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은 젠그루베의 집에 처음 와 보았습니다.
전에 한 번 슈느파마울이 집에서 나와 쓰레기통 쪽으로 가는 것을 나무숲
뒤에 숨어서 본 적은 있지만......
그 때는 열린 현관 문으로 안이 훤히 보여 안톤은 오싹 소름이 끼쳤던 것입니다.
바구니에 뾰족한 나무 말뚝이 잔뜩 들어 있고 벽에는마늘을 매달아 놓은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슈느파마울의 옆을 지나 현관 안으로 들어갔을때,
안톤은 불안해서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러나 바구니에는 볼품없는 검은 우산밖에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는 파티 분위기를 내기 위해 종이 테이프가 약간 휘감겨 있었습니다.
"정말 잘 와 주었어. 진심으로 환영해."
그 때, 슈느파마울이 기분나쁠 정도로 다저하게 말하고 아톤과 루디거를
껴안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논은 살짝 한 걸음 물러났습니다.
그러자 슈느파마울이 당황해서,
"흡혈귀들 사이에서는 '진심으로'라는 말을 쓰지 않니?"
하고 물었습니다.
"써요, 쓰고말고요."
루디거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살짝 혀 끝으로 입술을 햝으면서.
"흡혈귀는 진심의 '심'자가 들어가는, 즉 심장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든지
대환영이에요!"
안톤은 몸이 움츠러들었습니다. 슈느파마울은 루디거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순진하게 웃으며,
"야아, 안심했다. 그럼 다시 한 번 진심으로 환영해!
나의 흡혈귀 손님들! 자, 지하 묘실로 가자!"
하고 말했습니다.
"지하 묘실로?"
안톤은 걱정어린 얼굴로 집 안을 살폈습니다. 룸피와 안나는 이미 보잊 않았습니다.
"그렇고말고! 완전히 흡혈귀 취향으로 만들어 놓았는걸."
슈느파마울이 즐거운듯이 킥킥 웃으면서 지하실로 향했습니다.
"흡혈귀 취향으로?"
루디거는 싱긋 웃었습니다. 그리고,
"슈느파마울이 어떤 씩으로 해 놓았느지 볼 만하겠는걸!"
하고 안톤에게 속삭엿습니다.
"정말이야."
안톤은 대답했습니다.
지하 묘실로라니...... 어쩐지 기분나쁜데.
조심조심 안톤은 루디거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층계에 도착했습니다.
층계에는 천을 댄 램프 갓의 묘하게 불그스름한 빛이 희미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안톤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젠그루베가
자랑하는 흡혈귀 사냥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먼지투성이의 액자에 들어 있는 낡아빠진 사진이 두세 장 그리고 흐려질
대로 흐려진 거울이 걸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여기야말로 바로 골동품 창고로구나!"
루디거가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거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래, 맞았어. 젠그루베는 골동품을 좋아해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건을 소중하게 보관하지."
슈느파마울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도야!"
그 때 룸피의 목소리가 들렷습니다. 아래 지하실에서 들려 오는 것 같았스니다.
"예를 들면 이 사진 같은 것이야!"
슈느파마울이 열띤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이건 전부 젠그루베의 조상 때부터 전해져 오는 물건들이지!"
"엣, 정말이요?"
하고 안톤은 말했습니다.
"이 스테레오도 그래요?"
룸피가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분명하지 않는 기분나쁜 목소리입니다.
정말 묘실로부터 들려오는 것처럼......
"아니, 그건 내 거야!"
슈느파마울이 자못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손대지 마. 폰 슈뢰데슈타인 씨. 잠깐만 기다려 줘.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가르쳐 줄 테니까."
슈느파마울이 망토를 쳐들고 살짝살짝 아주 조심스럽게 지하실 층계를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룸피는 벌써 버튼을 찾아 낸 것 같았습니다.
콰앙하고 음악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룸피가 마구 고함을 쳤습니다.
♪당신의 손에 키스를, 당신의∼♪
"이러면 곤란해......"
하고 슈느파마울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룸피는 들은 척도 않고 점점 더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안나의 낄낄거리는 웃음 소리까지 들려 왔습니다.
"안 돼. 그러지 마!"
하고 루디거가 소리치고 싱글거리면서 슈느파마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기다려!"
아논은 루디거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루디거는 이미 지하실로 사라져버렸습니다.
따라갈까말까? 하지만 슈느파마울의 지하 '묘실'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안톤이 계속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매우 소란스러운 웃음소리가 나고 음악이 그쳤습니다.
그리고 슈느파마울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안 돼. 정말, 그럼 모르겠어...... 내가 아직 진짜 흡혈귀답지 않다는거야?"
안톤은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아직 진짜 흡혈기답지 않다...... 설마 룸피와 루디거, 안나가 슈느파마울을......?
하지만 슈느파마울은 저 세친구가진짜 흡혈귀를 원한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을 텐데! 아무리 흡혈귀라 해도 내게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 온 친구니까.
하지만 그 묘지의 정원사에게는 무슨 지슬 할지. 그는 젠그루베하고
한패가 되어 루디거의 가족을 고향의 공동 묘지에서 쫓아낸 사람이다.
안토은 지하실 층계 난간을 부잡고 아주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마지막 층계로부터 바로 하나 앞에까지 왔을 때, 또다시 와하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났습니다. 이어서 곧 슈느파마울이 나타났습니다.
그 뒤로 룸피와 안나와 루디거가......
안톤은 당황했습니다. 뺨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흡혈귀들은 슈느파마울의......피를......빤 거시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단지 노리끼리한 머리를 세우고 빨간 가루를 뿌려 주었던 것뿐입니다.
"이제 훨씬 더 흡혈귀답게 보이지?"
안나가 킥킥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으, 으응."
안톤이 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 그런데 이 아저씨는 싫다고 하는 거야. 이제 엉망이 되어 버렸다고 야단이야."
안나가 야무지게 말했습니다.
"네 입으로 직접 이야기 좀 해 줘. 이 모습이 훨씬 좋다고. 아주 멋진
진짜 흡혈귀처럼 보인다고 말이야!"
안톤은 헛기침을 했습니다.
"저, 정말 훨씬 더 진짜 흡혈귀처럼 보여요."
"정말이니?"
슈느파마울의 얼굴에 드디어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리고 슈느파마울은
뽐내듯이 더부룩하고 삐죽삐죽 솟은 머리를 손으로 만져 보고는,
"아직 좀 익숙지 않아서."
하고 멋쩍은 듯이 말했습니다.
"진짜 흡혈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어릴 때부터 연습을 해야 돼요!"
라고 룸피가 대답하고 입을 크게 벌려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바꾸어 하면 열심히 연습을 하면 흡혈귀가 될 수 있다!
이 말이지."
슈느파마울이 눈썹을 찡그리고 룸피를 쳐다보았습니다.
"열심히 연습을 하면 흡혈귀가 될 수 있다고?"
이렇게 되풀이해서 묻더니 갑자기 환한 얼굴로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습니다.
"아, 그래...... 좀더 열심히 흡혈귀 파티를 열라는 말이구나!"
"맞았어요. 훌륭한 답이에요."
하고 룸피가 장난스럽게 소리치며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슈느파마울이 망토를 어루만지고 나서 난처한 듯이 킥킥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파티 같은 것은 정말 질색이거든. 하지만 흡혈귀가
되는 것은,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해적이나 카우보이가 되는 것과는 좀다르겠지."
"물론, 그야 당연하지야요!"
룸피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안나와 루디거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입에 손을 대고 웃었습니다.
안톤은 웬지 속이 메슥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슈느파마울이 좀더 말조심을 하면 좋을 텐데! '흡혈귀가 된다'는 따위의
말을 하다니...... 그런 이야기를 하면 룸피가 딴 마음을 먹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다 함께 뭘 하는 거야?"
안톤은 재빨리 말했습니다. 좀더 안전한 분위기로 이야깃거리를 돌리기위해.
"우리 어서 뷔페 파티(음식을큰 식탁에 차려 놓고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자유로이 덜어 가서 먹으며 즐기는 파티)를 열기로 하자!"
슈느파마울이 이렇게 말하고 지하실 층계를 올라갔습니다.
"뷔페 파티!"
안나가 픽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슈느파마울이 멈춰섰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끝낸 것은 아니겠지?"
하고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습니다.
룸피가 가볍게 기침을 했습니다.
"대단치 않은 정도예요."
"후유, 다행이다!"
슈느파마울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층계 위에 다다르자 슈느파마울은 자랑스러운 듯이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뷔페는 아마 진짜 흡혈귀라도 달려들어서 먹을 거야.
아무튼 온통 흡혈귀 취향의 요리와 마실 것분이니까!"
"흡혈귀 취향의 요리와 마실 것뿐?"
룸피가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슈느파마울이 대단한 걸 감추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야. 신사 여러분들!"
"신사?"
마지막으로 층계를 올라온 안나가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난 여기서는 필요없는 것 같군요!"
"아니, 천만의 말씀. 나는 다지 다이어트(살빼기 운동)를 하는 줄 알고
그랫지, 꼬마 아가씨."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하하!"
룸피가 커다란 소리로 말하고 안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내 꼬마 여동생과 다이어트라! 난 우스워서 죽을 것 같아!"
"정말 너무해!"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안나는 룸피에게 아래 눈까풀을 뒤집어 보였습니다.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군."
슈느파마울이 몹시 미안해 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 난 네 기분을 나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하지만 뷔페
이야기를 했을 때, 네가 벼로 흥미있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안나가 다이어트 같은 것을 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뼈와 가죽만 남을걸!"
하고 루디거가 비꼬았습니다.
"이거 실례가 많았군!"
슈느파마울이 다시 한 번 사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헐렁한 옷 속으로 살이 좀더 붙어 있는지 어떤지 잘 모르니까."
"살이 좀더 붙어 있다고?"
룸피가 쉰 목소리로 웃었습니다.
"내 여동생이 드레스로 감추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에요. 히히히!"
안나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래그래, 그 말이 맞아."
루디거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멋진 구멍투성이의 울 타이츠(몸에 착 달라붙는 스타킹 모양의 긴 바지)
겠지...... 나와 마찬가지로."
"안톤 앞에서 나를 이렇게 웃음거리로 만들다니...... 계속 이러면 좋지 않을 줄 알아!"
안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습니다.
"그래, 좋아. 너히ㅡ들도, 너희들이 이 시시한 파티도 흥, 어디 두고 봐!
난 돌아갈 테야!"
안나가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큰 소리로 훌쩍이며 비틀비틀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안나!"
안톤은 안절부절못하며 안나의 뒤를 쫓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루디거가 안톤의 망토를 잡고 화가 난 듯 속삭였습니다.
"내버려 둬! 일이 이렇게 되면 저 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눈을 후빌지도 모른다고."
"엣, 안나가?"
안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래, 안나가 그렇다니까!"
룸피도 이 무서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 애가 내 형제라는 걸 너 잊어버렸니?"
룸피가 껄껄 웃었습니다. 루디거도 함께 웃었습니다.
안톤은 입을 꽉 다물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안나의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점점 멀엊 가더니 마치내 현관 문이 콰 하고 닫혔습니다.
룸피가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제 잘됐다! 이렇게 해서 방해꾼이 사라졌군."
그러고 나서 슈느파마울을 향해 일부러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뷔페 파티는 안 열어요?"
"그, 그렇지."
슈느파마울이 허둥대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저렇게 잔뜩 화가 나서 돌아간 것이 내 탓이 아니라면 좋겠지만......"
"아니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룸피가 의미있는 듯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안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다른 약속이 있나 봐."
"그래, 틀림없이 그 심술쟁이 발디하고일 거야!"
루디거가 심술궂은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심술쟁이 발디하고?"
슈느파마울이 신기한 듯 되물으며 킥킥 웃었습니다.
"너희 친구들 중에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도 많구나.
아마 전부 예명(예술인이 본명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이겠지.
그렇지?"
"그래요, 우리 가족......그 동료는 모두 예술인, 흡혈귀 예술인,
아니 불사신 예술인이에요!"
"야아, 틀림없이 재미있는 자리가 되겠구나!"
라고 슈느파마울이 말하고 빙긋이 웃었습니다.
"그럼요. 굉장히 재미있어요."
룸피가 매우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기운없는 목소리로,
"그리고 대단히 배고 고파요!"
하고 덧붙였습니다.
"그럼 이제......"
슈느파마울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뷔페 파티를 열자! 자, 모두들 가자구. 안락한 방으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으니까."
슈느파마울이 먼저 가더니 미닫이를 열었습니다.
"안락한 방으로?"
룸피가 어이없는 투로 말하며 루디거를 쿡 찔렀습니다.
"사자굴로 가자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니?"
안톤도 진심으로 동감했습니다.
젠그루베의 안락한 방이라고? 대체 그 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6~10
10th 꼬마 흡혈귀의 한밤중의 파티 [5] -연습하면 흡혈귀가 될수 있다?-
▷ 틱톡아이
추천 0
조회 780
05.04.21 11:45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