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가 흔들린다는 짐작
이궁로
산비탈 타고 검은빛이
짐승처럼 웅크리며 지붕으로 내려앉는다
빛이 어른거리는 마당은 심연인데
별이 꿈처럼 펼쳐져 있고
여우가 사람 다 잡아먹은 동화 속 마을처럼
온 동네가 삭아가고 있다
그곳에 아버지가 있다
먼 울음으로 소쩍새가 운다
새의 날갯짓이 어두워
눈을 뜰 수 없다
밤이 무거운 것은 새의 울음 때문
소쩍새 우는 소리는
배고파 배고파 하는 아버지의 울음을 닮았다
아버지는 병중이다
가망이 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초저녁별 지나간 마을 길엔
새가 날아간 흔적 고요하고
나뭇가지가 흔들린다는 것은 짐작일 뿐
어디로 가는지 모를 어둠이
새의 울음을 쫓을 때
밤의 모서리를 갉아 먹는 아버지는
어둠이며 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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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궁로
200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 『어둠은 밤의 너머에서 뜬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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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가 흔들린다는 짐작/이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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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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