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 스타택
닥터케이 워커
모토로라 스타택
폴더를 여닫을 때 나는 ‘딸깍’ 소리가 매력적인 스타택은 휴대폰의
역사를 다시 쓴 모델이었다.
당시로선 휴대폰이 주머니에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다. 88g으로 무게마저 가벼웠다. 세계 최초의 폴더형
휴대폰이자,
진동 기능과 SMS 기능도 처음 도입했다. 가격은 1백30만원.
기억하건데, 현금으로 휴대폰을 구입하던 시대였다.
당연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의 상징이었다.
닥터케이
워커
아, 이 신발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통탄스럽기까지 하다. 지오다노 면바지에 닥터 마틴 구두를 신기
전,
우리는 힙합 바지에 이 신발을 신었다. 황색 워커는 힙합 패션의 ‘종결’이었다. 기억을 더듬자면, 굽 뒤에 압정을 박아
바지가 바닥에
끌리지 않게 하는 것이 아주 잠깐 유행하기도 했다. 그땐 바지로 길거리를 쓸고 다니는 걸 ‘멋’처럼 여겼으니까.
다마고치
소니 MD플레이어
다마고치
요즘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는 동물 키우기 게임의 원조다. 먹이를
주고, 운동을 시키고, 배설물을 치우는 등
진짜 애완동물 기르는 것과 똑같이 사이버 동물을 대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됐다. 자주 먹이를
챙겨주지 않으면 죽어버렸기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도 이 게임기를 손에서 떼지 않았던 것.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한단 이유로 불매운동도
벌어졌다.
급기야 1997년 교육부가 직접 나서 학교 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소니 MD플레이어
1979년 소니는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기기 ‘워크맨’을
개발하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급성장했다. 최초의 휴대용 CD플레이어를 만든 것
역시
소니였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도 하나쯤은 갖고 있었겠지. 1990년대 MD플레이어는 차세대 음악 기기로 주목을
받았다. 워크맨보다 작았고, 음질은 CD플레이어보다 좋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MP3플레이어를 개발하며 비운의 아이템이 됐다.
2000년대 MP3플레이어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반짝 인기를 누렸는데, 가격이 비싸 부잣집 아들만 들고
다녔다.
물론 그래서 더 갖고 싶었지만.
노티카 점퍼
나이키 에어포스 원
노티카 점퍼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떡볶이 코트’라 불리던 더플 코트를 입고 나온다. 그러나 에디터의 기억에
따르면, 더플 코트는 1999년이 돼서야 비로소 ‘핫 아이템’이
됐다. ‘그렇다면 1997년엔?’ 그때는 노티카 점퍼의 전성기였다. 양면으로 입을 수 있는 점퍼가 인기였고(더 비쌌다), 아버지 옷인 양 한
사이즈 정도 크게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이키 에어포스 원
스포츠 브랜드를 선호하는 남학생들
사이에선 나이키 운동화가 최고였다. 특히 에어포스 원이 그랬다. 당시만 해도 정식 수입되지
않은 탓이다. 우리는 이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서
구입했는데, 30만~ 50만원을 호가하던 고가였기에 급식비를 모아 운동화계(?)를
한 기억도 있다. 운동화 색에 따라 빨간색은 ‘고추장’,
아이보리색은 ‘마요네즈’, 하얀색은 ‘올백’ 등으로 부르던 이름도 당시
청소년기를 보낸 남자들만 공감할 수 있는 추억. 자신의 발 사이즈보다 더
크게 신는 것이 포인트였다.
콜라독립 815
GV2 통바지
콜라독립 815
흉흉하기만 했던 IMF시대엔 외화 유출을 죄악으로 여겼다. 영화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까지 있었을
정도다.
급기야 애국심에 ‘호소’하는 상품들이 쏟아지기에 이르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콜라독립 만세!”를 외치던 콜라독립 815.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출시와 동시에 1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히트 상품이 됐다. 기억하건데, 맛이 밍밍했고,
탄산의 양도 적었다.
GV2 통바지
국산 진 브랜드가
요즘 프리미엄 진만큼이나 대우받던 시절이었다. 닉스, 베이직, 스톰 등이 대표 브랜드였다. GV2 역시 마찬가지다.
워싱 잘 빠진 통바지가 특히 유행했는데, 이때부터 남자들이 바지를
허리춤에 걸쳐 입기 시작했다. 여자들에게는 그 유명한
GV2 ‘멜빵 치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지샥 전자시계
엠씨스퀘어
지샥 전자시계
당신이 가졌던 손목시계 중 첫 번째 수입 브랜드는 무엇이었나.
대부분 남자들이 지샥이라 답할 거다. 우리는 이 시계를 통해 남자는
좋은 시계를 차야 한다는 ‘진리’를 배웠다. 힙합에도, 캐주얼에도, 심지어
복고 패션에까지 잘 어울렸으니 더 좋았다.
지금도 인기지만, 당시엔 정말 엄청났다. 특히 입학·졸업 선물의 ‘단골 메뉴’였다.
엠씨스퀘어
당시 중·고등학생치고 하굣길에 나눠주던 엠씨스퀘어 연습장 한 권 안 받아본 사람이
없었다. ‘전교 200등, 전교 1등 되다’ 같은
성적 향상기가 담긴 연습장과 TV
광고의 인기에 힘입어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광안경이라 불리던 선글라스(?)를
쓰고 기기를 작동하면 빨간색 불이 켜지면서
물소리, 바람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게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했다. 최근에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나볼 수 있다.
잔스포츠·이스트팩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잔스포츠·이스트팩
서울을 딱 절반으로 나눠 강남 스타일과 강북 스타일이 존재했다.
특히 패션이 그랬다. 강남은 넓었고, 강북은 좁디좁았다.
당시 강남의 최대 이슈는 힙합! 밑단을 줄인 바지는 세미 힙합이라 불렀다. 어른들은
‘똥 싼 바지’라 했다. 반면 강 건너에선
에디 슬리먼보다 한 발 앞선 스키니 진이 대유행이었다. 그러나 가방만큼은 하나였다. 잔스포츠와
이스트팩 백팩.
다만 메는 방식이 달랐다. 남쪽에선 엉덩이를 가릴 만큼 가방 끈을 길게 했고, 강북 학생들은 끈을 짧게 해 등에 딱 달라붙게
멨다.
우리는 그걸 ‘거북이 등딱지’라 불렀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기억 날 거다. 이런
‘미친’ 책이 있었다. 이제 와 말하지만 우리는 이 책에 결코 열광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엄마들은 달랐다.
억지로라도 읽게 했다. 지금은
변호사가 된 장승수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을 하며 서울대에 입성한 이야기와 그의 학습법을
소개했는데, 요즘으로 치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제목이 거의 망언 수준이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14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