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자산사모 시절 올린 적이 있었던 글이며, 저의 퇴임문집 '아름다운 시절'에도 실린 글입니다.
다시 올리는 이유는 이글과 연관된 책 '고시조 정해'를 50년 정도 보관해오다가 이번에 이사를 하게되어 헌책을 정리하다가 너무 낡고 표지도 떨어져 나가 버리게 되어 그 책의 사진과 함께 다시 올림으로서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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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때기 선생님
국민학교 때, 4학년 까지 밖에 학생이 없는 작은 시골 분교를 다닌 덕분으로 4학년 때부터 전체반장을 하면서 선생님과 아이들로부터 귀족 대접을 받던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한 다음부터는 어느 집단에 소속해 있던 중심인물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면 다른 사람들이 때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조차 알아주지 않는 비주류이다.
몸집도 왜소하고 진취적이지 못하며 말이 적고 나약한데다 똑똑한 편도 못되었으니 당연한 얘기가 된다.
선생님들과도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
일이년이 지나면 담임선생님도 나를 기억하기 어려운데 일반 교과담임 선생님이야 말로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고 했던가?
고 3때 국어를 가르쳐 주신 분 중에 같은 학년 다른 반의 담임선생님이기도 한 ‘정기택’이란 선생님이 계셨다.
늘 헌 구두를 잘라 만든 실내화를 따닥따닥 끌며 교과서와 분필통, 가느다란 싸리나무 가지 굵기의 가는 회초리를 가지고 다니시는데 칠판에 판서내용 설명 시 교수봉으로도 쓰시지만 주로 사용처는 체벌 시 귓불을 때리는 데 쓰신다.
그리하여 졸업 앨범 낙서코너에는 누군가가 ‘기택이는 귀때기만 때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발음상 ‘기택이’와 ‘귀때기’가 비슷하므로 이를 아는 몇몇에게는 ‘귀때기 선생님’이라는 별명으로 통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선생님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다른 국어 선생님같이 말솜씨가 청산유수로 유창하지도 못하고 말투가 어눌하고 성격이 조금 까다롭다고 생각되어서이다.
한번은 약간 덜렁 끼가 있는 반 친구 하나가 선생님이 ‘정(鄭)’씨이므로 장난삼아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정씨를 부를 때 당나귀라고도 하던데 왜 그런가요?”
그랬더니 화를 불같이 내시면서
“너 지금 나더러 당나귀라고 놀리는 거냐?”
하고 심하게 꾸중을 하셨다. 수업인지 뭔지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있다가 수업끝 종이 났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언제쯤인가 또 다른 정(鄭)선생님의 수업시간이었다.
그 친구는 다시 또 똑같은 질문을 그 선생님에게 던져 여러 친구들을 아연 다시 긴장을 시켰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태연히 칠판에 ‘정(鄭)’자를 그림문자처럼 멋스럽게 휘갈겨 쓰시더니
“봐라, 정(鄭)자가 당나귀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지 않느냐?”
하여 그 선생님은 친구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어느 날 수업 중에 옛시조를 배우게 되었다.
무슨 시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만큼은 매우 나의 흥미를 끌었다.
다른 옛시조도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선생님께 요청을 하였다.
“선생님, 옛시조를 더 공부해 보고 싶은 데 적당한 책 좀 소개해 주세요.”
“그래? 알았다, 너 출석번호와 이름이 뭐냐?”
나는 그냥 알려 주시면 되지 뭐 하러 번호와 이름을 물어보시나 생각은 되었지만 알려 드렸더니 교무수첩에 적으셨다.
그래서 소개받은 책이 ‘방종현’이라는 분이 엮은 ‘고시조정해’라는 책이었다.
낡은 그 책을 지금껏 보관하고 있는데 지금 찾아보니 ‘단기 4291년 3월 20일 발행’되었고, 값은 1,000환‘이며 인쇄자는 ’민중서관인쇄국‘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서기로는 1958년에 발행된 것이고, 화폐개혁 전이니 지금 돈으로 치면 100원 짜리라는 얘기이다.
내가 고3때가 1968년이었으니 선생님께선 만들어진지 10년이나 된 책을 소개해 주신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책이 그때까지 천안 같은 지방 소도시 책방 ‘동방서림’에도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독재정권 시대에는 통치논리로 자기정부의 합리화를 세뇌시키기 위함인지 학생들에게 암기상태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책의 말미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자유당 정권 시절의 ‘우리의 맹세’도 실려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 우리의 맹세 ★
1.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 죽엄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2.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시자.
3.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
## 여기서 사족(蛇足) 하나!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매일 아침에 이루어지던 운동장 조회 시 마다 전체반장이 ‘우리의 맹세’를 선창을 하면 우리는 복창을 하던 기억이 있다.
그 다음 정권이 윤보선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인데 이때는 문민정부이며 내각책임제였고, 기간이 일 년밖에 안된 탓인지 암기상태를 한 기억이 없다.
곧이어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 장악에 성공한 박정희의 혁명정부 시절에는 ‘1. 반공을 국시의 제 일의로 삼고.....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로 시작되는 6개 항목의‘혁명공약’을 외워야만 했다.
맨 마지막이 박정희 정권이 확고히 권력기반을 다진 3공화국시대 장문의 ‘국민교육헌장’이었는데 1968년에 제정되었고, 내가 1970년에 처음 교사생활을 시작했으니 거의 교사의 시작과 함께 이 내용을 아이들에게 지도를 하고 암기를 시켜야 했다.
상급기관인 교육청에서 각급 학교로 장학지도를 나오게 되면 어김없이 ‘국민교육헌장’ 암송이 이루어졌다.
각 학급의 무작위 출석번호를 지정하여 장학사 앞에서 외우도록 하여 잘 외우고 못 외움이 교육실적으로 간주되어 장학지도결과 장부에 기록하여 갔고, 담임들은 자기반의 부진아가 지정될 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심한 경우 나는 목격을 못했지만 교사에게도 암송을 지시하여 창피를 당한 경우가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모든 일에 부정적인 부분만 있을 수 없듯이 나도 그때는 모든 아이들에게 시켜야 하고 나도 외워야 하는 현실이 싫었지만 곧이어 1972년에 군대에 들어가서는 조금 덕을 보았다.
군대에는 암기상태가 ‘군인 정신’을 비롯하여 '군인의 길'‘사격자세’‘제식훈련 16개 동작’‘총검술 16개 동작’등등 아예 훈련수첩으로 한권이 지급되고 외워야 할 내용이 많았는데 그중에 ‘국민교육헌장’도 있었고, 가장 길고 외우기 어려운 것이 바로 ‘국민교육헌장’이었는데 나는 이미 외운 상태이었으므로 훈련 동지들에 비하여 골머리를 덜 썩었다.
그 책 ‘고시조정해’는 고어체로 쓰인 각시조의 첫머리를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여 시 한수를 써 놓고 그 밑에 쉬운말로 해석을 달았으며 작가, 연대, 시대적 배경 등을 두로 써 놓았다.
나는 그 책을 몇 십번 읽어보고 우리 조상들의 멋과 지혜, 기개, 여유 등도 이해를 하고 많은 상식을 얻었다.
고교 졸업을 하고도 일년 정도 방황 끝에 몇몇 우여곡절 겪고 나서 자격고사를 거쳐 나는 교사가 되었다.
꿈과 열정은 터질 듯 가슴에 가득했지만, 경험도 지식도 부족하여 실수투성이에 수많은 시행착오, 좌충우돌의 풋내기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면소재지에서도 한참 떨어진 시골 국민학교에서 병아리 교사의 첫 근무는 시작되었다.
어느 토요일 날 퇴근을 하고 온양(지금의 아산)에 들렸다가 온양온천역 앞을 지나는데 저만치 빗겨선 방향으로 안면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지나간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앞에 내게 ‘고시조정해’를 소개해 주신 국어과 정기택 선생님이시다.
쫓아가서 인사를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정면도 아니고, 나의 담임선생님도 아니었으며 학창시절 나의 존재가 미미하여 알아볼 리도 만무하여 그냥 지나갔다.
“야!”
‘누가 나를 부르나? 설마?’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가던 길을 갔다.
그랬더니 더 큰 소리로
“야!”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나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아니?’
바로 정기택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
“예? 저요?”
“그래, 너 말이야. 너! 이리 좀 와봐.”
손가락으로 정확히 날 가리키고 계셨다. 난 꼼짝 못하고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선생님 앞으로 갔다.
“너 김영배지? 나 몰라?”
“아니, 저..... 안녕하세요?”
난 진짜 깜짝 놀랐다.
담임선생님이었다 해도 몇 년 지난 후에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 쉽지 않으련만 딱 한번 수업 중 이름을 수첩에 적어 놓으신 것 밖에 없는데 얼굴은 물론 이름까지 기억하고 계시다니......!
“야 임마! 선생님을 보면 인사 좀 해라 응?”
“아, 예. 죄송합니다. 못 뵈었습니다.”
난 못 보았노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야, 너 뭐해?”
“학교 나갑니다.”
“학교? 대학생이야?”
“아닙니다. 교사입니다. 국민학교.”
“그래? 그거 잘 되었다. 나 이번에 아산군교육청에 장학사로 왔다. 교육청에 오면 꼭 들려라.”
이후 꼼짝 못하고 교육청에 출장만 나가면 우선 찾아가서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그때마다 주위 장학사 분들에게 ‘얘가 내 제자이고, 지금 관대국민학교에 근무하는데 학생 때 아주 훌륭한 모범생이었다’는 낯 뜨거운 과찬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속으로 ‘인사도 안한 제자가 훌륭하기는 무슨.....!’하면서도 겉으로는 감히 내색을 하지 못하였다.
이분은 나중에 다른 지역 교육청에서 교육장까지 지내시고 퇴임을 하셨다.
여기서 잠깐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인물이 되기 위한 조건’을 몇가지 적어본다.
첫째, 기억력이 뛰어나다.
둘째, 술을 좋아한다. 또한 아무리 술을 마셔도 다음날 일정엔 차질이 없다.
셋째,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넷째, 독서, 운동 등을 규칙적으로 한다.
다섯째, 주변의 사람들(특히 아랫사람)을 잘 챙겨준다.
난 위의 다섯 가지 조건에 한가지도 충족되는 항목이 없다.
고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젊어서는 나와 친구들이 군대생활, 결혼 등으로 여유가 없었고 십여년이 지난후에 스승의 날을 맞아 교사로서 스승의 날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생각되어 내가 주축이 되어 교직에 있는 고교시절 친구들을 모아보니 10명 정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모두 모시지는 못하고 고3때의 담임선생님 1반(농업과1) 민병달, 2반(농업과2) 정기택, 3반(원예과) 최청송, 4반(축산과) 안홍근, 5반(측량과) 최덕재, 6반(잠업과) 위세환 여섯분 선생님만을 모시고 식사대접과 함께 간단한 선물을 마련해 드렸다.
3년 정도 계속하다가 그도 쉬운 문제가 아니어서 중지를 하였다.
그때 내가 정기택 선생님께 졸업 앨범에 ‘기택이는 귀때기만 때려’에 대한 졸업앨범 낙서 얘기를 꺼내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고, 이어서 특별히 귀때기를 잘 때리신 이유에 대하여 내가 질문을 하였다.
말씀인즉슨 흔히 선생님들이 머리나 얼굴, 손바닥 등을 많이 때리는데 이는 자칫 크게 잘못될 수도 있는데 귓불은 잘못되어 봤자 외상치료만 하면 그만이면서 따끔하여 체벌로서 효과는 만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들도 선생이니 아이들 잘못 다뤄 말썽 일으키지 말고 체벌 시 한번 고려를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난 단 한번도 실천을 해보지 못하고 퇴직을 하게 되고 말았다. -.-+;
# 책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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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속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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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작품 소개 - 가나다 순으로 편집되어 맨 앞에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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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내용이 끝나면 뒤에 정부의 시책이 의무적으로 인쇄되어야 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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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한 저자 소개와 발행 내용 안내 - 옛날에는 모든 책이 맨 뒤에 저자의 도장과 함께 이런 내용이 실리는 형식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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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귀한 책을 소장하고 계십니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