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 출애굽기 2장
출2:1 레위 여자
히브리어의 용법상 “딸”(「제임스왕역」에는 “레위의 딸”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이 실제로는 “손녀”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요게벳은 분명히 레위의 친딸이었다(참조 6:20). 그의 남편은 고핫의 아들이며(6:18), 레위의 손자(16절)인 아므람이었다. 고핫은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하기 전에 태어났으므로(창 46:11), 고핫의 누이동생이며, 그의 오라비의 아들인 아므람과 결혼한 요게벳은 훨씬 나중에 태어났을 것이다(참조 민 26:59). 애굽 체류 기간 중의 연대기(참조 12:40)는,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지 135년 후에 모세가 태어났으므로 이러한 결론이 불가피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그의 아버지가 노년에 낳은 딸로 여겨야만 한다.
출2:2 준수함
비록 아기였지만, 모세는 그의 후년을 특징지은 명석한 지능과 정서적인 안정과 육체적인 완전함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 이 모든 의미가 “준수함”이라고 번역된 히브리말에 내포되어 있다. 요게벳은 이러한 특질들 속에서 거룩한 승인의 징표를 보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어떠한 특별한 과업을 그에게 정해 놓았다는 표적으로 그녀가 여기는 것이었다. 행 7:20에 따르면 그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다[beautiful, 「개정표준역」]. 이 말이 「제임스왕역」에는 “대단히 잘 생긴”(exceedingly fair)이라고 되어 있다. 물론 요게벳은 그 아이가 그렇게 “준수한” 아이가 아니었다 해도 모세를 사랑하고 보호했을 것인데, 대개 어머니들은 병약한 자녀들에게 가장 깊은 사랑을 바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요게벳의 노력은 히 11:23에 믿음의 행위로서 칭찬을 받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운명을 정해 놓았고, 따라서 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개입하리라는 것을 그녀가 자각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이 아므람에게 알려졌다는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진술(Antiquities ii. 9. 3)을 확증해 주지는 않는다.
출 2:4 바로의 딸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테르무티스(Thermouthis), 메리스(Merris) 또는 비티아(Bithia)라고 불린다. 그 이름이 여러 가지이고 그것들이 애굽의 기록에 나오지 않는 것은 그 전승의 무가치함을 말한다.
왕상 6:1에 기초한 성경의 연대와 그것을 지지하는 다른 진술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399)에서 추론하면, 출애굽은 BC 15세기 중엽에 일어났다. 이와 같은 연대는 모세가 투트모세 Ⅰ세(BC 1525~1508), 투트모세 Ⅱ세(BC 1508~ 1504), 그리고 핫셉수트 여왕(BC 1504~1482) 치하에서 자라났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핫셉수트는 비범한 여성이었다. 그는 투트모세 Ⅰ세의 유일한 적출의 소생이었으며 그의 이복 형제인 투트모세 Ⅱ세가 적법하게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하여 그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투트모세 Ⅱ세의 합법적인 결혼은 그의 아버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성의 상속자를 낳는 데 또다시 실패하였다. 겨우 4년을 다스린 후 투트모세 Ⅱ세가 죽었을 때, 아멘(Amen)의 사제들은 불시의 쿠데타에서 투트모세 Ⅱ세의 서자에게 왕관을 씌웠는데, 당시 그는 한낱 소년으로서 신전에서 보조 사제로 일하고 있었다. 투트모세 Ⅲ세(나중에 알려진 그의 이름)가 통치하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의 아주머니인 핫셉수트가 22 년간 섭정하였다. 그녀가 통치하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그녀는 장엄한 신전들을 짓고 거대한 방첨탑들을 세웠다. 무역을 위하여 동아프리카 소마릴랜드의 해안 지역으로 생각되는 푼트(Punt)로, 구리, 터키옥과 금을 채광하기 위해서는 시내와 누비아로 원정대가 파송되었다. 강력한 총리 세넨무트(Senenmut)의 지원으로 핫셉수트는 22 년간 보좌를 장악하였다. 그 후에 그녀와 세넨무트는 기록에서 사라진다. 그녀를 계승한 투트모세 Ⅲ세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애굽의 역사에서 뿌리뽑으려는 시도로서 그녀의 기념비에서 모든 이름을 지워버렸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그녀를 보좌에서 축출하였으며, 그녀와 세넨무트가 참혹한 죽음을 당하였다는 가설에 무게를 더해 준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핫셉수트는 투트모세 Ⅰ세의 딸일 뿐이었다. 모세는 그녀가 이복동생인 투트모세 Ⅱ세와 결혼하기 여러 해 전에 출생하였으며, 그녀가 남편의 사후에 통치를 시작한 지 2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푸2:6 히브리 사람의 아이
작은 상자를 열어본 공주는 그 우는 아기가 히브리 사람의 아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의지할 데 없는 아이에 대한 연민과 알지 못하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이 그녀로 하여금 아이를 구조하여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게 하였다. 아마도 왕의 잔인한 칙령이 그렇게 오랫동안 실행되지는 않았으리라는 사실이 1:22에 대한 주석에서 진술된 바 있다. 여기에 묘사된 사건이 변화를 가져온 한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히브리 아이들의 슬픈 운명을 보고 괴로워한 바로의 딸이 아버지에게 그 살인 법령을 취소하도록 탄원했을지 모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발적이지는 않았지만 모세는 이미 셀 수 없는 히브리 유아들의 목숨을 구해 준 수단이 된 것이다
출2: 9 그 삯을
그 히브리 아이가 히브리인의 집에 맡겨진 이후로, 그의 유모가 된 요게벳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삯이 지급되어야 했다. 그가 바로의 딸에게 속하게 되었음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해, 그의 출생과 그가 살아남게 된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잠잠하게 하기 위해, 그가 다른 히브리 사내아이들처럼 죽임당하기를 원할 수 있는 밀고자들의 입을 봉하기 위해 그 공주는 그를 돌보아 주는 대가로 삯을 지불하리라고 하였다.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여기서 요게벳을 모세의 “어머니”가 아니라 단순히 “여인”이라고 부른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것은 그녀가 말로나 행동으로나 그녀의 실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 아이와 그녀의 실제 관계를 나타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감동적인 순간에 얼마나 큰 자제력이 필요했을지는 아무도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녀는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그 아이를 데려갔지만, 마음속에는 열렬한 환희와 기쁨이 있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그가 마음을 놓았다면, 흥분하여 그의 의도를 드러냈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그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그녀가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 모든 직무의 기초가 되는 가장 큰 질문은 지력(知力)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지탱하는 능력에 의하여 떠받쳐지는 마음에 대한 것이다.
출2:11나가서
모세는 그가 철두철미한 애굽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멸시받는 동포들의 편에 서든지 해야 할 것을 깨닫는 그의 생애의 한 시점에 와 있었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 벌써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히 11:25) 결심하고, 자신이 이 임무를 위하여 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행 7:23~25). 그는 자신이 마침내 궁정과 그 “죄악의 낙”을 떠나서, 왕위의 계승자가 될 전망을 포기하고, 담대하게 그의 압제받는 민족을 위한 투사가 되는 발걸음을 내디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246, 247). 행 7:23에 의하면 모세가 상황을 살피고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고센 땅으로 갔던 것이 확실하다. 그의 마음속에 애굽의 보좌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는 사실은 그의 동기가 이기적이 아니었음에 대한 증거이다. 그는 오히려 그의 민족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그 압제자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고무되었는데, 그러한 사실은 2:11에 두 번씩이나 “형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강조되어 있다.
출2:14 모세가 두려워하여
전날 행동으로써 애굽에 대한 충성을 포기한 모세가, 이제 그의 동족들에게 거절을 당하는 것은 그를 큰 곤궁에 빠뜨렸다. 그는 친구도 없이 혼자였다.
출2:15 모세가…피하여
모세의 도피는 분명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굽의 동쪽 국경은 지중해로부터 수에즈 만까지 사람이 지키는 망대들의 체계로 경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웃한 망대가 서로 보이도록 되어 있었다. 모세의 망명과 평행을 이루는 애굽의 시누헤(Sinuhe)의 이야기는 아시아로 탈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준다. 아메넴헤트 Ⅰ세(Amenemhet)의 신하였던 시누헤는 왕이 죽자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수리아로 도망쳐 거기서 여러 해 동안 망명 생활을 하였다. 그는 국경을 통과하면서 생기는 위험을 생생하게 묘사해 준다. 그는 경비병이 보지 못하도록 한동안 덤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밤중에 통과했다. 그가 사막으로 길을 재촉하여 갈 때 어떤 아시아인들이 그를 찾아서 마실 물과 끓인 우유를 주지 않았으면 갈증으로 죽었을 것이다. 모세가 도피하는 동안에 겪은 곤란에 대한 기록은 우리에게 없으나, 그때까지 궁중 생활의 호화로움만 알고 어려움에는 익숙지 않던 사람에게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경험이었으리라고 추측해도 틀리지 않는다.
출2:19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건져내고
모세가 그의 국적을 밝히지 않았음이 분명하고, 그가 애굽의 옷을 입고 애굽 사람처럼 머리를 깎았으므로 르우엘의 딸들은 자연히 그 친절한 나그네를 애굽인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일찍 돌아온 것을 보고 르우엘이 놀란 것과, 애굽인이 그들을 목자들로부터 보호해 주었다는 자초지종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그들이 이러한 난폭한 대우에 익숙해 있으며,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을 보호해 줄 입장이 전혀 못 되었던 것을 보여 준다. 그는 제사장으로서 그 지역의 목자들에게 별로 큰 영향력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의 동족들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을 떠나 우상들을 숭배할지라도 르우엘은 여전히 참 하나님의 경배자였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출2:21 십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르우엘의 일곱 딸 중 하나인 십보라가 모세의 아내가 되었다. 아직도 아라비아 사막의 많은 여인이 “새”를 의미하는 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출2:25(하나님이)…권념하셨더라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과 맺은 그분의 언약에 충실한 하나님은 그의 압제받는 백성을 기억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한 그의 자비로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기적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태도나 행동에 대한 인간의 표현은 때때로 영원하고, 전지하고, 전능한 존재에 대하여 불합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한한 언어는 기껏해야 무한한 분의 뜻과 방법에 대한 불완전한 묘사밖에 제공해 주지 못함을 기억해야 한다.
모세의 출생과 교육과 도피와 겨혼의 과정을 통해이스라엘의 민족을 영도할 지도자로 인도한 하나님이 보인다. 오늘날 본문에서 얻을수 있는 교훈은 성도는 항상 교회편에 서야한다. 그리고 고난 받는 형제와 이웃을 돌봐야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혈기로 하나님의 일을 이룰수 없으므로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위를 먼저 살펴야함을 깨달았다.
딸이 맡겨둔 개와 고양이를 한달만에 가져가게 되는길에 여기와서 2일 동안 직업교육을 받고 오늘밤9시에 출발 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물건들이 차의 짐칸에 가득한것을 보면서 자식이 있어서 저런 짐들을 싣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시간 걸리는 거리라 밤새도록 운전해야할 딸이 무척 걱정 스러웠으나 도전력을 칭찬하고 싶었다. 안전 여행을 위하여 세가족이 붙잡고 기도 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