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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우씨 판서공파 후손 월곡 우배선 장군의 얼이 깃든 월곡정사 전경. |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주거공간이 개발로 인해 급변해 버린
요즘이다. 얼마 전까지도 흔히 볼 수 있었던 기와집과 서원, 재실,
정자 등 고가(古家)들이 이제는 특별한 곳에 가야만 볼 수 있거나,
설령 도심 속에 있더라도 어렵게 찾아야만 보게 되는 것이
우리네 실정이다. 대구에도 고가들이 많이 산재해 있지만,
몇 군데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면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곳을 헤아려 보려해도 손에 꼽힐 정도다.
‘스마트 세상’으로 모든 게 편리해졌지만, 그래도 선인의 전통문화에
대한 젊은이의 이해는 너무나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한문학을 전공한데다 문화유산답사라면 가능한 한 부지런히 참석하는
필자조차도 막상 현존하는 고가를 찾아 나서려 할 때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닥친다. 하물며 전통문화보다 외래문화에
더 익숙한 젊은이는 물어 뭣하겠는가. 젊은이의 고가에 대한
무관심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이젠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의 뿌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무슨 ‘특별한’ 각오라도 해야 될 것 같다. 우리 주변에 희미하게
퇴색되어가는 선인의 삶의 공간을 찾아서 ‘묵은 때’를 벗겨내고
우리의 기억을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 묵은 때를 하나씩
벗겨내야만 선인의 여유로운 웃음과 날카로운 예지의 눈빛이
다시 드러나지 않겠는가. 필자는 이러한 취지로 대구에 남아 있는
세거지나 종가·서원·재실·서당·누정·비각 등 고가를 답사,
그곳에 남아 있는 편액·주련·시판 등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해당 고가의 설명에서 더러 소략하거나 글귀 해석에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해량과 질정이 있기를 바란다.
지난달 29일.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연재를 응낙하고 어디부터 답사를 할까 고심하다가 2년전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에 자리한 단양 우씨 월곡세거지에서 행사를 한 기억이 있어, 이른 아침 옷을 차려
입고 월곡세거지로 차를 몰았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앞산 순환도로에서 월촌역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좌회전 하니 고층아파트가 숲처럼 다가온다. 예전엔 고즈넉한 촌락이었던 곳이 이제 아파트에 둘러싸인 마을로 변했다.
그래도 이곳 세거지는 넓은 공원과 역사박물관, 솔숲이 있어 주민들이 산책과 운동을 하거나 견학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애용되고 있다.
◆우배선 장군의 강학소
일요일 오전이라 월곡정사(月谷精舍)는 한적했다.
정사는 단양우씨 판서공파 후손 월곡 우배선(禹拜善·1562∼1620) 장군의 강학소(講學所)이다. 월곡 또는 월배는 상인동의 옛 이름이며, 정사(精舍)는 일반적으로 선비들이 학문을 가르치는 학당이나 공부하는 서재를 일컫거나,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공간을 일컫는 이름이다.
단양우씨 문중이 터를 잡은 이래 600년 정도 세거한 이곳은 무수한 인물을 배출한 길상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한 형태의 월곡정사를 그저 외형만 볼 것이 아니라 유서 깊은 삶의 공간이며, 명문세가의 기운을 품고 있는 명당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정사는 월곡역사박물관에서 비슬산 자락 방향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월곡정사에 걸린 편액(扁額)
정사에는 모두 7개의 편액이 있다.
정사의 처마에 행서체 글씨로 적어 걸어둔 월곡정사 이외에, 대청에도 우배선 장군의 충절과 의리를 기린다는 뜻의 ‘충의당(忠義堂)’과 마을의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친 집이란 뜻의 ‘덕동서당(德洞書堂)’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정사를 짓게 된 내력을 적은 ‘월곡정사기’와 정사를 다시 수리하고 기록한 ‘월곡정사중건기’가 있고, 월곡선생의 죽음을 애도한 ‘만장시판’, 월촌주인에게 주는 ‘시판’도 걸려 있어 당시 교유한 인물을 알 수 있다. 정사 옆에는 ‘월곡우선생태지’라는 비석이 규모있게 서 있다.
◆월곡정사 기둥에 걸린 주련
上仁洞口 祥雲重疊
(상인동구 상운중첩)
月背鄕曲 景星輝煌
(월배향곡 경성휘황)
以文會友 取英施敎
(이문회우 취영시교)
振武剿敵 爲國盡忠
(진무초적 위국진충)
黍稷供饋 穹壤無限
(서직공궤 궁양무한)
子孫宣揚 百世闡明
(자손선양 백세천명)
상인 골짝에 상서로운 구름 겹겹이 펼쳐있고
월배 마을엔 큰 별들이 휘황찬란하네
문장으로써 벗을 만나고
영재를 모아 가르침을 베푸네
무공을 떨쳐 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였네
개인의 곡식으로 군량미 제공하니
공덕이 천지간에 다함이 없다네
자손들이 위업을 선양하니
백세토록 드러나 밝으리라.
주련 내용으로 보면 월곡 선생께서 학문수양 한 일, 영재를 모아 교육한 일, 임란을 당하여 의병장이 되어 참전한 일, 사재를 털어 양식을 마련해 주린 사람들을 구휼한 일 등이 언급되어 있다. 아마도 그 주련의 글귀는 그 후손들에게 어깨를 으쓱이게 하는 자랑거리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을 경계하는 훌륭한 경구이기도 하리라.
이날 월곡정사의 주인을 만나보지 못하고 돌아온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일요일 오전 정사에 부는 바람은 마치 400여년을 변함없이 손님 맞는 월곡 선생의 숨결인 듯하여 기쁘기도 하다.
동방금석문연구회장·능인고 교사 jiju222@paran.com
◆전일주= 영남대 중어중문학과 문학박사. 현재 동방금석문연구회장, 영남대 한문교육과 강사. 능인고 교사. <사>영남서예가협회와 <사>동양고전연구회 이사. 논저는 ‘한국한자자전연구’와 ‘퇴계선생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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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우씨 월촌세거지 비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