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달마, 운다
저자: 이순옥
출: 시문학사
독정: 2022년 9월 29일 목
<봄날의 서정>
탱탱하던 햇살이 오늘은 주름 가득하다. 봄날 내내 부리가 휘도록 나뭇가지 물고 와 높은 나무꼭대기에 하늘 향해 집 두 채를 지은 까치 부부
그런게, 그 나무 유난히 키가 카다는 이유로 담장나무 높이에 맞추어 절단하기로 아파트 주민 과반수가 서명했다.
집 두 채 땅바닥에 나뒹굴고 예고 없이 보금자리 잃은 까치들
항의 한 번 못하고 떠나가는 새끼 까치, 어미까치
<병아리 동영상>
어머니는 이른 새벽 가족 모두 잠에 취해 있을 때 기척도 없이 앉아 단정히 기도하고 계셨는데 새벽닭 고요함이 먼 옛날 어머니 모습을 일깨운다.
<병아리 동영상 12>
장에 병아리 하루 섭취량
좁쌀 두 주먹
보리 새싹 한 웅큼
간혹 벌레 몇 마리
물 몇 모금
그 양으로
체온 41.5도 유지
똥 싸고
날개 퍼덕이고
배밀이 하고
꼭끼오오오 울음 토하고
눈 깜박이고
고개 도리질하고
심장을 뛰게 하니
이를 두고 생명의 기적이라 하겠지
<병아리 동영상 13>
꼭, 꼭 들어주세요, 주님
끼, 끼워 넣어 주세요. 제 기도를
오, 오 주님 장애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나의 기도 되어
아침에도 꼭끼오오
저녁에도 꼭끼오오
<이문희 대주교 추모사>
대주교님 생저의 삶을 깊이 생갑해 봤을 때
천국은 하늘에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발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고,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신 겸손의 자리, 그 자리가 천국이었습니다.
해설-자아정체성을 향한 순례자의 길-원명수(계명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목사)
원시인에게 시라는 용어는 없었다. 시라는 용어는 원래 없었다. 그러나 시는 있었다. 학자들이 편하게 분류해서 만든 것이다. 시는 그냥 언어의 건축이다. 시인의 인격과 인생의 표현이다. 순수한 인간의 마음에 비친 인간의 모습과 세상 모습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참 행복>-사랑의 빛 2003
엄마는 온실이었다.
지금은
지치 바람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의 벌거숭이
길 잃은 아이 되었네
<어머니의 임종>-사랑의 빛 2003
어머니의 손목에서
시계줄을 풀었다
낡은 가죽끈
세상 인연줄을 풀었다.
훌륭한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은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없다. 아름답고 경건하고 순수한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은 아름답고 경건하고 순수한 시를 쓸 수 없다.
이순옥의 시세계는 가톨릭 신앙시에서 출발한다.
① 기독교 신앙시
② 어머니 모티브-어머니 돌아가신 해에 낸 시집
‘봄날의 서정’에서 새끼를 돌봐야 하는 어미까치의 모습에서 자식 보호 하는 어머니 모습 생각
③ 자연 제재 시
④ 세상 제재시
<다른 듯, 같은 고민>
시를 쓰는 상인의 아들은
방문 닫고 시만 쓰지 말고
방문 열고 사람과 부딪히며
삶의 지혜부터 배워야 한단다
상인은 사람들 속에서 삶의 시를 몸으로 쓴다. 원고 청탁 없어도 그만의 시를 쓴다.
<태풍 전야>
태풍보다 더 두려운 건
태풍 전야의 중압감이다
잿빛 짙은 구름이며
바람 한 점 없는 고요
그 속을 알수 없는 침묵이 공포스럽다
태풍이 온다는 건
지구가 아직 건재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엄마 차맛자락을 흔들어 당기며
거칠게 떼쓰는 아이의 모습으로 보인다
태풍 전야
바람도 없이 무겁게 내리는 장대비
방충망 사이로 날아드는
비릿한 비 냄새를 빨아들이며
침묵의 의미를 새기고 있다.
<코로나19와 기도 촛불>
코로나19는 대형급 태풍이다
성대하게 준비하던 2020 토쿄올림픽은
시작도 전에 황망히 성화를 꼈다
누가 무슨 특권으로 올림픽을 제지하겠는가
그 위력
형체도 없는 것에 인간은 백기를 들었고
지금 지구를 밝히고 있는 건
성화가 아닌
로마 베드로 광장에 켜진 기도 촛불이다.
수백만 감염자, 사망자, 격리자
홀로 죽음 맞이한 불쌍한 영혼들
가족 친지 갈기갈기 찢기는 슬픔
위급한 영혼들
밤 빗속을 뛰어다니고
온 세계가 조기를 걸었다
이 대형 태풍을 잊을 수 있을까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는
그날이 오더라도…
⑤ 자아정체성을 향한 순례자의 길
<이삿짐>
이삿짐 실은 용달차 한 대
삐걱삐걱 언덕을 오른다
바람 부는 봄날
유모차, 세발자전거
우산, 빨래건조대
인연의 줄에 몪여 따라간다
온 가족을 업고 언덕 오르는
가장의 주름진 목덜미
그는 삶의 기행문을 쓰고
운명의 갈림길을 본다
어느 길을 택하든지
오늘은 막막하고
내일은 준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