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으로 발전하는 칠레 프리미엄 와인
‘저렴한 가격, 좋은 품질’이 칠레 와인의 장점임을 알면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만다. 일반적으로 칠레 와인은 유럽 지역의 와인들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와인 생산 종주국보다 와인 가격이 20~30퍼센트 정도 싸다. 하지만 가격 대비 품질과 맛은 매우 뛰어나다. 칠레의 일기 조건이 포도 재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동쪽엔 안데스산맥, 서쪽엔 드넓은 남태평양이 위치해 여름 한낮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건조하고 온화한 기온으로 병충해가 없으며, 이상적인 토양 등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바로 이런 지리적인 장점 속에서 선진국들의 발전된 와인 제조 기법을 도입,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산 와인은 빈티지(Vintage : 포도수확 연도)에 따라서 맛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칠레 와인은 품종이나 연도에 따른 맛의 차이가 거의 없다. 또 떫은맛(타닌)이 적고 맛 좋은 과일 향이 나 쉽게 구분할 수 있어 와인 초보자들도 쉽게 칠레 와인을 선택해 맛볼 수 있다.
칠레 와인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누구나 쉽게 와인 병의 라벨을 보고 와인의 특징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와인 라벨에는 어떤 종류의 포도 품종이 사용됐는지, 어떤 등급의 와인인지 초보자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표기돼 있다.
일반적으로 칠레 와인은 숙성 기간에 따라 분류되는데, 최소 2년 이상 숙성된 와인은 ‘레세르바 에스페시알(Reserva Especial)’이라고 표기, 평범한 와인임을 나타낸다. 최소 4년 이상 숙성된 와인은 라벨에 ‘레세르바(Reserva)’라고 표기해 좋은 와인임을 알린다. 또한 최소 6년 이상 숙성된 와인에는 ‘그란 비노(Gran Vino)’라고 라벨에 표기, 고급 와인임을 나타낸다.
이 밖에도 칠레 와인 중 아주 오래된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그 이름 앞에 ‘돈(Don)’ 또는 ‘도나(Doña)’를 붙이거나, 상류 사회 또는 귀족 사회의 회원 이름, 비싼 메탈이나 최상급을 나타내는 이름을 표기해 고급 와인임을 나타낸다. 또 이런 와인들은 보통 오크통에서 3~4년 정도 숙성된 것들이다.
칠레 와인의 특징은 4가지 요소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데, 기후, 토양, 품종, winemaker이다. 칠레에 떼루아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보수파들은 ‘없다’라고 단정짓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은 칠레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떼루아가 가진다고 할 정도로, 칠레 와인의 상반된 이미지는 매우 강하다.
칠레의 포도원들은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칠레 중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필록세라의 피해를 받지 않고 순수한 포도밭을 유지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관개는 강줄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습하지 않아 포도나무들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 또한 수확기에는 비가 오지 않는 강수의 큰 장점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형적, 기후적 특성의 잇점은 유기농 와인의 발전에도 한 몫을 하리라 보는데, 무엇보다 서쪽은 태평양, 동쪽은 안데스 산맥으로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각종 질병으로부터 포도나무는 안전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자연 조건들이 오히려 칠레 와인의 고급화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었다. 그래서 초기의 칠레 와인들은 ‘싸구려 저가 와인’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상당히 오랫동안 벗어나기 힘들었다.
현재 칠레의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는 대부분 Maipo와 Colchagua Valley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 포도밭들은 평지가 아닌 언덕배기에, 배수가 잘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고급 와인을 만들기 위해 갖춰야 할 포도밭의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킨 것이다.
칠레의 품종은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까르미네르, 말벡, 샤도네이 등 보르도 품종이 대부분이다. 부르고뉴의 피노누아, 이태리의 산지오베제와 네비올로, 스페인의 템프라닐로, 호주의 쉬라즈 등과 같이 칠레에서는 떼루아와 꼭 맞는 대표 품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도 계속 실험 중이며 최고의 궁합을 찾는다면, 놀라운 품질의 와인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바로 칠레 와인의 잠재력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칠레는 세계 유명 와이너리의 끊임없는 투자를 받고 있다. 불과 2-3년 내에 칠레 프리미엄 와인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세계 유명 와이너리들의 투자도 한몫을 했다. 이미 투자를 하고 성공을 거두고 있는Baron Philippe de Rothschild, Lafite, Robert Mondivi 등을 비롯하여 많은 유명 와이너리들이 칠레로 모여들고 있다. 칠레를 대표하는 내노라 하는 프리미엄 와인은 다음과 같다. (알파벳 순)
1. Carman 'Gold' Reserve 1999 (Maipo Valley / 148,000원)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91점을 받은 Vina Carman의 최고급 와인이다. 100%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포도나무의 수령은 평균 44년이다. 과즙의 풍부한 향이 퍼지면서 진한 탄닌의 맛이 매우 힘이 있으며 과일 맛도 살아있다.
2. Casa Donoso ≪ D ≫ 2001 (Maule Valley / 93,000원)
1st Annual wines of Chile Awards 으로 선정된 와인으로, 발효과정에 자연효모를 사용하고 중간 정도로 태운 프랑스 오크통에서 14개월동안 숙성 시킨다. 초콜렛과 담배 등 복잡한 아로마에 탄닌이 강하며 허브의 맛이 살짝 느껴지는 끝 맛이 인상적이다.
3. Clos Apalta, Casa Lapostole 2000 (Colchagua Valley, Rapel Valley / 126,000원)
와인 스펙테이터가 선정한 2003년 100대 와인에서 94점으로 3위를 차지한 와인으로, 세계적인 와인 메이킹 컨설턴트인 미쉘 롤랑의 컨설팅을 받고 있다. 베리류와 커피의 토스티한 향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탄닌과 스파이시한 맛이 살짝 난다. 구조가 잘 잡히고 아주 세련된 느낌을 주며 2000년, 2001년 빈티지 모두 품절된 와인이다.
4. El Principal 2001 (Maipo Valley / 118,000원)
Saint Emilion의 유명한 Chateau Pavie의 전 오너, Valette와 손잡고 만든 와인으로, 보르도 스타일이 두드러진다. 건포도와 여러 과일향이 부드럽게 올라오고 맛 또한 매우 부드럽고 순하다. 14.6%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이나, 알코올의 센 맛은 거의 없다.
5. Finis Terrae, Cousino Macul 1999 (Maipo Valley / 93,000원)
6대째 내려오는 쿠치노 마쿨 가족의 대표적인 리제르바 와인으로, 균형감과 복합성을 잘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농익은 과일향이 강하며 푹 익은 과일의 달콤한 맛이 나며 탄닌이 탄탄하다는 느낌이다.
6. Le Dix de Las Vascos 2000 (Colchagua Valley / 126,000원)
라피트 로쉴드사가 칠레에 진출한 지 10년 된 해를 기념하여 만든 와인으로, 섬세한 농축미를 자랑한다. 진한 커피 원두향이 첫번째로 느껴지며, 뒤를 이어 과일향이 따라온다. 맛에서도 강하고 꽉 찬 느낌이 드는 와인으로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7. Santa Helena DON 2002 (Colchagua Valley, Maipo Valley / 143,000원)
이 시음회에서 첫 선을 보인 Vina Santa Helena의 최고급 와인으로, DON은 ‘De Origen Noble’이란 뜻이다. 농축된 과일향이 지배적이며 달콤한 부케가 여성들에게 어필하기 좋을 것 같았다. 꽃의 달콤함이 맛으로 느껴지면서 우아하고 여성스러웠다.
8. Valdivieso Caballo Loco No.7 NV (Central Valley / 110,000원)
발디비에소가 자랑하는 Top 블랜딩 와인으로 지역, 빈티지, 품종에 따라 최고만을 선별하여 블랜딩한다. 스페인의 쉐리를 만드는 솔레라(Solera) 방식으로 만들어 빈티지가 없는 것이 특징. 비교적 진한 과일향과 오크향이 올라오고 달콤한 과일맛과 탄닌이 균형을 잘 이루는 풀바디 와인이다.
9. Vina Chadwick, Errazuriz 1999 (Maipo Valley / 148,000원)
현재 Errazuriz의 소유주인 Eduardo Chardwick의 부친을 기념하며 만든 와인으로 1999년이 첫 빈티지이다. 묵직하고 강한 스타일의 맛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동물향, 가죽향이 인상적이며 맛 또한 힘이 넘친다.
10. Zeus No.1, Vina Bisquertt NV (Rapel Valley / 135,000원)
Valdivieso Caballo Loco No.7처럼 빈티지는 없지만, 솔레라 방식은 아니다. 좋은 빈티지를 선별하여 블랜딩 하는 것으로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은 35년이다. 스파이시하고 갓 볶은 커피원두의 향이 강하고 잘 익은 탄닌의 부드러운 맛이 입 안에 가득찬다.
칠레와인 이야기
남아메리카 남서부에 위치한 칠레는 남북의 길이가 약 5,000km로 남위 18도에서 56도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이다. 국토의 폭은 매우 좁은 편으로 80km에서 350km에 이른다. 인구는 약 1,500만 명이며 GNP는 약 4천5백불 정도이다. 그러나 낮은 GNP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정치나 문화 수준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곳의 기후와 토양은 포도재배에 알맞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질이 나쁜 와인을 만들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와인 양조에 적합한 나라이다. 해양성기후지대로 겨울에 비가 오고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긴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며, 일교차가 커 포도재배에 매우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제공한다.
칠레에서 가장 주목할 것 중 하나는 이곳 재배지역에는 포도나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필록세라(Phylloxera)를 비롯한 심각한 병충해가 발생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곳 지역의 포도나무는 Pre-Phylloxera로 접목을 하지 않아 이 곳의 와인들은 옛 와인의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칠레 와인양조는 약 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6세기 스페인의 통치와 함께 이 곳에 성찬용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한 포도나무들이 심겨졌다. 이 후 3세기 동안 칠레의 포도재배와 와인생산은 질적 성장 없이 이루어지다가 1851년 '돈 실베스트레 오차가비아' (Don Silvestre Ochagavia)라는 선구자를 만나면서 일대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그는 Cabernet Sauvignon, Pinot Noir 등의 묘목을 제공한 프랑스의 포도 재배업자 '베르트랑(M.Bertrand)'과 포도재배 및 와인 생산에 대한 기술제공을 약속하면서 칠레의 와인 생산 현대화와 인지도에 크게 기여하게 된 것이다.
또한 필록세라가 전 유럽을 강타하던 1880~90년대, 당시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의 많은 양조업자들이 남미로 이주하여 그들의 와인양조 경력을 이어가게 되는데, 이들의 탁월한 양조기술은 포도재배에 더 없는 천혜의 기후, 토양과 맞물려 결과적으로 칠레 와인의 질적 향상을 이루어 놓았다.
1990년, 17년간의 Augusto Pinochet의 독재를 마감하면서 국제적인 자본과 기술의 대거 유입은 칠레 와인산업에 또 한번의 르네상스를 가져오게 되었다.
칠레의 고급 레드와인인 Alamaviva를 생산하는 Vina Alamaviva는 1997년 칠레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인 Concha y Toro社와 프랑스 보르도의 대표적이 와인회사인 Baron Philippe de Rothschild 社가 50대50으로 투자한 회사이다.
또한 미 캘리포니아의 가장 대표적인 회사인 Robert Mondavi社는 1995년 칠레의 Vina Errazuriz와 손잡고 Sena를 설립하여 프리미엄 와인 Sena를 생산하고 있다.
이제 와인 양조는 국경을 초월해 가고 있다. 높은 기술력이 이전된 천혜의 토양에서 뛰어난 와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칠레의 주요 와인산지
양질의 와인은 칠레 중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 유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지역으로 재배 품종도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등 프랑스의 주요 품종이 많다.
- Aconcagua Valley(아콩카구아 밸리): 중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칠레에서도 최고급 테이블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 Casalanca Valley(카사블랑카 밸리): 태평양에 인접한 완경사의 구릉지대를 이룬다. 개발된 지 10년밖에 안 되는 지역으로, 최근 샤르도네와 소비뇽 블랑과 같은 화이트용 포도재배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 Maipo Valley(마이포 밸리): 안데스산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횡단계곡지역으로 칠레에서 가장 오래되고 고급와인을 생산하는 전통적인 와인산지이다. 규모가 적은 편이지만 주요 와이너리가 있는 곳이다.
- Rappel Valley(라뻴 밸리): 마이포밸리 남쪽에 위치하며 기후는 습기를 동반한 해양성 기후로 준지역에 Cachapoal Valley, Colchagua Valley가 있다.
- Curico Valley(쿠리꼬 밸리): Rapel Valley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Curico Valley는 깊게 자리한 양토(loam)가 특징이다. 포도 성장기 동안 기후는 비교적 건조하고 낮에는 따뜻하며 일교차는 큰 편이다.
특히 Sauvignon Blanc과 Merlot을 재배하기에 최적이다.
- Maule Valley(마울레 밸리):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칠레 최대의 포도재배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