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폐인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나라일 뿐이지 아무런 인연도 지연도 없는 곳이다. 밀리카는 그의 좌절을 보는 것 같아 머리를 돌렸다. "카스릴로가 무너지는 것을 봐라. 에르난데스가 알폰소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것을 봐. 권세와 영화도 영원토록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 흔잣소리처럼 그가 다시 말했다. 일주일 전 에르난데스는 라파엘 대통령으로부터 전격 해임을 당했 는데, 그의 후임으로는 라파앨의 참모장이었던 알폰소가 임명되었다 알폰소라면 페르난도로부터 군자금을 받아 가던 인물이다. 그러나 라 파엘 정권은 발족되자마자 대대적인 마약조직의 토벌에 들어갔고, 지 금은 카를로스마저 L널로 도망쳐 들어와 기회를 엿보고 있는 형편이었 다. 밀리카는 다시 그릇을 씻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렸딘므로 고영무는 수화기를 쥐었다. 막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들어온 참이었다. "여보세요." "저예요." 고영무는 수화기를 고쳐 쥐고는 상체를 세웠다. "영지, 아침부터 웬일이야?" "아침에 전화하면 안돼요?" 장난스레 묻는 그녀의 목소리에 고영무의 얼굴 근육이 조금씩 풀어 져 내렸다. "놀랐단 말이다, 네 전화는." "왜?" "무슨 일이 있나 하구. 그쪽에서는 내가 도망자의 처지잖아." "난 괜찮아요. 공장도 잘 되구 " "어머니는 어떠셔?" "식사는 잘 하세요." 고영무는 의자에 등을 묻었다. 그녀와 헤어진 지도 한 달이 되어 가 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목소리가 밝아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 여기로 돌아와요?" 김영지의 말에 고영무가 머리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의 끝이 보였다. "곧 만나게 돼." "언제?" "여기 일을 곧 끝낼테니까." "그러니까 언제?" 고영무는 입맛을 다시고는 입술 끝을 비틀어 웃었다. "빨리 끝낼거야. 나도 영지가 보고 싶으니까." 노크 소리도 없이 응접실 문이 열리더니 브루노와 함께 최대광이 들 어딘다. "내가 다시 전화할게." "10분 후에 다시 해요, 그림." "한 시간 후에 " 수화기를 내려놓은 고영무는 앞자리에 앉은 그들에게 머리를 돌렸 다. 브루노가. 입을 열었다. "보스,카를로스가 와 있습니다. 지금 크링거의 집에 머무르고 있다 고 합니다. " "지미도 알고 있더군요. 전화로 물어 보았더니 자신의 소관이 아니 라고 말했습니다. " 지미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말했다면 윗선에서 명령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놈은 대놓고 시내를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힐튼 호텔 의 식당에서 부하들과 식사를 했다는군요." 머리를 끄덕인 고영무는 최대광을 바라보았다. "용만아" "아직 연락 없어요." 신용만은 어제부터 다운타운에 들어가 있었다. 최대광이 머리를 들 었다. "그나저나 형님, 저 새끼들을 없애 버리든지 해야지 귀찮아 죽겠습 니다. " "뭘 귀찮게 하는데?" "감시하느라고 꼬박 한 사람이 붙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전우석과 강판술 등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섯 명을 감금시켜 두고 있었는데, 그가 경비 책임자였다. 이제 이곳의 저택은 지난번에 남겨 두었던 부하들 중에서 가족이 없고 믿을 만한사내 네 명을 더 충원하 였으므로 포로가 된 사내들까지 포함해서 10여 명이 들끓고 있었다. "기다려라, 그놈들도 쓸모가 있을 것이다. " 고영무가 말하자 그는 입맛을 다셨다. "형님, 풀어 주어서 득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리에 돌을 매달아 서 바닷쪽에 넣읍시다. " "차라리 화장을 시키자고 해라." 고영무가 말하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재만 남으면 흔적도 없겠숩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 한국말이었으므로 둘의 입만 바라보고 있던 브루노가 고영무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보스, 카를로스는 그냥 내버려 둡니까?" "페드로를 불러라." 고영무의 말에 브루노와 최대광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갈 데가 있다. " 자리에서 일어선 고영무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보스, 어디로 가시렵니까?" "이곳에서 멀지 않아." 브루노와 최대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들은 제각기 시 무룩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는데 속시원한 해결책을 듣지 못했기 때문 이다. 카를로스가 LA에서 활보하고 있는 것은 미국정부가 마약왕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되는데, 이제 자신들의 신세는 그와 반대가 되 어 있는 것이었다. "그 동안 여위신 것 같아요. 얼굴도 검어지셨고." 신용만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은영이 말했다. 중국 요리 집의 붉은색 휘장이 천장 위에서 흔들거리고 있고 식탁 루 위를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떠들씩한 소음 까지 겹쳐서 가만히 맞아 있어도 왠지 마음이 조급해지는분위기였다. 신용만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장규식이라는 사람, 어디에 묵고 있는지 모룹니까?" "모르겠어요, 저는." 이은영이 머리를 저 었다. "가끔 잊어버릴 만하면 들르니까요. 그리고 술만 마시다가 혼자 나 가곤 해서." "LA에 있기는 합니까?" "사흘쯤 전에 들렀다가 갔는데." 이은영이 한쪽으로 머리를 누였다 소란스런 중국인들이 한데 몰려와 옆쪽 자리에 앉았으므로 그들은 잠시 말을 멈췄다. 이틀째 장규식을 찾아다녔으나 허사였다. 그는 어울 리는구도 없었고 희 살롱에 나타나서도 흔자 앉아 위스키 한 병을 마시고는 말없이 나간다고 했다. 흥성희와도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는 편이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으세요?" 이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떤서 그녀가묻자신용만이 머리를 저었다 "급한 건 없습니다. " 급한지 어떤지 영문도 모르고 고영무가 장규식에 대한 말을 듣고는 찾아오라고 해서 나온 것뿐이었다. 장규식은 두 달이 넘게 LA에 머물 고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간다고 해도 유장수의 조직에 언제 잡힐지 알 수가 없는 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체류기간은 길었다. "이거 시간이 째 되었는데, 가게에 들어가 봐야 되지 않아요?" 시계를 내려다본 신용만이 물었다. 저녁 8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가 게에 술손넘이 들어설 시간인 것이다. "아니, 괜찮아요. 오늘은 마침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이니까요." 눈을 껌벅이는 신용만을 향해 이은영이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실은 신용만씨가 물어 볼 말이 있다고 하길래 언니한테 쉬겠다고 했어요. 두 달 동안 하루도 쉬피 않았거든요." "이거 미안한데." "덕분에 쉬는거죠, 뭘. 그러니까 마음 놓으세요. 신용만씨는 시간 있 으시죠?" "나야 시간이 ‥‥‥‥ 신용만은 말을 멈추고 웃음을 띄웠다 문득 최대광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그는 LA에 온 후 한 번인가두 번밖에 홍성희를 만나지 못했 다. 고영무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금지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번 에 장규식을 찾아오라는 그의 지시를 받고 저택을 나을 적에 최대광은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같이 나가고 싶어하는 표정이었다. "왜 웃으세요?" 이은영이 물었다. "아니, 갑자기 다른 생각이 나서." "무슨 생각요?" "최대광이 생각. 그놈은 날 따라나오고 싶어했는데 못 나왔지요." "왜요?" 그들은 옆자리가 시끄러웠으므로 서로 소리치듯 말을 주고받았다. "그놈, 여자 만나고 싶어서‥‥‥‥ 이은영이 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얼마나 좋아요? 언니도 최대광씨를 만나고 싶어하거든요." 신용만이 눈을 껌백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용만씨가 저한테 만나자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식탁 위에 두 팔굽을 올려놓고 상체를 기울이며 어깨를 세운 그녀가 말했다. "어됐든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것도 기뻐요." 이은영은 한 손을 펴더니 턱을 고였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고 매끄러운 피부와 윤곽이 뚜렷한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우리 나갑시다, 조용한 곳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신용만이 말했다. 미국에서 자란 탓인지 이은영 의 표현방식은 직선적이었으나 자연스러웠다. 장규식의 행방을 묻기 위해서 그녀를 밖으로 불러 내었지만 그럴 바에는 호스테스로 일하는 미스 안이나 김이 더 나을 것이었다. "조용하고 및진 곳은 제가 더 잘 알걸요?" 따라 일어선 이은영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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