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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은소정
로스팔로스를 떠나
MV 100007
일곱 번째 출항이다. 불볕더위가 한창이던 오후에는 뜸하더니, 해 지고 불 밝히니까 아이들이 모여든다. 미니 바이킹은 이내 만선이다. 늦게 발동 걸리는 날이 더 재미 좋은 법.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배 가장자리에 박힌 꼬마전구들이 요란하게 반짝거린다. 두껍게 덧칠한 검정 크레파스를 긁어내며 그리는 스크래치화 같다.
양쪽으로 우뚝 솟은 아파트 창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손으로 불빛들을 이어 하늘까지 가로지른다. 머리 위에 시간 구분선이 그려진다. 동티모르에서 별이 켜지는 밤하늘을 본 적이 있다. 하늘이 까매지기만을 기다렸다가 날이 어둡기 무섭게 빛을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별. 밀림에서는 생사의 구분이 따로 없다.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두 생경하게 다가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 잊어야 살 수 있다. 그러나 또 다 잊고는 살 수가 없다.
바이킹은 씨족사회가 해체되고 계급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완전한 국가를 만들지 못했다. 오랜 시간 부족 간에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르다, 바다로 눈을 돌려 정복 길에 나섰다. 비옥하지 않은 땅에서 여러 부족이 공평하게 나눠 먹고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의 본능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그들은 무법자가 되어 바다를 누볐다. 침략과 약탈, 전쟁은 그들의 삶 자체가 되었다. 그런데 바이킹을 두려워하던 많은 이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바이킹도 고향을 떠나기 전에 밭에 씨를 뿌리고 나갔다는 것이다.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여느 민족의 농부들처럼 땅에 감사하며 추수했다고 한다.
읽던 책을 덮는다. 바이킹의 항해는 무엇이었을까? 삶에의 몸부림? 하지만 그뿐. 동전의 다른 면을 본다고 동전의 색깔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그들에게 고마운 것은 바이킹이라는 이름과 그들의 이동 수단을 꼭 닮은 배를 가지고 먹고산다는 사실이다. 살기 위해 먼 바다를 휘저었던 그들처럼, 벌기 위해 도시 곳곳을 전전한다.
끝자리에 앉은 사내아이가 울음을 터트린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배를 멈춰야 한다. 페달에서 발을 뗀다. 배로 다가가 아이를 안아 내려준다. 어디선가 아이의 엄마가 달려와 아이를 데려간다. 엄마에게 안긴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사고라도 낸 양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편치 않다.
배가 출항한 이상 환불은 없다. 항해를 마치고 못 마치고는 오직 선택한 자의 몫이다. 항해 일지를 꺼낸다. ‘NI 52-5-06-4’ 국제 표준 도엽번호를 확인하고, ‘MV 100007’ 현재 좌표를 적는다. 비고란에 ‘낙오1’. 남은 자들은 타고난 뱃사람이기를 바라며 다시 페달을 밟는다. 처음에는 손으로 밀다가, 발로 구르고, 나중에 모터를 잠깐 돌려 속도를 유지한다. 자칫 가속도가 붙으면 사람도 배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배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탄력을 받으면 유능하고 늠름한 선장이 되어 선원들을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는 사명감에 찬 주문을 외운다.
“높이! 더 높이!”
선원들은 주문에 이끌려 아파트 옥상을 넘고 도시를 지나 바다로 향한다. 달빛이 출렁이는 바다 위에 배가 닿는다. 이제 선원들은 바빠진다. 제자리를 잡은 선원들이 노 저을 준비를 하고 닻을 올린다. 칼과 방패가 그려진 돛이 펄럭인다. 배 끝은 날렵하게 치솟아 있고 그 위에는 나무로 조각된 바이킹 뿔 투구가 달려 있다. 일렬로 배치된 노를 바라본다. 지중해 해적들이 타던 갤리선이 노를 2단, 3단으로 배치한 것에 비해 바이킹의 배는 모두 1단 배치 방식이다. 지중해는 평온한 바다라 맘껏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우리가 활동하는 북해는 거칠다. 이런 바다에서는 속도보다 생존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안전한 1단 방식이 알맞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선원들의 눈이 빛난다. 별 장식이 촘촘히 박혀 있는 밤바다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가자! 선원들이 일제히 노를 젓는다. 배가 천천히 물살을 가른다. 바람이 배에 감긴다. 얼굴에 이는 바람이 청량하다. 있는 힘껏 외친다.
“높이! 더 높이!”
WV 200009
눈을 뜬다. 식은땀에 오한이 난다.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는 꿈은 거의 비명으로 시작해 비명으로 끝난다.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도망치고 싶지만 어쩐 일인지 발이 바닥에 붙어 있다. 두 발 다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남자의 시커먼 손이 머리를 후려친다. 벽 쪽으로 나동그라진다. 단말마가 이어진다. 벽이 무너져 내린다. 몸을 짓누른다. 일어설 수도, 여자를 도울 수도 없다. 하이 톤의 비명이 끊겼다 이어진다.
멀어져야 할 소리가 오히려 검은 전깃줄처럼 선명해진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앉는다. 소리를 따라가 부엌 창문을 내다본다. 날이 어두운데도 나와 있는 사람이 상당하다. 여름 밤 아파트 단지의 활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차장 한쪽에 색 전구로 띠를 두른 놀이기구가 그네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소리의 근원지다. 바이킹에 탄 아이들과 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함께 소리를 질러댄다. 배를 실은 트럭 옆에 한 남자가 보인다. 그는 맥주 회사 로고가 찍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연신 발을 구른다. 그러면서 흥을 돋우어 주듯 추임새를 넣는데 뭐라고 하는지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스타킹을 신는데 종아리에 멍이 들어 있다. 손목도 시큰거린다. 어제 또 한 건 했나 보다.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주소를 부른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다음은 깜깜이다. 어디에서 내렸고 아파트 9층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억지로 기억을 더듬으려니 두통이 밀려온다. 왼손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집을 나선다. 계단을 내려가는 하이힐 굽 소리가 무겁다. 해머로 동 전체를 부수는 듯하다.
엘리베이터는 절대 타지 않는다. 놀이기구도 타지 않는다. 어릴 때 친구의 가족과 함께 놀이동산에 다녀온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때 유일하게 탄 놀이기구는 마법의 양탄자였다. 마법의 양탄자는 앞뒤로 흔들리다 한 바퀴 휙 돌기를 반복했다. 양탄자가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아랫배가 간지러웠다. 한 바퀴 돌았을 때에는 울렁증이 일었다. 친구는 두 손을 올려 만세를 부르며 깔깔거렸다. 친구 눈치를 보며 울면서 웃었다. 양탄자에서 내려와 조경수 아래에 구토를 했다. 화장실에 갈 새도 없었다.
매일같이 여자를 때리던 남자에게도 간혹 기분 좋은 날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남자가 천장 끝까지 올려주거나 목마를 태워줬다. 무섭고 겁이 났다. 속이 뒤틀려 내려달라고 울먹였다.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남자는 신나 했다. 더 높이 던졌다가 받고 더 오래 돌고 또 돌았다. 목마를 타면 그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지만, 눈 깜짝할 새에 휙 내던져질 것만 같아 늘 마음 졸였다.
지붕을 뚫고 날아간다. 구름을 지나고 옅은 별 하나에 손이 닿기 직전, 거꾸로 선 채 추락하기 시작한다. 아무 의지할 것 없는 운석이 되어 대기를 가른다. 갈수록 땅이 가까워진다. 머리가 내리꽂히는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난다. 어릴 때 꾸던 악몽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직 5층이다. 엘리베이터도 못 타면서 9층에 사는 꼴이라니. 새삼 수정 언니가 원망스럽다. 언니는 보도 뛸 때 만난 십년지기다. 사랑 같은 것은 안 할 줄 알았던 언니는 뒤늦게 유부남과 바람이 났다. 둘은 평생을 약속하며 도시 외곽에 아파트를 얻었다. 그리고 이삼일에 한 번 만나 사랑을 나눴다. 같이 산 지 이태 만에 유부남의 아내가 들이닥쳤다. 회사 기숙사를 핑계 삼은 이중생활치고는 오래 버틴 셈이었다.
재단 가위를 들고 온 그녀는 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시트만 갈가리 찢어놓았다. 손찌검은커녕 힐난의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돌아갔다. 지레 겁먹은 유부남은 현지 발령을 자원해 중국으로 내뺐다. 언니는 태어나 처음 꾸린 가정을 포기하지 못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던 중 전세금을 올려주어야 했고, 보다 못해 그것을 부담하고 들어왔다.
언니는 지금 병원에 있다. 밤일을 하면서 중국까지 오가니 체력이 남아날 리 없다. 언니가 쓰러지던 날, 의사는 전문직 여성에게 하듯, 업무가 많으셨나 봐요, 과로예요 했다. 미련하기는……. 사나흘 쉬면서 몇 가지 검사를 더 받기로 했다. 언니를 입원시키면서 일이고 중국이고 당장 때려치우고 들여앉혀야겠다고 생각했다.
후문 경비실 앞에 흰색 카니발이 서 있다. 뛰다시피 가서 차에 탄다. 운전하는 영민이는 여기까지 오는 걸 못마땅해한다. 오피스텔이나 근처 모텔에서 한꺼번에 태우면 될 일을 진작 한물간 늙다리까지 모시러 다니는 게 배알이 꼴릴 만도 하다. 미안한 마음에 팔짱을 끼며 농담을 던진다.
"바람도 쐬고 좋지? 누나도 여기가 좋아서 있는 게 아니란다. 누라를 이해해다오."
팔을 푼 영민이가 담배를 꺼내 문다. 불을 붙여준다. 에어컨을 끄고 차창을 내린다. 이런 애들은 오래 못 간다. 어릴 때야 노는 게 좋으니까 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만,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재미없으면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 잘해야 어디 지배인으로 풀리고 그것도 안 되면 내내 꼬붕 노릇만 하다 나이 들어 후회한다. 하긴 꼬붕이나 늙다리나.
MV 300006
아이들의 함성에 맞춰 맹렬히 진두지휘하는데 그녀가 지나간다. 어제와 색만 다른 민소매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었다. 향수도 진하게 뿌렸을 것 같다. 데이트라도 가는지 후문 쪽으로 뛴다. 오후에 문 열자마자 달려 나올 줄 알았다. 뻔뻔한 건지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그녀의 다소곳한 사과를 기대했던 자신이 겸연쩍다.
어젯밤 마지막 선원들과 북해를 누비고 있을 때였다. 돌아간다! 모두가 기다리는 곳으로! 고향으로 뱃머리를 돌리던 찰나, 어디선가 나타난 불청객이 선장의 뺨을 때렸다. 노란 파마머리를 대충 틀어 올린 젊은 여자였다. 순식간에 배는 멈추었고, 선원들은 놀란 토끼가 되었다. 여자는 비틀대며 배 입구로 올라가더니 인질이라도 구해내듯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 배 밖으로 내려놓았다. 그녀의 허리를 조인 은색 벨트가 차랑거렸다. 웃을지 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던 아이들은 금세 사라졌다. 고요한 바다에 포효하는 고래라도 나타난 듯 긴장이 감돌았다.
“무서워하는 거 안 보여? 동네 떠나가라 소리 지르고 난리를 치는데 높이는 무슨 얼어 죽을 높이야?”
그녀는 닻도 제대로 못 내린 배를 발로 차며 욕을 퍼부었다. 한바탕 해대는 그녀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잠시 땅을 보고 서 있던 그녀가 갑자기 배 끝으로 갔다. 바이킹의 자존심인 뿔 투구를 좌우로 잡아당기다가 이내 주먹으로 내리쳤다.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다. 트럭에 따라 올라가 그녀를 끌어내려 했다. 그녀는 완강히 버텼다. 보기와 다르게 손아귀 힘이 셌다. 몇 분간 옥신각신하다 우리 둘 다 계단을 굴렀다. 그야말로 묻지마 봉변에 화가 치밀었다. 한 대 맞으면 술이 깨겠지 싶었다. 마음먹고 손을 올리는데, 조개구이집 털보형님이 달려와 말렸다.
“고마해라. 이짝 동 사는 안데, 술만 무면 저칸다. 눈에 뵈는 것 없는 짐승맹키로 죽자고 안 댐비나. 그마이 하다 가겠지 했는데, 오늘 니한테는 더 심한 거 같데이. 그케도 단골이라꼬, 내 이래 달려 왔다 아이가.”
문제가 커져서 좋을 게 없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영업에 제동이 걸려서는 안 되었다. 주민들이 시끄럽단다, 아이들이 무서워한다, 위험한 놀이기구다 등등의 사유로 앞서 여러 번 쫓겨나지 않았던가. 장터 사람들과 추렴해 낸 부녀회 기금도 못 뽑고 이틀 만에 나갈 수는 없었다. 언제나 당하는 쪽만 억울하다.
섭섭함을 누르며 그녀가 사는 아파트를 올려다보는데 아까부터 트럭 주위를 돌던 개가 끙끙거린다. 어제 아이들이 군것질거리를 던져주던 그 녀석이다. 아이들은 녀석을 ‘숙자’라고 불렀다. 이름만 듣고 암놈인 줄 알았는데, 배 밑을 보니 수놈이다. 덥수룩한 털이 군데군데 뭉쳐 있는 행색으로 봐서 숙자의 성은 ‘노’일 것 같다. 휘파람으로 알은 체하자 가까이 온다. 의자 앞에 턱 하니 앉아 설렁설렁 꼬리까지 친다. 잿빛 털 사이로 검은 눈이 보인다. 무언가 원하고 또 원망하는 눈빛.
동티모르에 간 것은 내전 후의 평화 유지와 복구 작업 지원을 위해서였다. 인도네시아 군이 철수한 섬은 UN 평화유지군이라는 간판이 무색하리만치 평화로웠다. 실탄을 가지고 다녔지만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로스팔로스에서 원주민에게 고기를 배달하는 차를 운전했다. 로스팔로스는 그들이 쓰는 테툼어로 ‘넘쳐흐르는 땅’이랬다. 길고 긴 싸움을 마친 주민들의 얼굴엔 고단함만이 넘쳐흘렀다.
자주 가던 마을에서 군인을 잘 따르는 떠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털이 짧고 다리가 긴 누렁이였다. 녀석에게 ‘모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마음 둘 곳 없던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함께 고기를 배달하고 밥을 나눠 먹었다. 바다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고 모래밭을 뒹굴었다. 녀석과 같이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철수 명령이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할 만큼 정이 들었다.
그날도 막사 안에서 모래와 책을 읽고 있었다. 해군함에서 얻은 독도법 소책이었다. 티모르 섬 도시들의 좌표를 더듬더듬 읽으며 관측병 흉내를 냈다. 그러다 마음대로 사람과 위치를 알파벳으로 표기하고 특이점을 숫자로 나타낸 고유 좌표를 찍고 놀 때였다. 별안간 밖에서 총성이 울렸다. 모두 반사적으로 뛰어나갔다.
중대장이었다. 권총으로 여섯 마리의 개를 죽이고 있었다. 어쩌다가 육지에서 건너온 떠돌이 개 중에는 눈 색깔이 파랗거나 하얀 녀석들이 있었다. 병에 걸린 게 아니라 타고난 색 자체가 그런 거였다. 중대장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의무병을 불러 광견병 진단을 내리게 했다.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길고 긴 평화를 불안해하던 중대장이 살기를 참지 못하고 기어이 일을 낸 것이었다. 총 맞은 개들은 파랗고 하얀 눈을 멍하니 뜬 채 죽어 있었다.
조용하던 모래가 중대장을 향해 눈을 치떴다. 뾰족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서 마구 짖어댔다. 끌어안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뛰어나가 그의 허벅지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모래는 분명 친구들의 억울함을 울부짖고 있었다. 그제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그가 실쭉 웃었다. 이제 끝난 줄 알았다. 흥분해서 허연 침까지 흘리는 모래를 안고 뒤돌았다. 한 걸음 떼는데 뒤통수에 그의 목소리가 꽂혔다.
“그 개새끼 내려놔. 명령이다!”
머릿속이 싸했다.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중대장을 죽이고 모래를 살리고 싶었다. 정확히 말해서, 모래를 살리려면 중대장을 죽여야만 했다. 안 그래도 보잘것없던 생의 좌표가 잘게 쪼개진 구역들 사이에서 허우적댔다.
“뛰어!”
모래를 내려놓으며 중대장을 향해 돌진했다. 머리로 그의 허리춤을 받았다. 뒤로 넘어간 그를 재빨리 깔고 앉았다. 투실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쉼 없이 가격했다. 사람들이 달려와 우리를 떼어냈다. 다행히 모래는 보이지 않았다.
사건 이후, 모래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전쟁보다 무서운 평화였다. 동티모르에서 돌아오자마자 육군교도소로 직송되었다. 죄목은 상사 폭행, 하극상이었다. 살인미수일 줄 알았던 중대장은 그가 겨눈 총이 비어 있었다는 이유로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모래가 새끼들을 데리고 부대 앞 백사장에 나타난 꿈을 꾼 날 출소했다. 동기들보다 빨리 제대했지만 불명예였고, 오라는 데 없는 전과자였다.
포장마차에서 산 순대 일 인분을 숙자 앞에 놓아준다. 주인에게 부탁해 간과 허파를 많이 넣었다. 숙자는 검정 비닐봉지 주변을 돌다가 내처 코를 박고 먹는다. 숙자 앞으로 아이들이 선다. 손에 천 원짜리 지폐를 들고 있다. 문득 아이들 코 묻은 돈이라는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그런 돈이나 빼먹는 작자는 아니다. 임무에 충실한 선장일 뿐이다.
선원들을 승선시키고 안전 바를 내린다. 기대감 가득한 선원들의 눈을 보면 다리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의자에 앉아 슬슬 페달을 밟는다. 새로이 출항이다. 알록달록 불을 밝힌 배가 진자 운동을 한다. 발을 빠르게 움직일수록 진자 주기가 짧아진다. 자연스럽게 페달에서 모터로 연결한다. 밤바다에 가슴이 트인 선원들이 환호한다. 흥이 난 선장은 목청껏 주문을 외친다.
“높이! 더 높이!” WV 400055
금요일 밤에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와야 한다. 일주일치 피로를 풀겠다고 일 년 갈 피로를 얹어주는 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달에 맺은 5대 5 계약이 힘이 된다. 기본 고객은 8대 2 그대로인 대신 등록된 단골, 정액권 고객, 고객 지정 예약 시 5대 5로 수당이 계산된다. 그 이하로는 일하려 들지 않는 애기들 잡으려고 실장이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좀 모아봐야겠다. 이자도 안 나오는 수정 언니 전세금에 돈이 묶여 있으니……. 요즘 인기라는 자산관리통장이라도 하나 만들까 싶다.
확실히 어린 애들은 다르다. 모이면 CMA, 펀드, 주식 따위를 화제로 삼는다. 어떤 금융의 어느 지점에 대박 매니저가 있다더라, 얼마 전 상장된 중소기업에서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더라. 언제부터 이런 일로 돈 모으고 살았다고 프리랜서 행세들이다. 그래도 배울 건 배워야 살아남는다. 화장하는 동안 열심히 귀동냥을 한다.
화장을 마무리할 즈음 휴대폰 액정화면에 문자 메시지가 뜬다. 소나무방. 웰빙 시대답게 테마방으로 바뀐 실내는 전보다 훨씬 안락하다. 방문을 열자 솔향이 훅 끼쳐온다. 아무도 없다. 푸른 조명 아래 소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다. 스파 안에도 솔방울이 걸려 있다. 탕 안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면 삼림욕이 따로 없다. 고객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마을 뒷산에 널린 게 소나무다. 마누라랑 애들 데리고 산에 갈 생각은 안 하는 치들이 괜히 이런 데 와서 웰빙 운운하며 소나무 찾는다.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남자는 오른손이 없었다. 그 부분에는 사계절 내내 검은 가죽 장갑이 끼워져 있었는데, 항상 그 장갑이 벗겨지면 어쩌나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론 남자의 빈 손목이 궁금했다. 남자는 열 마리의 플라스틱 동물이 스프링으로 매달려 있는 리어카를 끌었다. 스무 곡의 동요가 진종일 반복되는 리어카였다. 리어카 옆에서는 여자가 꽃을 팔았다. 철 양동이를 앞에 놓고 목욕탕 의자에 앉은 여자는 일주일에 사흘은 퉁퉁 부은 얼굴이었다. 배꼽 언저리의 공기구멍을 열면 금세 쭈그러들 고무 튜브 같았다.
아이들은 남자에게 백 원씩을 내고 동물 위에 올라탔다. 아이들 코 묻은 돈이라는 말은 그때 배웠다. 수시로 남자에게 맞던 여자도 가끔 악다구니를 썼다. 남자가 아이들 코 묻은 돈으로 술을 퍼마시고 노름을 하거나 복권을 왕창 샀을 때였다.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여자를 흠씬 두들기고 어린 딸을 높이 던졌다 받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리어카의 동물 중에서 귀가 큰 코끼리를 좋아했다. 텔레비전에서 아기 코끼리 목욕시켜주는 엄마 코끼리를 본 후였다. 코끼리와 친해지면 공중에서 아랫배 간지러운 증상이 고쳐질 것 같았다. 코끼리를 타고 다른 동물들과 경주하고 싶었다. 스프링에 몸을 맡기고 격렬하게 흔들고 싶었다. 하나 남자의 눈치만 보고 있던 어느 일요일, 빚쟁이들이 몰려와 리어카를 끌어 가버렸다. 길바닥에 꽃 양동이가 엎어졌고, 멍해진 여자는 한숨 대신 쉬이익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고객이 들어온다. 큰 덩치에 비해 머리는 작고 얼굴이 발갛다. 초저녁부터 한 잔 걸친 모양이다. 이런 고객은 대개 마누라가 엄한 부류로, 술 한 잔 하고 2차로 안마받고 열두 시 전에 집에 들어간다. 번들거리는 얼굴을 감추려고 집 앞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전기구이 통닭을 산다. 계산하면서 시간을 좀 벌어 옷에 닭 냄새를 배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꽤나 치밀한 부류인 만큼 구석구석 요구 사항도 많을 것이다. 첫 고객부터 땀 좀 빼게 생겼다.
퇴근길, 아파트 앞에 다다르자 한 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조개구이집으로 향한다. 구석자리를 잡고 앉자 털보 사장이 눈인사를 건넨다. 그러더니 웬 남자를 끌고 와 앞에 앉힌다. 화해하라며 소주 한 병까지 놓고 간다. 화해라니? 털보의 말이 의아하다. 남자는 이미 어지간히 취해 있다. 가만히 보니 옷차림이 낯익다. 주차장 바이킹, 하려는데 남자가 버럭 화를 낸다.
“내 배가 그렇게 싫어요? 왜 멀쩡한 남의 배를 못살게 구냐고!”
종아리에 멍이 든 까닭을 알겠다. 술잔을 채워 연거푸 마신다. 남자의 잔도 채워준다. 말없이 서너 잔을 주고받는다. 남자는 애들 코 묻은 돈 모아서 당신 보란 듯이 배를 살 거란다. 사람 태우는 진짜 배.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어버린다. 그놈의 코 묻은 돈 얘길 또 떠들었나 보다. 수그러들었던 남자가 재차 언성을 높인다.
“웃지 말아요. 그러는 댁은 뭐하는데? 대체 뭔 일을 하길래 이 오밤중에……. 거, 술 취해서 아무한테나 시비 걸고 그러면 안 돼요.”
“배 타요.”
명료한 답에 일순 남자의 눈빛이 흔들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 배도 배니까. 우스갯소리로 이해했는지 곧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조개가 늦었뿐네. 우째 둘이 화기애애한 기가? 화기애매한 기가? 코오드만 맞으매 이래 친구로 지내는 것도 좋다카이. 야야, 니 그카다 야 연이틀 업어뿌는 거 아이가.”
모듬 조개 접시와 소주를 들고 온 털보가 남자의 어깨를 두드린다. 단골보다 몇 번 안 봤을 남자와 더 친해 보인다. 얼굴이 홧홧해진다. 술 먹고 소동만 부린 게 아니었다. 싱겁게 웃은 남자가 석쇠에 조개를 올려놓으며 묻는다.
“그래, 어디 가봤어요?”
“세부.”
갖다 붙이고 보니 수정 언니가 노래 부르던 섬이다. 일곱 빛깔의 바다를 가졌다는 남쪽의 여왕섬 세부.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 세계적인 휴양도시라고 했다. 언니는 유부남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어딘가에 가고 싶어 했다. 삼백삼십 년에 이르는 스페인 침략을 견디며, 필리핀에서 유일하게 스페인과 맞서 싸워 이긴 적이 있다는 그곳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고도 했다. 그러나 둘은 떠나지 못했다. 그 흔한 대하 축제 한 번 간 적이 없다. 세부에 대해 주워들은 대로 늘어놓는다. 남자 역시 들리는 대로 주워 삼키는 눈치다. 남자에게 배를 사서 어디에 갈 거냐고 묻는다.
“바다.”
짧은 한마디에 조개가 움직인다. 바다라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입을 짝 벌린다. 바다에 살고 싶어요, 바다는 넓고 깊어서 억울한 일도 말 못할 일도 없을 테니. 자기도 모르게 들뜬 남자가 금방이라도 바다에 뛰어들 기세로 말한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바닷가 모래밭을 거니는 것처럼 먼 곳을 응시한다. 술이 오른다. 몸이 자꾸 늘어진다. 미안하다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돈다.
MV 500369
여자가 술상에 엎어진다. 첫인상과 달리 얌전히 잠이 든다. 귀여운 구석이 있는 여자다. 털보 형님 말대로 여자를 또 업는다. 그나저나 9층까지 어떻게 올라갈지 걱정이다. 어제 여자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겠다고 버텼다. 선원 잃고 선장까지 잃은 배를 난파선처럼 버려두고, 쓰러진 여자를 업은 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무슨 사자의 관이라도 되는 양 발버둥을 쳤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했으면서도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는 도무지 놓지 않았다.
삼 층씩 끊어 쉬며 올라간다. 여자는 어린애 앙앙대듯 비밀번호를 댄다. 문을 열자마자 거실 소파에 여자를 팽개친다. 맞은편 소파에 눕는다.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천장을 받치고 있는 사방의 벽들이 빙글빙글 돈다. 몸이 떠오른다. 천장이 차차 가까워진다. 옆으로 돌아누우니 여자가 보인다. 벽은 계속 돈다. 천장에 누워 소파를 이고 있는 여자를 올려다본다. 뱅뱅 도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여자가 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소용돌이가 일시 정지된다. 탐스럽게 구불거리는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푸르게 변한다. 에메랄드빛 물결이다. 세부의 바다가 뇌리를 스치는 순간 바닥은 바다가 되어 출렁인다.
물 위의 여자에게로 간다. 몸이 바다에 닿는다. 뜻밖에 여자가 눈을 뜬다. 이제 항해를 시작하자고 한다. 서로에게 닻을 내린다. 하나 된 배가 천천히 움직인다. 바다 속에서 진주를 머금은 조개가 입을 벌린다. 연분홍색 산호는 손을 흔든다. 광활한 사탕수수 섬을 지나자, 뭉게구름이 얕게 내려앉은 바다가 펼쳐진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진풍경이다. 한 쌍의 연인이 다정하게 해변을 걷는다. 흰 포말이 모래를 적신다. 여기가 바로 세부다. 여자가 탄성을 내지른다. 속도를 높여 세부 깊숙이 들어간다. 열대 우림 사이로 식민지 시대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여자가 얼굴을 찡그린다. 마젤란이 세웠다는 나무 십자가와 교회, 낡은 성곽과 요새가 상처처럼 남아 있다.
여자를 다시 바다로 이끈다. 후텁지근한 적도를 지나 남회귀선을 통과한다. 아프리카 동쪽에 위치한 프랑스령 레위지옹이 보인다. 여자에게 아프리카에 있는데 왜 프랑스 땅이냐고 묻는다. 샐풋 웃은 여자가 필리핀 해에 있는 괌은 미국 땅이라고 답한다. 아프리카를 크게 돌아 지중해로 향한다. 세부를 침략했던 스페인이 보인다. 여자가 고개를 돌린다. 더, 더,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드디어 북해에 진입한다. 바다가 거칠어진다. 바이킹의 배들이 안개를 헤치고 전진한다. 그 뒤를 3단으로 노를 젓는 갤리선이 따라온다. 바이킹과 나란히 북해를 거슬러 오른다. 갤리선과의 거리가 점차 벌어진다. 여자의 호흡이 가빠진다. 풍랑이 배를 덮쳐도 우리는 묵묵히 나아간다. 저 멀리 부두에서 가족들이 손을 흔든다. 바이킹도 뿔 투구를 벗어 들고 흔든다. 가족들 뒤로 황금벌이 넘실댄다. 바이킹이 만족스럽게 웃는다.
펑, 폭죽이 터진다. 귀환을 축하하는 메시지다. 몸을 뒤틀던 여자가 눈물을 흘린다. 머리 위에 오색 불꽃이 피어오른다.
WV 600009
눈을 떴을 때 남자는 옆에 없었다. 찬물에 샤워를 했다. 이상하게 몸에서 짠내가 났다. 소금기가 쉽게 가시지 않는 바닷바람이 불었다.
수정 언니에게 가려고 준비할 때 휴대폰이 울린다. 노인 요양소라는 곳에서 낯선 이름을 물어온다. 곧 아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급하게 수화기를 내리는데 상대방이 그의 죽음을 알린다.
전쟁에서 오른손을 잃고 동물 리어카를 끌던 남자, 수시로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집에서는 폭력을 휘두르던 남자가 죽었다. 기분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목마를 태우고, 높이 들어올려 서울 구경을 시키던 그 남자가 죽었다. 겨우 이름 석 자가 희미해진 사이, 그늘진 한쪽 구석방에서 죽어 버렸단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의 죽음처럼 받아들이고 싶다. 그것이 마땅하다. 아버지라는 작자를 변명 삼아 악착같이 배를 탔으니.
무심히 화장을 하는데, 화장대 거울 안에 꽃을 든 아버지가 서 있다. 실장에게 내쫓기던 차림 그대로다. 검정 매직으로 굵게 쓴, 꽃 사세요. 가슴팍에 종이 팻말도 전과 같다. 감색 털모자를 쓴 트럼프 병정이 서툴게 입꼬리를 올린다. 생전에 본 적 없는 미소다. 가죽 장갑을 벗은 온전한 손으로 장미 한 송이를 내민다. 잡고 나면 어서 올라타라고 어깨라도 들이밀까 봐 외면했던, 그 손이다.
기습한파가 닥쳤던 초겨울. 때 이른 추위에 백화점 모피가 동났다고 조잘대는 애기들 틈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마스카라를 덧칠하는데 늙수그레한 남자가 들어왔다. 한 송이씩 포장된 장미 다발을 안고 꾸벅 인사했다. 이미 여러 해 술에 기대 살아온 듯 몸을 심하게 떨었다. 눈이 퀭한 남자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꽃을 디밀었다. 관심 없이 자리에 앉는데 눈앞에 불쑥 장미가 피었다. 떠는 손보다 반대쪽 가죽 장갑이 먼저 보였다. 급히 눈길을 거뒀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남자가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많아 보였다. 남자도 한순간 주춤했다. 늦게 알고 쫓아온 실장이 개시도 안 했는데 웬 비렁뱅이냐며 성을 냈다. 남자는 실장의 구둣발에 채여 쫓겨났다.
거울 속 아버지의 어깨가 서서히 움츠러든다. 우물거리는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입가에 팔자 주름만 깊어진다. 할 말이 남았었나, 당신. 두려움과 반가움 사이에서 부유하던 손을 내민다. 딸의 두 손이 장미를 향하자, 꽃사래를 친다. 곱게 자란 꽃잎이 후드득 떨어진다. 비로소 마음 편히 강을 건널 수 있다는 듯이 애써 웃음 짓는다. 누런 이가 환하다. 빈 가지를 든 채 뒤돌아선다. 담배와 껌 있습니다. 그림자 같은 종이 팻말이 얼른거린다. 축 처진 뒷모습이 점점 뿌예진다.
상대방 눈치를 보며 울면서 웃는다. 수화기 속에서 말이 이어진다. 딸이 하나 있는데 어릴 때 목마 타는 것을 좋아했다고,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지만 지은 죄가 많아 그럴 수 없다셨어요. 돌아가시고 보니 장갑 속에 명함 한 장이……. 전화를 끊는다. 아득하고 어지럽다. 헐거워진 몸 사이로 바다와 세부, 남자와 바이킹, 아버지가 하얀 파도처럼 드나든다.
MW 70000001
떠날 시간이다. 노점을 해체하는 상인들의 걸음에서 고단함이 뚝뚝 떨어진다. 미니 바이킹의 선장도 다음 출항을 위해 트럭에 오른다.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가 짤랑거린다. 조수석에 앉은 숙자가 꼬리를 흔든다. 녀석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 창틀에 발을 얹고 내다보는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다, 여자의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불이 켜져 있다. 무인도에서 흘러나오는 생존자의 신호 같기도 하고, 밤길을 비춰주는 작은 섬의 등대 같기도 하다.
쓰러지기 전에 여자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이 꼭 세상이 건네는 위안처럼 들렸다.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바다에 가면 필요 없는 말일지 모르니, 육지에 있는 동안 한 번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시동을 걸고 핸들을 잡는다. 누군가 반쯤 열린 창문을 두드린다. 여자다. 뛰어내려와 숨이 찬 목소리다.
“한 번 태워 줘요.”
여자가 뒤에 실린 바이킹을 가리킨다. 두어 번 컹컹대던 숙자가 운전석과 창을 번갈아본다. 다소 뜨악한 여자의 요청을 수락한다. 도리어 기다린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지기까지 한다. 여자를 차에 태운다. 인적 뜸한 강쪽으로 차를 몬다. 우리가 빠져나온 아파트 단지가 룸미러에 비친다. 평지에 비죽 솟은 아파트에 저녁 놀빛이 찰랑댄다. 옆 좌석에서 잠시 숨을 고른 여자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다. 진짜 탈 수 있겠냐고 묻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다.
“바이킹, 뭔지나 알고 타겠다는 거요?”
“해적…… 아닌가요?”
순진한 대답이다. 머릿속에 언뜻, 추수 후 흥겹게 한 판 노는 바이킹의 축제가 그려진다. 춤과 노래를 즐기는 유쾌한 민족, 자유인으로서 일부일처제의 가정을 꾸린 독립적인 농민이라는 책 구절도 떠오른다. 여자에게, 어쩌면 그들은 단순히 바다의 울렁거림이 좋아 배를 타고 나간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려다 만다.
일차로 다리 위에 차를 세운다. 배를 덮은 파란 천막을 걷어낸다. 배는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듯 위용 있는 모습이다. 서둘러 색 전구에 불을 밝힌다. 돛과 갑판이 환해진다. 여자는 난간에 서서 강을 내려다본다. 물살이 제법 세다. 여자에게 손을 내민다. 손을 잡은 여자는 긴장한 표정으로 배에 오른다.
여자에게서 영점이 보인다. NI 52-0-00-0, MW 70000001. 도엽번호를 수정하고 여자와 교차한 좌표명을 정한다. 여섯보다 상세한 여덟 개의 숫자. 다음 좌표는 WM 80000002일 것이다.
출항! 닻을 올리고 천천히 노를 젓는다. 양손으로 밀다가 발로 페달을 밟는다. 점차 속도를 높인다. 여자가 눈을 질끈 감는다. 안전 바를 잡은 여자의 손이 몹시 떨린다. 페달에서 모터로 연결해놓고 몸을 날려 배에 오른다. 여자의 뒷줄에 앉는다. 고개 숙인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여자의 귀에 대고 말한다. 미안해요. 밤하늘에 켜진 별들이 끝 간 데 없는 뱃길을 그려낸다. 배 한 척이 그 위를 미끄러져 나간다.
우리는 로스팔로스를 떠나, 바다로 간다. 선장이 막 주문을 외우려는데 새로 온 선원이 온몸을 달달 떨며 외친다.
“높이! 더 높이!”
-끝-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심사평
삶의 희망·절망을 소설 속 이야기로 잘 살려, 짜임새 면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 유미숙의 ‘산티아고 가는 길’, 은소정의 ‘로스팔로스를 떠나’ , 심강우의 ‘구멍’, 이에렌의 ‘살인자의 몽타쥬’를 주목해 읽었다. 소설의 품격을 잘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네 작품은 모두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출생과 성장의 비밀을 둘러싼, 자신은 결코 원하지 않았으나 속수무책으로 그렇게 되어버린, 슬픈 인생의 원죄에 관한 질문을 담고 있다.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어머니의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작중 화자가 어머니, 혹은 자신에 대한 용서에 이르는 결말이 아쉬웠다. ‘구멍’은 치밀한 구성과 묘사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문장도 안정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 삶이 통째로 구멍에 빠져 그 궤도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매력적인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는 있으나 짧은 단편 소설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읽는 사람마저 그 이야기를 쫓아가기가 버겁다는 느낌이 든다. 소설의 규격에 맞게 이야기의 크기를 맞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살인자의 몽타쥬’는 도입부에서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불법낙태전문의사가 생명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서술이 심리적인 기법으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흥미로운 주제와 구성이기는 했으나 작위적인 설정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독자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기 전에 작가의 주장이 먼저 앞섰다. 그 주장이 특히 새롭지도 않다는 느낌이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로스팔로스를 떠나’는 소설의 짜임새 면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삶의 밑바닥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남자는 미니바이킹이라는 놀이기구를 운영하며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벌어 살아가는 사람이고 여자는 보도방에서 몸을 파는 사람이다. 바이킹들은 왜 바다로 나갔을까, 작가는 묻는다. 바다로 나가기 전에 논밭에 씨를 뿌리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또 묻는다. 어쩌면 거친 바다의 흔들림, 출렁임이 그들을 그곳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 대답하기도 한다. 이 소설의 장점은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또 바닥에 처박힌 삶의 어둠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희망은 고작 미니 바이킹이 오를 수 있는 높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서 그들이 외치는 ‘높이, 더 높이!’는 허무하게까지 여겨지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페달을 돌리고 노를 젓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자기 목소리가 아닌 소설 속의 이야기로 이 모든 것들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그 역량을 높이 산다. 이 작가의 앞날을 기대한다.
복거일`김인숙
예심:이연주 노명옥
본심:복거일 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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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선장의 바이킹에 저도 타서 높이 더 높이 날아보고 싶네요. ^^
참 좋군요.....재미있게 잘 읽어보았습니다.
동티모르에서는 모래를 만나고 여기서는 숙자를 만났습니다. 그렇게 또 여인을 만나고 바이킹을 타면서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손이 없는 남자에게 잡혀 공중에 뜬 여인은 이제 바이킹을 가진 남자를 만나서 높이 더 높이, 를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은 이렇게 반복하고 이렇게 거부하면서도 익숙해지는 걸까요. 좋은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