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홍 명장(맨 왼쪽)은 8년 만에 탄생한 역대 다섯번째 잠수 명장으로 현재 잠수사들의 권익 보호단체인 한국산업잠수기술인협회 상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산업 잠수사는 수심 수십 미터 바닷속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해저 전사’입니다. 차주홍 잠수 명장은 해군 SSU(해난구조대) 시절엔 물살이 거센 신안 해저유물 발굴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1984년 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중동의 바닷속을 누볐습니다. 차 명장은 수심 70m까지 내려가 작업을 해 서양 잠수사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잠수학교를 설립, 실력 있는 후배들을 양성하는 중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부산 토박이인 차주홍(53) 명장이 잠수와 인연을 맺은 때는 군생활 때입니다. 그는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선체 인양작업을 벌여 주목을 받은 해군 SSU(해난구조대) 출신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마도로스가 되기로 결심한 후 1978년 해군에 입대했고 해군에서 SSU에 차출된 게 잠수에 입문한 계기였습니다.
1984년 SSU 하사관으로 제대한 그는 국내 잠수사들 중 누구 못지않은 현장 경험을 쌓아 왔습니다. 군에 있을 때는 수년간 신안 해저 유물 발굴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청자 1만2000점과 백자 5311점, 동전 28톤을 건져올린 신안 해저유물 발굴 현장이 군에서 그의 ‘작업장’이었습니다.
“SSU에 들어가 제대 직전까지 매년 여름 두 달간은 신안에서 작업을 했지요. 수심이 20m에 불과하지만 뻘에다 물살이 거세 진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겨울에 새까맣게 칠한 수경을 쓰고 뻘을 더듬는 훈련을 하면서 수색 감각을 살리고 여름에는 작업에 투입되곤 했죠. 내가 건져올린 동전만 해도 수억 원어치는 될 겁니다.”
<차주홍 잠수 명장은 중동에서 작업할 때 혼합기체 없이 보통 공기를 마시면서도 수심
70m까지 내려가 작업을 했다.>
1980년대 주베일항 공사 때 잠수실력 발휘
군에서 제대한 직후에는 중동의 바닷속을 누볐습니다. “홍해와 페르시아만 등에서 4년간 일했죠. 홍해에서는 현대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 공사에 참가했고 페르시아만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석유시추탑 공사에 참가했지요.” 주베일항 공사 때는 잠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물속에서 오랫동안 일해야 하는 산업 잠수사들은 잠수 시간 제약이 있는 스쿠버다이빙 대신 선체나 지상에서 컴프레서로 공기를 만들어 헬멧을 쓴 잠수사에게 호스로 공급하는 표면공급식 잠수를 합니다. 하지만 표면공급식 잠수의 경우에도 수심 50m 밑으로 내려가면 위험하다는 게 잠수사들의 상식입니다.
“홍해가 얼마나 물이 투명합니까. 일에 열중하다 보니 산소에 헬륨 등을 섞은 혼합기체 없이 보통 공기를 마시면서도 70m까지 내려갔지요. 같이 일하던 서양 잠수사들이 ‘실력이 좋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잠수사들을 양성해 자기네한테 보내 달라고 하대요.”
중동에서 돌아와 실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잠수학교’를 부산에 설립해 후배들을 양성했고, 이 잠수학교는 현 한국잠수기술인협회의 모태가 됐다고 합니다. 그는 “1991년 잠수학교를 설립할 때 교육청의 인가를 받으려고 했는데, 잠수 관련 학원시설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어 항의한 기억이 난다”며 “그만큼 잠수 분야가 변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차 명장에 따르면, 물속에서 버티면서 발파, 용접, 토목 등의 일을 하는 산업잠수는 무척 고된 직업입니다. 그는 산업 잠수사에 대해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먹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레저로 물에 뛰어드는 것과는 다릅니다. 육지의 건설업자들은 비가 오면 공치지만 우리는 비가 와도 물속에서 일을 해요.”
후배들에게 '특정분야에서 최고가 되라'고 주문
관계 법령에 잠수사들의 하루 근로시간이 6시간으로 규정돼 있지만 “고용주들은 우리가 물속에 한 번 내려가면 로봇인 줄 안다”는 게 그의 말입니다. 물속에 오래 있다 보니 잠수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잠수사들을 더욱 위험으로 내모는 것은 잠수사들을 고용하는 수중전문 건설업체들의 영세성이라고 합니다. “수중건설 면허를 가진 업체들이 현재 전국적으로 357개 있지만 군소 비면허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1500여 개나 됩니다. 이들 영세 업체들은 개당 1600만원이나 하는 잠수 헬멧 등의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수용 헬멧이나 잠수 전용 호스 등 서구 잠수 선진국의 규정에 맞는장비를 갖춘 업체들은 전체의 15%에 불과합니다.”
이런 위험한 산업 잠수사의 일을 33년간 해 온 차 명장은 지난 1984년부터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부여하기 시작한 잠수 기술사와 잠수 산업기사 4700명의 ‘큰형’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잠수사가 고된 일이지만 항상 후배들에게 “프로가 되라”는 주문을 합니다.
“단순히 물속에 들어가 일한다고 돈을 더 많이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고용주에게 물속 암초를 폭파하는 데 다른 사람보다 절반의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고 주문합니다.”
1급 잠수사는 한 달에 1000만원 벌기도
현재 산업 잠수사는 협회에서 교육과정을 개설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고, 2년제인 폴리텍3대학 강릉 캠퍼스에도 산업잠수과가 개설돼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2011도 산업잠수과의 취업률은 86.4%. 이 학과를 나오면 잠수 기술사 자격시험에서 필기시험은 면제해 줍니다.
잠수사 실기시험은 산업인력관리공단의 의뢰를 받아 현재 협회에서 주관하고 있습니다. 차 명장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잠수사들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협회 등을 통해 일감을 주문받으면 고용주와 직접 협상을 벌여 자신의 임금을 결정합니다. 1급 잠수사들의 경우 한 달에 100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정규 교육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차 명장은 산업잠수 분야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 실력자입니다. 부경대에서 산업 잠수 강의도 했고, <잠수기술개론>, <최신 수중용접 절단> 등 관련 서적도 12권이나 냈습니다. 지난해 출간한 ‘이상기압에 의한 건강장애 예방 제도개선 연구’라는 논문은 잠수사들의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관계 법령 어떤 곳을 어떻게 개정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