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별애(別愛)와 병가의 겸상애 교상리(兼相愛 敎相利) 관점 중 병가의 겸상애 교상리를 더 찬성합니다.
우선 주장에 앞서 묵가의 철학이 전쟁의 피해를 당한 민중의 관점에서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 이익의 부분을 강조했다는 점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묵자는 전쟁이 승패와 관심없이 피해를 가지고 오는 것이라 비판합니다. 이에 대해 논리성을 갖기 위해 언급했던 것이 이익입니다.
이점에서 모두가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해 나간다. 남과 대하기를 자기를 대하듯 하라는 '겸상애 교상리(兼相愛 敎相利)’에서 교상리의 교리는 상호 노동성과의 존중을 의미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사회인으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방식입니다. 상호 노동성과의 존중은 위치에 상관없이 사회인으로서 인정을 의미합니다. 사회의 겸애의 방식이 교상리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주장이자 지금도 충분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묵자』의 「兼愛」 下편에서 해악이 되는 일, 천하의 모든 혼란은 서로 겸애하지 않는데서 비롯된 부조리라 하면서 아래와 같은 일을 예로 들었습니다.
“대국으로서 소국을 공격하는 일, 대가로서 소가를 어지럽히는 일, 강자가 약자를 협박하고, 다수가 소수를 폭행하고, 사기꾼이 어리석은 자를 속이며, 귀한 자가 천한 자를 업신 여기는 일, 군주로서 은혜를 베풀지 않는 일, 신하로서 충성하지 않는 일, 아비로서 자비롭지 못한 일, 자식으로서 효도하지 않는 일, 무기와 독약을 가지고 서로 위해(危害)를 가하는 일”
묵자가 말하는 해악이 되는 일은 상당 부분 지금의 현실에서도 적용이 됩니다. 묵자의 겸애를 저는 현실의 말로 ‘관심’이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은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묵자가 ‘겸상애 교상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서로 관심, 상호 존중이 있는 사회에서 서로의 이익이 존중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현대사회는 인터넷의 발달과 SNS 활성화로 그 어느때보다도 넓게 연결되고 남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현실, 즉 오프라인의 세계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함께 수업을 듣는 학우가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무관심적인 태도가 만연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재화’가 최우선 기준이 되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만듭니다.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타인은 경쟁 대상이 되어버리고, 이익의 관점에서 판단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환경 파괴, 현대인의 정신 질환 급증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상황은 다르겠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익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상호 존중을 위한 제시로서 “겸상애 교상리”를 주장했다고 봅니다. 묵가가 현실적인 상황을 염두하고 상호인정에서 오는 이익을 주장했다는 점이 제가 유교의 별애보다 병가의 겸상애 교상리의 관점을 더 찬성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