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고향은..경치가 좋고..옛 고가들과..왕궁이 남아있는 호이엔입니다.
그리고 보니 베트남 결혼한지도 3년이 넘었네요.
세른다섯때 결혼해서..어느덧 제나이 세른여덟이 넘었네요.
저는 어릴때부터 외롭고 힘든 환경에서 자랐지요..일곱살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홀어머니 혼자 남매를 힘들게 키우시다..제나이 14살때 행상가셨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얼마받은 보상금을 삼촌이 관리하시며..저희남매를 돌보다
3년뒤 삼촌 역시 간암으로 돌아가시며..조그마한 방한칸 얻어..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독립했지요.
제여동생 얘길해야겠네요..너무 착한녀석입니다.지금은 어느덧 서른 이지만..어릴때
부터 무지 고생하며..특히저땜에 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속한번 썩이지 않고..오히려
절위해 굳은일을 지금껏 해오고 있지요..제여동생은 왼쪽다리를 저는 선천성 소아마비
입니다.그렇지만 다른곳은 정상인..아주 천사같은 녀석입니다.
젊고 반항기있던 저는..삼촌마저 돌아가시고..어린여동생과 둘이 세상한복판에 내던져 졌을때.
왠지모를 울분에..세상을 마구잡이로 살았지요..고등학교는 그만두고..삼촌이 돌아가시며..남긴천만원정도의
돈과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유흥비로 쓰며..거친친구들과 어울려 폭력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지요.17살때 벌써..폭력으로 소년원에 한번..
2년뒤엔,,역시 폭력으로..빵간에 3년반 복역했지요..사시미를 들었다고 형량이 많이 나오더군요.무서울것이 없었지요..모두가 절 두려워했지요.몸이 온전치 못하고..독립할 당시 열살밖에 되지않았던 여동생은..
숨소리한번 내지못하고..그런 절 지켜보았지요..어렸지만..집안살림을 도맡아 했지요..전 집안청소한번 하지 않았으니까요..
빨래며..음식이며..온갖일들을..제가 빵간에 있을때는..일주일에 한번씩 ..다리를 절며..경주내남까지 비가오나 눈이오나
와주었지요.....다리를 절며 오는 동생이 보기싫었습니다.동료 복역자들이 보느게 싫었습니다..오지말라고 소릴질러도..
묵묵히 와주었지요..김밥이랑..제가 좋아하는 두부조림 오뎅볶음..동생이 돌아간뒤 철창속에서..울분과 눈물이 뒤범벅되어
솟구쳐올랐습니다.출소하면..세상을 뒤집어 버리겠다고..
그런 어느날 또 면회온 여동생에게..화를 심하게 내며 돌려보냈는데..뒤돌아가는..동생의 마른몸과 쳐진어깨..절뚝이는 다리를 보며..왜 그렇게 안쓰럽고 불쌍해 보이던지..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정신이 번쩍 들더군요.동생을 위해..날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강하게 들더군요.철창속에서 검정고시 공부를 했습니다.젊고 혈기있던..어렸지만..경력이 화려했던 저에게..철창속에서 부터..많은 스카웃(?)제의가 있습니다.10대때 잠시 몸담았던 조직이 와해되고..그뒤부터 소속없이 독고다이로
자유로왔던 저는..모든 제의를 거절했고..착실히 수형생활을 하며..출소했습니다 그때가 벌써 15년전이군요.
그뒤 형같이 따르던..잘아는 형사분이 소개해준 중국집에 취직..배달일부터..나중에 주방일까지 온몸이 부셔져라 일하며..배웠습니다.7년이 지난뒤 작지만 제가게를 열었고..쉴틈없이 일했고..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었지만..행복했지요.그때 끊은 술은 지금껏 마시지 않습니다.제여동생 역시..불편한 다리를 이끌며..서빙과 설겆이부터 허드레일을 도맡아 했지요...지금껏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모든게 불쌍하고 착한 여동생 때문이었습니다.그녀석이 없었더라면..제인생은 지금껏 시궁창속에있었겠지요.
4년전에 비록 외곽이지만..방두개와 조그만 가게가딸린 제집을 살수가 있었습니다.세상을 다가진것 같았습니다.
열심히햇지요.그때부터..여동생앞으로 많진 않지만..월급조로 한달70만원씩 적금을 들어주었습니다.그녀석이 필요할때나..아니면 시집갈때 줄려고요..얼마전에 3천만원이 좀 넘더군요.나이도 차고 결혼을 해야됐습니다.스쳐간 몇명의 여자가 있었지만..밤의 꽂들이라
여동생을 위해 절위해..업자의 얘기대로..굿은일도 마다않고..천사처럼 착한 베트남여성과 결혼하는게 모든면에서 좋다고 생각들어 3년전 했습니다.문제는그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아내는 착했지만..그렇게 열심히하는것도..동생이나 저처럼 목표 의식도 있는것도 아니었습니다.그저 편하고..신랑이 만들어 주는 중국요리 맛있는거 먹고..베트남신부들 만나 재밌게 사는걸 좋아하더군요.어릴때 부모없이 자란 저이기에..이해했습니다.오죽하면 부모형제 버리고 한국왔겠냐!! 생각하며..잘해주었습니다.
홀과 배달이 밀려도..그녀는 큰도움이 되지않습니다.자기나름 여동생을 도와 서빙을 하지만..아직껏 허드랫일은 여동생이 전부 합니다.그래도 사랑스러웠고 이해했습니다.몸이 불편한동생이 일하는게 싫었지만..천성이 그런 아내를 어떡하겠습니까?
여동생보기 미안했지만..여동생은 전혀 상관치 않고..아내 공부며..아내치닥꺼리까지 도와주고..오히려 친정언니처럼 잘 해주었지요.
지금 저는 여동생에게 너무 미안하고 볼낯이 없습니다.마음한구석이 뻥뚫린것같고..허전하며 앞이 캄캄합니다.
돈때문이고..제마음 때문입니다.아내와 결혼해서..처가집으로 많은 돈이 나갔습니다.결혼1년째..처가집이 너무 허름하고 안좋다고..아내가 자주 얘기하며 울먹이기에..얼마씩 보내주었는데..작다고 하기에 몇번 보내주다보니..1년만에 천만원이 훌쩍 넘는 돈이 나가고..작년엔 엎친데 덮친격으로..할머니와 같이 사는데..큰병(암)이 걸렸다고..하기에 3백만원을 보냈는데..서럽게 울며..호치민 큰병원에가야 한다며..돈이 너무 작다기에..돌아가신 아버님 생각과..외롭던 저에게 생긴 가족이기에..무리해서 1천5백의 돈을 또 보냈습니다.1년반전에 갔던 처가집은..제가 보낸돈으로..단층이지만..150여가구 시골집들중에서 가장 화려하면서 좋게 새로이 지었던것을 보며..마음이흡족했었지요.가장 초라했던 집이 ..가장좋게 되어서..마을주민들 모두 부러워 했다 하더군요.
4년전 집을사고 ..또 베트남 결혼하면서..제가모은 1억오천의 돈을 모두 써버렸기에..집사며 빚낸건 ..집저당잡아 은행에 빌려 갚았기에..처갓집에 보내준돈은..모두..여동생월급조로 모아둔 적금을 써버렸습니다.부모형제 버리고 온 아낼 위해서..그리고..사람이 죽어간다는데..어절수가 없었지요....
여동생앞의 적금통장에는..지금 3십여만의 잔고만이 남았습니다.
아들이 1살이넘었고..할머니가 아프다기에..아내는 이번 5월달 베트남에 아들데리고 혼자 갔다오고 싶다고 또 말하네요.
화가 치밀어 올라 안된다고 했지만..계속 칭얼댑니다.얼마전 처갓집과 같은 마을에 사는,사람이 부부동반 방문한다기에..
그신랑을 만나..아내집의 사정과 할머니의 병차도를 알아보게 했습니다.그 신랑이 갔다와서..저에게 하는말이..자기 아내가 동네사람 통해 알아본결과..
공교롭게도..할머니의 병은 간암이라더군요..벌써 아픈지는6년이 넘었고..처갓집에서는..그냥 약이나 타서 먹고..병원에 수술이나
치료한적은 한번도 없다고 하는군요.한달에 20십달러 정도의 약을 사서 먹는게 다랍니다.죽기만을 기다린다는거지요.
어이가 없었습니다.화도 치밀어 올랐습니다.그뒤에 말을 듣고는 할말을 잊어습니다.제가 보내준 돈으론..처가집 장인과 처남이 사채놀이를 하면서 먹고 논다더군요..조금하던 농사는 때려우고..베트남 인간들이란...욕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고..심장이 벌렁벌렁 뛰더군요
얼마전 여동생이 남자를 하나 데려와 저에게 소개 시켜주더군요.결혼하고 싶다고 하더군요.익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2년전부터 가끔 우리집에..혼자 와서 음식을 시켜먹던 35살먹은 가까운 영농법인에 근무하는..여동생과 마찬가지로..다리를 저는 소아마비 청년입니다.선하게 보이는 인상이 너무 좋았습니다.그뒤부터 음식을 먹은뒤 돈을..안받겠다고 극구 말렸지만..항상 계산을 하고갑니다.자존신을 건드릴까 그후부터 말리지않았습니다.제가 그집에 대해 알아보니..홀어머니와 둘이사는데..가난하지만..어릴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그렇게 착할수없다고 하더군요..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시집못가면 어떡할까란 생각이 문득들때면..제가슴이 찟어졌었는데...젊을떼 망나니로 살던 저때문에 숨소리 한번 못내고..뒤치닥거리부터..지금껏 중국집 허드렛일부터 도맡아 하는데.....부모사랑 한번 못받아보고..고생만 했던 동생인데...
시집갈때..나에게 해준것에는 턱에도 못미치는 것이지만..몇푼이라도 줄려고 모아둔돈을..모두 써버렸는데..마음이 뻥뚫리고..
눈물이 나오더군요..장사끝나고..어제 처음으로..15년간 끊었던 술울 먹었습니다.너무 마셨기에 오늘 하루 가게문을 닫았습니다.
여동생의 걱정하는 얼굴이 ...아내의 멀뚱멀뚱하는 얼굴이 옆에 있습니다.
여동생얼굴 볼낯이 없습니다.이것아 어쩌다...그런부모...이런 오빠를 만났느냐!!!여동생 보기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습니다.
가슴속에서 부터..눈물이 솟아납니다
첫댓글 안타깝습니다..
..........뭐라 글을 쓰기가
음~~ ~!! 참...나... 원... 이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어이가 없고 .. 화가나네요..
아~~ 국제결혼 어렵군요.....
열 받네요..니이미..
마음이 그러네요~~~ 이글이 정말이라면 국제결혼 참 힘드네요~~~
아내 팔아버리세요.. 섬에다 나같음 팔아서 고생이란 고생다시키 겟는데.. 요즘애들은 고생이란걸 몰라.. 님도 빵에같다 오셧으니 세상사는건 아실테고.. 팔아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