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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해외 여행 등반 레저 스크랩 {경북봉화} 춘향전의 실존인물 이몽룡 생가 // 창녕성씨 계서당 // 계서 성이성 생가
꼬끼오(성기효32회) 추천 0 조회 275 14.10.20 20:4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10월 18일(토요일) 주말을 맞이하여 창녕성씨 대구화수회에서는

종친 일가 여러 분들과 함께 단합대회 겸 야유회 행사로 관광버스를 1대를 대절하여 우리 창녕성씨들과 연관이 있는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창녕성씨 계서당(춘향전의 실존 인물인 이도령의 생가)와 단종(사육신 성삼문)의 슬픔을 간직한 강원도 영월 청령포

조상의 얼이 담긴 지역으로 선지지 견학으로 관광을 떠나서 가본다. 

 

계서당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에는 시골의 이미지를 그대로 풍겨준다.

시골의 풍요로운 들판에는 황금물결이 출렁거리고 계서당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과일의 여왕인 사과가 탐스럽게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맛있는 부사는 제철이지만 아직까지 수확시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은 보기만 하여도

흐뭇할 것이다. ㅎㅎ

 

우리 창녕성가의 긍지와 자부심을 이곳 계서당을 방문하고서야 비로소 더욱더 알게 되었고

춘향전의 실존인물인 이몽룡 생가를 둘러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면서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이곳의 계서당은

성기호씨가 소유를 하고 있으며 계서당의 종택에서는 우리들(창녕성가)이 이곳에 방문을 한다고 고구마도 삶아서 놓았고 또한 단술도

만들어서 여러가지의 먹을거리도 풍성하게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ㅎㅎ

 

그래도 우리 창녕성가는 전부 단일본으로서 시조 성 인자 보자 할아버지의 자손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가들은 한결같이 모두가 일가들이라서 다른 성씨들보다도 일족의 애정이 그 무엇보다도 우의가 돈독한 것이 우리 성가들의

특징이다. ㅎㅎ 이곳의 계서당에서 종가집의 어르신이 게서당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으보기도 하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우리 성가의 자존심을 살린 춘향전의 실존인물인 이몽룡 생가 계서당을 포스팅 하면서 성이성에 대한 내용을 다시금 알게 된다.

 

 

조선 청백리 계서 성이성은?계서 성이성(1595-1964)은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장으로 활약을 하였으며

남원부사를 지낸 부용당 성안의(1561-1629)의 셌째 아들이다. 선생은 뛰어난 경세가이자 어진 목민관으로서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살피고 고단한 삶을 위로했다고 한다. 특히 호남지역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부패한 관리들을 적발해 백성들의 근심을 덜어주었고, 강계부사

재직 시에는 어진 정사를 펼쳐 "관서활불"로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렇듯이 성이성은 평생 공사의 구별없이 청렴, 근검하게 살았던 인물이었다.

자기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항상 걱정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청백의 생활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 난 바른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계서 성이성의 행적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크나 큰 귀감이 될 것이다.

 

또한 이몽룡(성이성)은?

*1595년(선조28) 2월 1일에 경북 영주시 동면 문단리에서 출생을 하였다.

*1627년(인조5) 33세에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

*1634년(인조12) 40세에 사간원정언, 원종추숭론을 상소하여 임금의 노여움을 사 체직 귀향했다.

*1637년(인조15) 43세에 경상도 진휼어사 호서 암행어사 탐관오리를 탄핵하고 공적을 세우기도 했다.

*1639년(인조17) 43세에 호남 암행어사, 합천현감, 봉급을 털어서 전임자가 체납한 관곡 수 백석을 채우고 학교를 세우며 저축한

 곡식으로 읍민을 구휼하기도 했다.

*1645년(인조23) 51세에 인평대군의 서장관으로서 연경에 다녀옴

*1649년(인조25) 53세에 호남의 암행어사를 지냈다.

*1649년(인조27) 55세에 담양도호부사 겸 춘추편수관을 지냈다.

*1653년(효종4) 59세에 창원부사 노비 추쇄의 폐단을 해결하고 해산물의 면세 정역을 덜어주는 등의 인정을 베풀어 민심을 회복

*1654년(효종5) 60세에 진주목사 진주 서인들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도 했다.

*1658년(효종9) 64세에 암행어사 민정중의 극진으로 왕으로부터 표리 한 벌을 하사받았다.

*1660년(효종1) 66세에 강계도호부사, 강계민들의 인삼세를 면제하고 권문세족의 폭정을 다스리니 백성들이 감읍하여

관서활불이라고도 칭하기도 하였다고 함

*1664년(현종5) 70세에 2월 4일졸, 묘 영주 이산면 신임리 손향원

*1695년(숙종21) 청백리 녹선

*1748년(영조24) 정3품 통훈대부로 추종

 

1부 : 남원부사의 셌째 아들로 태어나다

성 인자 보자 할아버지의 시조로하여 27세까지 수록이 된 창녕성씨

2부 : 성도령 암행어사가 되다.

어사화 33세(1627년 인조5)때에 문과에 급제한 후 받은 어사화

3부 : 강직하고 깨끗하며,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였다.

일생을 강직개결, 불편부당하며 권세에 동조하지 않았고 정언, 헌납, 사간등을 역임하는 동안 직언으로 일관하여 외직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4부 : 청렴함이 님의 뜻을 두었다.

평생 동안에 벼술함에 있어서 절용, 애민, 청렴,을 첫째로 삼아 한결같이 법을 준수하여 누구도 감히 그에게 사사로운 청탁을 못 하였으며

관청이 정숙하고, 술 한 잔 국 한 그릇이라도 사사로이 쓰지 못했다고 한다.

 

주소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계서당길 24(가평리 301)

계서당에서 창녕성씨 대구화수회 일가 여러 분들이 방문을 하여

단체로 이곳에서 기념사진으로 담아본다.

 

상기의 사람들은 전부다가 한결같은 창녕성가들의 미소짓는 얼굴들이다. ㅎㅎ

 

 

 

 

 

 

계서당 종택의 전경이다.

 

가평리 계서당은?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중요민속자료 제71호. 이 집은 청백리로 추앙받던 성이성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계서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계서 성이성(1595~1664)선생이 살던 곳이다. 성이성은, 창녕 사람으로 남원 부사를 지낸 부용당 성안의선생의 아들로 인조 5년(1627) 문과에 급제했다. 진주부사등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내고 4번이나 어사로 등용되었으며, 근검과 청빈으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다. 훗날에 부제학으로 추서받고 청백사로 녹선되었다.

계서당은 광해군 5년(1613)에 성이성 선생이 건립하여 문중자제들의 훈학과 후학배양에 힘쓰던 곳으로

정면 7칸, 특면 6칸의 ㅁ자형으로 되어 있고, 팔작지붕의 사랑채(정면3칸, 측면 3칸)와 중문칸으로 연이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춘향전 계통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세대 설성경 교수가

 최근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라는 주제로 <춘향전> 이몽룡의 실제 인물이 성이성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곳이다. 실제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 이몽룡이 읊었던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는 시는 성이성이 쓴 시로 4대 후손 성섭이 지은 <교와문고 3권>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이몽룡과 흡사한 성이성 선생의 행적내용이 계서공파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계서선생일고>, <필원산어>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현재 계서당은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171호로 지정되어 있다.

 

 

 

 

 

계서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크나 큰 간판이 계서당으로 잘 안내를 하고 있다.

 

 

 

 

 

이몽룡 생가는 이곳에서 200m만 가면 시골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로 걸어가면 나온다.

 

 

 

 

 

우리들은 이곳의 계서당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계서당으로 간다.

ㅎㅎ 관광버스의 대절한 기사님도 우리 성가다.

그래서 성가들은 단합도 잘되고 관광버스의 여행에 써비스도 또한 굿이다.ㅋㅋ

 

 

 

 

 

가평리 계서당의 설명에 대한 글이다.

 

 

 

 

 

 

 

이몽룡(성이성)의 기념사업회라는 간판이 붙어있기도 하다.

 

 

 

 

 

계서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제철을 맞은 부사의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ㅎㅎ 먹고 싶은 그대여~~

하지만 주인이 있어서 따먹지도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ㅎㅎ

 

 

 

 

부사의 사과는 정말로 땟깔이 좋다. ㅎㅎ

그놈의 사과는 빠알갛게 참 잘익었다.

 

 

 

 

 

우리들의 일행은 관광버스에서 내려 게서당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좌, 우측으로는 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서 황금물결이 출렁거리는 시골의 풍경에 푹 빠져보기도 한다.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면서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의 일행은 일렬종대로 계서당으로 가고 있다.

 

 

 

 

 

계서당의 입구다.

 

 

 

 

 

계서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안채로 들어선다.

 

 

 

 

 

 

계서당에는 이러한 글의 현수막이 붙어있기도 하다.

 

 

 

 

 

ㅎㅎ 계서당의 종택에서는 우리 일가들(창녕성씨)이 이곳의 계서당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엌에 불을 지피면서 맛나는 순수 토종의 고구마를 가마솥에 삶고 있기도 하였다.

ㅎㅎ 이러한 풍경은 60년대나 볼 수가 있는 이미지의 모습이다.

 

 

 

 

 

ㅎㅎ 시골의 이미지를 물씬 풍기게도 한다.

누렇게 잘익은 늙은 호박을 수확하여 잘 보관을 하고 있다.

그 놈의 호박을 갈라서 호박전이나 호박죽을 만들어 먹으면 맛이 좋게도 보인다. ㅎㅎ

 

 

 

 

 

계서당 종택에서는 우리 일가들이 방문을 한다고 단술을 만들어서 줄려고 부엌에서 단술을 끓이고 있는 모습이다.ㅎㅎ

역시 계서당에서는 우리 성가의 매력이 아닐까 ㅋㅋ

도시에서나 볼 수가 없는 장독대가 역시 시골의 60년대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한다.

 

 

 

 

 

우리들의 일행은 계서당의 안채에 들어서면서 종택의 종가집 어르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계서당의 안채 마루턱에 앉아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다.

 

 

 

 

 

계서당 종택의 우리 일가 어르신이 이곳을 지키고 있지만

우리들의 일행(좌측이 대구 화수회 성정수 회장님)이 종가집 어르신에게 고생을 한다고 봉투를 건네주니까 기어코 사양을 하면서

거절을 한다. ㅎㅎ

 

 

 

 

 

 

이곳의 계서당 종택에서는 (앞줄 우측에 보이는 분)

우리 대구화수회에서 방문을 한 45명을 모셔놓고 이곳 계서당의 연혁과 내력을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일행들은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조용하게 경청을 하기도 하였다.ㅎㅎ

 

 

 

 

 

계서당의 일부 전경이다.

 

 

 

 

 

계서당의 옆 건물의 뒷채다.

 

 

 

 

 

 

게서당의 일부 전경이다.

 

 

 

 

 

 

계서당의 사랑채다.

정면으로 3칸의 한옥 건물이다.

 

 

 

 

 

계서당의 보호수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아래의 사진으로 보이는 소나무가 바로 보호수다.

 

 

 

 

 

계서당의 뒷뜰에 가면 이렇게 소나무의 보호수가 한그루가 비스듬히 누워있기도 하다.

이 소나무의 수령이 약 500년이 되었다고 한다.

 

 

 

 

 

계서당의 옆에 있는 텃밭에는 배추가 싱그럽게 잘 자라고 있다.

얼마 후면 겨울철 김장김치로 둔갑을 할 것이다. ㅎㅎ

 

 

 

 

 

 

앞에 보이는 것이 계서당의 안채다.

계서당의 안채에서 우리들의 일행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유심히 바라만보고 있다. ㅎㅎ

 

 

 

 

 

계서당에서 한 컷을 담아본다.

이 사람들은 대구화수회 산하 4개 단체의 하나인 우리 성웅회 회원의 일부다.

주말에 그래도 시간을 내어 조상의 얼이 깃든 곳에 찾아와서 많은 공부를 하고 가는구려~~

 

 

 

 

 

신수가 훤하다. ㅎㅎ

 

 

 

 

 

 

탐스럽게 잘 익은 사과는 수확철을 앞두고 있는구려~~~

 

 

 

 

 

계서당을 모두 관람하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사육신 성삼문의 유배지)로 가기 위하여

우리들의 일행은 서서히 발길을 돌리고 있는구려~~~

 

 

 

 

 

계서당의 주변으로는 사과밭이 에워싸고 있어서 주변의 풍경이 더욱더 아름답군요 ㅎㅎ

 

 

 

 

 

계서당을 방문하고 계서당의 종가집 어르신(중간에 손을 들어 올리시는 분)

 일가분이 우리들을 끝까지 배웅을 해준다고 따라오시는데요 ㅎㅎ

 

 

 

 

 

 

계서당의 앞에는 황금물결이 출렁거리는 들판에서 콤바인으로 벼 수확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이니

시골의 이미지를 물씬 느끼게도 한다. ㅎㅎ

 

 

 

 

 

 

계서당의 방문을 마치고 우리들의 일행은

강원도 영월 사육신 성삼문 유배지인 청령포로 가기 위하여 영월읍내에서 강원도의 특미인 곤드레 비빕밥을 먹으로 간다. ㅎㅎ

 

 

 

 

 

 

강원도 영월읍내의 식당에서 맛 나는 곤드레 비빔밥을 열심히 드시고 있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다. ㅎㅎ

역시 강원도의 특미인 곤드레 비빔밥의 맛이 일품이더라. ㅎㅎ

먹어 봐야 맛을 알 수가 있다고 하더니 역시 먹어보니까 맛이 굿이다.  ㅋㅋ

 

 

 

 

 

이것이 강원도의 특미인 곤드레 비빔밥이다.

여러가지가 첨가된 간장을 몇 숟가락 넣어서 비벼서 먹어보니까 맛이 꿀맛이다.

 

 

 

 

 

 

이집의 청솔식당 메뉴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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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0.21 09:54

    첫댓글 가을이 잔떡 익었군요.

  • 작성자 14.10.21 10:47

    ㅎㅎ
    사과가 먹음직스럽게 보이는데 하나 따먹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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