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요산이야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타산악회 산행사진 스크랩 구례 여행. 사성암, 운조루, 쌍산재.
아리랑~ 추천 0 조회 8 10.05.23 19: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전남 구례 여행

사성암(四聖庵). 운조루(雲鳥樓), 쌍산재(雙山齋)와 당몰샘.

 

 ♧ 2010년 5월 21일 금요일. (음력4월8일=석가탄신일) ♧. 

 

▣ 사성암(四聖庵).

 

◎ 개요.

구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리산. 사찰을 얘기할 때면 지리산 화엄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사성암[四聖庵]은 아직 덜 알려진 작은 암자로 거대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멋스러움만큼은 으뜸이다. 연기조사가 처음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사성암은 바위 사이에 박혀 있다.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약사전'과 바위 위에 살짝 얹어 놓은 듯 단아한 '대웅전' 등 모든 구조물이 산과 하나되어 고운 자태를 뽐낸다.

대웅전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돌면 아래로 섬진강이 돌아 흐르고 구례읍과 지리산 노고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는 도선국사가 참선했다는 '도선굴'과 암벽에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도 보며 일상의 번민을 씻을 수 있다 사성암 올라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를 쐬며 조금은 헉헉거리며 산 정상까지 올라가면 기암절벽에 절묘하게 있는 절이 보여 저절로 감탄의 탄성이 나온다.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본사 화엄사를 창건하고 이듬해 사성암을 건립했다.

기록에 의하면 4명의 고승, 즉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가 수도한 곳이어서 사성암이라고 불리운다. 또한 송광사 제6세인 원감국사 문집에는 사성암이 있는 오산(獒山) 정상에 참선을 행하기에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는 도선, 진각 양국사가 연좌수도 했던 곳이라고 나와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이래 고려까지 고승들의 참선을 위한 수도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 온 법당은 바위를 쪼아 그 돌로 축대를 쌓아 절벽에 절묘하게 세워놓았는데 그 모양이 절벽과 한 몸을 이룬 탑의 모양이다. 사바세계 위로 봉긋이 솟은 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아 정상에 석탑을 세운 모습이 자연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사찰임을 느낄 수 있다. 절벽 옆으로 계단을 만들어 법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신도들의 기원이 담긴 기와로 단장이 되어 있어 계단 하나하나가 발원의 계단 같다. 그 계단을 올라가 법당입구에 서서 아래를 보니 오금이 저려온다. 뒤로 물러나 법당 안을 들여다보면 다른 법당과 달리 벽에 벽화가 보인다. 원효스님이 선정에 들어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마애약사여래불’이라는 벽화인데 사성암의 불가사의한 전설이. 약 25미터의 기암절벽에 음각으로 새겨졌으며 왼손에는 애민중생을 위해 찻잔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고 현재 전라남도 문화재 2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축양식은 금강산에 있는 보덕암의 모습과 흡사하다.

도선국사가 수도를 했다고 하는 도선굴은 한사람이 걸을 수 있는 통로를 걸어가 허리를 굽혀 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굴 안의 엄숙하면서도 고요함에 그리고 산꼭대기 바위와 바위사이에 오묘한 굴이 있음에 과연 정말로 "이런 곳에서 수행하면 정말 득도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생각이 절로 난다. 도선굴에서 나와 아래세상을 바라보니 고요히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와 곡성평야가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옵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그곳에서 내려다 본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강산뿐이다 사성암은 SBS 드라마 <토지>에서 서희와 길상이가 불공을 드린 촬영장소로 널리 알려져 많은 참배 불자들과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사성암은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모습을 오롯이 볼 수 있으며, 물줄기 너머로 가을 들녘과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사성암이 위치한 오산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산 마루에 바위 하나가 있고 바위에 빈 틈이 있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승려 도선(道詵)이 일찍이 이 산에 살면서 천하의 지리(地理)를 그렸다" 또한《봉성지(鳳城誌)》에 이르기를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옛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 하였다. 암자 뒤편으로 돌아서면 우뚝 솟은 절벽이 전개되는데, 풍월대·망풍대·신선대 등 12비경으로 절경이 뛰어나다

 

 

 

 

 

 

 

 

 

 

 

 

 

 

 

 

 

 

 

 

 

 

 

▣ 운조루(雲鳥樓)

 

운조루(雲鳥樓) 소개
류응교 교수
 
중요민속자료 제8호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 (1776년)에 당시 삼수 부사를 지낸 류이주 (柳爾胄)가 세운것으로 99간 (현존73간)의 대규모 주택으로서 조선시대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품자형 (品字形)의 배치 형식을 보이고 있는 양반가이다.
 
류이주는 그가 처음 이사와 살았던 구만들 (九萬坪)의 지명을 따 호를 귀만 (歸晩) 이라했으며 이 집을 귀만와 (歸晩窩) 라고도 불렀다. 운조루라는 택호는 <구름속의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란 뜻과 함께 <구름위를 나르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본디 이집의 이름은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 에서 따온 글 이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 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 오네>의 문구에서 첫머리 두 글자를 취해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운조루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와 함께 내수구(앞 도랑)와 외수구(섬진강)가 제대로 되어 있는 명당터에 자리잡고있다.집 앞의 오봉산은 신하들이 엎드려 절하는 형국이라고하며, 연당은 남쪽의 산세가 불의 형세를 하고있어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한것이라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일대는 금귀몰니 (金龜沒泥), 금환락지 (金環落地), 오보교취 (五寶交聚), 혹은 오봉귀소 (五鳳歸巢)의 명당이 있는 곳이라고 하며, 이 집터에서 거북이의 형상을한 돌이 출토되었기에 금귀몰니의 명당으로서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져 있다.
 
운조루에는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아랫사랑채 등으로 각각 누마루가 있었으 나 지금은 아쉽게도 안 사랑채와 아랫 사랑채의 누 마루는 남아 있지 아니하다. 현재 이 집은 건 평 129평 으로 一 자형 행랑채와 북동쪽의 사당채를 제외하고 T 자형의 사랑채와 ㄷ 자형의 안채, 안마당의 곡간채가 팔작지붕, 박공지붕, 모임지붕으로 연결되어있는 일체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집에있는 목독(나무로된 쌀독의 마개에 <他人能解>라는 글귀를 써두었음)은 가난한 이웃 사람이 쌀을 꺼내 끼니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음덕을 베풀고 적선을하는 것이 돈을 가진 자의 도리임을 보여 주었던 류씨 문중의 상징물이다. 200년이 지나도록 망하지 아니하고 오늘날까지 가문이 번창한 것은 오로지 분수를 지키며 생활하고,이웃을 돌보았던 마음이 전승 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본다. 류이주의 5세손인 류제양(柳濟陽)은 일만여편의 시(詩)를 쓰고 손자 류형업(柳瀅業)에 이르기까지 80년간 하루도 빠지지않고 생활일기와 농가일기를 썼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록문화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위대한 선조들의 유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쌍산재(雙山齋) 와 당몰샘

 

◎ 소개(쌍산재).

 


 

 

 

 

 

 

 

 

 

 

 

 

 

 

 

 

 

 

 

 

◎ 소개(당몰샘)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