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 ‘한국형 우주영화’(평론집 ‘한국영화 톺아보기’ 수록)란 제목의 글을 쓴 바 있다. 윤제균과 김용화, 두 천만 감독의 우주 배경 SF 영화제작 소식을 담은 글이었다. 2018년 당시만 해도 주지하다시피 우주 배경 SF 영화는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로는 시도하지 않았던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장르였다.
한국일보(2018.7.6.)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같은 우주 연구기지도, 우주 정거장과 유인 우주선도 갖고 있지 않은 한국에서 우주영화라니.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영화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래비티’(2013)와 ‘인터스텔라’(2014), ‘마션’(2015) 같은 우주영화를 ‘메이드 인 충무로’ 브랜드로 만날 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제시장’(2014)과 ‘해운대’(2009)로 두 번이나 천만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은 신작 ‘귀환’으로 연출에 복귀한다. ‘귀환’은 가까운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우주 정거장에 홀로 남겨진 우주인을 지구로 귀환시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나리오는 이미 완성됐고, 배우 황정민과 김혜수가 출연한다. 하반기에 촬영을 시작한다.
‘신과 함께-죄와 벌’로 지난 겨울 1,440만 흥행을 일구고, 시리즈 2편 ‘신과 함께-인과 연’의 8월 1일 개봉일 관객이 124만 명 넘게 들어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김용화 감독도 후속작 ‘더 문’ 제작에 착수한다. ‘더 문’은 우연한 사고로 우주에 홀로 남겨진 한 남자와 그를 무사히 지구로 데려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다.
이런 소식과 함께 나는 한국형 우주영화에 대한 걱정도 드러냈다.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래비티’ㆍ‘인터스텔라’ㆍ‘마션’ 같은 할리우드 우주영화를 뛰어넘거나 차별화할 수 있겠나 하는 걱정이다. ‘그래비티’ㆍ‘인터스텔라’ㆍ‘마션’ 같은 할리우드 우주영화들이 새로운 소재로 관객을 선점했는데, 동류의 한국영화가 흥행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기도 하다.
세 편의 우주영화는 ‘그래비티’(2013) 322만 명, ‘인터스텔라’(2014) 1,030만 명, ‘마션’(2015) 488만 명 넘는 관객 동원 기록을 갖고 있다. 우주니 과학이니 하는 데엔 관심이나 취미가 전혀 없는 나로선 그런 관객 동원이 의아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인터스텔라’(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천만클럽은 다소 뜻밖이라는 지적도 한 바 있다. 2008년 ‘다크나이트’ 405만 명, 2010년 ‘인셉션’ 582만 명, 2012년 ‘다크나이트 라이즈’ 639만 명 등 화려한 전작을 갖고 있는 감독이라 해도 169분이라는 러닝타임과 골치 아픈 ‘과학영화’라는 핸디캡을 피할 수 없는 ‘인터스텔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말한 바 있다. 어떤 공분(公憤)이나 정서 순화의 콧등시큰함으로 심금을 울리는 그런 것도 없으면서 ‘인터스텔라’가 천만영화가 된 것은 순전 ‘과학의 힘’이라고. 과학의 힘이라 말했지만,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의 갈증풀이라 해도 좋을 터이다. ‘인터스텔라’가 할리우드만이 해낼 수 있는 우주영화임을 생각하면 그 답이 확연해진다.
바꿔 말하면 100억 원 이상만 들여도 ‘대작’ 운운하는 한국영화는 기획조차 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비주얼의 우주영화 ‘인터스텔라’이기에 사람들이 그렇듯 주저없이 극장으로 몰려들었단 얘기다. 요컨대 이렇게 한바탕 휩쓸고 갔는데, 한국형 우주영화가 일반대중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윤제균 감독의 ‘귀환’은 제작이 엎어졌거나 미뤄진 상태고, 대신 뮤지컬 영화 ‘영웅’을 2022년 12월 개봉, 327만 명 남짓 관객을 동원했다. ‘신과 함께-인과 연’이 1,227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해, 시리즈 영화 최초의 쌍천만 감독으로 우뚝선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은 2023년 8월 2일 개봉했다.
‘더 문’은 ‘밀수’ㆍ‘비공식작전’ㆍ‘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함께 최대 성수기라 할 여름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대작영화다. 특히 여름대작 빅4중 가장 많은 280억 원 넘는 제작비가 투여된 것으로 알려진 ‘더 문’이지만, 그러나 관객 수는 8월 13일 현재 48만여 명에 불과하다. 손익분기점이 자그마치 600만 명으로 알려졌으니 폭싹 망한 영화가 된 것이다.
아무리 “폭염에 여러 사건사고가 겹치면서 극장가 나들이가 줄었다. … 폭염에다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까지 생겨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게 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한국일보, 한국일보,2023.8.8.)는 배급사 관계자의 분석이 있지만, ‘더 문’의 관객 수 48만여 명은 너무 충격적이다.
‘더 문’은 한국 최초의 달 탐사 우주영화다. “높은 기술력은 한국 영화의 발전을 보여주는 현주소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야기는 고루하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데일리안, 2023.8.10.)는 지적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김용화 감독이 일군 쌍천만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반대중의 심리다.
‘미녀는 괴로워(2006)’⋅‘국가대표(2009)’로 흥행감독 반열에 이미 올랐던 김 감독으로선 ‘미스터 고’(2013) 참패가 새삼 떠오를 법하다. 벌써 10년 전 순제작비만 225억 원을 쏟아부어 손익분기점이 700만 명쯤인 ‘미스터 고’의 관객 수는 고작 132만 명 남짓에 그쳤다. 폭싹 망한 그 ‘미스터 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한국 최초의 달 탐사 우주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으니 어찌 대성통곡이 안나오고 견딜 수 있겠는가?
김 감독은 ‘신과 함께-죄와 벌’이 천만영화가 됐을 무렵 ‘미스터 고’ 참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가 정말 너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는데, 당시 심리적으로 동요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그때 이후로 한국형 특수효과에 대한 기대로 회사에 투자금도 많이 들어왔어요(김 감독은 현재 ‘VFX’ 전문 회사의 대표다.)”(경향신문, 2018.1.4.)라고.
이어 “그런 상황에서 빨리 다음 행보로 옮겨왔어요. ‘내가 여기에서 멈춰버리면 이건 실패가 되는 것이고, 멈추지 않으면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되뇌면서 작업했어요.”(앞의 경향신문)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니까 ‘미스터 고’ 참패를 김 감독 말처럼 하나의 과정이 되게한 쌍천만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인 것이다.
김 감독은 제작비 280억 원중 시각특수효과(VFX)에만 61억 원을 들인 영화 개봉 전 “한국에서 이런 SF물을 제작하는 건 또 하나의 도전이죠. 관객들이 ‘더 문’을 통해 사진처럼 정교한 달을 큰 화면으로 누리는 시각적인 체험과 더불어 ‘위로’라는 감정을 선물처럼 받아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스포츠서울, 2023.7.31.)라고 했지만, 일반대중은 무심하고 싸늘했다.
김 감독은 최근 진행한 ‘더 문’ GV(관객과의 대화)에서 “기대보다 관객분들이 (‘더 문’을) 덜 사랑해 주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SF 영화 시장이 열악하기 때문에 그 벽을 깨보자 시도는 했는데, 그것에 비해 아직 관객들이 한국 SF 영화를 대하는 거리감이 상당한 것 같다”(앞의 데일리안)고 말하는 등 흥행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 극장가 최대 성수기라는 7말 8초에 벌어졌다. ‘더 문’과 같은 날 선보인 제작비 200억의 ‘비공식작전’ 역시 개봉 12일이 되도록 100만 관객도 동원하지 못하는 등 참패 수준이긴 하다. 그런데도 유독 ‘더 문’의 48만여 명 관객에 안타까워 하는 것은 한국 최초의 달 탐사 우주영화에 대한 외면이고 무관심이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