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조선책략과 영남만인소 답②
(가)는 "조선책략"이라는 저서명이 나타나 있네요. "조선책략"은 중국의 외교관인 황준헌이 저술한 것으로, 조선이 러시아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해야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정부가 개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선책략”을 유포하였습니다. 이에 유생들은 이에 반대하면서 이만손을 중심으로 영남 유생들이 영남 만인소를 올리는 등 개화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어요. (나)는 이러한 영남 만인소의 내용입니다.
1860년대 들어 서구 열강이 통상을 요구하며 침략해 오고 천주교가 유포되자 이항로, 기정진 등 양반 유생들은 척화 주전론을 내세우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지지하였습니다. 강화도 조약 체결을 전후해서는 최익현을 비롯한 유생들이 개항 반대를 주장하였습니다. 최익현은 개항 5불가소를 올려 일본은 서양과 다름없다는 왜양일체론을 내세웠으며, 개항 이후 진행될 일본의 경제적 침탈을 예견하였어요. 1880년대 초에는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과 “조선책략” 유포에 반대하면서 이만손을 중심으로 영남 유생들이 영남 만인소를 올리는 등 개화 반대 운동을 폈습니다. 이러한 위정척사 운동은 1890년대 들어 항일 의병 운동으로 계승되었습니다.
① (가)에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은 ‘중국,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하고(親中國 結日本 聯美國)’, 미국 등
서양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② (가)에서는 조선이 미국 등 서양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③ 독립 협회는 이권 수호 운동에도 앞장서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반대하여 저지시켰습니다.
④ 위정척사 운동에 참여한 양반 유생들은 외국과의 통상 수교 정책에 반대하였습니다.
임오군란 이후 청의 간섭이 더욱 강화되자, 고종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조·러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어요(1884. 7.).
⑤ 조선 중립화론은 갑신정변 직후 조선을 둘러싸고 청과 일본, 영국과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 조선 주재
독일 부영사 부들러와 유길준 등이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위정척사 운동의 흐름
시기 | 배경 | 내용 |
1860 년대 |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 | 통상 반대 운동(척화주전론) → 이항로·기정진,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 지지 |
양이의 화가 금일에 이르러 비록 홍수나 맹수의 해로움일지라도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부지런히 힘쓰시고 경계하시어 안으로 관리들로 하여금 사학의 무리를 잡아 베시고, 밖으로 장병으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오는 적을 정벌하게 하소서. - 이항로 상소문 - | ||
1870 년대 | 문호 개방(강화도 조약) | 개항 반대 운동(왜양일체론) → 최익현, 유인석 |
저들의 물화는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기이한 노리개이고 그 양이 무궁한 데 반하여 우리의 물화는 백성들의 생명이 달린 것이고 땅에서 나는 것으로 유한한 것입니다. …… 저들의 물화와 교역한다면 우리의 심성과 풍속이 패퇴될 뿐만 아니라 …… 불과 몇 년 안 가 땅과 집이 모두 황폐하여 다시 보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에 따라 나라 또한 망하게 될 것입니다. - 최익현 상소문 - | ||
1880 년대 | 개화 정책 추진, <조선책략> 유포 | 개화 반대 운동, <조선책략> 유포 반대 → 이만손의 영남 만인소, 홍재학의 만언 척사소 |
○중국은 우리가 신하의 예로써 섬기는 바이며 해마다 옥과 비단을 수레로 보내어 삼가 신의와 절도를 지키고 그 직분에 충실한지가 벌써 20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무엇을 더 친할 것이 있겠습니까? ……러시아, 미국, 일본은 다같은 오랑캐입니다. 그들 사이에 누구는 후하게 대하고 누구는 박하게 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 영남 만인소- ○대개 서양의 학문은 천리(天理)를 어지럽히고 기강을 소멸시킴이 심함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양의 물건은 태반이 음탕하고 욕심을 유도하며, 윤리와 강상을 깨뜨리고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며, 천지에 거역하는 것들입니다. 서양의 학문과 물건은 귀로 들으면 창자가 뒤틀리고 …… 또한 십자가의 상을 받들지 않는다 해도 예수교의 책을 읽게 되면 성인에게 죄를 얻는 시작입니다. - 홍재학 상소문 - | ||
1890 년대 | 을미사변과 단발령 | 항일 의병 운동(을미의병) 전개 → 유인석, 이소응 |
상투가 있고 없음에 따라 중화와 오랑캐, 인간과 짐승이 구분되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려 있으니, 머리가 만 번 갈라질지언정 상투는 한 번도 잘릴 수 없고 - 유인석 - |
유사 기출문제
26회 고급 37번 문제
37. 최익현(1833~1907)의 활동 답④
‘1873년 계유 상소(흥선 대원군을 물러나게 한 상소)’, ‘1906년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대마도에서 순국’이라는 사실을 통해 최익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최익현은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대표적 인물이었으니, 그의 활동도 위정척사 운동과 흐름을 같이 합니다. 일찍이 서원 철폐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흥선 대원군을 물러나게 하였고, 강화도 조약 체결 전후에는 왜양일체론을 내세워 개항 5불가소를 올렸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그는 유배를 자주 당하였어요.
을미개혁 당시 단발령에 반발해 궐기하려다 체포되었으며, 이때부터 1904년까지 고종은 계속해 관직을 내렸으나 모두 사직하였습니다. 그러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청토오적소'를 올려 조약의 무효와 박제순 등 어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어요. 다음해에는 ‘창의토적소’를 올려 의거의 심경을 토로하고 8도 사민(士民)에게 포고문을 내어 항일 투쟁을 호소하였습니다. 자신도 74세의 고령으로 임병찬 등 제자들과 함께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켜 정읍·순창 일대를 장악하였어요. 남원에서 관군과 마주치자 관군에게 의병에 합류할 것을 권하였으나 이를 수용하지 않자 같은 동포끼리 서로 싸울 수 없다며 결국 의병을 해산시키고 체포됩니다.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고 대마도로 유배되었으며, 적이 주는 음식물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을 하다 그곳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이에 그의 시신이 우리나라로 운구될 때 수선사에 하룻밤을 머물렀는데, 1986년 한국인과 일본인이 힘을 합쳐 여기에 순국비를 세웠어요.
① 서재필은 갑신정변에 참여하였다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며, 갑오개혁을 계기로 사면을 받고 1895년
12월에 입국하였으며, 다음해 1월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습니다(중추원은 당시 내각의 자문 기관).
그는 개화 관료 및 지식인들과 함께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 협회를 창립하여 민중을 계몽, 자주 독립 사상을 고취
하고자 하였습니다.
② 박규수는 평양 감사로 있을 당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자 군민과 함께 이를 불태웠습니다(1866). 이는 훗날 신미양요의 원인이 되었어요.
③ 임병찬은 스승 최익현과 함께 대마도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난 후 고종의 밀지를 받고 전국의 의병장과 유생들을
모아 비밀리에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였습니다(1912).
이 단체는 복벽주의 이념에 따라 국권을 회복한 후 고종을 복위시키려는 목표를 가졌으나 발각되어 해체되었어요.
④ 최익현은 강화도 조약 체결에 반대하며 지부복궐척화의소(도끼를 가지고 대궐 앞에 엎드려 척화의 상소를 올리며
답을 기다리는 것, 즉, 죽기를 각오하고 올리는 상소)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당하였어요.
⑤ 이인영은 정미의병(1907) 때 원주에서 관동창의대장이 되어 활동하다가 양주에서 각지 의병과 13도 연합 부대(13도
창의군)를 편성하여 자신이 총대장, 허위를 군사장으로 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어요(1908).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25회 고급 36번 문제
36. 영남만인소 답①
제시된 자료의 '영남에 있는', '수신사 김홍집이 가지고 온 황준헌의 사의조선책략 유포', 그리고 '만인소'라는 출처에서, 영남 유생들이 조선책략과 그 내용에 반발하여 올린 영남만인소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2차 수신사(1880)로 일본에 파견된 김홍집은 주일 청국 공관에 왕래하며 청의 외교관 황준헌 등을 만나 외교 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죠. 황준헌은 김홍집이 귀국할 때 자신이 저술한 조선책략을 전해줍니다. 이 책에는 조선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러시아이며, 조선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중국, 일본, 미국과 연합(친중국 결일본 연미국)해야 한다고 제시되어 있었어요. 이는 당시 조선이 미국과도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김홍집이 귀국해 이 책을 올리자 고종은 이 책을 대신들은 물론 전국의 유생들에게도 배포하였어요. 그러자 정부의 개화 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유생들은 이에 반발합니다. 특히, 영남 유생들은 이만손을 중심으로 공동으로 상소, 즉 영남 만인소를 올려 이 책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합니다(1881).
그 내용을 요약하면 "중국은 이미 우리가 오래전부터 예를 다해 섬겼던 나라니 더 친할 것이 무엇이고, 일본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원수이며, 미국은 우리가 모르는 나라인데 이들을 끌여들였다가 해를 입을 수도 있고, 러시아는 우리와 별 혐의가 없는데, 이들을 까닭없이 배척하다가 분쟁의 구실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러시아, 일본, 미국은 같은 오랑캐이니 누구를 후하거나 박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어요.
그러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도 미국과 조약을 맺어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결국 청이 조선과 미국의 수교를 적극 알선하면서 미국과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합니다(1882).
① 영남 유생들은 영남 만인소를 통해 러시아를 막기 위해 미국과 수교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적극 반대하였어요.
② 의회 설립과 자유 민권 운동을 편 것은 독립협회입니다.
③ 갑신정변 당시 개화당이 제시한 14개조의 개혁정강에 해당하는 설명입니다.
유생들은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지키고자 하였으니, 신분제 폐지 등에는 절대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④ 폐정 개혁안은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농민군이 제시한 것으로, 이는 갑오개혁에 일부가 반영되었습니다.
⑤ 한반도 중립화론은 거문도 사건(1885) 등으로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조선 주재 독일
외교관 부들러, 그리고 조선의 유길준이 제안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22회 고급 31번 문제
31. 영남만인소에 나타난 미국 답⑤
황준헌은 조선책략에서 조선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 즉 중국, 일본, 미국과 연합해야 한다고 제시하였어요. 제시된 자료는 조선책략의 내용에 반발하여 올린 글이니, 이만손 등 영남 유림들이 올린 상소, 즉 영남 만인소(1881)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제시된 자료의 (가)에 들어갈 나라에 대한 설명을 보면, '우리가 평소 잘 모르던 나라'라고 했으니, 청과 일본은 아니네요. 그리고 '저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끌여들여야 하는 나라'라고 했으니 러시아도 아니니, 미국임을 알 수 있어요.
따라서 미국과 관련한 내용을 찾으면 되겠네요.
19세기 후반 러시아는 베이징 조약을 통해 연해주를 획득(1860)하고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됩니다. 일본은 강화도 조약을 통해 조선과 수교를 맺은 상태였구요. 이에 청은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려고 의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2차 수신사(1880)로 일본에 파견된 김홍집은 주일 청국 공관에 왕래하며 청의 외교관 황쭌셴 등을 만나 외교 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죠. 황쭌셴은 김홍집이 귀국할 때 자신이 저술한 조선책략을 전해줍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조선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러시아이며, 조선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중국,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외교 관계가 없는 미국과도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김홍집은 귀국해 고종에게 <조선책략>을 올립니다. 고종은 이 책을 대신들에게 검토하게 하면서 전국의 유생들에게도 배포하였어요. 그러자 정부의 개화 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유생들은 이에 반발합니다. 특히, 영남 유생들은 이만손을 중심으로 공동으로 상소, 즉 영남 만인소를 올려 이 책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합니다(1881).
그러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도 미국과 조약을 맺어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됩니다. 신미양요를 일으켜 통상 조약을 체결하려다 실패한 미국도 조선에 진출하기 위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죠. 이에 청은 조선과 미국의 수교를 적극 알선하면서 서양 국가들 가운데 최초로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합니다(1882).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우리나라와 미국과 관련된 주요 사건도 알아보죠.
먼저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통상을 요구하였어요. 이들이 행패를 부리자 성난 평양 군민들이 이를 불태운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이 있구요. 이를 배경으로 미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신미양요(1871)가 있습니다. 그리고 청의 알선으로 1882년에 서양 국가들 중 최초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죠. 이 조약에는 관세 부과, 거중 조정 조항, 최혜국 대우 조항 등이 반영되었어요. 아관파천을 전후한 시기에 운산 금광 채굴권, 경인선 철도 부설권, 전등·전화·전차 부설권 등의 이권을 침탈했죠.
20세기 초에는 러·일 전쟁 때 포츠머스 강화 조약을 중재하였고,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승인하는 모습을 보였죠.
① 영국에 대한 설명입니다.
갑신정변 직후 조선은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조선에서의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거문도 사건, 1885~1887)하였어요.
② 러시아에 대한 설명입니다.
1897년 러시아는 저탄소(선박 연료인 석탄을 보관하는 장소)를 설치를 위해 절영도(오늘날 부산 영도)를 조차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독립협회가 이권 수호 운동을 펼쳐 이를 좌절시켰어요.
③ 프랑스가 일으킨 병인양요(1866)에 대한 설명이네요.
프랑스는 병인박해 때 프랑스 선교사가 순교한 것을 이유 삼아 강화도에 침입합니다.
이때 프랑스가 강화 행궁 외규장각에 보관되던 많은 수의 의궤를 약탈하여 자국으로 약탈해 갔습니다.
④ 일본에 대한 설명입니다.
1873년에 고종의 친정으로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고 민씨 세력이 집권하자 일본은 한반도 침략을 노리며 운요호 사건
(1875)을 일으켰죠.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선에 문호 개방을 강요해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1876).
⑤ 미국이 일으킨 신미양요(1871)에 대한 설명입니다.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도로 침략하였다가 어재연 등의 분전으로 물러갔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1회 고급 39번 문제
22. 위정척사 운동의 흐름 답④
위정척사 운동은 먼저, 개항 반대→개화 반대→의병 운동으로 흐름이 이어졌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따라서 제시된 자료에서 이 내용을 생각하고 풀면 됩니다.
(가)는 이만손 등 영남 유림들이 올린 상소, 즉 영남 만인소(1881)입니다.
일본에 2차 수신사(1880)로 다녀온 김홍집이 귀국할 때 청의 외교관 황쭌셴이 저술한 <조선책략>을 가지고 귀국해 이를 고종에게 바칩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조선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러시아이며, 조선은 러시아의 남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중국,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외교 관계가 없는 미국과도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고종이 이를 전국에 유포하자, 이에 반발하여 영남 유림들이 공동으로 상소를 올렸는데, 이것이 영남 만인소입니다.
(나)는 이항로가 올린 척화주전 상소(1866)입니다.
병인양요(1866)가 일어나자 기정진, 이항로 등은 서양의 통상 요구를 반대하며 서양의 무력 침략에 맞서 싸우자는 척화주전론(斥和主戰論)을 폈습니다. 이들은 서양 열강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조선을 이용하고 약탈할 뿐 아니라 백성을 짐승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폭넓은 호응을 얻었으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뒷받침하였습니다.
(다)는 최익현이 올린 개항 반대 상소(1876)입니다.
1870년대 들어 일본이 운요 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자 최익현을 비롯한 유생들은 일본은 이미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였으므로 서양 세력과 다를 것이 없다는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며 일본과의 수교를 반대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나)-(다)-(가)로 연결된 ④번입니다.
20회 고급 22번 문제
22. 위정척사파 답②
위정척사 운동과 관련한 문제는 조선책략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출제되었고 의병 운동에 대한 문제로 출제되었어요.
그리고 답지의 일부로 출제되었습니다.
제시된 자료의 핵심은 '양적(서양 세력, 프랑스)의 침입에 국론이 교(화의)와 전(싸움)으로 양분되어 있는데, 싸우자는 주장은 내 나라 사람이고, 화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적국 사람이다. 싸워 물리치면(척사, 척화 주전론)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보전할 수 있다(위정)'는 것이네요.
이를 통해 위정척사 사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자료의 출전도 "화서집"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니, 병인양요 당시 이항로가 올린 척화주전의 상소임을 알 수 있어요.
흥선 대원군이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 때 그리고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에 대해 전통적인 유생층은 성리학적 전통 질서를 지키고(위정) 외세를 배척하자(척사)는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들은 개항과 개화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였고, 일제의 침략적 행위에는 의병 운동을 폈습니다.
그 흐름을 살펴 보죠.
1860년대 들어 천주교가 유포되고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가 거세어지자 유생들은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을 폈습니다.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기정진, 이항로 등은 서양의 통상 요구를 반대하며 서양의 무력 침략에 맞서 싸우자는 척화주전론(斥和主戰論)을 폈습니다. 이들은 서양 열강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조선을 이용하고 약탈할 뿐 아니라 백성을 짐승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폭넓은 호응을 얻었으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뒷받침하였습니다.
1870년대에는 일본이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자 최익현을 비롯한 유생들은 일본과의 수교를 반대하는 개항 반대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일본은 이미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였으므로 서양 세력과 다를 것이 없다는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며 강화도 조약 체결에 반대하였어요.
1880년대에는 정부가 개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선책략’을 유포하고 미국과 통상 조약을 체결하려 하자 유생들은 집단 상소를 올려 반발하였습니다.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은 ‘만인소’를 올려 "조선책략"에서 제시한 내용들을 나라별로 조목조목 비판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유생들이 전국적으로 상소를 올려 정부의 개화 정책을 비판하였습니다.
1890년대 들어서는 명성 황후 시해와 단발령 실시에 반발해 의병(을미의병)을 일으키며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① 문명 개화론은 서양의 근대 기술 문화뿐만 아니라, 사상이나 제도까지 수용하자는 주장입니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문명 개화론에 영향을 받아 급진 개화파를 형성하였으며,
민영익, 김홍집, 김윤식 등은 청의 양무 운동을 본받아 동도서기론의 입장의 온건개화파로 분화되었어요.
③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민영익, 유길준 등의 개화 사상가들은 박규수의 영향을 받았어요.
박규수와 오경석, 유대치 등은 일찍부터 통상 개화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어요.
이들의 영향을 받은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민영익, 유길준 등 젊은 양반 지식인들은 박규수의 사랑방에 모여 개화에
대한 지식을 키워 갔으며, 문호 개방을 전후하여 개화파라는 하나의 정치 세력을 형성합니다.
④ 조사 시찰단으로 파견된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은 개화파 관료들이었어요.
⑤ 통리기무아문은 1880년에 정부가 개화 정책을 주관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그 밑에 12사를 두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9회 고급 31번 문제
31. 조선책략 답③
조선책략과 관련하여서는 조선책략의 내용과 끼친 영향, 조선책략에 나타난 나라들에 대한 사실들이 문제로 출제됩니다.
청의 관리 황쭌셴이 저술한 조선책략은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이 귀국할 때 가져와 고종에게 올렸으며,
고종이 조선책략을 배포하자 이에 반대하여 이만손을 비롯한 영남 유생들이 주축이 되어 위정척사 운동을 벌여 영남만인소를 올렸으며,
이 책에는 조선에 위협적인 러시아를 막기 위해서 조선은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 해야 한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는데, 이에 따라 중국의 중계로 서양 국가 중 최초로 미국과 수교를 하였다는 것을 알아두면 됩니다.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은 청의 외교관 황쭌셴이 쓴 <조선책략>을 가지고 와 고종에게 올립니다(1880).
이 책에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은 중국,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고종은 이 책을 대신들에게 검토하게 하면서 전국의 유생들에게도 배포하였습니다.
그러나 1880년대에 개화 정책이 추진에 반발하던 유생들은 <조선책략>이 유포되자 영남 유생들은 이만손을 중심으로 집단 상소인 만인소를 올려(1881) 정부의 개화 정책과 서양과의 수교 추진에 격렬하게 반발하였습니다.
이 당시 러시아는 연해주를 획득(1860)하고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미 강화도 조약을 체결(1876)하여 조선과 수교하고 세력을 넓히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청은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과 미국의 수교를 적극 알선하였습니다.
결국 유생들의 반대 속에서도 미국과 조약을 맺어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서양 국가들 가운데 최초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1882).
ㄱ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은 강화도 조약(1876)으로 조선책략 유포(1880) 이전의 사실입니다.
ㄴ -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은 조선책략 유포와 개화 정책에 반대하며 영남 만인소를 올렸습니다.
ㄷ - 청의 외교관이었던 황쭌셴은 이 책에서 조선이 러시아를 막기 위해서 중국, 일본, 미국과 손잡아야 한다고 했어요.
당시 조선은 중국과 일본과는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이는 미국과 수교를 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봐야죠.
ㄹ - 최익현이 왜양일체론을 주장한 것은 강화도 조약 체결 시기입니다.
일본이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자 유생들은 일본이 서양에게 문호를 개방하였으므로, 서양 세력과 다를 것이 없다는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며 일본과의 수교를 반대하였습니다.
특히, 최익현은 개항 5불가소를 올려 일본과 서양에 대한 문호 개방이 가져올 위험을 예리하게 지적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ㄴ, ㄷ으로 묶인 ③번입니다.
16회 고급 33번 문제
33. 영남만인소의 등장 배경(조선책략) 답⑤
문제에 제시된 자료도 엄청 많이 본 사료죠?
이 문제도 위정척사 운동과 관련하여 자주 출제되는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에 대한 평가를 하는사료가 나오면 이만손의 영남만인소, 이 상소는 <조선책략> 유포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다라고 공식처럼으로 알아두세요.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은 청의 외교관 황쭌셴이 쓴 <조선책략>을 가지고 와 고종에게 올립니다. 이 책에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은 중국,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고종은 이 책을 대신들에게 검토하게 하면서 전국의 유생들에게도 배포하였습니다.
그러나 1880년대에 개화 정책이 추진에 반발하던 유생들은 <조선책략>이 유포되자 영남 유생들은 이만손을 중심으로 집단 상소인 만인소를 올려(1881) 정부의 개화 정책과 서양과의 수교에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미국과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러시아는 연해주를 획득(1860)하고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접근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조선에 진출하기 위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죠.
이에 청은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과 미국의 수교를 적극 알선하였습니다. 조선에서도 미국과 조약을 맺어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서양 국가들 가운데 최초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1882).
①~④번은 시기상으로 문제에 제시된 주장(1881) 이후의 일입니다.
① 삼국 간섭은 청·일 전쟁 승리 후 일본이 청으로부터 랴오둥(요동) 반도를 할양받자 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
아가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일본에게 랴오둥 반도를 청에게 돌려주도록 압력을 넣어 반환하게 만든 것입니다(1895).
② 한반도 중립화론은 갑신정변 이후 거문도 사건 등으로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이 격화되자, 조선 주재 독일 외교관
인 부들러, 유길준이 구상하였습니다(1885).
③ 동학 농민 운동 당시 군대를 보낸 일본은 조선의 철수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선에 대한 간섭을 유지하기 위해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습니다(1894).
④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에 따라 조선 주재 미국 공사가 파견되자 정부는 미국에 보빙 사절단을 파견했어요(1883).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5회 고급 39번 문제
39. 영남만인소에 나타난 세 나라 답③
이 문제도 위정척사 운동과 관련하여 자주 출제되는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문제에 제시된 사료는 이만손을 비롯한 영남 유생들이 올린 영남만인소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사료에 들어갈 (가)는 중국(청), (나)는 미국, (다)는 러시아입니다.
여기에는 빠져 있지만 영남만인소에는 일본에 대한 내용도 언급하였어요.
미국, 러시아, 일본 모두 오랑캐라고 결론짓고 누구를 후하게 대하고 누구를 박하게 대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영남만인소가 나오게 된 배경은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갔던 김홍집이 가지고 온 <조선책략>을 고종이 관리와 유생들에게 배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황쭌셴이라는 중국의 외교관이 동아시아의 정세와 조선의 외교 정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쓴 것인데, 그 주요 내용은, 러시아가 남쪽으로 침투하는 상황에서 조선이 이를 막기 위해서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의 외교를 추진하면서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종은 이 책의 내용에 큰 관심을 가지고 서양과 수교하려는 뜻을 가졌으며, 이를 복사하여 관리와 유생들에게 배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정부의 개화 정책을 반대하는 유생들은 전국적으로 개화 반대의 상소를 올리면서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영남의 유생들은 만인소를 올려 이에 강하게 반발하였습니다.
영남만인소의 내용이 바로 문제에 제시된 사료죠.
① 청은 군대를 동원해 임오군란을 진압한 후 조선에 군사 고문과 외교 고문 등을 파견하여 내정에 간섭하였습니다.
② 조선이 일본과 수교를 맺자 조선에서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한 청은 조선과 서양의 수교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이에 따라 조선은 서양 국가들 중 가장 먼저 청의 알선으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③ (나)는 미국인데 영국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으니 이게 답이네요.
러시아는 연해주를 차지(1860)하여 조선과 국경을 접한 후 조선에 접근하였습니다.
갑신정변 후 조선은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불안을 느낀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습니다(거문도 사건 1885).
두 나라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조선에 침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 영국군은 3년 만에 철수하였습니다.
④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은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최혜국 대우 조항은 이후 다른 나라와의 조약에도 포함되었는데, 이는 훗날 아관 파찬 시기 열강의 이권 침탈이 가속
화되는 원인이 됩니다.
⑤ 일본이 청·일 전쟁 승리의 대가로 요동 반도를 차지하자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이를 청에 돌려주라고 압
력을 가해(삼국 간섭) 일본은 요동 반도를 반환할 수밖에 없게 되죠.
삼국 간섭으로 러시아 세력의 우위가 드러나자, 일본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고종과 명성황후는 러시아 세력을 이용
하여 일본을 견제하려는 정책을 추진해 조선과 러시아가 급격하게 가까워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8회 고급 33번 문제
33. 조선책략과 관련된 사실 답③
이 문제의 자료도 요약하면 '조선의 급무는 러시아를 막는 것이며, 이를 위해 조선은 중국과 친하고(친중국) 일본과 맺고(결일본) 미국과 연대(연미국)하여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네요.
이는 황쭌셴이 저술한 <조선책략>의 내용이죠.
위 두 문제에서 계속 공부한 내용이니 이제 눈감고도 알 수 있겠네요?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해 양반 유생들이 영남만인소를 올리는 등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하며 반발하였지만,
결국 이것이 계기가 되어 청의 알선으로 조선은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게 되죠(1882).
① 조선책략은 김홍집이 집필한 것이 아니라, 청의 외교관인 황쭌셴이 저술한 것입니다.
김홍집은 귀국할 때 이를 국내에 가지고 와서 고종에게 올렸을 뿐입니다.
② 청의 외교관인 황쭌셴이 지은 것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와는 관련이 없어요.
일본의 후쿠자와 유기치가 주장한 문명개화론은 김옥균 등의 급진개화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③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해 양반 유생들이 영남만인소를 올리는 등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④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은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이 조선에 강요하여 체결한 것입니다.
⑤ 임오군란을 진압한 후 청은 마졘창,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조선에 고문으로 파견하여 내정을 간섭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6회 고급 42번 문제
42. 영남만인소의 배경 답②
이 자료도 위 문제에서 자세하게 공부했죠?
자료에 나타난 일본, 미국, 아라사(러시아)에 대한 견해을 통해 볼 때 이 자료가 <조선책략>에 대한 반박 내용임을 쉽게 알 수 있어요.
이 자료는 일본에 2차 수신사(1880)로 다녀온 김홍집이 귀국할 때 가져온 <조선책략>을 고종이 유포하자, 이에 반발하여 영남 유림 세력들이 올린 영남 만인소(1881)의 내용입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조선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러시아이며, 조선은 러시아의 남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중국,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외교 관계가 없는 미국과도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어요.
결국 청의 알선으로 조선은 서양 국가와는 처음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ㄱ - 영남만인소는 김홍집이 가져온 <조선책략>의 유포에 반발하여 올린 상소문입니다.
ㄴ - 동학 농민 운동을 계기로 국내에 들어온 일본군은 전주 화약으로 국내 잔류 명분이 사라지자 경복궁을 포위하고 내
정을 개혁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미 내정 개혁을 준비중이던 조선은 1차 갑오개혁(1894)을 추진하게 됩니다.
일본군이 철수하지 않고 내정 개혁을 강요하는 등 무력 시위를 벌인 것에 반발해 동학 농민군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2차 봉기를 하게 됩니다(1894. 9).
ㄷ - 개항 이후 정부는 수신사와 영선사, 조사 시찰단을 파견하는 등 선진 문물을 시찰하게 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개화 정
책을 추진합니다. 이러한 개화 정책에 반발해 유생들을 중심으로 위정 척사 운동을 벌입니다.
ㄹ - 거문도 사건(1885)은 영남 만인소(1881) 이후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ㄱ, ㄷ으로 묶인 ②번입니다.
5회 고급 41번 문제
33. 조선책략에 나타난 나라와 관련한 사실 답⑤
문제에 제시된 자료 서두에 <조선책략>이 언급되어 있으니, (가)~(라)에 들어갈 나라는 조선책략에서 언급하고 있는 나라들이겠지요.
이 자료는 <조선책략> 유포에 반대해 영남 유림들이 올린 영남만인소의 내용입니다.
<조선책략>은 일본에 있던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이 지은 것으로, 김홍집이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들어오면서 가지고 들어온 책입니다.
이 책에는 조선이 남하하는 러시아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하는 외교 정책을 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많이 들으셨죠?
그럼 <조선책략>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이니 자료의 설명을 보고 (가)~(라)에 한 나라씩 넣어보죠.
(가)를 보면 우리가 신하로 섬겼던 나라라고 하니 중국,
(나)는 우리에게 매여 있던 나라, 즉 우리가 예전부터 한수 아래로 취급하던 나라이니 일본,
(다)는 본래 우리가 모르던 나라, 또 불러들인다(적이 아니라 친하게 지낸다는 의미이니)고 했으니 미국이겠죠?
(라)는 우리와 혐의가 없는 나라인데 남의 말을 듣다가 틈이 생긴다고 했으니(적대 관계 내지 견제를 해야할 나라로 지목한 나라겠죠?) 러시아입니다.
따라서 빈 칸에 들어갈 나라들은 (가) 중국, (나) 일본, (다) 미국, (라) 러시아입니다.
ㄱ - 한반도 중립화론을 주장한 조선 주재 외교관은 독일 부영사 부들러였습니다.
ㄴ - 경인선 부설권은 처음에 미국이 획득했다가 후에 일본으로 넘어갔습니다.
당현 금광 채굴권은 독일이 얻었습니다.
ㄷ - 운산 금광 채굴권은 미국이 획득하였지요.
ㄹ - 절영도(부산 영도)를 조차하려고 시도한 나라는 러시아입니다.
그러나 이는 독립 협회가 만민 공동회를 열어 강력히 규탄하면서 저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ㄹ로 묶인 ⑤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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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솔직히 왜 3점인지 모르겠는 문제인 듯 해요^^
'조선책략'의 논점은 저자인 청나라 관리 황쭌셴이
조선 외에 자기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에게 하는 충고 형식을 빌어
책을 썼으나 실은
청나라 관리인 자국의 이해관계 위주로
저술된 책인것을요^^
그 점만 기억한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지 싶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맞게 풀어놓고
마킹 미스로 틀렸네요ㅠㅠ
만약 이번처럼 나중에 문제만 풀어본 게 아니라
원서접수해서 응시한 실제 시험이었음
정말 뼈아팠을 문제라는요^^;;
해설을 보면서 더욱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이라 어렵네요^^; 열심히하겠습니다
다시 한국사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입니다.
아직 부족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기출풀이를 참고하여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렵네요....이제 시작하려고 하는데
자료 감사합니다
아직 이것저것 알아보고있는 단계라 문제가 낯서네요 많은 도움 받고가겠습니다!!
그 당시 최혜국대우로 인해 갑자기 서구 국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히 일어났고, 개방을 해야한다는 의견과 개방을 하면 안된다는 의견으로 인해 서양 침략에 잘 대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런 양측의 대표적인 인물과 상소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시작해서인지 어렵네요... 자료 감사합니다~
와.. 아직 어렵네요..조선책략은 결국 청나라 관리인 자국의 이해관계 위주로 쓰였네요
댓글은
감사합니다....라는 글은 달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문제에 대한 난이도, 자료 등에 대한 느낌이나
개인적인 문제풀이 접근법 등을 달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유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댓글 단 분은 등업 안됩니다.
문제난이도는 상 정도 되는것같고 자료는 1급에 적합한 자료인것같습니다. 문제접근은 사룔를 꼼곰히 스캔하였습니다
문제난이도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것 같습니다.. 공부할때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문제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두루두루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9회 고급 31번 문제는 고종과 김홍집을 생각하면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생각하면 쉽게 풀수있습니다. 연미론대두,이만손의 영남만인소,홍재학의 만언척사소를 떠올리며 오답을 강화도조약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면 쉽게 풀수있습니다. 3점짜리 문제이지만 난이도가 낮은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는 꼭 맞추고 넘어가셔야합니다.
한국사 흐름만이라도 잡자고 공부시작했다가 검정시험까지 도전하려고 준비중인데, 역시나 문제풀이는 어렵군요. 기초탄탄히 하여 문제도 많이 풀어봐야겠네요
재밌는 문제네요 한국사는 흐름오 중요한거 같아요ㅎㅎ
생각보다 어렵네요 ㅠㅠ 더 힘내서 해야겠어요~
요즘 인강듣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ㅠㅠㅠ
한국사 문제를 첨풀어보는데..... 사료가 뭘 말하는지 파악하는게 가장 중요한것 같네요... 보기보면 뭔지는 알겠는데 뭘 물어보는 문제인지 모르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 ㅠㅠ
사료중심인 문제가 제일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방대한 사료를 어떻게 접근해야될지.. 고민되네요ㅜㅜ
기출분석을 보니 흐름만 알기 보다는 자료까지 세세하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간단하게 흐름 정리해놓고 자신만의 방법대로 기출을 분류하는게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흠... 어찌접근을
휴유 어려워요
흐름 파악이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자료가 좋네요. 열심히 활동 하겠습니다.
문제가 이해 중심이다 보니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자료 보고 열심히 공부할게요
기출만 풀고 시험보려 했는데 기본서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 난이도가 정말 어렵네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과 평소 공부한걸 반성하게 됩니다.
어렵지만 반복적으로 보면 다음에 나와도 반갑게 느껴질 것 같네요.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걱정이지만 차분하게 풀이 여러번 해보도록 할게요.
난이도가 높은데 열심히 공부하고 다시 풀어봐야겠어요
와...다들 열심히 하시네요.
역시 근현대가 어렵네요
해설이 도움이 많이됩니다. 감사합니다.
와~ 해설만봐도 ㅎㅎ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불끈!! 감사합니다~
아직 어렵지만 계속 보면 머리에 박히겠죠
이거 고급문제는 역시
너무 어렵습니다.ㅜㅜ
상세한 해설 대박!!!
감사합니다
문제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유사 기출문제들로 사료들을 익히고 개념을 다잡아봐야 할 것 같네요. 좋은 해설 감사합니다.
상세한 해설 감사합니다...근데 어렵네요 ㅜㅜ
아직은 머릿속에 내용이 안들어오지만 설명이 상세해서 도움이 많이될것같아요ㅎㅎ
도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