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프 B2 합격 후기
올해에 나는 프랑스 국제 교육(France Éducation International)이 주관하는 프랑스어 공인 인증 시험인 DELF(Diplôme d'études en langue française) B2에 응시 두 번째에 합격했다. 나는 고득점자가 아니다. 내 성적은 합격선을 가까스로 넘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이 이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만 하여도 도전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기를 바란다. 달리 말해, 이렇게 하면 고득점은 받을 수 없다. 이런 나는 :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택했으며, 수학능력시험에서도 그 분야에 응시했다. 대학교에서도 어문학 전공자였으나 프랑스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였다. 그래도 프랑스어 문서를 미진한 실력으로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호기심에 못 이겨 몇 편 번역해보기는 하였다. 이 시험 준비에 집중한 기간은 1년 정도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항상 발목을 잡는 무능 중 가장 어둔(語遁)한 것이 언어능력이다. 내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언어의 바들에 마음을 쏟으면서도 정작 그 돌올한 언어능력은 전혀 갖지 못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그리고 같이 프랑스어 익힘의 질곡들을 하소연할 비슷하게 가고 있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 넘게 심지어 지금까지도 하면서 프랑스어를 팔 할은 독학했다. 그리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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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ÉCLARATION D'INDÉPENDANCE DE LA RÉPUBLIQUE CORÉENNE
Nous, les représentants du peuple coréen, par la présente, déclarons à toutes les nations du monde, l'indépendance de la Corée et la liberté du peuple coréen, et nous annonçons à nos enfants et nos petits-enfants les grands principes d'égalité et le droit éternel du peuple à se préserver lui-même. Pleins d'une auguste vénération pour les quatre mille ans de notre histoire et au nom de nos vingt millions d'habitants loyaux et unis, nous déclarons notre indépendance pour garantir le libre développement de nos enfants dans tous les temps à venir, .....
1929년 파리에서 출간된 서영해의 한국역사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에 서영해가 번역한 이 기미독립선언서 전문이 실려있다. https://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4588
기미독립선언서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 만대에 고하야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仗)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야 차를 포명(布明)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 발전을 위하야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發露)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順應幷進)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이니 시(是)이 천(天)의 명명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 하물(何物)이던지 차를 저지 억제치 못할 지니라. ......
1919년 3월 1일 <띄어쓰기 및 한글화 적용문>
서영해(徐嶺海 1902~?)는 “자주민”을 la liberté du peuple coréen 으로 번역하고 있다. un peuple indépendant 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자유를 강조한 데는 의도가 있었을 테다. 그러나 물론 이 독립선언서의 “la liberté”는 자유의 두 경향성인 인성의 자유라기보다는 민족의 자주를 더 강하게 의미한다. 이렇게 독립“l'indépendance”과 함께 그 내용으로서 “la liberté”에 대한 서영해의 사유를 충분히 반추해야 한다. 덧붙여서 la liberté의 번역어로서 당대로서는 신조어인 자유와(야나부 아키라, 《번역어의 성립》 참조) 함께 자주도 대응하는 의미장 경쟁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보자. 그렇다면 이 서영해는 누구인가?
서영해는 1920년, 18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1920년부터 1947년 45살까지 27년을 있었다. 1920년이니, 아마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서 정규 교과과정을 밟은 사람이 아닐까? 그 고초는 세간의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알려지기로는, 프랑스에서 1921-1926년까지 초등~고교과정을 6년 만에 졸업했고, 1927-1928년 쯤 파리 소르본느 대학 및 고등사회연구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부친이 사망해 학비조달이 어려워지자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때 프랑스 신문의 한국을 폄훼하는 기사에 반박문을 기고했고 그러면서 기자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1928년에는 파리 언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질곡을 여기서 다 다룰 수는 없기에,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한다.
다만 이 정도만 말해두자. 서영해는 해방되고 돌아왔다. 1947년 연희전문(현 연세대)과 경성여의전(고대 의과대), 이화여전(이화여대)에서 불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일본인이 편찬한 프랑스어 교재를 폐기하고, 직접 타자기로 《초급 불어》라는 교재를 집필하여 썼다고 한다. 극작가 차범석, 김동길 전 연대 교수,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유럽에서 결혼했던 오스트리아 여인, 그리고 낳은 아들과 역시 지금 다루지 않을 어떤 사건으로 생이별한 후 북한으로 넘어갔는데, 북한에서의 행적과 몰년은 묘연하다.
서영해는 어떻게 프랑스라는 나라를 처음으로 접했을까? 그리고 프랑스어는? 유학을 가서는 어떤 방식으로 프랑스어를 학습하고 체득할 수 있었을까? 당시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에게서? 일본인교사들에게서? 그리고 1947년의 《초급 불어》라는 책은 어떤 교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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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나는 프랑스어를 어떻게 언제 만났나? 내게 프랑스와 프랑스어의 희미한 향은 드뷔시 쪽에서부터 났다. 드뷔시, 음악가 그 사람 말이다. 20대 초반에 드뷔시 전주곡들에 빠졌을 때가 있었고, 그 전주곡들의 제목을 궁금해하다가 알게 된 것이 프랑스와 프랑스어의 존재였다. 그러나 그때도 운명의 결정 따위는 없었다. 본격 학습 계기는 내 주위 문학연구생 그리고 연구자들이 모두 일본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만은 다른 언어를 습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을 때 생겼다. 우리 세대라면 모두 다 영어 시험을 한두 번씩은 보게 되는 것도 너무나 괴이한 일이거늘, 식민지 경험까지 한 나라가 굳이 일본어를 이렇게 열심히 배워야 하는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 생각은 어리석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제국주의 일본을 무찌르려면 일본어를 누군가는 배워야 하며, 일제강점기 시대 국문학 연구에서는 반드시 일본어 학습은 필요하다. 이렇게 우둔한 생각을 그 중요한 시기에 한 탓에 나는 그 히라가나 하나도 모른다. 그때 배워두면 좋았었다.
그때 경복궁역 철학아카데미에서 프랑스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가 내가 프랑스어를 배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첫 시기이다. 교재는 우리가 흔히 ‘모제’라고 칭하는 그 청색 책 Gaston Mauger, 《Cours De Langue Et De Civilisation Francaise I.》(1967)이다. 이 책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프랑스어의 ‘맛’을 보기에 가장 좋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이 한 권의 책에 어휘, 문법, 회화, 동사변화, 독해, 정서법 이 모든 것이 모조리 쏟아부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자는 이것들을 모두 한꺼번에 가르칠 수 있다는 이득을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학습자는 반대로 아무것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존재만을 안 채로 주마간산 넘어가게 되는 해를 입게 된다. 그렇지만 이 책으로 프랑스어를 익히고자, 시간을 제대로 잡아놓고 비상한 각오로 연구하듯이 공부한다면 이것들을 모두 한 품에 안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아름다운 지점이 또한 있다. 바로 우리의 Vincent 씨 말이다. 1권의 Vincent 씨의 신변에서부터 시작하여, 2권 그리고 3권을 가면서 점차로 그의 프랑스 여행까지 묘사되는 산문이 배운 장들을 실습할 수 있는 예문으로 매번 삽입되어 있는데, 그 진행과 확장이 참으로 절묘하다. 문장의 난이도도 점차로 복잡해진다. 3권에서는 그 밖에도 문학, 잡지, 신문 등의 글들이 때에 따라 삽입되어 있는데, 모두가 버리기 싫은 교교(姣姣)한 글들이다. Victor hugo 의 l'orage 같은 글들. 내가 알기로는 이렇게 정련된 산문을 이렇게 정교하게 학습 경로에 따라 진보하게끔 배치하고 있는 프랑스어 교재는 지금까지도 없다.
그렇다면 문법은? 실제로 내가 프랑스어의 뼈대로서 문법이라는 것을 학습한 책은 흔히들 ‘파란 책’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책을 통해서이다. 독학했다. Elisabeth Franco, Maïa Grégoire, Alina Kostucki, Odile Thiévenaz, 《Grammaire progressive du français - Niveau intermédiaire》, CLE 이다. 이 책은 문법만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 수준별로 여러 권으로 분별되어 있다. 이 책을 최소한 세번 정독을, 일별하기로는 그 이상으로 보았을 터인데, 처음에는 복사본으로 보다가, 나중에는 책을 샀다. 매해 내용은 별로, 아니 전혀 바꾸지 않으면서 디자인을 수정하는 식으로 교열본을 내고 있다. 그런데 역시 깔끔한 총천연색 책이 누런 복사용지보다 학습 의욕을 더 고취한다. 고득점을 받으려면 《Grammaire progressive du français - Niveau perfectionnement》를 학습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문법책만큼은, 다음 단계들로 넘어가는 것보다, 책 하나를 붙잡고,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될 정도로 여러번 보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아서도 아직 이 파란 책을 ‘뗐다’라고 여겨지지 않았기에, 나는 이 책을 떠날 수가 없었고, 아직도 떠날 수 없다. 게다가 다들 알다시피 델프 시험은 문법 사항을 따로 시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출판사의 다른 책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아마도 이 책은 저만큼은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Michèle Boulares, Odile Grand-Clément, 《Conjugaison progressive du français - Niveau intermédiaire》 CLE. 동사변화 학습 책으로, 동사들을 유형별로 나누고 시제별로 반복하여, 그 동사변화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동사변화에 수학과 같은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그 변양과 향방들을 감지하고 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과 함께 자신에게 맞는 동사변화 훈련 어플을 함께 사용하면 금상첨화이다. 그 밖에도 이 책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나는 이 책을 공부하고 나서야 델프 시험의 작문에 다가가기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 있는 동사만 다 알아도 웬만한 문장은 다 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동사들을 과히 어지럽게 많이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필수 동사 암기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훈련용 예문을 면밀히 보다 보면 프랑스어 문법을 복기해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들이 시제에 따라 어떤 문체를 갖는지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에는 여항(閭巷)의 Vincent은 없다.
읽기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특히 한국인은 프랑스어 읽기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덜 두려울 것이 분명하다. 나도 그러했는데, 그렇다고 아무런 부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분야에서 턱없이 낮은 점수를 읽기에서 벌어서 벌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듣기에서 간신히 과락을 면할 정도의 점수를 얻는다면, 반대로 읽기에서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Le Monde》 정기 구독자이다. 한달에 얼마씩을 내고 있다. 만약에 내가 좋은 프랑스어 문장을 선별해낼 재주가 있다면 굳이 금액을 여기에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읽기 자료는 정말로 넘치게 많고, 때에 따라 검색해서 정정(井井)한 것들을 독해 자료로 활용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능력이 없었고, ‘좋은 문장’이라는 것을 보장하는 어떠한 매체가 필요했다. 검증되지 않은 문장을 붙들고, 그것이 좋은 문장이리라는 착각과 맹신 속에 몇날 간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의 손해가 구독료보다는 훨씬 아프고 크다. 그래서 이 신문사의 유료 구독자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 꼭 이 신문사일 필요는 없었고, 유수의 다른 신문사들도 좋았을 것 같다. 나는 그저 손 가는 대로 선택했다.
단, 기사 선택은 입맛대로 편중하여 선택하는 것은 좋지 않다, 취미 삼아 읽는 신문 읽기가 아닐 터에. 시험에 나올만한 주제를 다양하게 읽어서, 다종의 어휘들을 알아야 한다. 2번밖에 안 본 시험에 대해서 감히 조언하자면, 델프 측은 협회의 성격답게, 언어활동(le langage)에 관련한 L'éducation 혹은 La formation 주제는 반드시 시험 문제에 포함하고 있다. 독해 문제에는 거의 항상 출제하고, 심하게는 쓰기나 듣기 문제로도 아주 흔하게 출제하고 있다. 그러니 이 테마는 읽고, 쓰고,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문장구조를 파악하며,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가며, 번역하는 것이 결국에는 읽기 공부인데, 한번 읽고 마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읽기 익힘이 아니라, 읽기이다. 익힘은 반복이다. 그것은 찾아낸 단어를 따로 외우고 문장으로 돌아가서 다시 번역해보고 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순서로 반복해서 읽었다. ㄱ을 읽고 익힌 다음 새로운 ㄴ을 읽고 익힌 다음, 다시 ㄱ을 읽고 익힌 다음, 새로운 ㄷ을 읽고…. ㄱ, ㄴ, ㄱ, ㄷ, ㄴ, ㄹ, ….
내 생각에 적어도 이 시험에 한해서는 좋은 단어 목록을 찾아내서 달달 외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재미도 없는 일이고. 문장 안에서 이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동사변화하고, 어떠한 문맥을 띠는지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목록에 있는 단어였기에 확실히 암기했고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정작 문장 안에서는 아리송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처음에 나는 수첩에 저 기사들에서 발췌한 문장들과 함께 몰랐던 단어를 적기(摘記)했다가, 나중에 《Quizlet》이라는 어플을 활용했다. 믿기지 않게도 이 어플은 개발자가 프랑스어 단어를 외우려고 창작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프랑스어 학습에 최적화된 어플은 전혀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많으나, 그래도 나는 유료 회원이다. 유료 회원은 문서로 정리한 단어들을 바로 등록할 수 있다. 네이버 단어장도 좋은 점이 많은데, 이 기능이 없어서 사용을 포기했다. 꼭 이 어플이 아니더라도, 웹 어플을 활용하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정리의 용이성도 용이성이지만, 발음을 함께 기록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단어장도 이런 식으로 입체로 바뀔 시대이다.
듣기는? 듣기 공략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나처럼 과락만을 면할 생각인지, 고득점을 받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고득점을 노린다면, 듣기 분야를 다른 분야들, 읽기, 말하기, 쓰기보다 아주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정말로 밤낮으로 어떠한 것을 듣고 익혀야 이 분야는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해도 늘까 말까 한 것이 듣기이다. 물론 늘기만 한다면 수많은 프랑스어 동영상을 자유롭게 보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딕테라고 말들 하는 받아쓰기를 1jour1actu(https://www.1jour1actu.com) 의 비디오를 자료로 시도해 본 적이 있었는데, 몇 번 해보다가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매끄럽게 해낼 수 없는 일이라 판단했다. 이 사이트는 아동들을 상대로 형성된 것인데도! 물론 억지로라도 하면 종이는 채우게 되는데, 어느 순간 듣고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들을 외우고 있어서 쓸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 순간부터 받아쓰기 공부는 더 이상 듣기 공부가 아니라, 오히려 작문 공부에 가깝게 된다. 이것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기는 하다. 사실 나는 하루에 한 꼭지씩 듣기와 상관없이 이 기사들 따라쓰기를 하고 있다. 프랑스어 글쓰기에 익숙해지고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우리는 흔하게 받아쓰기 신봉자들을 볼 수 있다. 비단 한국인 학습자뿐만 아니라, 사실 딕테는 전통적으로 프랑스인에게서도 권장되는 것이다. 모제의 책도 딕테를 상당히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있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글 가운데 빈칸들이 있어도 채워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프랑스어 숙수이지 않으면, 받아쓰기는 시도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받아쓰기가 청음 시험이 아니므로, 말 그대로 잘 듣는 것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고, 사실 두 가지, 프랑스어 문법과 문체에 대한 능숙한 정도에 따라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은 듣기 시험의 어휘는 매우 단순한 것들이기 때문에 어휘론마저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달프는 다를까? 언어학적으로 말하자면, 받아쓰기란, 음성을 통해서 동기가 부여되면, 그것을 기억하여 형태론과 의미론을 바탕으로 원문을 복원하는 것이다. 나는 재료가 아니라, 음성이 동기라고 썼다. 받아쓰기에서는 형태론과 의미론에 대한 지식, 짧게 말해 법에 대한 지식이 필수 요소이다. 프랑스인이거나 프랑스에 침잠했던 사람이 아니면 받아쓰기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판단을 내렸는데, 글쎄 모르겠다.
그래서 내게는 듣기만은 과락을 면할 정도의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목표였고, 이 파고에 침몰당하여 버리지 않으면서, 그래도 즐기며 공부하려 애썼다. 너무나 쉽게 늘지 않는 분야라서 여기에 노심초사하기 시작하면, 정말로 프랑스어 학습 자체를 포기하고 싶게 된다. 나는 여러 번 듣고 따라 말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 정도의 익히기에서 그치기로 했다. 우습게도 33번 가까이 반복해서 들어도 계속 알아듣기 힘든 부분이 들리는 부분보다 더 많은데―내 실력이 이 정도이다, 그래도 다음 것으로 넘어간 이유는 너무나 지겨워서였다. 계속 말하지만 고득점을 노린다면 이렇게 공부해서는 안 된다.
나는 Le Monde 에서 유튜브로 제공하는 Explication 의 여러 클립들을 활용했다. 예; Comment l’urine humaine pourrait être l'engrais du futur #PlanB. 내가 좋아하는 주제들이어서가 아니라, 환경, 교육, 정치, 역사 등의 여러 주제들을 5분에서 10분 사이로 다루는데, 분량도 주제도 바로 듣기 시험 문제로 내도 손색이 없는 것들이라 택한 것이다. 마치 일부러 외국인이 프랑스어 공부하라고 만들어놓은 클립들 같다. 무엇보다 과거 것들은 아니지만 최신 것들은 스크립트를 직접 르몽드에서 입력해서, 그것이 자동자막 대본과는 비교할 수 없다. 영상도 단순하면서 명쾌하다. 어떻게 이렇게 고품질의 영상을 일주일에 몇 개씩 만들어서 올리는지 정말로 놀랍다. 한국신문사 및 방송국들에서 올리는 조악해서, 오히려 외국인이 볼까 두려운 것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겨울 때는 이 영상도 보았지만, 영상에서 음성만 축출해서 듣는 것이 공부하는 데에는 훨씬 더 낫다. 그 어둠의 웹사이트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요즘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 RFI (https://www.radiofrance.fr)에서 제공하는 Le Journal des sciences par Natacha Triou를 녹음해서 듣고 있다. 새로 발표된 흥미로운 과학 논문들을 짧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중간에 인터뷰도 하나씩 삽입되어 있다. 대본을 제공하고 있으며, 얕게나마 최신 과학의 동향까지 알 수 있어서 좋다. 인터뷰 대본은 안타깝게도 제공하고 있지 않은데, 그 경우 구글핀포인트 등등을 통해서, 음성-텍스트 변환을 시도해보아야 한다. 최근에 보니 유료 사이트 이지만 https://sonix.ai 도 있더라. 에피소드들은 생물학, 역사학, 물리학, 우주공학 등등을 망라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그 관련 기초 어휘들까지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라디오 프랑스 곳곳에 재미있는 코너들이 많으니 취향 따라 선택해보자. 한 시간 넘는 각 분야 심화 인터뷰도 많고, 실시간 팟캐스트도 많은데, 당연히 대본은 제공하고 있지 않으니, 실력이 된다면 시도해보자. 나는 그리고 학습으로서라기보다 가벼운 마음의 여흥거리로 En bref라는 5분도 안되는 분량의 시트콤 시리즈물을 때때로 보고 있다.
쓰기는? 쓰기 분야 공략도 전략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상태이며, 이 시험이 기대하는 글쓴이의 능력은 어떤 주제이든 편지든 논설문이든 양식에 맞추어 적합한 문장과 문단들을 즉석에서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다. 그러니 결국 이들이 원하는 글쓴이는, 어떤 주제든 고급어휘를 섞어가며 프랑스어로 척척 써내려갈 수 있는 자, 달리 말해 프랑스어 어휘 문법 아래 바로 전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지식의 소유자이다. 내 자신도 내가 그런 사람이기를 원하기는 한다. 어떤 고정된 형식을 암기하고 있으면서 필요에 따라 단어만 바꾸어서 쓸 수 있는 사람을 그들이 원하겠는가? 하지만 내가 첫 번째 시험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다. 고정된 형식을 숙지하고 있지 않다면 이 시간 안에 과연 한국어 글쓰기라고 할지라도 잘 완수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프랑스어 글을 작성하고 검토까지 여러 번 할 수 있는 뛰어난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내 전략은 틀의 숙지로 수정되었다. 델프B2의 쓰기 문제는 원리상으로는 에세이도 채택된다지만, 거의 10중에 9는 편지 쓰기이다. 편지 쓰기의 기본 양식의 숙달은 당연한 것이고, 그 내용도 스스로 정형화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집 중에 드물게 모범 답안 전문을 제공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응용할 수 있는 것을 골라서 토씨하나 안 놓치고 외웠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데,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사이트에서 편지를 녹음하여 듣기, 주기적으로 글 들여다보기, 필사하기 등등. 특히 눈으로만 외우지 말고, 반드시 손으로 써보는 과정을 거쳐라! 여기에서 쉼표, ;, :, 문단 나누기 등등의 문단 부호는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법이다. 문맥에 따라 조건법과 평서문을 오가는 방식, 종속절, 접속사를 배치하는 방식.... 암기의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설사 문법에 맞게 문장을 쓴다고 할지라도, 프랑스어 글 자체를 음미하면서, 전체 글의 부분으로서 적합한 문맥을 지니게 문장의 맛을 살리는 것은 시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달프꾼들은 이것까지 가능할까? le, un의 구별, 관습적 복수 명사와 단수 명사, 필수 복수 명사의 구별, de 무관사 명사와 de 관사 명사의 구별. 물론 문법책은 여기에 대한 이론을 제공하고 있지만, 실상은 문맥 안에서 익숙한 양태들을 실용해가며 해소할 문제일 뿐이다―당장 상기한 것들에서만 해도 조합가능한 경우의 수가 몇 개인가. 우리가 ‘한 사람’, ‘그 사람’, ‘사람’을 쓰고 교정할 때와 마찬가지의 문제이다.
그렇게 모범답안을 머리 안에 넣은 다음에는 기출 문제들을 직접 풀어보면서 활용해보자. 완전히 새로운 문장을 쓸 생각은 처음부터 아예 하지 말자. 힘들게 외웠던 글에 맞춰서 가능한 한 단어들만 바꾸어 가며 답안을 작성하는 훈련을 한다. 새로운 문장을 써보고 싶어도 약간은 억제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언어자격시험이다. 논술시험이 아니다. 내 주장의 독창성을 부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장이야 어떻든 어긋나지 않은 문장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괜히 자기주장에 집착해서 쓰기 힘든 글을 쓸 것이 아니다. 반대로 주장을 바꾸어서 쓰기 쉬운 글의 궤도를 타야 한다. 독창성 있는 자기 주장을 바르게 쓰는 것이 최상이기는 하지만 쉬운 일이랴?
물론 이렇게 하다보면 암기한 틀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주제들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때쯤 되면 이제 다른 틀을 잘 선정해서 외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자다가 일어나서도 바로 쓸 수 있도록 작문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나는 10개까지는 아니고 8개를 외웠다. 그리고 시험 보러 갈 때는 이렇게 해도 쓸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낙방한 후에 다음에는 2개를 마저 외우고 시도해보리라 생각했다. 운명에 맡긴 것이다. 결과는 작문은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델프베두가 원하는 인재는 나같은 사람은 아니다.
말하기는? 말하기는 처참한 점수를 받은 내가 그 방법을 이렇다 저렇다 밝히는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을뿐더러, 게다가 위험하므로, 여기서는 쓰지 않겠다.
대신에 이 문단은 랩스어학원 ㄱㅈㅎ 선생님에게 바치겠다. 선생님의 혜은(惠恩)으로 내가, 앞서 말한 작문 자료들을 제공해주신 것, 그나마 말하기 점수를 탈락은 면하게 올려주신 것, 듣기 공부를 하는 방식에 영감을 주신 것, 읽기 자료들을 선정해주신 것과 같은 것들을 대는 것은 프랑스어를 하는 내 영혼의 리듬이 활발할 수 있도록 일주일에 몇 시간씩 나와 함께하신 것 그 자체를 꼽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협시의 바이다. 독학하다 보면 하나의 기사 읽기에만 몇날씩 할애하다가 다른 영역 공부와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는 식의 일들이 생기는데, 이는 내가 하는 것이 프랑스어 연구가 아니라 시험 대비이므로 물리쳐야 할 매몰이다. 그런데 주기로 만나는 ㄱㅈㅎ 선생님과의 만남은 한 주 단위로 공부를 계획할 수 있게 하는, 계획해야 하게 하는 쉼표였다. 이 쉼표가 없었다면, 한없이 굴 하나에 나자빠졌다가, 어떻게 다시 나와서는 프랑스어 자체에서 나가떨어졌겠다. Une langue로서의 말만이 아니라, Le langage로서의 언어 학습의 생동성을, 내가 지쳐서 나가떨어져 있을 때쯤에 항시 불어넣어주셨던 내 선생님. 그렇다! 조금의 사심(邪心)도없이 열렬한 마음으로 내 전진을 바라시던 단 한명의 타자로서 그 사람의 마음을 갚을 방법은 앞으로 도저히 있을 수도 없으리. 나와 ㄱㅈㅎ 선생님과의 즐거운 프랑스어 수업이 나의 프랑스 한 꼭지를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2022년 7월 12일 ㄱ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