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강명수, 2011년 10월 11일
참 오랜 세월이 지났 습니다. 제 아들을 유모차에 뉘여서 라보니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1994년부터 생애의 빛 편집인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애의 빛을 향하여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 아프고 슬프지만, 이 글은 제가 강목사님과 여러분께 남기는 마지막 호소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여러 번 주저하고 망설였지만, 성령께서 내게 주시는 음성과 부담 때문에 힘들게 이 글을 쓰게 되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인으로 처음 견고한 토대에서 일하게 된 때부터 교회관은 제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 였습니다. 견고한토대 월간지를 편집하면서 매달 마다 재림교회와 신학적 투쟁을 벌이는 글을 써야 했는데, 그때마다 교회관에 대한 주제는 생애의 빛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호하는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관에 대해서 생애의 빛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서 재림교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고 배척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애의 빛 편집실에서 나가는 교회관 기사들을 통해서오랜 세월동안 힘겨운 신학적 투쟁을 벌인 끝에 우리는 재림신앙을 사모하는 재림교인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 9월 29과 30일에 강병국 목사님께서 생애의 빛 본부와 지부의 모든 직원들에게 이 메일로 보낸 교회관은 지금까지 생애의 빛이 견지해온교회관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문제는 전체 직원들에게 확산시키기 전에 꼭 필요한 직원들이 모여서 함께 예언의 신을 연구하고 기도함으로써,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일이 선제되었으면 좋았을텐데, 강목사님께서 그런 과정없이 일방적으로 전체 직원들에게 이 문제를 오픈했다는 것이 참 아쉬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 교회관과 생애의 빛이 가야할 길에 관한 문제는 생애의 빛 전체 직원들과 생애의 빛을 지지해온 분들의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관 문제가 직원들에게 확산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제 거취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생애의 빛이 지금까지 유지해온 교회관과 강목사님께서 제시한 “새로운 교회관”을 비교해서 살펴보고, 생애의 빛 편집을 책임져왔던 사람으로서 교회관에 대한 제 소견을 직원 여러분들에게 나누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이 글은 생애의 빛 내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단지 편집인의 입장에서 교회관에 대한 교리를 깊이 있게 검토해 보기 위함임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년11월에 강병국 목사님께서는 생애의 빛 전체 직원들에게 생애의 빛 사업 방향에 대해서 이 메일을 보내셨는데, 그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2010년 11월 16일): “생애의 빛은 우리의 구도자들을 재림교회로 보내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의 형편이 너무나 나빠지고 있고,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만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두가지 면에 있어서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첫번째, 그 이메일을 받기 전까지 저와 본부 직원 들 중 어느 누구도 생애의 빛에서 구도자들을 더 이상 재림교회로 보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생애의 빛은 우리의 구도자들을 재림교회로 보내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하나의 문장은 생애의 빛이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교회관을 크게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제 마음 속에는 깊은 고민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강목사님 또한 저의 고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번째, 자영선교기관에서 교회관은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자영선교기관들에서도 교회관이 바뀌는 경우에 직원들이 기관을 떠나거나 기관이 둘로 분리되는 심각한 상황들이 생깁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강목사님께서 교회관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내용을 전체 직원들에 이 메일로 보내셨다는 사실이 제게는 참으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생애의 빛이 영혼들을 인도하는 뱡향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재림교회에 대하여 자영선교기관이 취해야 할 태도와 정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생애의 빛이 지금까지 유지해 온 교회관
1989년, 생애의 빛은 재림교회가 남은 교회로서 태동되었던 때의 복음을 그대로 보존하고 전수하기 위해 “견고한 토대”라는 이름의 재림신앙 월간지를 출판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생애의 빛은 재림교회와 분리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재림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위해서 세워졌습니다. 재림교회의 세속적 정신과 낮아진 표준을 지적해서 알려주기 위해서 곧바른 증언을 했고, 자유주의 복음의 문제를 알려주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된 재림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생애의 빛이 견고한토대라는 이름으로 시작될 때, 견고한토대의 중심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부담과 신학적 축이 있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과 백성들을 준비시킴
2. 재림교회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회복과 전파
3. 교회관
작년 11월에 이어서 금년 9월말, 강목사님께서는 위에 열거한 세가지 축 중에서 세번째 축인 교회관에 대해서 새로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1989년, 생애의 빛이 시작될 때에 많은 재림교인들이 생애의 빛을 지지해 주었는데, 그 이유는 위에 열거한 세가지 점이 성경과 예언의 신에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생애의 빛이 20년 전에 시작할 때, 요즘 강목사님이 제시하는 교회관처럼 “생애의 빛은 우리의 구도자들을 재림교회로 보내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형편이 너무나 나빠지고 있고,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만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면, 어떤 재림교인도 생애의 빛을 지지하거나 헌금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생애의 빛이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었던 미국 견고한토대 기관이나 하틀랜드 대학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교회관은 결국 생애의 빛이 재림교회 밖에서 어떤 형태의 새로운 교회 조직을 만들도록 이끌어갈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생애의 빛이 시작할 당시의 교회관은 주로 생애의 빛이 재림교단 밖에서 하나의 자영선교기관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재림교회 안에서 개혁 사업을 하기 원하지만, 교단에서 교권으로 억압하고 설 자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영선교기관을 세우게 된 점을 재림교인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교회인 재림교회를 향한 우리의 마음은 사랑과 충성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재림교회를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들어온 죄와 배도를 경고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목사님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재림교회에서 나를 문으로 쫓아내면 나는 창문을 통해서 교회로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조직이나 교파를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것이 생애의 빛이 시작될 때에 재림교회를 향하여 갖고 있던 마음이었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교회관입니다.
이러한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는 바벨론에서 나오는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연결시켜 왔던 것입니다. 진리를 붙잡고 나오는 영혼들에게 재림교회가 마지막 시대의 참된 남은 교회이지만, 현재 여러가지 신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세속주의에 빠져 있으므로 항상 깨어 경성하고 재림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본을 보이는 삶을 살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일요일 교회에서 나온 영혼 스스로가 생애의 빛 설교를 들으면서 가정에서 예배드리기 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재림교회를 정확하게 소개하고 동시에 본인 스스로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영혼을 도와주는 것이 예언의 신적이고, 재림교회를 마지막 남은 교회로서 존중하는 자영선교기관으로써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는 예언의 신 말씀이 구도자들을 재림교회로 인도하는 일에 열심을 낼 것을 수없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강병국 목사님이 제안한 새로운 교회관
지난 9월 말에 생애의 빛 전체 직원들에게 보낸 강목사님의 이 메일엔는 그 제목, “호소와 딜레마(1,2부)” 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생애의 빛이 당면한 딜레마와 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참된 재림기별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관에 대하여 접근할 때, 반드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생애의 빛 편집인으로 일하면서 교회관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다음과 같은 세가지 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늘 애를 썼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균형이 하트랜드 대학이나 미국인 견고한 토대와 같은 기관들이 지키고 있는 가이드 라인일 뿐 아니라 증언의 말씀과도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 재림교회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유일한 남은교회이지만, 자유주의 신학과 세속적 정신에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주의 백성들에게 곧바르게 알려줌.
- 화잇 부인은, 재림교회의 개혁사업을 돕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재림 교단과 행정적, 재정적으로 분리되어 운영하는 자영선교기관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재림교인들에게 계몽함.
- 자영선교기관으로서 어떤 형태의 교회 조직을 갖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함.
그러나 강목사님께서 2011년 9월말에 생애의 빛 전체 직원들에게 보낸 “호소와 딜레마 ”라는 교회관은 아쉽게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습니다. 재림교회의 타협과 자유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보낼 수 없다는 이론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호소와 딜레마(1,2부)”에서는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보낼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설명했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교회관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 재림교회는 바벨론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재림교회는 개신교회에서 나온 영혼들을 보내지 못할 정도로 타락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재림교회에 보내는 일은 비양심적인 것이다.
- 자유주의에 물든 재림교회의 형편 때문에 영혼들에게 재림교회를 추천할 수 없다. 그것이 생애의 빛이 처한 딜레마 이다. 현재 늘어나고 있는 가정 교회나 집회소들은 자발적으로 생기는 것이지 생애의 빛이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 예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므로,짐승의 표 환란이 올 때까지 영혼들을 재림교회의 타협과 세속적 가르침으로부터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을 재림교회 밖에서 유지시켜야 한다.
강목사님의 이 메일-“호소와 딜레마(1,2부)”에서 제시된 이러한 교회관 때문에 생애의 빛과 연관을 가진 가정교회와 집회소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토양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제 “호소와 딜레마(1,2부)”에서 제시된 논점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에 대신 게재하는 것입니다.
[논점 1] 재림교회는 바벨론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재림교회는 개신교회에서 나온 영혼들을 보내지 못할 정도로 타락했다. 그래서 영혼들을 재림교회에 보내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우리는 진리를 찾아서 나오는 영혼들에게 재림교회는 바벨론이 아닐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인도하시는 마지막 남은 교회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잇부인은 이런 면에 있어서 분명한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서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재림)교회가 아무리 연약하고 결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최고의 관심을 쏟으시는 이 지상의 유일한 목표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애타는 염려로써 끊임없이 당신의 교회를 살피시고 계시며 당신의 성령으로써 교회를 든든하게 하신다” (원고 155, 1902. 11. 22).
“호소와 딜레마(1,2부)”에서는 재림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소개했습니다. “재림교회의 그 기본 교리들이 성경적인 것이요, 그 기본 교리들을 공식적으로 바벨론의 가르침으로 바꾼 적이 없기 때문에 바벨론이라고 부르거나 그 곳에부터 나와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호소와 딜레마(1,2부)”는 재림교회를 바벨론이라고 부르거나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요일교회에서 나온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인도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재림교인들에게는 재림교회가 남은 교회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면서, 일요일 교회에서 나온 영혼들에게 재림교회를 소개해 주는 것은 비양심적인 처사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다음과 같은 일련의 표현들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2010년 11월 16일): “생애의 빛은 우리의 구도자들을 재림교회로 보내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호소와 딜레마”, 2011년 9월 30일): "그들(구도자들)이 자기들이 다니던 교회에 계속 참석하면서 개인과 가정적으로 안식일을 준수하면서 계속 다니던 교회에 출석하며 다른 영혼들을 구원하는 선교사 역할들을 감당하던지”
(상동): “우리의 전도를 받고 진리로 나오는 사람들을 재림교회로 가라고 추천하여 주는 것은 비양심적인 일입니다.“
생애의 빛으로 찾아 온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보내주면서 재림교회의 남은 교회로서의 사명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고 그 안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삶을 살면서 빛의 역할을 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정말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요? 지금까지 생애의 빛은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인도한 다음에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영적으로 돕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러나 “호소와 딜레마(1,2부)”는 일요일 교회에서 나온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인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교권주의요, 유대주의라고 하였습니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호소와 딜레마”, 2011년 9월 30일):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진리가 아닌 지옥에서 가져 온 횃불을 들고 강단에 선다고 하신 말씀들을 잘 알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진리로 나오는 사람들을 재림교회로 나가게 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교권주의요, 유대주의입니다.”
영혼들에게 재림교회를 소개하는 것은 교권주의도 아니고 유대주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재림교회가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라는 진리를 인정하는 자영선교인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태도입니다. 강목사님이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보내기를 꺼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염려 때문입니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호소와 딜레마”, 2011년 9월 30일): “그들(구도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서로 간증을 나누기 원하며, 영적인 분위기와 생명의 말씀들을 듣고 나누고 싶어하는 목마름이 너무나 강렬합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추천이나 권유로 재림교회를 나가게 되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실망과 딜레마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새롭게 거듭난 뜨거운 영혼들을 자유주의에 물들어 있는 뜨뜻미지근한 재림교회에 보낼 때 생기는 현상 때문에 걱정하는 강목사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영혼들을 재림교회에 보냈다가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안타까움과 염려 때문에 마지막 남은 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관을 새로운 것으로 바꿀 것이 아니라, 지난 20년동안 예언의 신으로 확증된 원래의 교회관 안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일요일교회에서 진리를 찾아 나온 영혼들을 하나님의 남은 교회로부터 분리되도록 인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화잇부인이 남긴 다음과 같은 경고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로 구성된 몸체(교회)에서 떨어져 나가서 그의 인간적인 저울로 (재림) 교회를 달아보기 시작하며 그들을 심판하기 시작할 때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그릇된 노선을 밟고있다. 안절부절하며 불안해 하는 남녀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인데 이들은 어떤 새로운 것을 궁리해 내기를 원하며 어떤 놀라운 일을 하기를 원한다. 사단은 이들이 그의 노선에서 행할 무엇인가를 줄 기회를 노린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할 일을 주셨다.” 원고 21, 1893(1956년 11월 8일자 리뷰 앤드 헤랄드에 실림). 기별317-19
“형제들이여, 그대에게 말하노니 주님께서는 그분이 일하실 한 단체를 조직하셨다. .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로 구성된 단체로부터 분리되어 나간다면 또한 그가 교회를 인간적인 기준으로 저울질하고 그 교회를 비판하는 말을 한다면 그대는 그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잘못된 길에 서 있는 것이다.” ― 3SM, 17, 18(1893).
어떤 영혼이 진리를 찾아서 생애의 빛까지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생애의 빛이 전하는 기별에 감동하여 안식일과 세천사 기별을 깨달은 것도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애의 빛을 통하여 진리를 깨달은 영혼을 재림교회로 보내주는 일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와 접촉하고 연결된 영혼을 우리가 끝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많은 문제들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호소와 딜레마”, 2011년 9월 28일):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들을 잘 알면서도, 우리가 스스로 그들에게 안식일 교회로 나가라고 인도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잘 알면서도, 그들에게 참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을 냉랭한 재림 교회로 가라고 추천해 준다는 것은 참으로 비양심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바벨론에서 나온 영혼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준이 낮아지고, 자유주의 복음이 재림교회를 휘젓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 아니라, 재림교회 속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서로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면서, 투쟁의 현장에서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강력하게 권면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라오디게아의 형편 가운데서 죽어가는 재림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을 주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증언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믿음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있는 교회를 가지고 계시지 않은가? 그분께서는 한 교회를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은 승리한 교회가 아니라 투쟁하는 교회이다. 곡식 밭에 가라지가 있는 것처럼 신자들 가운데 결점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유감이다. . .비록 교회 내에 죄악이 존재하고, 세상 끝날까지 존재할지라도 교회는 이 마지막 시대에 죄로 인해 오염되고 타락한 세상에 빛이 될 것이다. 연약하고, 흠이 많고, 책망과 경고와 교훈을 받을 필요가 있을지라도 그 교회는 여전히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최고의 관심을 쏟으시는 유일한 대상이다. “ 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63, 64, 67(1893).
우리는 바벨론에서 방금 나온 뜨거운 영혼들을 뜨뜻미지근한 재림교회에 보냄으로써 남은 교회 속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재림교회 속에 들어간 영혼들이 뜨거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이 담긴 책자와 CD를 공급해 주면서 그들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집회를 여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생애의 빛이 영혼들을 관리해 오던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재림교회 속에 가라지들이 많기 때문에 재림교회를 외면하거나, 바벨론을 박차고 나온 뜨거운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교회 안에서 죽어 가는 자들을 돕고 열심을 교회에 불어넣을 기회와 특권은 있을지라도 교회를 산산조각 낼 기회와 특권은 없다. . .교회는, 비록 가라지가 알곡 가운데 있을지라도, 교회를 생기 있게 하기 위하여 하늘의 분위기를 호흡하는 자들의 신선함과 영감을 필요로 한다.” 원고 21, 1893(1956년 11월 8일자 리뷰 앤드 헤랄드에 실림). 기별317-19
재림교회는 지금 생기를 잃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재림교회 안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돕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재림교회는지금 생애의 빛이 보내주는”하늘의 분위기를 호흡하는 자들의 신선함과 영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부디 기억해 주세요! 이것이 저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생애의 빛으로 몰려오는 뜨거운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보내주지 않을 때, 그들은 자연스럽게 생애의 빛 영향권 하에서 가정교회나 집회소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시간이 흘러가면 결국 남은 교회와 분리된 상태에서 세워진 많은 집회소와 그룹들 때문에 또 다른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재림교회 옆에 안식일을 지키는 생애의 빛 가정교회나 집회소들이 생기게 될 때, 그것이 정말 바람직한 모습일까요?
“호소와 딜레마 1,2,부”에서는 재림교회의 교단과 조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호소와 딜레마”, 2011년 9월 30일): “어떤 사람들은, 일요일 휴업령이 오면 대부분의 재림교인들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요, 또한 그러한 라오디게아 상태의 교인들은 오히려 우리를 핍박하는 가장 큰 원수들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재림교회가 끝까지 남아 있게 될 것이니, 그리고 하나님께서 재림교회를 통하여 복음 사업을 마치실 것이니 재림교회의 권위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예언의 신이 말하는 마지막 환란을 통과하게 되는 남은 교회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이지 교단과 조직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일요휴업령이 나서 재림교회의 은혜의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재림교회를 지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된 교회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은 교회에 대한 예언의 신의 사상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유일한 남은 교회였던 유대교회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타락과 배도에 빠져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대교회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들을 버리지 않았고, 그들 속에서 당신의 예언과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유대교회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선지자들을 일으키셨지만, 유대 교회 이외에 다른 교회들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남은 교회에게 은혜의 시간을 주시고, 그 시간이 마쳐질 때까지 그들을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재림교회의 은혜의 시간은 일요휴업령이 나서 재림교단이 법령에 굴복할 때까지 입니다. 그러나 재림교회가 교단 차원에서 일요휴업령에 타협해서 굴복할지라도 각 지방 교회 단위로 은혜의 시간이 각각 다르게 마쳐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지방교회는 짐승의 세력에 굴복할 것이지만, 어떤 교회는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지방 교회가 짐승의 압력에 굴복할지라도 그 속에 남아있는 어떤 재림교인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법에 충성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교회는 넘어질 것같이 보이지만, 충성스런 재림교인들은 끝까지 환란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남은 교회의 깃발을 들고 서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 교회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배도한 교회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충성된 것이 증명된 투쟁하는 교회의 신자들이 승리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마지막 사건들 61.
[논점 2] 자유주의에 물든 재림교회의 형편 때문에 영혼들에게 재림교회를 추천할 수 없다. 그것이 생애의 빛이 처한 딜레마 이다. 현재 늘어나고 있는 가정 교회나 집회소들은 자발적으로 생기는 것이지 생애의 빛이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증언의 말씀은 재림교회 이외에 어떤 형태의 조직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기초를 헐어 버릴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떤 형태의 새로운 조직도 구성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진리를 떠나 배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가려뽑은 기별 2권, 390(영문)(1905)
물론, 생애의 빛이 현재 어떤 교파나 체계적인 교회조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혼들에게 재림교회를 추천할 수 없다는 생각은 결국 생애의 빛과 연관된 가정교회와 집회소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호소와 딜레마”, 2011년 9월 22일): “한국에 가정 집회소들이 자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부산, 여수, 군산에도 집회소가 일어났습니다. 홍콩에 오기 전에 상주 집회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강목사님은 가정집회소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가정집회소들이 자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의도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생기는 집회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찾아온 영혼들에게 재림교회로 보내는 것을 비양심적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재림교회를 정확하게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 때문에 가정 집회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생애의 빛을 또 다른 딜레마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은 우리로 하여금 가정 집회소들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있다고 단언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생애의 빛은 영혼들이 가정교회나 집회소를 하도록 조장하거나 유도하고 있다”는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오랫동안 생애의 빛을 충성스럽게 지지해준 재림교인들을 잃어버리는 일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분명한 원칙을 세워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재림교회 밖에서 “어떤 형태의 새로운 조직도 구성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진리를 떠나 배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려 2권, 390(영문)(1905).
저는 가정교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 형편이나 자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정교회를 해야 할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생애의 빛이라는 하나의 자영선교기관 아래에 가정교회나 집회소들이 자라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가는 결정에 대해서 염려를 표하는 것입니다.
“호소와 딜레마 1,2부”는 생애의 빛을 찾아오는 영혼들에게 자유 선택권을 주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호소와 딜레마”, 2011년 9월 30일):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진리를 강력히 전하여 주고 그들의 결정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들이 다니던 교회에 계속 참석하면서 개인과 가정적으로 안식일을 준수하면서 계속 다니던 교회에 출석하며 다른 영혼들을 구원하는 선교사 역할들을 감당하던지, 아니면 나와서 우리의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전도하는 일을 감당하던지, 아니면 자기가 있는 곳에서 진리를 찾아 애쓰는 자들을 모아 가정 집회소를 만들어 예배를 드리는 일을 시작 하던지, 아니면 안식일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며 어렵지만 신앙 생활을 유지하던지, 그들의 개인의 선택에 맡길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좀더 분명한 공정함과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안식일 진리를 깨닫고 생애의 빛 지부를 찾아온 영혼들에게 재림교회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마지막 남은 교회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설명해야만 그들은 재림교회와 가정교회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목사님 자신도 재림교회로 영혼들을 보내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고, 생애의 빛 직원들도 강목사님의 그런 사상을 따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진리를 받아들인 영혼들에게 공평한 자유선택권이 주어질 수 있을까요? 실제로, 생애의 빛에서 운영하는 네이버의 “킹스 메신져” 카페에서 새로운 영혼들이 교회를 찾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경우 재림교회를 설명하는 답변은 없으며, 가정교회를 권고하면서 생애의 빛과 함께 예배드릴 것을 권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정직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기 바랍니다.
[논점 3] 예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므로, 짐승의 표 환란이 올 때까지 영혼들을 재림교회의 타협과 세속적 가르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을 재림교회 밖에서 유지시켜야 한다. (강목사님의 이메일 “호소와 딜레마”, 2011년 9월 30일):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그들을 타협과 세속적인 가르침과 그러한 정책에서 보호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동안 그들을 보호하며 그렇게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 곧 짐승의 표의 환란이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림교회에 영혼을 보내는 것이 비양심적이라고 느끼는 이유와 진리를 찾아온 영혼들에게 분명하게 재림교회를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재림시기의 급박성을 근거로해서 새로운 이론이 세워짐으로써 여러가지 무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곧 재림하실 것에 대한 믿음이 결국 영혼들을 재림교회 밖에서 보호/유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게 된 것입니다. 또한 비록 영혼들을 재림교회 밖에서 관리할지라도, 곧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때문에 생애의 빛이 거대 교파로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이론을 과연 예언의 신으로 입증할 수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또한 생애의 빛 산하에서 영혼들을 보호/유지하면 정말 안전이 보장되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아야 합니다. 만약 자영선교기관마다 저마다11시 일꾼들을 별도로 보호하고 유지한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수많은 분리된 그룹들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시골생활의 교리가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져서는 안되는 것처럼, 교회관에 대한 교리도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져서는 안됩니다. 화잇부인은 그녀의 시대에도 재림교회의 죄와 세속이 너무나 심각하다고 말씀하면서 심지어는 “지금 재림교회는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는 표현까지 사용했지만, 재림교회와 분리된 어떤 형태의 교회 조직도 엄격하게 금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지금은 가정예배와 집회소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에 인력과 시간을 사용하는 것보다, 기별을 낙옆처럼 뿌리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남은 교회로부터 분리되는 과정
재림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재림교회를 떠난 여러 분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남은 교회를 등지게 되는 과정들을 살펴보면 그들 모두 매우 유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재림교회와 완전히 분리된 그룹들도 처음에는 재림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외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 모두 재림교회의 세속주의와 땅에 떨어진 교회의 표준을 염려하고 지적하면서 그들의 개혁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자유주의가 밀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하나님께서 재림교회로부터 촛대를 옮기셨다”, “재림교회의 세속주의가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 등과 같은 표현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진리를 찾아 온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보내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재림교회가 타락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영혼들을 보낼 수 없다는 말은 분리주의자로 취급받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 재림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모든 분파들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분리주의자들은 영혼들을 재림교회의 세속주의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목적 하에 재림교회로부터 사람들을 불러내거나, 자신들이 얻은 구도자들을 재림교회로 보내지 않음으로써 분리되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조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교회관이 이러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교회관을 재림교회 앞에 투명하게 내놓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영혼들을 재림교회로 보내지 않는다”, “재림교회로 영혼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교권주의요 유대주의다” 등과 같은 말을 공개적으로 할 때, 여러가지 비난과 오해를 받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메일로 생애의 빛 직원들에게 보내진 “호소와 딜레마 1,2부”는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나누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강목사님의 교회관에 대한 소신을 밝힌 이 메일이 재림교회 연합회나 시조사로 흘러들어간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큰 이슈를 낳게 될 것이고, 그런 일이 생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교회관을 변증하고 옹호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생애의 빛 편집인으로서 생애의 빛 정체성을 예언의 신으로 입증하는 일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이 점은 우리 모두 크게 우려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말씀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방법
진리를 찾아서 밀려오는 영혼들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애의 빛이 당면한 딜레마를 하나님의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호소와 딜레마 1,2,부”에서 소개된 새로운 교회관은 너무 소극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일 재림교회에 영혼들을 보내면서, 우리가 그 영혼들과 꾸준하게 접촉하면서 모음과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고, 생애의 빛에 대한 재림교회의 인식까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이고 최선의 해결책이 아닐까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생애의 빛과 강목사님은 미국의 덕베쳘러 목사님이 책임자로 있는 어메이징 팩츠 선교기관처럼 일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왔습니다. “호소와 딜레마 1,2부”에서도”우리는 진실로 영혼들을 맞아 줄 수 있는 많은 재림교회들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강목사님의 이런 염원이 현실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미국 자영선교 기관인 어메이징 팩츠가 걸어온 길 속에서 그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어메이징 팩츠의 설립자인 죠크루스 목사님은 재림교회를 향하여 강력한 기별을 전하는 설교자였습니다. 재림교회의 세속화와 자유주의를 곧바르게 지적하는 기별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재림교단에서 죠크루스 목사님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죠크루스 목사님과 어메이징 팩츠는 진리를 찾아온 영혼들을 꾸준하게 재림교회로 보내주었습니다. 재림교회가 죠쿠르스 목사님과 그분의 미니스트리를 어떻게 취급하는가를 불문하고 영혼들을 재림교회 속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어메이징 팩츠에서 보내준 영혼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들이 재림교회 속에서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재림교인들은 어메이징 팩츠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림교회가 죠크루스 목사님의 남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어메이징 팩츠는 재림교단을 대표하는 전도 기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매우 흥미있는 사실은, 재림교회가 죠크루즈 목사님의 미니스트리에 대해서 문을 열은 다음부터, 죠크루스 목사님은 재림교회를 향하여 더욱 더 강력한 기별을 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죠크루스 목사님의 마음 속에 있는 재림교회에 대한 사랑이 교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결과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어메이징 팩츠는 생애의 빛과 동일한 복음을 전하는 기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재림교인들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메이징 팩츠가 걸어간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결정을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마지막 남은 교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를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 우리의 노력과 희생이 재림교회로부터 어떤 취급 받는가를 불문하고 새롭게 거듭난 뜨거운 영혼들을 계속해서 재림교회로보냄으로써 병들어 시들어가는 남은 교회를 회복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병든 남은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랜 세월동안 생애의 빛이 재림교회를 위해서 곧바른 증언을 했고, 참된 재림 신앙을 전파해 왔던 것처럼, 살아있는 영혼들을 재림교회 속으로 넣어줌으로써, 재림교회 속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자영선교인들은 남은교회를 위하여 가장 많이 희생하면서, 가장 무시받는 길을 걷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재림교회가 생애의 빛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생애의 빛도 영혼을 재림교회로 보낼 필요가 없다는 정신을 가진 직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자영선교인의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재림교회와 생애의 빛이 어떤 관계에 있든지 간에 영혼들을 인도하는 방향이 바뀌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직원들은 저의 이런 견해를 너무나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메이징 팩츠가 걸어간 길을 걷지 않고, 재림교회 분리되는 방향으로 영혼들을 몰고 갈 때, 결국 우리는 재림교회 밖에서 “어떤 형태의 조직”을 하게 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화잇부인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말이 가까워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종교적인 조직체로부터 분리되어 행동해야 하다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주님께로부터 이 사업에 있어서 각 사람이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9T 258)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너무 평가절하해서는안됩니다. 생애의 빛은 최근 몇 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하면서 재림교회 지도자들과 마주 앉아서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번에 한국 연합회장님이 강목사님과의 만남을 요청하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과거에 언제 재림교회의 지도자가 생애의 빛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접근했던 적이 있습니까? 저는 강목사님과 한국지부에서 그런 기회를 붙잡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교파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초교파적으로 일해 옴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그것이 결국 우리의 발목을 잡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안식일을 깨닫고 생애의 빛을 찾아오는 영혼들에게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의 사명을 분명히 소개해 줌으로서 그들이 그 속에서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생애의 빛 직원들에게 드리는 호소
1. 재림교회를 무시하는 정신과 재림교회를 여러 바벨론 교회 중의 하나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이러한 정신이 우리 속에 있다는 사실을 여러 직원들이 이미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들이 진리를 찾아온 영혼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애의 빛 집회에 찾아 온 사람들이 “내가 바벨론 교회를 나온 것처럼, 당신도 재림교회를 나와야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교회관은 교리 문제인 동시에 spirit(정신)과 attitude(태도)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성서적인 교회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마음 속에 깊은 곳에 있는 정신은 말과 태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재림교회를 바벨론이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우리의 정신과 태도를 통해서 분리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3.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화잇부인을 통해서 주신 이름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애의 빛 직원들 중에 “제칠일 안식일 개신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염려를 느끼게 됩니다. 생애의 빛 직원들 중 어떤 형제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애의 빛을 찾아오는 영혼들도 마지막 남은 교회에 대하여 아무런 느낌이나 부담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4. 미국에 있는 하트랜드 대학의 경우, 학생들과 직원들을 합치면 스스로 왠만한 크기의 교회를 만들수 있지만, 그들은 근처에 있는 재림교회에 가서 일반 재림교인들과 함께 예배드립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왜냐하면 재림교단 밖에서 독립된 교회를 갖는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5. 만일 생애의 빛이 분리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이야기가 확산되면, 한국 재림교회 역사에서 한동안 자영선교기관은 태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하여 생애의 빛이 재림교회로부터 핍박을 받지만, 동시에 존경을 받는 기관이 되기 바랍니다.
맺는 말씀
저는 지금도 자영선교기관의 필요성과 그 사명을 숭고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 속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분명하게 살아 있지만, 바벨론에서 나온 영혼들을 더 이상 재림교회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사상의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 소속되는 것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별개이다. 교회의 녹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외관상으로는 진실한 신자처럼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와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다. 그들은 교적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은혜의 내적인 역사는 마음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회 증언 5권 280)
제칠일 안식일 재림교회는 승리한 교회가 아니라 투쟁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투쟁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투쟁하는 교회 안에서 영혼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영선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언의 신이 인정하는 자영선교인의 정신이라는 사실을 부디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투쟁하는 재림교회 속에서 참된 복음과 재림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생애의 빛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지적하는 면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제가 잘못 판단한 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그림을 올바로 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진리로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드립니다. 끝까지 부족한 사람의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11년 10월 11일, 생애의 빛 전 편집인, 강명수 드림
참고: 라보니아 교회에 대해서
미국 죠지아에 있는 라보니아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에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골에 있다보니 주변에 한국 재림교회가 없었고, 영어 문제 때문에 대다수의 교인들이 미국 재림교회를 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라보니아 교회가 세워질 때에 자영선교기관(생애의 빛) 하에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의 자영선교기관 지도자들이 많은 염려를 표시했지만, 우리의 특별한 상황을 설명하여 동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라보니아 교회가 세워진 후에도 남부 합회에 십일금을 보내면서 재림교단 산하의 교회로 들어갈 것을 노력했지만, 교단 내에 있는 재림교회 목사님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과 시도를 통해서 라보니아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