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문협주최 가족사랑수필공모 대상작)
북위구성으로 새를 날리며
유경애
차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골목 입구에 다홍색치마를 입은 새색시가 먼저 보였다.
가방을 든 팔까지 살래살래 흔들며 걸어오는 품새가 영락없는 상춘객이다.
"새색시가 옵니다. 새색시가 왔어요."
짚단을 손질하다 큰소리로 외쳤고 안방에서 주방에서 친지들이 쏟아졌다.
그새 당도한 새색시와 막냇동생이 대문간으로 들어서려는 것을 저지하며 문중어르신이 짚단에 불을 붙였다. 겨우내 메말랐던 탓인지 성급히 타오르는 불꽃으로 너울이 생겼다. 놀란 어머니가 짚단위로 물을 뿌리자 그제야 흰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당혹감이 역력한 몸짓으로 멈춰 있는 새색시에게 하님으로 지목된 사촌 올케가 다가서 귀엣말을 하였다. 새색시는 치맛자락을 살짝 올리며 지시대로 따랐다.
시댁으로 첫 발을 딛는 순간 불붙은 짚단을 밟고 넘어서야 함은 나고 자란 친가의 습관을 다 버리고 시가의 풍습을 따르며 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 안의 나를 태워버리고, 오직 남편과 시가의 부모형제를 위해 살라는 무언의 암시 같은 것이다. 또 있다면 행여 새사람이 안고 왔을 액운을 쫓는다는 의미도 부여된다.
산골이라 해도 이제는 보기 드문 광경이언만, 3남 1녀를 둔 내 어머니는 십 수 년 전에 큰며느리를 맞을 때나 막내며느리를 맞는 오늘이나 변함없이 최소한의 격식은 차리려 애를 쓴다.
그것은 평생에 단 한번 치러지는 혼례이기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정성이었다.
처음 골목을 들어설 때와는 달리, 조심스런 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대청마루에 닿자 버선발을 들어 힘겹게 올라섰다. 그리고 안방에 펼쳐진 초석 자리에 앉기를 청하자 또 한 번 멈칫거렸다.
방문을 닫아주며 하님과 함께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이어질 일정을 귀띔이라도 하였는지 시부모님 뵙기를 하는 현구고의 예는 한결 편안해진 자세로 임했다. 다복하게 살라는 축복의 소리가 꽃비처럼 나붓는다.
예가 끝나자 안방의 상석에 앉힌 새색시에게 큰상을 들였다.
남의 가문으로 들어온 여인네에게 주는 첫 상이다. 이후 오래도록 당시의 음식 맛을 혀끝에 남겨두어 시댁식구들의 입맛에 맞춰 끼니 상을 들여야 하는 의미 깊은 상이기도 하다.
큰상을 받은 새색시에게 간장부터 맛보라고 하였다. 장맛이 좋아진다는 핑계로 새사람을 들여 간장부터 맛을 보게 함은 그 사람의 성품을 파악할 수 있음이다.
열린 방문너머로 시어머니를 비롯해 대소가의 아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심스레 간장종지 위를 오가는 손짓, 긴장으로 인해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의 깜빡임, 입술에 살짝 적셔질 짠맛에도 찡그리지 않는 새색시의 표정에서 인내라는 고운 열매를 읽을 수 있었다.
이제는 편히 식사를 해도 된다는 말에 방긋 웃으며 잘 먹겠다는 시늉을 한다. 떡국을 뜨는 손놀림 역시 차분하면서도 달게 먹는 모습이 복스러워 보인다.
한세상 살면서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의연히 임할 수 있을 것 같은 행동을 훔쳐보며 주방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아마도 첫 상에 올린 밥그릇을 말끔히 비우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을 굳게 믿는 듯하였다.
새색시의 식사를 신호로 신행 잔치가 시작되었고 음식냄새와 웃음소리가 아우러진 부산함 속에 시간은 무심히도 흘렀다.
서산으로 해가 기울 무렵, 하직상 앞에서의 당부가 부족한 듯 마당에서까지 사돈의 손을 잡고 당부하는 친정어머니를 바라보던 새색시는 눈시울을 붉혔다.
울음을 삭이려 애쓰더니 민망스러운지 방으로 숨어드는 새색시, 그런 딸이 못내 안타까워 자꾸만 돌아보며 긴 골목을 빠져나는 친정어머니의 무거운 발걸음, 그 뒤를 묵묵히 따르는 후행들은 보이지 않는 서까래 대신 무엇을 헤아렸을까.
생면부지 시댁에 애지중지 키운 딸만 덩그마니 남겨두고 돌아설 때 눈물짓지 않으려고 그 댁의 서까래를 헤아린다고 했다.
십 수 년 전, 농촌총각을 만나 시골에서 살게 될 나를 데리다 주고 돌아온 아버지는 대청마루에 길게 누워 '아따, 우리 사돈집에는 서까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용마루도 차암 굵더라'며 되뇌셨다고 했다.
후행으로 동석했던 작은아버지 역시 '서까래가 하도 많아 다 세지도 못하고 왔다' 하였고 나 역시 두 분을 배웅한 후 뒤란으로 가 눈두덩이 무겁도록 울었었다.
그 날의 내 모습을 그리며 새색시를 위한 다과상을 준비했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어느 사이 어머니가 먼저 와 계셨다. 마주한 고부간, 진정이 된 듯 배시시 웃어 보이는 며느리의 등을 쓸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대답 대신 고개만 주억거리는 새색시 앞에다 상을 내리면서 설핏 올려 본 내 어머니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숙연하다. 어쩐지 막내아들내외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북쪽하늘에다 염원하는 손 비빔 대신에 새사람의 등을 쓰는 듯 보였다.
신랑이 혼례를 치르는 날 새벽, 본가의 마당에다 상을 내어 놓고 북향재배를 한다.
이는 북쪽하늘에 걸려 있다는 아홉별, 남편과 아내가 백년을 해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준다는 북위구성으로 전령조인 나무기러기를 날려 보내는 의식이다.
평일이라 밤이 깊어지기 전에 모두들 제각의 보금자리로 떠났다. 나 역시 친정을 나서야 할 시각이라, 시집온 첫날밤에는 고부가 함께 자야 잘 산다고 했더니 시누이 심통이라며 되레 면박이시다.
젊어 한때는 근동의 아낙들에게 부탁 받은, 차작의 즐거움이 으뜸이었던 덕분인지 고집할 옛것과 받아들여야할 시대적 흐름에 대한 선이 확고한 어머니였다.
집도 설고 방도 선데 굳이 불편한 사람들과 잘 필요가 무에 있냐며 둘의 자리를 따로 봐 주는 걸 보며 마당으로 나왔다. 불현듯 고개를 드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전령조가 부단히 날아가고 있을 북두칠성도 자미성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사라진 것이 아니듯,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의 간절함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