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우리에게는 훈족 또는 돌궐 그리고 오스만투르크로 알려져 있는 터키.
돌궐의 단어에서 알다시피 이미 터키는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와 대외외교를
교류한 나라이고 특히 고구려시대 때는 고구려와 돌궐이 손을 잡고 당을 압박하는
견제하는 동반자로 등장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전쟁시에는 미국 다음으로 두번째로 많은 파병을 해준 나라가 터기여서
우리와는 형제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터키와 한때 소원해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1988년 올림픽 때였다.
올림픽 당시 많은 터기 기자단들이 한국의 젊은 사람들에게 터키는 어떤나라인가
물어보니 만족도가 낮은 답이 나왔을뿐만아니라 터키총리나 외무상이 방한을 하는데도
화려한 현수막이 나붙지 않아 '이젠 짝사랑은 그만하자'는 표현으로 그간의 한국과
터키간의 동맹에 비해 매우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러한 감정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이 보여준 터키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응원으로 어느정도 극복이 되었다.
터키와 치룬 3,4위전에서 터키의 대형 국기를 우리 붉은 악마들에 의해 펼쳐지는 순간
이미 터키와 한국은 하나 그 이상이었다.
타쉬켄트 구공항 모습
타쉬켄트는 신공항과 구공항이 있는데 대기실로 쓰는 구공항은 그다지 여유가 있거나 편의시설이 한정되어 있어 다소 불편하지만 그 나라의 문화 생활을 이해하는 한 부분으로써는 볼만하다.
타쉬겐트 시내 모습
인천공항에서 8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가다 타쉬켄트 공항에서 3시간 정도를 기다리다 다시
이스탄불로 향한다.
직항을 타면 편하겠지만 연이은 12시간의 여행에 몸이 저려 오히려 중간에서 한번쯤
드랜짓을 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굳은 몸을 푸는 것도 괜찮으리라.
공항 안에서 간단히 간식을 하면서
트랜짓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
친절한 가이드 이원희씨가 준비한 상상력카드게임 덕분에
쉽게 2시간을 보냈으니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다.
오르타콰이 사원
새벽 1시가 넘어 이스탄불 공항에 닿았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가방을 찾고 숙소를 향하는
버스에 오르니 2시가 가깝다.
군데군데 켜져있는 사원의 화려한 조명을 보면서 드디어 이스탄불에 도착했다는 들뜸에
노독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방을 배정받고 5시에 기상하라는 현지가이드의 말에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붙인다.
3시간의 수면 -
12시간의 노독에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언뜻 잠이들었다 싶었는데 눈이 확 떠진다. 시계를 보니 아직 5시가 될려면
1시간이나 더 있어야 한다.
거친 아침을 대충 먹고 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터키에서의 비는 축복이라 한다.
그만큼 물이 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터키의 기후는 건기의 하절기와 우기의 동절기로 구분한다.
보르포러스해협으로 선상유람선을 타러 이동한다. 하늘은 검게 흐리고 빗발이
거세게 흩뿌린다.
선상에서 본 구 시가쪽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과 마르마라 바다를 경계로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으로 나눌 때 유럽대륙에 위치하고 있다.
이스탄불은 항구도시로 터키에서 수도 앙카라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터키 인구는 대략 6천 800만명인데 그 중에 1200만명이
이스탄불에 살고 있다.
구 시가쪽은 오랜 유럽문화권을 바탕으로 조성이 되었기때문에 낡고 유물들이 믾다.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는 400년 전 오스만 제국에 의해 건설되어 해군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17세기에 술탄의 개인 정원으로 사용되어 파티를 열기도 하였다.
지금은 각국의 주요 정상들이나 국가 행상시 귀빈들이 묵는 숙소로 사용된다 한다.
터기는 비에 젖어
터키의 문화는 처음 히타이트(히타이트문명)라는 신화나 영웅 수준의 사람들과 비잔티움, 이슬람 문화를 공존하고 공유한
독특한 문화를 거쳐 자기만의 문화를 정착시켜 왔다.
루메리 요새
보스포러스 해협 초입에 위치하고 있어 아나톨리 반도를 드나드는 범선이나 상선들을
해적으로부터 보호하거나 감시하는 전초기지로 사용되었다.
보스포러스 다리
사진 왼쪽에서 다리를 통해 오른쪽으로 넘으면 아시아 대륙이다.
처음 보스포러스해협을 봤을 때 느낌은 포르투칼의 떼주강처럼 흡사했다.
강의 다리도 그랬고 강 주변의 풍경도 그러했다.
아시아 대륙 쪽의 신시가지
아시아 대륙쪽은 주로 별장이나 화려한 개인 주택이 많았는데
이는 구시가지보다 신시가지가 자유로운 시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물길 , 물빛들
배를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다니다 눈에 띄는 풍경이 물빛이었다.
사진에서처럼 물빛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는 석회암으로 지층으로 하고 있는 연유로 지층에 스며든 물이 다시 석회수로 용천하면서 강물과 섞여서
그렀다 한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본 세공품
그랜드 바자르는 5000여개의 상점이 있을뿐 아니라 실크로드의 마지막 시장이다.
그랜드바자르는 그 규모가 대단하고 무엇보다 그 품목수가 화려하고 많다는 데에 경이롭다.
일종의 백화점식인데 좌측과 우측에 붙여지는 홀수와 짝수의 차이로 그 통로를 구분한다.
그랜드바자르 모습
물건들이 화려하다
등 전문 가게
점심식사를 하는 상인들
마침 에크맥이라는 빵을 먹는 상인들에게 꼬레아에서 왔다하니 흔쾌히 사진을
허락하고 빵을 권한다. 빵과 닭고기구이, 올리브 몇 알 그리고 터키의 전통차인 차이가 그들의
식사다.
이런 시장의 통로가 수도없이 많다.
마치 미로같이 얽혀 있어서 통로를 잃어버리면 찾기 힘드니
가이드가 미리 핸폰번호를 남겨준다.
터키석 가루로 만든 도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