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이 내린 후 비도 좀 오고 하더니 날씨가 제법 추워졌다(고 대부분 사람들은 느끼고 있다).
특히 성탄절을 앞둔 24일 올 들어 최저 기온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고 난리들이다.
새벽 5시에 기상, 모닝담배 한 대를 태우러 계단실로 나가 창문을 열고 염탐해본즉 쥐뿔도 아니다. (옷차림은 소매 없는 메리야스러닝에 반바지. 어차피 그 시간에 누구 쳐다볼 사람도 없다)
허허 뭐 이런 정도 가지고 난리들을 피우나?
파카 입으라고 잔소리하는 마누라 먼저 출근시키고 뒤이어 긴팔 티에 양복만 살짝 걸치고 나왔다. 거 시원하고 좋구만... ^ ^
공해가 거의 없던 5~60년대 겨울은 한층 더 춥고 눈도 더 많이 내렸다.
초등학생도 운동장에서 전체조회는 빼놓지 않던 시절, 좋지도 않은 방한피복에 얇은 고무신 차림은 발가락이 깨져 나갈듯한 추위를 충분히 느끼게 하고도 남았다. (지금 같으면 사이비인권단체, 시민단체 들고 일어난다. 애들 잡는다고)
3한4온 현상이 뚜렷하던 그 시절, 우리는 ‘4온’에 해당하는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간에는 상대적으로 덜 추웠다.
‘4온’에 해당하던 62년 어느 겨울날, 냇가의 얼음판도 하도 여러 놈들이 썰매 타대니 여기저기 갈라져버려 하는 수없이 집 근처 미나리꽝에서 썰매를 탔는데, 삐죽삐죽 솟은 미나리줄기에 뻘밭에 언 얼음이라 빙질이 상당히 부실했던지 얼음이 깨져 겨울철메기를 잡고 말았다.
잔뜩 뻘흙 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와 걸레로 대강 닦고 모두 벗은 다음 메리야스 팬티 한 장에 맨발로 썰매 들고 다시 나가니 우물가 아줌마들이 모두 웃어댔다. 그때는 추운 줄도 몰랐다. 남보다 추위를 덜 탄 건지 썰매를 더 타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는지.
서울로 이사 와 중․고등학교 시절, 등록금도 제때 못 내 절절매던 때니 용돈이란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초등학교 시절에야 전화선(구리선) 공사할 때 떨어진 거 줍거나 당시의 비포장도로에서 장마철에 이따금 튀어나오던 탄피나 탄두 주워 고물상에 팔아 대충 용돈을 벌어 쓰기도 했는데, 다 커서 그 짓 할 수도 없고 길도 포장이 되어 튀어나올 놈도 없었다.
그렇다면 알량한 버스비라도 절약하는 수밖에...
학교까지 거리가 6km가 넘으니 어쩔 수 없이 버스비만큼은 주었다.
게다가 고등학교부터는 동내의도 아예 안 입었다. (이건 동내의값이라도 절약하여 가계에 보탬 하겠다는 갸륵한 의지?)
자 그러니 러닝, 팬티에 달랑 교복만 걸치고 등하교 각 편도 6km 이상을 맨손에 무거운 가방 들고 다니자면 추위에 강해지는 게 급선무.
새벽에 일어나면 맨발에 팬티만 입고 좁은 마당으로 나갔다.
상체운동 좀 하고 이어 제자리뛰기 천 개 정도 하면 어느 정도 열이 나고, 그 상태에서 시멘트벽에 등을 한참 댔다가 다시 가슴팍을 한참 대곤 했다.
이어 수건을 찬물에 적셔 가볍게 짠 후 냉수마찰.
그렇게 추위와 혼연일체가 된 연후에 집을 나서면 그다지 춥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하긴 엄청나게 빨리 걸었으니 열 때문에 추운 줄도 몰랐다.
혹한의 강원도 군복무시절, 우리에게는 지급받은 그 어떤 장갑도 평상시 착용이 금지되었었다.
팔꿈치까지 오는 노란 벙어리장갑은 야전훈련 외에는 착용금지(그거 잃어버리면 채울 길이 막막한 것도 한 이유였다), 손바닥 부분만 가죽으로 된 반피수갑도 동절기휴가 외에는 착용 금지.
결국 사비 털어 하얀 면장갑을 사서 꼈는데 한 켤레로는 어림도 없어 최대 5켤레까지 껴야만 했다. 그러고도 손이 시렸다.
연대가 좁고 긴 골짜기에 위치해 있어 산바람, 골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 각별히 뼛골 시리도록 느낀 강추위 몇 개.
76년 12월초 첫 휴가 직전, 대대ATT.
영하 20도 이하 추위에 하늘이 미쳐버렸는지 밤새도록 때 아닌 소나기를 퍼부어댔다.
야상부터 속옷까지 푹 젖은 상태, 주변 능선에는 얼어 죽지 않으려고 밤새 뛰면서 발버둥치는 소총중대원들의 구령소리가 처절하게 메아리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소나기가 그친 후 기온은 더 내려갔다.
푹 적셨으니 얼음 좀 얼리겠다 이거다.
그뿐인가?
기름쟁이 시절, 새벽 4시만 되면 어김없이 대대장 1호차 운전병이 와서 기상시켰다. 기름 넣으라고.
#$@%^&* 속으로 투덜대면서 반팔 포제러닝에 바지만 입고 맨손에 50m 떨어진 유류고로 간다.
휘발유 드럼 열어 짚차에 만땅꼬(만탱크)로 채우고 다시 들어올 때까지 황홀한 추위는 계속된다.
나중에는 군기가 확 빠져 유류고 열쇠 꺼내주면서 ‘형이 알아서 뽑으쇼.’.
그 사람 좋은 왕고참, 군말 없이 자기가 뽑고 열쇠를 도로 가져다주곤 했다.
(여름도 아닌 겨울에 기름 묻으면 그때마다 빨 수도 없고, 빨아봤자 금방 마르지도 않고, 달랑 3벌 군복에 그걸 감당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널어놓은 거 잃어버리면 채울 길 역시 막막하였다. 열외병력은 대대원 전체에 쪽이 팔린 상태라 어디 소총중대 근처 얼씬거리기라도 했다간 대뜸 용의선상에 오르고 계속 추적의 대상이 된다)
그 짓을 겨울 내내 했으니.
그때는 차라리 소총중대원이 진정으로 부러웠다.
제대 열흘 남짓 남은 78년 11월말 소대ATT.
소대가 야간공격에 나서면서 갈참이라고 중대본부서 밀려난 약골 졸병 한 녀석과 쌍으로 묶어 군장감시를 시켰다.
갈참이니 편히 쉬시며 몸을 보중하시라...
소대원들 군장에서 모포를 열 매 이상 풀어 덮어도 말짱 헛일.
심야의 강원도 산 속에 모닥불 피울 수도 없고, 녀석과 나는 얼어 죽지 않으려고 밤새도록 미친놈들처럼 능선을 뛰어다녔다.
거의 6시간 동안을 계속 뛰었으니 풀코스 이상 족히 나왔을 거다.
자식들이 갈참이라고 봐주는 게 아니라 아예 동사시키려고 작정을 했나?
◆ 냉수욕하다 갈 뻔한 사례
78년 12월 제대, 옛 직장에 복직한 후 다음 해 1월 초.
야근하다 늦어 집에도 안 가고 당직실에서 노닥거리는데 문득 냉수욕을 하고픈 마음이 불끈 일어났다.
꽁꽁 얼어붙었던 그날 밤 12시 청사 뒷마당 수돗가로 갔다.
푸시업 100회, 앉아뛰며돌기 100회, 제자리뛰기 500회 정도로 워밍업을 하니 몸에 열이 제법 났다.
옷을 홀라당 벗어버리고, 자 기대하시라!
물을 한 바께쓰 받아 머리에서부터 쏟아부으니... 어~ 춥다!
참고 계속 퍼부으니 손, 발도 안 시리고 전혀 춥지 않았다. 삭풍이 불어도 그저 시원한 가을바람 정도의 상쾌한 느낌.
30번 정도 퍼부은 후 물기를 닦고 마무리로 다시금 열을 좀 발생시키고 당직실로 돌아왔다.
당직실은 연탄 6장을 때는 큰 난로가 있어 엄청나게 따뜻했다.
한데 5분쯤 지나니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완전 인간바이브레이터.
잇빨까지 황새모양 따다다닥 계속 절구질을 했다.
거 박자 끝내주는데. 완전 기관총 발사속도라. ♫
그때 비로소 몸 속 어딘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 이게 바로 저체온증세라는 거구나.
점잖게 물속에나 들앉았었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걸 삭풍을 맞으면서 머리부터 찬물을 계속 뒤집어썼으니...
그 뜨거운 난로를 껴안다시피 바짝 붙어 30분을 넘게 있으니 겨우 진정이 되고 몸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결혼하고나서 보니 대부분 여인네들이 그렇듯 마누라도 추위를 어지간히 탄다.
최소 실내온도 22도 이상을 맞춰놓고도 두툼하게 옷을 입는 마누라는 내 소매 없는 러닝과 반바지차림에 환장을 한다.
나만 보면 추워 죽겠으니 제발 티셔츠라도 걸치란다.
아 덥고 답답한데 왜 걸쳐?
거 세탁기 빨래도 내가 꺼내 널지 않나?
그래 결국 마누라와는 동침을 제대로 못 한지 오래.
마룻바닥에 깐 다다미방 생활만 20년을 넘게 한 탓에 온돌방에서는 절대 잠 못 자는 놈과 전기장판 켜놓고 자는 마누라와는 완전히 기름과 물.
마누라는 우리 둘이 궁합이 안 맞는다고 종종 푸념을 한다.
이제라도 원위치시켜?
각하! 제발 고정을, please...
이러니 직장에서도 종종 이 따위 질문을 받곤 한다.
어릴 때 인삼 많이 드셨소?
인삼? 삼 중의 삼 王蔘 많이 드셨지. 무 말이여.
무는 진실로 허벌나게 많이 먹었다. 무국, 무나물, 무조림, 깍두기...
(선친의 말씀 왈, 디아스타제가 많아서 좋다나? 디아스타제가 뭔데? 소화효소 아녀? 가뜩이나 배고픈 놈 소화까지 잘 돼버리면 그냥 미치고 환장하라고?)
☹ 오늘의 Tip! - 추위를 이기는 비법
- 운동이나 냉수마찰 같은 고전적인 방법 말고 그야말로 획기적인 방법.
☞ 여단장님이 번역하여 올리신 장진호 전투 관련 수기를 여러 차례 숙독한 후 사진과 내용을 늘 머리에 떠올리는 이미지훈련을 한다.
그러노라면 지금의 이까짓 건 추위 축에도 못 낀다, 봄이 왔네 봄이 와 ~ ♫ 노래가 절로 나오며 한결 따스해졌다는 느낌이 팍 오게 된다.
그러면 겨울은 끝나고 곧바로 봄은 찾아온다.
Believe it or not! ^ ^
Merry Christmas!
첫댓글 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전 지난 겨울부터 특전사 동계훈련 사진을 자취방에 붙여놓고 있습니다.
좋은 방법입니다. 또 한 가지 방법 - 따뜻한 열대의 풍경도 같이 걸어놓으면 두 배의 심리적인 난방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단, 믿고 안 믿고는 자유에 속합니다. ^ ^
제 친조카가 철원군 갈말읍에서 군생활하고 있는데 얼마전 영하30.5도라고 뉴스에 나더군요. 거기에 비하면 제가 있는곳은 따뜻한 봄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그래도 추워요,,^^,
그래도 몸이 말을 안 들으려고 하면 그때는 약간의 벌을 내리는 겁니다. 추운 데서 가만히 서 있기. 한참을 그러고 있으면 죄과를 뉘우치고 말을 좀 듣게 됩니다. ^ ^
ㅋㅋ
예전에 군에서 경험한 것 몇 개 떠올리니 진짜 마음이 그러네요.
일종의 자기최면이지요.
1월달에 아들하고 특전사캠프 가보시기를.
훈련중 너무 춥고 너무 힘들었던적 많죠?
미군 레인저코스에 3인일조로 행동하다가 그중 한명이 중상. 업고가야 됩니다. 이미 한3일동안 전혀 잠을 못잔상태구요. 그래도 계속 상황부여를 합니다.그팀이 얼마나 잘하는지는 매뉴얼에 다나와있구요.서로교대하고 쪼금만 더 잘 움직이면 만점 준다네요. 잘아시겠지만 전투상황은 우리가 만화보듯이 그런거 절대 아닐겁니다.
기인여..기인. 전 요즘 추어 죽겠구만. 엥 군대서 저런 고참 않만난게 얼마나 다행인지. ㅉㅉ
기인이 아닌 凡人(犯人? - 남의 집 딸내미 도둑?). 남보다 추위 그저 조금 덜 타는 대신 한여름에 남보다 땀 더 흘리고 구보라도 했다하면 완전 땀으로 사우나를 해대니 차라리 추위 더 타는 게 낫지... 어 덥다!
며칠 전 아이스크림 사러 집근처 편의점에 잠간 반바지 차림으로 나갔더니 뭐 보듯...사실 지금도 겨울난방은 않함다. 처 올때나 가끔 돌리는 정도... 추위 잘 안타는 것도 있지만... 한푼두푼이라도 아끼겠다는 생각에 자취생때 버릇이 남아있는탓이져. 윗글 보다 보니 어려서 얼음지치다 눈에 옷 다젖어 '겨울 빨래하기도 어려운데 옷 버린다'며 두둘겨 맞던 기억나네요. 한동안 집에 갇혀지냈는데 다락창문통해 나가서 또 뛰어놀고 맞고... 건강하기도 했지만 그럼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리워지는 겨울밤입니다. 잘 봤습니다.
고교 졸업때까지 사복이란 게 없어 겨울에도 뭐 가까운 밖에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형이 월남에서 가져온 미군용 국방색 러닝 하나 걸치고 갔지요. 남들은 모두 제가 추위에 엄청 강한 줄 착각하고... ^ ^ 사실 여자들만 아니면 어느 정도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마누라가 23도 정도만 올리면 아침 기상시 코가 막히는 느낌이 드는지라.
저는 역으로 보일러 이빠이 돌립니다. 왜냐하면 군대에서 그렇게 춥고 달달 떨었는데 (발에 동상도 걸렸음)
사회에서도 그러자니 너무 억울해서 ...
허~... 그렇다고 당시 국방부가 가스요금 물어줄 것도 아닌데... 사실 아파트 같은 곳은 추위만 좀 덜 타면 가스비 확 절약할 수 있습니다. 자기 집 난방 안 켜고 바로 위 아래층의 열을 덕보자는 얌체수법. 물론 전 세대가 얌체만 모였다면 전체가 냉골 되겠지요. ^ ^
에이..1사단인데,.제가1사단11연대전투지원중대 가봤걸랑요...
이기자 부대 화이팅 Sir !!
우리끼리는 '비기자!' 주적한테는 '이기자!'
남한산성 골바람 또한 철원의 한파와 다르지않음을 강조 하고 싶습니다
*한겨울 찬바람과 멀~~~리 보이는 송파의 야경!!! 죽여줍니다요.
일단 요부분에선 우보님은 빠지세요^^
정말 추웠지 말임돠. 고등학교때, 읍과 면 두어군데 거쳐 오는 뜀뛰기 10KM 정도를 하면 이마 머리칼에 하얗게 서리가 업니다. 글고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고 아침을 먹으면 내복 안입어도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죠. 요즘 학생들더러 한겨울에 매일 아침 글케 운동하라고 하면 할 녀석들이 단 한 명도 없을겁니다. 나이들면서 느낍니다. '체력은 국력',,,,체력이 안좋으면 의료보험 국가부담분이 늘어나니까 나라가 가난해 지고, 일 못하니까 개인은 물론, 또 나라가 가난해지고,,,,참으로 명언입니다. "체력은 국력!"
신교대부터 오전구보후 냉수마찰.흐미,
그거 효과있나요? 지평냇물이 오염되서.
그때가 80년 3월인데. 그냇물엔 붕어도 없드만.
신교대부터 오전구보후 냉수마찰.흐미,
그거 효과있나요? 지평냇물이 오염되서.
그때가 80년 3월인데. 그냇물엔 붕어도 없드만.
저희 시골에서도 "메기 잡았다"는 말을 썼는데...여기에서 그 말을 들으니 동질감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겨울에 개울에 가면 썰매도 타고 얼음을 갈라서 그 위에 모래를 뿌리고 막대기로 뗏목 밀듯 놀다보면 물에 넓적다리까지 풍덩 빠지는 건 다반사 였죠. 그 때는 100% 순면이 아닌 나일론 양말만 신었기 때문에 불이라도 펴서 말리려다가 양말도, 신발도 그을린 추억이 생각납니다. 집에가면 할머니랑 어머니한테 무지게 혼났었죠...눈내린 오늘 밤 그 때의 아련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 납니다.
호흡으로 더위와 추위를 어느정도 다스릴 수 있는데요..더울 때는 아랫배로 숨쉬면서 날숨을 들숨의 두배길이로, 추울 때는 반대로..그래도 춥거나 더우면소주,맥주가 최곱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