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2회 만득이
산행지의 상세한 설명을 통하여 산행의 재미를
더하여 준 바 모든 회원의 감사한 마음을
이 패에 담아드립니다.
2024년 3월 9일
재경 OO 중고등학교 산악회
회 장 거 시 기
2월 29일 독서방 모임에 갔다가 귀가하는 전철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동문회 산악회 총무였다.
" 형님, 시산제 때 형수님과 꼭 같이 나오십시요"
" 맨날 쏴 돌아댕긴다고 집에서 쪼껴 난지 오래 되얐네.ㅋㅋ"
25년도 넘었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널리 보급이 안된 시절이라 동문산악회 참석하라는 안내문이 우편으로 오던 시절이었다.
' 건양다경 춘양지절에 귀댁과 동문여러분들의 행복이 가득하기를 앙망하오며
아래와 같이 동문산악회 시산제를 개최하오니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
회장.모시기 배상'
그 때도 3월 초 쯤, 청계산 중턱에서 시산제가 열렸다.
얼었던 땅이 녹아 행사가 열리는 곳까지 길이 질펀 거렸다.
행사 준비물은 차가 갈 수있는 등산로 입구에 널려 있었고 대책이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나 보다 후배 두 사람이 일찍 나와 있었다.
뒷풀이 음식점에 가서 리어카를 빌려와 제수와 기념품 등 행사 준비물을 실어 날랐다.
시산제 장소는 더 가관이었다.
햇볕이 잘 드는 명당 자리여서 황토 진흙탕이었다.
"하필 오늘 따라 날이 풀렸당가" 하며 주책 없는 소리들이 여기 저기 들렸다.
산악회에 처음 나간 만득이가 주위에 있는 몇 사람에게 가져온 깔판을 꺼내 오라하여
바로 옆 계곡에 수북히 쌓인 낙옆을 모아 행사장 바닥을 덮었다.
기타태자와 수달타장자가 금으로 장식한 기원정사만큼 아름다운 행사장이 만들어졌다.
"쟈 누구여? 앞으로 산악회 꼭 나오라고 하소." 원로들의 칭송이 귀를 간지럽게 하였다.ㅋㅋ
그때부터 만득이의 고생문이 열렸다. ㅜㅜ
그날 집행부에 의하여 말단 부총무직이 즉석에서 부여되었다.ㅎㅎ
좀이 쑤셔 한시도 제자리에 있지 못하는 만득이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산악회 공금으로 오만군데 답사를 다 돌아댕기고 특히 맛난 집은 한 곳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지위가 점차 올라 수석 부총무가 되었다.
15년전인가 수석이 되고 나서 이 맘때 고창 선운산 동백꽃을 보러 갔다.
그해 중국 어선이 마리아나해구에서 산란한 장어 치어를 남지나해에서 싹쓸이 하여 장어 값이 급등했다.
서울에 돌아와서 "주말에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갔다왔네" 라고 누군가에게 자랑질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틀림없이 상대방이 "풍천 장어 맛 있던가?" 라고 됐빠꾸가 돌아올 것이 뻔했다.
걷어 둔 회비로는 복분자에 풍천장어 먹기는 다 틀렸다.
여차하면 비용 부족으로 남원 가서 미꾸라지를 먹어야 할 처지였다.
돈을 추가로 거출하는 마름질을 누가 할 것인가?
언젠가 할 것이면 지금하고 누군가 할 것이면 내가 한다! 가 평소 신념인
단순 무식한 만득이가 이왕 찍힌 몸을 핑계로 마이크를 들고 바람을 잡았다.
산행후 장어를 푸지고 먹고 나오면서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어이 동생 ! 장어 잘 묵었네"
돈 낸 사람은 따로 있는데 다들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하신다. ㅋ
문경새재에서 약돌 돼지를 먹자 하면 만득이는 약돌 한우를 먹었고
함백산 만항재에서 닭 백숙을 먹자 하면 만득이가
"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 있는 연탄 불 한우 갈빗살을 먹읍시다." 라고
바람을 잡고 태백 시내 태성실비식당에서 생등심을 구었다.
만득이는 남들과 같이 놀러 댕기는 것이 제일 즐겁다.
처음에 산행지 까지 버스를 타니 자는 분들이 많았다.
산행지에 도착할때 까지 주구장창 마이크를 잡고 떠들었다.
장거리 산행을 하는 이유는 명산을 오르고 덤으로
그 고장의 지리나 역사 문화에 관한 견문을 넓히는 것이다.
마침내 산악회에 등반대장을 꿰찬 만득이는 누구의 허락을 득하지 않고도
마이크를 잡고 무자격 문화해설사 노릇을 쭉 할 수 있었다.
만득이와 같은 코드를 가진 분들은 반응이 아주 좋다.
산악회 버스를 처음 타신 분들은 만득이 박샌이 이야기를 하면 처음에는 자는 체를 한다.
그리고 저 새끼가 하는 소리가 틀린 구석이 있는지 가만히 찿다가
만득이의 유치찬연한 해설과 인문학 강의에 종점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감동 감흥을 하는 것이다.
황매산으로 철쭉을 보러가는 버스에서
두 시간 장황하게 쉬지 않고 떠 들었는데 반응이 없었다.
어라, 보통 우뢰와 같은 박수와 찬사가 쏟아져야 정상인데
만득이의 말씀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서인지 중간 휴게소 까지 조용하다.
왜 이 양반들이 박수를 안치지 하며 이상하다 생각하고 휴게소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데
옆 소변기에 선배님들이 꼬추를 꺼내 잡아 들고서야 "만득이 후배 쵝오!" 라고 칭찬을 한다.
거~참 오줌이나 쏴고 가시지. ㅎ
참으로 젊은 날을 아무 생각없이 제 멋대로 살아 왔다.
하두 쏴돌아 댕기니 집사람이 집 근처 탁구장에 등록을 시켜 활동 반경에 제약을 가했다.
산악회 보직도 이젠 후배들에게 넘겼다.
권력을 다 뺏기니 시산제에서 상을 하나 주었다.
과분하고 감사한 일이다.
첫댓글 명문 순천고 산악회의 대장과 요직을 두루거친 만득님
멋지게 사셨군요.
독서방에서도 문화 해설 이벤트 좀 해주시면 참 좋을 듯한데,
의견 한 번 모아보시면 어떨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 얼굴 뵈면 맥주+소주 한 잔 올리겠습니다.^^
동문회 보직도 다 뺏기고
회삿돈 뽈아 먹을 날도 몇달 안 남고.
새로운 육십갑자에 적응하려면
탁구장에서 조신하게 동네아줌마들
주전자 물 심부름 해야겠습니다.
국민학교 부터
퇴직 직전까지 상을 많이 받으셨나봐요.
즐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