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무식하게 크다.
팔 척이 넘어가는 키도 키지만,
그 우람한 덩치는 보는 사람을 질리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더군다나 무림맹에서 처음 보는 자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한 명이 아니라 덩치의 뒤에
또 한 명의 작고 비리비리 한 인간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곰과 생쥐군.'
모광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금룡단주라도 저런 멍청한 곰과 쥐새끼 같은 인간을
금룡단원으로 뽑았다는 사실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또한 두 사람을 아무리 살펴 보아도 별로 무공이 강해 보이지 않는다.
저 두 명으로 인해 무림맹의 질이 저하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광이 우칠의 앞에 서자,
우칠은 이거 뭐하는 인간이야 하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모광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자신의 시선을 별거 아닌 듯 마주보는 것도 그렇고,
자신을 우습게 보는 듯한 표정도 맘에 들지 않았다.
"금룡단주에게 철혈사자대에서 사람이 왔다고 전하게."
우칠의 인상이 아래위로 구겨졌다.
자칭 고금제일무적을 추구했던 우칠이다.
비록 턱 없이 여기저기서 깨지긴 하였지만,
자존심 하나만큼은 가히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고금제일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주군에게 시건방진 모광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군의 제일충복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은 곧 주군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네 놈 말을 들어야 하지?"
우칠의 말을 들은 모광이나 철혈사자대의 인물들은 모두 멍청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설마 세상에서 자신들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사람을
본 적은 물론이고 있으리란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모광은 울화가 치밀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가까스로 참아 내기 위해 호흡 조절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명색이 철혈사자대의 조장인데,
함부로 화를 내는 경솔한 짓은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체 자네는 누구인가?"
모광의 물음에 우칠은 아주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난 고금제일충복이다."
"허허......"
모광은 웃고 말았다.
철혈사자대의 인물들과 함께 온 무인들의 표정은 실로 기기묘묘해졌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한다.
세상에서 우칠과 같이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금제일충복이라니.
일시적으로 사고가 정지 되는 기분을 느꼈지만, 모광은 다시 눌러 참으며 물었다.
"자네 이름은?"
"우칠."
"나이는?"
"몰라!"
"허........"
기어코 말문이 막힌 모광은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자네는 대체 누구의 충복인가?"
"나야 주군의 충복이지."
"그러니까 자네의 주군이 누구냔 말이다."
"금룡단주님이 바로 나의 주군이시다. 귀찮게 자꾸 묻지 말고 빨리 가라!"
우칠의 말에 모광은 침착함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리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치다.
"이 놈, 겁이 없구나. 어서 비켜라!
우린 금룡단주가 불법으로 수하들을 고문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고 왔다.
비키지 않으면 죽인다."
우칠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는 커다란 손가락으로 코 구멍을 쑤시며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모광의 입장에서 보면 귀구멍에서 연기가 날 일이었다.
그가 언제 이런 모욕을 당해 본적이 있는가? 전혀 없었다.
근데 이번엔 생쥐같이 생긴 인간이 앞으로 나섰다.
왕구의 입장에선 제일충복이 돌아섰으니,
이젠 제이충복이 나설 차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넌 이름이 뭐냐?"
왕구의 물음에 모광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뽑을 뻔하였다.
그러나 다시 눌러 참았다.
그래도 금룡단주의 수하들이고 금룡단주는 북궁연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북궁연은 자신의 상관이 사랑하는 여자였으며, 무림맹의 총사다.
그녀의 얼굴을 봐서도 함부로 할 순 없는 것이다.
또한 금룡단주의 지위는 철혈사자대의 조장인 자신보다 높았다.
상황을 보고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무력이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난 철혈사자대의 제이조 조장인 철환금검(鐵幻金劍) 모광이라고 한다. 넌 누구냐?"
지금 모광의 말을 들었다면 어느 누구라도 감히 그에게 존경의 표시를 하였고,
새삼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무림맹 전체 고수들 중에서도 백 위 안에 드는 고수라면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또한 철혈 사자대의 조장이면 단순한 조장이 아니었다.
무림에서의 신분은 구대문파의 장로급과 맞먹는 신분이었다.
하지만 왕구는 철혈사자대가 뭔지 전혀 몰랐고, 모광의 이름도 첨 들었다.
"무명소졸이군. 난 고금천하제이충복 왕구님이시다."
맥이 풀렸다. 그리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무슨 고금제일이니 고금제이니 하는 말이 밥 먹듯이 나온다.
그것뿐인가.
이젠 철혈사자대의 조장을 무명소졸 취급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의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하도 당당해서 두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무리 보아도 별다른 내공의 흔적이 없다.
겨우 삼류무사 수준으로 보였던 것이다.
오히려 내공의 깊이를 보면 제일충복이라는 우칠보다 왕구가 더 높아 보인다.
그러나 그래 보았자, 무림에서도 삼류나 이류 수준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모광은 지금 두 사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말싸움을 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의 표정에 살기가 어렸다.
"이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가서 금룡단주에게 우리 말을 전하던지,
아니면 비켜라! 그렇지 않으면 네 놈들을 죽이고 들어가겠다."
모광이 엄포를 놓았지만, 그건 사람을 잘못보고 한 말이었다.
우칠이 누군가?
우직하기로 따지면 그야말로 고금제일이었다.
그는 다른 것은 모른다.
그의 주군이 여기를 지키라고 했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스스로 고금제일충복인 우칠은 당연히 주군의 명령을 지키야 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생각 안한다.
"난 주군의 명령을 지킬 뿐이다. 나머진 네 놈 알아서 해라!"
우칠이 뒷짐을 지고 정문을 가로 막자,
왕구도 그 옆에 나란히 서서 뒷짐을 지고 나타난 무리들을 노려보았다.
왕구가 아는 한 고금제일은 아운이었다.
그런 사람을 주군으로 모시는데 뭐가 두려우랴!
"팔다리 하나를 분질러 놓고 들어간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을 무시하는 두 사람에게 화가 나 있던 철혈 사자대였다.
모광의 명령의 떨어지자,
맨 앞줄에 있었던 네 명의 철혈사자대가 번개처럼 날아와 우칠과 왕구의 가슴을 찔러 갔다.
왕구는 다가오는 사람들의 기세를 보고 기겁을 해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우칠은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주먹으로 맨 앞에 다가오는 자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대력광마신공의 무공인 대력광마신권이었다.
그러자 "윙"하는 소리가 들리며 맨 앞에서
우칠의 어깨를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던 자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였다.
대력광마신권의 위력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우칠은 모두 여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이제 대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비록 대성을 하기 전까진 제 위력이 나타나지 않는 대력광마신공이었지만,
그 육겁을 견디면서 우칠의 무공은 상당히 발전해 있었다.
마구 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은 우칠의 광마신권은
공격해오는 네 명의 공격을 모조리 무마시킬 듯하였다.
그러나 네 명의 철혈사자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무인들이 아니었다.
젊은 층으로 본다면 그 한명, 한명이 능히 절정에 달한 고수들이었다.
조금 놀라긴 하였지만, 그 뿐이었다.
네 사람의 신형이 바람처럼 흩어졌다.
그들은 어떤 형식에 몇 명이 함께 공격하던,
가장 효과적인 협공을 할 수 있게 훈련받은 무사들이었다.
두 명의 검이 우칠의 권경을 흩어 놓고 그 안으로 두 사람이 좌우에서 검을 찔러 들어갔다.
그것을 본 왕구가 급히 일어섰지만 네 사람의 공격과 방어는 너무 빨랐다.
"퍽", "퍽"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면서 두 명의 철혈사자대가 뒤로 물러섰다.
두 사람이 방어를 하는 동안 공격을 해 온 두 명중 한 명의 검은 왕구를 겨냥하고 있었는데,
왕구는 검의 기세에 움직이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한명 철혈사자대의 검은 우칠의 가슴을 관통해 있었다.
대충 하기엔 우칠의 무공이 예상외로 강했던 것이다.
왕구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제야 자신의 무공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우친 것이다.
세상에 나와서 자신의 무공이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는 것을 알았고, 많은 실망을 했었다.
그러나 우칠과 동행하면서,
그리고 아운을 만나면서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었던 왕구였다.
그런데 자신의 무공으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저런 이유로 동질성을 느꼈던 우칠의 생명이 위험하게 되지 왕구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에 물기가 고인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광은 가볍게 한 숨을 내 쉬었다.
이젠 좋게 해결하긴 글렀다.
그렇다면 선수를 치는 것이 좋다.
"모두 안으로 들어가라"
모광이 고함을 치며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이놈들 아직 내가 있다."
고함과 함께 우칠이 그들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의 가슴 복판엔 여전히 검 한 자루가 들어가 박혀 있었으며 입으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우칠의 가슴에 박힌 검의 주인은 우칠이 가는 대로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우칠의 가슴에 박힌 검이 뽑히질 않았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모광이나 철혈사자대의 무사들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이놈"
고함과 함께 모광이 신형을 날리며 발로 우칠의 얼굴을 단 일순간에 십여 번이나 걷어찼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금종조를 십성 대성한 고수라도 기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쿵"하는 소리가 들리며 우칠은 금룡각을 둘러친 담장과 대문 사이의 모서리 쪽으로 넘어졌다.
그 바람에 우칠의 가슴을 찔렀던 무사는 검을 손에서 놓고 말았다.
모광 일행이 다시 금룡각 안으로 들어서려 할 때였다.
우칠은 다시 그들을 막아서면서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 모두 멈춰라 주군께서 아직 허락을 안 하셨다."
모광과 철혈사자대,
그리고 함께 온 무사들은 모두 아연한 표정으로 우칠을 바라보았다.
뭐 저런 괴물이 다 있나 하는 표정들이었다.
"이노옴" 고함과 함께 처음 우칠을 공격했던 무사 한 명이 검으로 우칠의 외쪽 가슴을 찔렀다.
검은 절반정도 우칠의 가슴을 밀고 들어가다가 멈추었다.
무사는 다시 검을 뽑아 우칠을 공격하려다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며 신음 소리를 내였다.
"어억."
하는 작은 소리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모든 시선이 그 무사에게 모아졌다.
무사는 기를 쓰고 검을 뽑으려 했지만, 우칠의 가슴을 파고 든 검은 뽑히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우칠은 다시 금룡각의 대문 앞을 막아서고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 여긴 들어가지 못한다."
얼굴은 멍투성이에 코와 입으로 피가 나오고 있었으며,
검을 두 자루나 가슴에 박고도 자신들의 앞을 가로 막은 우칠을 보면서
모광과 철혈사자대의 무사들은 모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열 번은 기절하였고,
아무리 무림의 고수라도 저 정도면 두 번은 죽었을 것 같았다.
한편 옆에서 우칠의 모습을 보면서 왕구는 감동하고 있었다.
'과연 저것이 바로 고금제일충복의 모습이구나.'
제이충북인 자신으로선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두 번째로 밀렸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모광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네 놈의 목이 떨어지고도 살아나나 보자."
모광의 검에서 사나운 기세가 일어날 때였다.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던 우칠의 신형이 천천히 뒤로 넘어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모광 등의 얼굴에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밝아졌다.
그러나 그 순간 우칠의 칠겁의 봉인이 깨지고 있었다.
모광은 아연한 표정으로 우칠을 보다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자."
그의 명령으로 일행이 금룡각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우칠의 가슴에 박혀 있던 두 자루의 검이 퉁겨져 올라갔다.
동시에 우칠의 몸에 난 상처들이 빠르게 치유되기 시작하면서
우칠의 몸에서 가공할 정도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금룡각 안으로 들어가려던 모든 사람들의 신형이 멈추어졌다.
"으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우칠의 신형이 벌떡 일어섰다.
모두 기암한 표정으로 우칠을 볼 때 우칠은 몸에 넘쳐 나는 내공의 힘으로 인해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칠겁의 장을 넘어 대력광마신공이 대성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재수 없게도 그 자리에 철혈사자대가 있었다.
흑룡 조천왕의 손발이라고 할 수 있는 철혈사자대와
자칭 아운의 고금제일충복은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칠이 벌떡 일어서자,
철혈사자대의 무사들과 철환금검 모광은 모두 아연한 표정으로 우칠을 바라보았다.
우칠은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가면서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말했다.
"주군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 말을 들은 철환금검의 안색이 구겨졌다.
뭐 저런 괴물이 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무공은 별거 없지만, 맷집 하나만큼은 가히 금강불괴에 가까운 인간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우칠의 다른 무공은 너무 형편없어 보였다.
우칠의 무공 자체가 원래부터 익히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되는 마공에 바탕을 둔 무공이다.
대성을 하였지만, 무공의 흔적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였다.
모광이 짜증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처리해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칠을 공격했던 무사들 중 두 명이
다시 무기를 빼어들고 우칠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우칠의 손바닥에서 두 가닥의 경기가 뿜어져 나갔다.
막 우칠의 얼굴을 가격하려던 두 무사는
강한 경기가 자신들에게 몰려오자 급히 검을 돌려 방어를 하였다.
"퍽"하는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크아악"하는 비명과 함께 두 명의 철혈사자대 무사는
그대로 날아가 땅 바닥에 쳐 박히고 말았다.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기절해 버린다.
단 한 방에 두 명의 사자대 무사가 기절하고 만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철환금검이나 다른 무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시 한 번 우칠을 보았지만,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상처가 무섭게 빨리 아무는 것을 보자, 안색이 다시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모광과 철혈사자대의 무사들은
두 동료가 우칠을 우습게보다가 기습에 당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쳐라!"
모광의 고함과 함께 서너 명의 철혈사자대가 우칠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의 검은 그대로 우칠의 심장과 가슴을 정확하게 찔러갔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검은 우칠의 머리를 정확하게 쪼개어 갔다.
이제는 하고 미소를 짓던 모광의 표정이 다시 한 번 아연해지고 말았다.
"땅"하는 쇳소리가 들리며 우칠의 머리를 공격했던 무사의 검이 두 동강으로 부러져 버렸다.
물론 우칠의 머리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가히 금강석이라 할 수 있는 머리였다.
그리고 우칠의 몸을 쑤시고 들어가던 검들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모두 멈춘다.
검을 찌르고 있는 무사들은 기를 쓰고 검에 힘을 주고 있었지만,
마치 철벽이 가로 막고 있는 것처럼 꼼짝도 안한다.
처음 검이 들어갈 땐 마치 솜뭉치를 찌르는 기분이더니 이젠 마치 철벽에 막힌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우칠의 두 손이 자신의 머리를 공격했던 사자대 무사의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 그의 팔을 잡아서 뒤로 접언 놓은 채 던져 버렸다.
팔이 완전히 부러진 그 무사는 무려 십장이나 날아가 무림맹의 외원을 가로지르는
담장에 충돌하고 바닥에 개구리처럼 고꾸라져 버렸다.
모두 황당한 표정으로 우칠을 볼 때 우칠의 두 손이
좌우로 날아가 멍한 표정의 두 무사의 따귀를 때렸다.
우칠의 가슴과 심장에 검을 박으려 했던 무사들이었다.
"퍽", "퍽"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더니, 두 사람은 모두 삼장씩이나 날아가 바닥에 쳐 박힌다.
이건 우연일수가 없다.
모두 놀란 표정의 철혈사자대가 새롭게 진을 짜고 우칠을 공격하려 할 때
우칠이 그대로 달려 나가더니 주먹으로 모광의 얼굴을 향해 내질렀다.
모광은 자신의 검으로 우칠의 손목을 그었다.
그대로 우칠이 주먹을 휘두르면 모광의 검에 손목이 절단 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땅", 하는 소리와 함께 "퍽"하는 소리가 들리며
모광이 뒤로 자빠졌다가 한바퀴를 구르며 다시 엎어졌다.
검으로 모광의 손목을 쳤지만 오히려 검이 튕겨 나갔고,
주먹은 그대로 모광의 안면을 강타한 것이다.
물론 그나마 검이 우칠의 힘을 어느 정도 완충했기에 즉사는 모면하였다.
그러나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뻔하였다.
우칠의 몸이 하늘로 붕 떴다가 그대로 엎어져 있는 모광의 허리위로 엉덩이부터 떨어져 내렸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우지직"하는 소리가 들리며
모광의 몸이 뒤로 접혀졌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모르긴 해도 척추가 완전히 박살났으리라.
우칠이 일어서서 이제 열일곱 남은 사재대 무사들을 노려보며 다가섰다.
조장이 단 한방에 고꾸라지고 세 명의 동료가
어떻게 박살나는지 본 그들은 모두 질려서 주춤하고 말았다.
그것은 그들이 또 다시 저지른 실수였다.
처음부터 철혈사자진을 형성하고 덤볐다면 제 아무리 우칠이라도 상당히 고전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개별적으로 덤볐다가 조장까지 불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남은 인원으로 진을 형성했어야 하는데,
잠깐 주춤하는 사이 그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칠의 몸이 사자대의 가운데로 뛰어들며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퍽", "퍽"하는 소리가 들리며 그의 주먹은 다시 두 명의 사자대를 떡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 명은 검으로 막았지만 그 검까지 박살이 나고 말았다.
남은 사자대원들은 모두 사색이 되고 말았다.
"후........ 후퇴하라!"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도 이미 질린 사자대 무사들과 함께 왔던 무림맹의 고수들은
재빠르게 자신의 동료들과 조장을 수습해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우칠이 크게 웃으면서 고함을 질렀다.
강호에 나와서 처음 맛본 통쾌한 승리였다.
그 동안 잠자고 있던 그의 웅심이 다시 한 번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으하하, 내가 바로 고금제일인의 고금제일충복 우칠이니라!
이놈들 언제든지 오너라! 내가 바로 고금제이인자니라! 으하하."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뒤에서 우칠을 보는 왕구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는 우칠을 보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의 충직한 마음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우칠 대형, 과연 당신은 고금제일충복이요.
내가 당신의 뜻을 이어 기어코 고금제이충복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고금제삼의 고수자리를 반드시 차지하여 대형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추후 왕구의 이 결심으로 인해 무림은 또 한 명의 골치덩어리를 맞이해야만 했다.
하편 우칠의 모습을 대문 안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지켜보는 두 개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들은 바로 흑칠랑과 야한이었다.
야한은 우칠의 무식한 무공을 보고 치를 떨면서 말했다.
"바로 저것 때문에 권왕께서 어떤 위험이 와도 도와주지 말고 지켜만 보라고 한 것이군요.
선배 저 우칠이란 친구 정말 고금제이의 고수가 되는 것 아니요. 정말 살 떨리게 강하네."
야한이 가슴을 쓸며 흑칠랑을 보았을 때, 흑칠랑은 완전히 몸이 굳어 있었다.
한때 흑칠랑은 우칠을 죽도록 패 놓은 적이 있었다.
한데 지금 무식한 실력의 우칠을 보니 무엇인가 각성을 통하여 엄청난 고수로 변모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아운은 우칠에게 각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금룡각의 정문을 지키라고 했던 것 같았다.
몰론 무림맹의 고수들이 금룡각에 올 것을 아운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운은 분명히 그들이 올 것을 알고 우칠에게 기회를 준 것 같았다.
그리고 우칠의 무공은 이제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만약 우칠이 그때의 복수를 하자고 덤비면.
생각해 보니 등골이 서늘하다.
아운에게 도전하기도 전에 우칠의 도전에 맞아 죽을 판이다.
더군다나 우칠은 자칭 아운의 충복이다.
이건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죽은 사부가 원망스러웠다.
'씨발 지금 도망가서 그냥 땅 파먹고 살까?'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은 천하에 흑칠랑이 아닌가?
이런 상황이니 흑칠랑의 귀에 야한의 목소리가 들릴 수가 없었다.
"선배."
다시 한 번 부르자, 흑칠랑이 후다닥 놀라서 야한을 돌아보았다.
야한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흑칠랑의 얼굴을 보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혹시 이런 생각해 보셨수?"
"뭐가 말이냐?"
흑칠랑은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야한은 그 목소리에 이상한 감동을 느끼며 말했다.
"누가 권왕 아운님에게 도전하려면 아무래도 저 무식한 충복부터 처리해야만 가능하다 뭐 이런거."
"흠 뭐 그럴 필요 있나. 어차피 어른은 어른끼리 노는 것일세."
"하지만 누가 자신의 주군에게 덤비려 한다는 것을 알면 그냥 안 있을 것 같은데.
더군다나 선배는 저 인간 같지 않은 놈이랑 인연이 있지 않수."
"남자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지. 암 그렇고말고."
"흠 그런가? 그런데 선배 아까 전 우칠의 공중 날아 척추 분지르기 초식은 정말 멋지지 않소.
그렇게 당하면 평생 밤일은 끝일 텐데. 하긴 뭐 선배는 결혼도 안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요."
야한의 말에 흑칠랑의 입술이 검게 죽어갔다. 그래도 그 정도에 기죽을 흑칠랑이 아니었다.
"내 척추는 강철이다. 우칠의 무게쯤은 별거 아니지."
그 말을 듣고 야한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차라리 거시기가 강철이라고 말하지 그랬소."
"이런 씨발. 너 지금 나랑 한판 하자는 것이냐?"
"헉 그럴 리가 있겠소. 그런데 우칠은 선배가 권왕 아운님에게 도전한 것을 아나 모르나. 나중에 물어봐야지."
흑칠랑은 울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
"내 거시기가 강철이니 우선 네놈에게 실험 해볼까?"
야한의 안색이 파랗게 죽어갔다.
역시 말발에선 아직 선배가 위인 것 같았다.
명왕당을 지키던 두 명의 무사들은 다가오는 아운 일행을 보고 안색이 일변하였다.
두 문지기 무사는 아운을 알진 못했지만,
그의 양 옆에 서서 다가오는 이심방등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금룡단에 들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던 참이었다.
두 문지기 무사는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아운 일행을 막아섰다.
"무슨 일입니까?"
"가서 당주에게 전해라!
금룡단의 단주 하영운이 명왕당의 수하들인 허진걸과 사도룡을 잡으러 왔다고.
그리고 두 사람의 죄목은 만나서 이야기 하겠다고."
아운의 당당한 말에 두 수문장은 기가 죽어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눈치로 안 것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금룡단주란다.
이미 어제 하루 동안 무림맹에서 그가 한 짓을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두 무사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광인이란 말도 있었다.
명왕당주인 명왕마부(明王魔斧) 구완은 요즘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호연란의 경쟁자인 북궁연의 연인이란 자식 때문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나타난 그의 행보는 무림맹의 모든 시선을 붙잡아 놓고도 남았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한 명에 의해서 호연세가의 식솔들이 당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도끼를 들고 쫓아가서 두 쪽을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호연란의 명령 때문에 꾹 눌러 참는 중이었다.
그는 불끈 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명왕당의 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약 이백여 명의 명왕대 수하들이 아침 수련을 하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믿음직한 수하들의 모습이었다.
수하들을 보면서 구완이 만족한 웃음을 머금고 있을 때였다.
두 명의 부 당주 중 한 명인 단편서생(短鞭書生) 호시무가 급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어지간해서는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것이 호시무의 장점임을 생각해 보면
지금 그의 모습은 무엇인가 큰 일이 있다는 증거냐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궁금한 마음에 구완의 걸음이 호시무를 향해 갔다.
"당주님께 아룁니다. 지금 명왕당 앞에 금룡단이 와 있습니다."
오자마자 급하게 말하는 호시무의 말에 구완의 인상이 조금 굳어졌다.
"금룡단이란 말이지. 그들이 대체 왜 명왕당엘 왔단 말인가?"
"허진걸과 사도룡을 체포하러 왔다고 합니다."
"뭐라고?"
구완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부당주를 바라보았다.
"허진걸과 사도룡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금룡단주가 당주님을 직접 만나서 말하겠다고 했답니다."
부당주의 말을 들어보니 그 역시 문지기의 말을 듣고 달려온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만나고 싶었던 금룡단주가 지금 문 밖에 와 있다는 사실이었고,
그들이 자신의 수하들 중에서도 상당한 요직에 있는 두 명의 수하를 체포하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부당주는 허진걸향주와 사도룡향주를 불러오게."
당주의 말을 들은 부당주는 연무장으로 뛰어가 두 명의 대한을 대려 왔다.
두 장한은 모두 삼십대 중반이었는데, 상하의 중심이 잘 잡혀 있고,
눈에 정기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고수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허리에는 장검 한 자루씩이 걸려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당주님."
"너희들은 혹시 무림맹에 해가 되는 일을 한 적이 있는가?"
두 사람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당주를 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무슨 죄를 지은 적이 있는가?"
"절대로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지금 한 말에 목숨을 걸고 맹세 할 수 있나?"
"맹세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맹세합니다. 당주님."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구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무기인 도끼를 들고 나왔다.
무려 백이십근이나 나가는 무식하게 큰 도끼를 가볍게 들고 나온 구완이 부당주와 허진걸,
그리고 사도룡을 보면서 말했다.
"명왕당의 전 수하들을 모아라.
그리고 부당주는 금룡단주란 애새끼를 이리로 데려 와라!
그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두 사람의 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골통을 뽀개 놓겠다."
눈에 살기를 담고 말하는 구완의 기세는 그야말로 역발산기개세였다.
명령을 받은 부당주가 명왕당 대문을 느긋하게 걸어갔다.
이미 결정이 되었다면 그가 빨리 갈 필요는 없었다.
이런 시간 끌기도 주도권 싸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느긋한 발걸음은 결국 일을 터트리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