와 더불어 번성(繁盛)한 날과는 크게 같지 않습니다.
◈今若一切以多抄爲能 不論罪狀有無 驅迫入送 則非徒郡邑蕭然 日至壞敝. 而旣入之後 旋又逃徙 必復侵及族隣. 連逮栲掠 一邑之人 從此無寧居者. 此亦可憂之大者也 况道內玉非所生 北遷者已四百餘人. 徙民之事 一時疊擧 民情日益搖動 尤爲可慮.
◉지금 만약에 일체(一切)를 많이 뽑기를 능사(能事)로 여겨서 죄상(罪狀)의 유무(有無)를 논하지 않고 몰고 다그쳐 들여보앤다면, 즉 군읍(郡邑)이 소연(蕭然)해질 뿐만 아니라 날로 무너지고 피폐해집니다. 그리고 이미 들어간 뒤에 돌아서서 도망가고 달아나버리니 반드시 다시 친족이나 이웃에게 침해(侵害)를 미쳤습니다. 연좌(緣坐)하여 체포되고 고문 받으니 한 읍의 사람들이 이에 따라서 편안히 거주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또한 가히 걱정할 가장 큰 것이며, 하물며 도내(道內)에 옥비(玉非)가 생긴 바로 북쪽으로 옮긴 자가 이미 사백여 사람이 됩니다.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일을 일시에 중첩(重疊)하여 거행하니 민심(民心)이 날로 더 요동(搖動)을 하여 더욱 우려(憂慮)할 만하였습니다.
◈臣愚亦以爲罪狀顯出者 爲先辨覈入送 其餘貧乏無財 濫被抄提者 早加決放 以慰人心 亦應灾之一事也. 若曰 實邊事重 雖知無辜 勢難開釋 則又有一說焉 伏計京外以罪犯被係者 不爲不多. 如朝廷別設事目 限數年以罪犯輕重 逐一入送 則其所得 亦當倍蓗於此類矣. 其與勒發無罪殘薄之人 凋敝郡縣 煩擾驛傳 而實無所益者 利害萬萬矣.
◉신(臣)은 어리석어서 역시 죄상(罪狀)이 현격히 드러난 자를 우선으로 하여 조사하고 변별(辨別)하여 들여보내고 그 나머지 빈곤(貧困)하고 궁핍(窮乏)하여 재산이 없으면서 함부로 뽑혀 끌려간 자는 이른 시기에 추가(追加)로 결정하여 놓아주고 인심을 위무(慰撫)함이 역시 재난에 대응하는 하나의 일이라고 여깁니다. 만약 말하기를 변방(邊方)을 충실히 하는 일이 중요하여 비록 무고(無辜)한줄 알지만 형세로 열어서 풀어주기 어렵다한다면 즉 또한 한 가지의 설(設)이 있으니 삼가 서울과 지방에서 죄범(罪犯)으로 엮인 된 자를 헤아리면 많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조정(朝廷)이 별도로 사목(事目)을 설치하고 수년(數年)에 한하여서 죄범의 경중(輕重)을 하나같이 좇아서 입송(入送)하면 즉 그 얻은 바가 역시 마땅히 이런 따위의 다섯 배가 됩니다. 그 억지로 적발(摘發)한 죄가 없으면서 잔박(殘薄)한 사람들과 더불어 시들고 피폐(疲弊)해진 군현(郡縣)은 역참(驛站)의 공문 주고받는 일이 번요(煩擾)하고 실로 이익 될 바가 없는 것으로 이해(利害)가 아주 많습니다.
◈臣以爲我國形勢 西北者藩蔽也 兩南者根本也. 今因一隅之警 使南方之人 先失其所 恐非國家鞏固根本 長遠不拔之計也. 自古外之夷狄 未必遽爲中國禍患 而內之盜賊 常因而起何者? 調發適戍 飛蒭輓粟之煩 民不堪命者多也. 如是而天不助順 仍之以師旅 加之以饑饉 則土崩瓦解 特旬日間事耳. 今中外騷然 已至數年 行齎居送 衆庶勞止 而天怒神怨 灾孼之降.
◉신(臣)이 우리나라의 형세(形勢)를 여기기를, 서북(西北)의 경우 울타리가 되고 양남(兩南)의 경우 근본이 됩니다. 지금 한 모퉁이의 경계(警戒)로 인하여 남방의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그 곳을 잃게 한다면, 아마도 국가를 공고(鞏固)히 하는 근본이 아니며 장원(長遠)하게 빼어난 계책도 아닙니다. 자고로 외부의 이적(夷狄)들은 아직 반드시 중국의 화환이 갑자기 되지 않았으며, 내부의 도적(盜賊)들은 항상 인하여 일어나니 어떤 경우입니까? 수자리 갈 사람을 뽑아내고 군량을 빨리 확보하는 번거로움으로 백성들이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이처럼 하늘의 도움이 순조(順調)롭지 못한데다가 이에 사려(師旅)까지 거듭하고 기근(饑饉)까지 다한다면 즉 토붕(土崩)되고 와해(瓦解) 되기는 다만 순일(旬日)간의 일입니다. 지금 중외(中外)가 시끄럽기를 이미 수년에 이르렀으니, 떠나가는 사람은 싸서 가야하고 머무르는 사람은 보내 주어야하니 뭇 백성들이 수고로우며 하늘의 노여워하고 신명(神明)이 원망(怨望)하여 재앙(災殃)을 내립니다.
◈又復如此 人情危懼 中外業業 天下之事 動之至易 安之至難 成敗之機 間不容髮. 臣之懦怯 惟願朝廷每事稍加靜重 勿使人心有所搖動 致有後悔也 臣至愚無似 受恩深厚 無從報效. 目見天意可畏 邦本日搖 而旱灾彌酷. 其於格天弭灾之策 誠不知所措 敢將狂瞽之說 昧死陳達 不勝惶恐待罪.
◉또한 다시 이와 같으면, 인정(人情)이 위태로이 두려워하고 중외(中外)가 매우 위태로워지니 천하(天下)의 일이 움직이기는 지극히 쉬우나 편안하게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고 성공과 실패의 기미(機微)는 사이에 터럭 하나도 용납(容納)하지 않습니다. 신(臣)은 나약(懦弱)하고 겁(怯)쟁이라 오직 바라옵건대 조정(朝廷)에서 매사(每事)를 조금 더 침착하고 정중하여 사람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요동하는 바가 있거나 후회가 있기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臣)의 지극히 어리석고 비슷하지도 않아서 받은 은혜는 무척 두터우나 좇아서 보답한 효험(效驗)이 없습니다. 하늘의 뜻을 눈으로 보니 가히 두려워서 나라의 근본이 날로 흔들리고 한재(旱災)가 더욱 혹독합니다. 그 하늘을 감동시켜서 재앙을 없애는 대책도, 진실로 손쓸 바를 알지 못하여 감히 미치광이나 소경들의 어리석은 말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진술(陳述)하오며 황공(惶恐)함을 이기지 못하겠고 죄(罪)받기만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