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사 채용훈 화백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젭니까? 수연 유학 떠나기 전이에요. 조형사 정확히 기억하세요? 수연 94년 2월이에요. 조형사 그 후 엽서나.. 전화...연락도 없었습니까? 수연 네. 조형사 (무시하며) 아버지가 5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었는데 궁금하지 않았습니까? 수연 (단호하게) 아뇨. 누구도 자신의 삶에 끼어드는 걸 싫어했어요. 그런 사람을 걱정할 필요가 없죠. 조형사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는 어땠습니까? 수연 (발끈) 그런 거까지 얘기해야 되나요? 조형사 화랑가에서는 수연씨와 아버지가 보통의 부녀관계이상이라고 말하던데요... 수연 (냉소적으로 신경질적으로) 보통의 부녀관계란 어떤 거죠? (자리에서 일어나며) 채용훈 화백은 이 사건과 관계없어요. 조형사 (수연을 따라 일어나며) 동진화방 아시죠? 아버지가 단골로 거래하던 화방입니다. 범행현장에서 오년전 동진화방 봉투가 발견됐습니다. 아버지는 이 사건과 분명히 관계가 있습니다.
갑자기 얼어버린 듯 표정이 굳어지는 수연. 당황한다. 다시 자리에 앉는 수연 급격히 불안해진다. 시선이 흔들리기 시작한 수연. 수연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읽는 조형사
조형사 아버지와의 기억이 필요합니다. 얘기해주세요.
조형사를 노려보는 수연, 그때 갑자기 번쩍하며 플래시가 터지듯 수연의 뇌리를 스쳐 가는 영상. <플래시화면> 어린 수연이 골목길을 도망치듯 달려가고 있고 수연을 부르며 쫓아오는 수연의 엄마. 불안해지는 수연. 그러나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조형사 힘들더라도 얘기를 해주셔야 합니다.
다시 번쩍거리며 수연의 뇌리를 스쳐 가는 영상. <플래시 화면> 잠겨진 문을 흔드는 엄마. 수연을 부르는 엄마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목소리와 조형사의 목소리가 겹쳐져서 혼란스럽게 들린다.
조형사 수연씨!
<플래시화면> 흔들리는 어린 수연의 얼굴, 공포에 질려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헉헉거리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 수연 앞으로 다가서는 조형사.
조형사 수연씨!
<플래시화면> 엄마의 목소리가 겹쳐지면서 화면도 혼란스러워 진다. 그때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이 수연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수연을 잡아 흔드는 조형사. 조형사를 뿌리치는 수연 갑작스러운 수연의 행동에 당황하는 조형사.
수연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단호하게) 난 행복한 기억이 없어요. 늘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녹음기를 끄는 조형사. 조용해진 실내. 꼼짝 않던 수연.
수연 더 필요한가요? 조형사 ... ...
수연의 회상 몽따쥬 <중학교시절 - 수연의 방. 교복을 입고 침대 위에 올라 서있는 수연. 수연의 치마상태를 이리저리 점검하는 채용훈. 수연의 하얀 종아리를 쓰다듬는다. 두려운 수연의 표정. 고등학교 시절 - 미술 선생 뭔가 황송한 표정으로 수연을 부른다. 실기실 밖에 서 있는 채용훈, 난감한 수연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대학시절 - 교문을 막 벗어나는 수연. 승용차 한 대가 수연 앞에 선다. 놀라는 수연의 표정. 창문을 내리면 채용훈의 모습. 입술을 깨물고 서 있는 수연. 차에 올라탄다. 대학시절 - 이삿짐 트럭을 타고 오는 수연. 텅 빈 방문을 열면. 벽지를 만져보고 있는 채용훈. 놀라는 수연의 표정. 얼음처럼 굳는다.>
수연 서울을 떠나면서 그 사람과의 모든 것을 끊었어요. 프랑스에서 나는 변하려고 노력했고, 편안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