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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장관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70년대 중반 경제 위기 시절에 정부 주도로 추진된 '주식인구 100만명 운동'에 말단(?) 사무관으로 동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1956년 증권거래소가 개설된 이래 1973년까지 공개된 회사는 단 66개에 불과할 정도로 주식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상장이 돼도 청약이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했다. 김용환 당시 재무부 장관은 '주식인구 100만명 운동'을 벌였고 부처 직원들의 동참도 독려했다.
강 장관은 당시를 회고하며 "주식을 살 사람이 없어 재무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김용환 장관의 지시가 있었다"며 "청약이 안될 때나 신주인수권이 나오면 7~8주씩 해서 30년간 쌓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30년 넘게 지내는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1000배 이상 올라 큰 목돈이 되었다.
하지만 아픔도 있다. 그는 당시로서는 유망회사였던 A사 주식도 울며 겨자먹기(?)로 사들였다. 10여년간 해당 회사는 말 그대로 잘 나갔지만 곡절이 생겼다. 80년대 말 ~ 90년대 초 몇몇 기업들이 상장폐지된 일이 있었다.
담당 국장으로 실무자로부터 해당 사안을 보고받을 때도 강 장관(당시는 국장)은 자신과 가족의 계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랐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임을 까맣게 몰랐던 것. 결국 자신의 보유 주식 중 하나에 대해서도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린 셈이었다.
그는 현재까지도 가치 없는 주식이 된 A사 주식의 실물을 보관하고 있다. 또 가끔씩은 꺼내들기도 한다.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40년의 삶을 보여주는 추억거리이기 때문"이라는 게 강 장관의 설명이다. 추억이어서 그런지 잊고 싶은 악연이라 그런지 강 장관의 기억도 일부 오류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언급한 기업은 상장폐지가 된 적이 없어 확인을 거쳤으나 정확한 설명을 듣지는 못 했다.
#은행불사 신화 깼는데 내 주식도 휩쓸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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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장이 밝힌 사연은 이렇다. 경제부처의 촉망받는 공무원이었던 자신을 은행 간부였던 장인어른이 부른 것은 30여년 전이었다. 재테크에 젬병이라 답답했던 사위를 보다 못한 장인어른이 과감히 거금 1000만원(당시로는 집 한채 값이라고 한다)으로 주식을 사서 소유권을 넘겨줬다는 것.
사들인 종목도 당시 알짜 중의 알짜인 5대 시중은행(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 이른바 조.상.제.한.서) 주식이었다. 은행별로 투자액을 200만원 어치로 제한해 위험을 분산하는 것도 장인어른은 잊지 않았다. 업종별 투자 포트폴리오는 아니지만 은행별 포트폴리오는 고려했던 것.
유 회장의 장인은 지금은 고인이 된 정진욱 전 국민은행장이다. 해방 후부터 30여년간 제일은행, 국민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자신이 평생을 몸바쳤던 은행의 투자가치를 인정했고 사위에게 전수해 준 것이다.
그뒤 유 회장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고 했다. 너무 바쁘기도 했고 은행주는 안전할 거라는 배짱도 작용했던 것. 하지만 그의 자신감은 20년 뒤 무참히 허물어졌다. 90년대 말 IMF구제금융이 터지면서 은행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재경부, 여당에서 실무와 후속 업무를 주도적으로 처리했다. 자신의 주식에 대해 호적 정리, 입양, 호적 합치기 등을 감행한 셈이 됐다.
대한민국 대표은행으로 유 회장의 주식 보유 내역이기도 했던 '조상제한서' 중 온전한 흔적이 남은 곳은 한 곳도 없다. 합병과 감자, 곡절도 많았다. 국내 최고(最古)은행이던 조흥은행은 신한은행에 합병되면서 사실상 간판을 내렸고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한빛은행으로 합쳐져 우리은행으로 변신했다. 서울은행은 하나은행에 합쳐졌고 제일은행은 뉴브릿지캐피탈로 주인이 바뀐 끝에 SC제일은행(스탠다드 챠타드 은행 소유)이 됐다.
승진을 거듭해 고위 관료로 공직자 재산신고대상이 된 그는 증권계좌를 열어보고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평가잔고는 37만원에 불과했기 때문. 집 한채를 살 정도의 돈이 아파트 몇채로까지 불어났다가 결국 지인들과 삼겹살에 소주 몇잔을 곁들이는 술자리를 몇번 마련하면 끝날 정도로 오그라들었기 때문이다. 그 뒤 장인어른은 돌아가실 때까지 술자리의 안주삼아 그 애기를 꺼내곤 했다는게 그의 농담과 진담섞인 투자기다.
유 회장은 그뒤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산업은행 총재를 거쳐 은행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은행주로 씁쓸함(?)을 쏟아낸 그가 은행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의 장을 맡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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