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국호 大夫餘로 貊族 융안 우화충이 丹國[거란족] 등을 이끌고 고조선 신한[辰韓] 서북부 36개군과 수도 서울 백악산은 점거한 대반족이 貊族으로 기원전 426년 물리단군시절에 일어난 삼한조선 관경제 붕괴된 것으로 이를 욕살 구물이 이듬해 기원전 425년 병진년에 맥족장 우화충을 잡아 목베고 대반란을 진압하고 제44대 단군천자로 옹립됩니다. 물리단군이 대란중에 붕어하시고 이에 욕살 구물이 제44대 단군천자 干으로 옹립되고 고조선 국호를 삼한조선 즉 마한조선이 축소 와해된 것으로 이를 신한+변한 조선 그리고 마한은 여진+말갈로 다시 정리합니다. 국호 大夫餘로 즉 나라=조선을 夫餘로 大는 韓[三韓]으로 대부여=삼한 부여로 한 것으로 수도는 아사달 州 백악산 [현 료녕성 진산]에서 장당경[현 료녕성 개원 즉 開坪]으로 천도하고 변한 조선 변조선=弁韓으로 고깔모자는 맥족 즉 몽고리 토착민의 상징 弁[牟]로 변한을 철폐하고 番조선 =번부여 즉 番韓으로 이름한 것으로 기원전 425년 구물단군 원년 丙辰年으로 삼국유사에 일부러 조작 빼버린 수 188년 大夫餘 고조선 후기로 고기에서는 "이를 포함하여 고조선시대로 고대로 고기' 고조선 가림다로 한 기원전 425년 ~ 기원전 238년 제47대 고열가 단군 58년 계해년"까지입니다.
왜 고조선 -대부여는 수 2096년 47대 단군천자국을 폐관한 것일까??
맥족장 융안 우화충이후에 이 맥족이 국몀은 북맥[北貊/北漠]으로 바로 몽고리 내외몽고리 지역의 몽고리 토착민으로 대부여 신한 부여/번한 부여의 재서에 위치한 현 몽고족이 예맥족이다.
우선 범장의 환단고기 북부여기 상.을 보면 요약된 본을 한번 보아야 뭐가 잘못인지 알게 됩니다.
4.북부여기
북부여기북부여기상(휴애거사 범장 지음)
시조 단제[天帝] 해모수 재위 45년
임술 원년(B.C.239) 단제께서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그를 바라보면 과연 천왕랑(天王郞)이라 할 만하였다. 나이 23세에 하늘에서 내려오시니, 이는 47세 단군 고열가 57년 으로 임술 4월 8일이라. 웅심산에 의지하여 궁실을 난변에 쌓았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시고 용광의 칼을 차시며 오룡의 수레를 타셨다. 따르는 종자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엔 하늘로 오르시니 이에 이르러 즉위 하셨다.
계해 2년(B.C.238년) 이해3월 16일 하늘에 제사하고 연호의 법(지금의 호구를 조사법)을 제정하더니 오가의 병력을 나누어 배치하여 밭 갈아 자급자족함으로써 뜻 밖의 일에 대비하도록 하였다.기사 8년(B.C.232년) 단제께서는 무리를 이끌고 가서 옛 부여의 수도의 신한[辰韓] 오가들을 회유하시니 마침내 공화의 정치를 철폐하게 되었다. 이에 만백성들이 추대하여 단제가 되었다. 겨울 10월 공양태모(公養胎母: 현자를아끼고, 태교를 생각하는법)의 법을 세워 사람을 가르침에는 반드시 태교부터 실시하도록 하였다.
임신 11년(B.C.229) 북막의 추장 산지객륭이 영주(요나라 부근)를 습격하여 순사 목원등을 죽이고 크게 약탈질하고 돌아갔다.
경진 19년(B.C.221) 기비가 죽으니 아들 기준을 아비의 뒤를 이어 번조선의 왕으로 봉하였다. 관리를 보내 병사를 감독하고 연나라를 대비하는 일에 더욱 힘쓰도록 하였다. 연 나라는 장수 진개(秦介:제나라의 장군으로 동호 즉 조선에 인질로 잡혀있다. 나중에 돌아가 조선을 침범하여 조선이 양평에 에 성을 쌓아 국경으로 삼았다.)를 파견하여 우리의 서쪽 변두리 땅을 침략하더니 만번한(滿番汗:최근 중국의 연구로 북경 북쪽의 창평임이 밝혀짐.)에 이르러 국경으로 삼게 되었다.
신사 20년(B.C.220)명을 내리사 백악산 아사달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도록 하시고 7월 새로운 궁궐 336간을 지어 이름하여 천안궁(天安宮)이라 하였다.
계미 22년(B.C.219), 창해역사 여흥성이 한나라 사람 장량(한고조의 공신. 한이 진시왕에게 망하자 그 원수를 값는다고 가재를 털어 자객을 구하고 역사를 구하였다. 120근의 철퇴를 만들어 동유중인 진시황 정을 박랑사에서 습격했으나 빗나가 부차를 박살냈다. 여기서 자객이 청해역사 여흥성이다. 여흥성은 그뒤 여흥성의 거사 미수로 수배되어 몸을 숨겨오다가 한나라 시조 유방과 연결되어 진시황을 타도하고 한나라 창업공신이 된다. 박랑사는 하남성 박랑현의 동남에 있다.) 과 함께 진나라왕 정을 박랑사 가운데서 저격하였으나 빗나가 부차를 박살냈다.
임진 31년(B.C.209), 진승(진나라 말기의 농민반란 지도자)이 군대를 일으키니 진나라 사람들이 크게 어려웠다. 이에 연나라.제나라.조나라의 백성들이 도망해서 번조선에 귀순하는 자가 수만명 이나 되었다. 이들을 상하의 운장에 갈라 살게하고 장군을 파견시켜 감독케 하였다.
기해 38년(B.C.202), 연나라의 노관이 다시금 요동의 옛성터를수리하고 동쪽은 패수로써 경계를 삼으니 패수는 오늘날의 난하이다.병오 45년(B.C.195), 연나라의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의 무리인 위만은 우리에게 망명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후에 번조선의 왕 기준이 크게 실수하여 위만을 박사로 모시고 상하운장을 떼어 위만에게 봉해 주었다. 이해 겨울 단제께서는 붕어하시고 태자 모리수가 즉위 하였다.
2세 단제 모리수 재위 35년
정미 원년(B.C.194), 번조선의 왕은 수유에 있으면서 항상 많은복을 심어 매우 풍부 하였다. 뒤에 떠돌이 도적떼(위만)들에게 패하여 망한뒤 바다로 들어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오가의 무리들은 대장군 탁을 받들어 모두 함께 산을 넘어 월지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 월지는 탁의 태어난 고향이니 이를 가리켜 중마한이라 한다. 이에 이르러 변.진한의 두한도 역시 각각 자기들이 받았던 땅 백리를 가지고 수도로 정하고 나름대로 나라이름을 정했는데 모두 마한의 다스림을 따르고 세세토록 배반하는 일이 없었다.
무신 2년(B.C.193), 단제께서 상장 연타발을 파견하여 평양(산서성 임분시가 평양성)에 성책을 설치하고 도적떼와 위만의 무리에 대비케 했다. 이에 위만도 역시 싫증을 느꼈던지 다시는 침범하지 않았다.
신미 25년(B.C.170),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고해사가 즉위하다.
3세 단군 고해사 재위 49년
계축 42년(B.C.128), 단제께서 몸소 보병과 기병 만명을 이끌고 위만의 도둑떼 를 남여성에서 쳐부수고 관리를 두었다.경신 49년(B.C.121), 일군국이 사신을 보내 방물을 헌상하였다.
이해 9월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고우루가 즉위 하였다.
4세 단제 고우루 재위 34년
신유원년(B.C.120), 장수를 보내 우거를 토벌하였으나 이로움은없었다. 고진을 발탁하여 서압록(한반도의 압록이 아니라 몽고지방 을강을 뜻함.)을 수비하도록 하니 병력을 늘리고 많은 성책을 설치하여 능히 우거를 대비하는데 공이 있었으므로 승진시켜 고구려후(중국의 제후국인 고구려후가 아니라 북부여의 제후국인 고구려후임이 확실해졌다.)로 삼았다.
계유 13년(B.C.108), 한의 유철이 평나를 노략질하여 우거(망한위만의 뒤를 이어 대항한자.)의 나라가 혼란스럽자 번조선인인 최最가 우거를 살해하였다. 뒤에 성기가 반항을 하였으나 그 또한 번조선인에 의해 살해되었다.이러하여 우거가 망하자 한이 4군(이것이 중국측에서 주장하는 한4군이다. 문제는 우리의 이사서를 믿지 않는 다하더라도 한무제의 태도에서 이 전쟁의 결과를 추측 해볼수있다, 한무제는 전쟁에서 지자 전쟁에 참가했던 육군사령관 순체,해군사령관 양복,무제의사신 위산과 공손수의 네사람을 모두 능지처참에 해당하는 기시라는 최악의 사형으로 발기발기 찢어 죽였다고한다. 만약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개선장군일 이 사람들을 왜 죽였겠는가, 이것의 대답은 생각해보지 않아도 누구나 알수있는 사실이다.)을 두고자 병력을 치막시키니, 이에 고두막한[汗]이 국명 동명으로 료해의 동쪽에서 의병을 일으켜 가는 곳마다 한의 군을 연파하였다. 이러자 그 지역의 백성들 모두가 군사를도와서 크게 떨쳐 보답하였다.
갑오 34년[기원전 86년] 10월 동명왕 고두막한은 사람을 시켜서 고하기를"나는 천제의 아들인데 장차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자하니, 왕은 이 땅에서 옮겨 가시오"라하니 단제는 매우 곤란해 졌다.마침내 단제께서는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동생인 해부루가 이에 즉위 하였는데 동명왕은 여전히 군대를 앞세워 이를 위협하기를 끊이지 않으매 군신이 매우 이를 어렵게 여겼다. 이때 국상인 아란불이, "통하의 물가 가섭의 벌판에 땅이 있는데 기름지고 오곡이 썩 잘됩니다. 걍사를 둘만한 곳입니다"라고 하며 왕에게 권하여 도성을 옮겼다. 이를 가섭원 부여라 하며 또 동부여라고도 한다.
북부여기 북부여기하
5세 단군 고두막(혹은 두막루) 재위 22년, 제재위 27년
계유 원년(B.C.108년), 이 해는 단제 고우루13년이다. 제(帝)는 사람됨이 호탕하고 용맹하여 군사를 장 다루었다. 일찌기 북부여가 쇠약해지고 한나라 도둑들이 왕성해짐을 보고 분명히 세상을 구할 뜻을 세워 졸본(卒本:몽고 역사학자의 말에 따르면 지금의 북만주나 동몽고의 땅으로 비정된다.)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동명이라 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고열가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을해 3년(B.C.106) 제가 스스로 장수가 되어 격문을 전하니 이르는 곳마다 무적이었다. 열흘이 못되어 5,000명이 모여 한나라도둑들과 싸울 때마다 먼 곳에서 그 모습만 보고도 흩어져 버리므로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구려하를 건너 요동의 서안평(西安平:후에 요의 상경 임황부가 되었다.)에 이르니 바로 옛 고리국(藁離國:바이칼호부근에서 몽고내부까지.)의 땅이었다.
갑오 22년(B.C.86)단군 고우루 34년에 제가 장수를 보내어 배천의 한나라도둑들을 쳐부수고 유민과 힘을 합하여 향하는 곳마다 한나라 도둑떼를 연파하더니 그 수비장수까지 사로 잡았으며 방비를 잘 갖추어 적에 대비했다.
을미 22년(B.C.86) 북부여가 성읍을 들어 항복하였는데, 여러 차례 보전하고자 애원하므로 단제가 이를 듣고 해부루를 낮추어 제후로 삼아 분능으로 옮기게 하고는 북을 치며 나팔을 부는 이들을 앞세우고 수만군중을 이끌고 도성에 들어와 동명 부여라 칭하였다. 가을 8월에 서 압록하의 상류에서 한구와 여러 차례 싸워크게 이겼다.
임인 30년(B.C.79) 5월 5일에 고주몽이 분능에서 태어났다.신유 49년(B.C.60) 제가 붕어하고 유명에 따라 졸본천에 장사 지냈다. 태자 고무서 등극하다.
6세 단군 고무서 재위 2년
임술 원년(B.C.59) 제가 졸본천에서 즉위하고는 백악산에서 장로들과 함께 모여 사례에 따라 널리 하늘에 제사할 것을 약속하시니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다. 제는 태어나면서부터 신과 같은 덕이 있어 능히 주술로서 바람과 비를 불러 잘 구제하므로 민심을 크게 얻어 소해모수라 불렸다. 이 때에 한나라의 오랑캐들이 요하의 왼쪽에서 널리 소란을 피웠으니 여러 차례 싸워서 크게 이겼다.
계해 2년(B.C.58) 제가 영고탑을 순시하다가 힌 노루를 얻었다. 겨울 10월 제가 붕어하고 고주몽이 유언에 따라 대통을 이었다.이보다 앞서 단제는 아들이 없었는데, 고주몽을 보고 사람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딸로서 아내를 삼게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즉위하니 이해의 나이가 23세 였다. 이때에 동부여인이 그를 죽이려 하였는데 오이,마리,협보(주몽의 협력자로 뒷날 일본으로 건너가 다파라국을 세웠다.)등 세 사람과는 덕으로써 사귄 친구였던 지라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서 함께 길을 떠나 분릉수에 이르렀다. 그러나 건너려고 하여도 다리가 없었으므로 뒤 쫏아오는 군사들에게 몰릴까 두려워하여 물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인데 오늘 도주함에 있어 추격병은 다가오고 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하니, 이때에 물고기 자라 따위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므로 주몽이 건너가자 물고기와 자라는 다시 흩어졌다.
북부여기 가섭원부여기
시조 해부루 재위 39년
을미 (B.C.86) 원년 왕은 북부여[주, 동명=신한 부여] 때문에 지약을 받아 가섭원 혹은 분능(현토/임둔 하북성 장성남단부근)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옮겨서 살았다. 오곡이 다 잘 되었는데 특히 보리가 많았고 또 범.표범.곰.이리 따위가 많아서 사냥하기 편했다.
정유(B.C.84) 3년 국상 아란불(동부여제상, 많은 문헌에 등장)에게 명하여 널리 잘 먹여주고 따뜻하게 살 곳을 주며 또밭을 주어 경작하게 하니 몇해 안되어 나라는 풍부해지고 백성들은 풍족해 졌다. 때에 필요할 때 마다 비가 내려 분능을 기름지게 하는지라, 백성들이 왕에게 정춘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임인 8년(B.C.79) 앞서 하백녀 유화부인이 나들이를 나갔는데 북부여의 황손 고모수가 유혹하더니, 강제로 압록수변의 어떤 집에서 자기 멋대로 하여 버리고는 고모수는 승천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유화의 부모는 유화가 무모하게 고모수를 따라 갔음을 책망하여 마침내 구석 방에 딸을 가두어 버렸다. 고모수는 본명이 불리지이며 혹은 고진의 손자라고도 한다. 왕께서는 유화를 이상히 여겨 수레를 같이 타고 궁으로 돌아와 깊숙한 곳에 가두어 버렸다. 그해 5월 5일 유화부인은 큰 알 하나를 낳으니 한 사내 아이가그 껍질을 깨고 나왔다. 이름은 고주몽이라 불렀는데 생김새가 뛰어났으며 나이 7세에 저 혼자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에선 활 잘 쏘는 것을 일컬어 주몽이라 하므로 이로써 이름으로 불렀다.
갑진 10년(B.C.77) 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어느날 산천에 제사지내고 아들 있기를 빌었더니 타고 있던 말이 곤연에 이르자 큰 돌을 마주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은 이를 이상히 여겨 사람들을 시켜 큰 돌을 굴리게 하였더니 어린애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 모양이더라. 왕은 몹시 기뻐하며 "이 아이야말로 하늘이 나에게 내리신 아기로다."라고 하시며 곧거두어 기르니, 이름을 금와라 하고 장성케하매 태자로 책봉하였다.
임술 28년(B.C.59) 나라 백성들이 고주몽을 가리켜 나라에 이로움이 없는 인물이라 하여 그를 죽이려 했다. 고주몽은 어머니 유화부인의 명을 받들어 동남쪽으로 도망하여 엄리대수를 건너 졸본천에 이르러, 이듬해[계해 B.C. 58, 정월에 새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고구려의 시조가 된다.계유 39년(B.C.48) 왕이 죽고 태자 금와가 즉위하다.
2세 금와 재위 41년
갑술 원년(B.C.47)왕이 사신을 보내 고구려에 특산물을 바쳤다.정유 24년(B.C.24)유화 부인이 돌아 가셨다. 고구려는 호위병 수만으로 졸본으로 모셔와 장사지냈는데 황태후의 예로써 억지로 산 같은 능을 만들고 곁에 묘사를 짓게 하였다.갑인 41년(B.C.7년) 왕이 돌아가시니 태자 대소가 즉위 하였다.
3세 대소 재위 28년
을묘 원년 (B.C.6) 봄 정월에 왕은 사신을 고구려에 보내 국교를 청하고자 왕자를 인질로 삼고자 하였다. 고구려의 열제가 태자 도절로써 인질을 삼으려 하였으나 도절이 가지 않으매 왕이 그를 꾸짖었다. 겨울 10월 병력 5만을 이끌고 가서 졸본성을 침략하였으나 큰 눈이 와서 많은 동사자만 내고는 퇴각하였다.계유 19년(A.D.13) 제께서는 고구려를 침략하였는데 학반령밑에 이르르자 복병을 만나 크게 패하였다.
임오 28년(A.D.22) 2월 고구려가 나라의 힘을 다시 모아서 침범해오니 제은 몸소 무리를 이끌고 출전하였는데, 진흙탕을 만나 왕의 말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때에 고구려 대장군 괴유가 바로 앞에서 있다가 살해하였다. 그래도 부여군은 굴하지않고 여러 겹으로 포위 하였는데 큰안개가 7일 동안이나 계속되니 고구려 열제는 몰래 병사를 이끌고 밤에 탈출하여 사잇길을 따라 도망쳐 달아나 버렸다.여름 4월 왕의 동생은 따르는 무리 수백인을 데리고 길을 떠났는데 압록곡에 이르러, 해두왕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는 그를 죽이고 그 백성들을 취하였고, 그 길로 갈사수의 변두리를 차지하고는 나라를 세워 왕이라 칭하니 이를 갈사(하북성 남옥저 부근)라 한다. 갈사는 태조 무열제의 융무 16년 8월에 이르렀을 때, 도두왕이 고구려가 날로 강해짐을 보고 마침내 나라를 들어 항복하니, 대저 3세 47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 고구려는 도두를 우대라고 부르도록 하고 저택을 하사하시니, 혼춘을 식읍으로 삼게 하여 동부여후에 봉하였다.
가을 7월 왕의 친척 동생이 여러 사람들에게, "선왕께서는 시해 당하시고 나라는 망하여 스스로 나라를 이루기 어렵고,나 또한 재능과 지혜가 부족하여 나라를 새롭게 일으킬 수가 없으니 차라리 항복함으로써 살기를 도모하리라" 하고 옛 도읍의 백성 만여명을 데리고 고구려에 투항하니, 고구려는 그를 봉하여 왕으로 삼고 연나부에 안치하였다. 그의 등에 떼와 같은 무늬가 있었던 까닭에 낙씨의 성을 하사하였는데 뒤에 차츰 자립하여 개원 서북으로부터 옮겨가 백랑곡에 이르니 바로 연 나라의 땅에 가까운 곳이었다. 문자열제의 명치갑술(A.D.494)에 이르러 나라를 들어 고구려의 연나부에 편입하니, 낙씨는 마침내 제사조차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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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여 단군조선 =檀朝로 신한[辰韓] =夫餘로 제47대 단군천자 군자 干이 있는데 天帝를 칭하고 북맥족장 해모수가 쳐들어 온 것은 '정변'이 아니고 삼한 부여도 아닌 북맥의 대부여 압박으로 대부여 신한 부여가 "페관"하고 "신한 5가[후에 6부]"가 공화정[화백제도]로 국정을 운영한 것이지 제2차 침략인 신한 부여 수도 장당경으로 밀고 들어온 것은 명백한 북맥족의 침략 행위로 규정합니다.
북부여의 천제 해모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 동명왕편』, 『제왕운기』를 기록을 분석해보면, 한 명의 ‘천제 해모수’와 두 명의 ‘천제지자 해모수’이지만 두 명이나 심지어 한 명의 천제지자 해모수로 ‘축소’되어 상대로 가면 해모수가 세 명이고 후대로 가면 해모수가 두 명이나 한 명으로 위축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이것을 북부여 해모수 계승의식 위축변천과정의 역사라고 지칭하겠다. 북부여 해모수 천제의 왕명 ‘해모수’는 고유명이자 신왕호이다. |
즉 해모수=天帝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환단고기』 연표
『환단고기』 북부여기 상·하에는 졸본부여 동명제가 졸본에서 즉위하는 과정부터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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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삼국시기와 다른 점은 "북맥족장" 북맥 북부여 예맥족은 九韓의 하부족 "마한조선"에서 나갔다가 삼한 부여 대부여를 폐관케 한 험윤족 더러운 예맥족으로 표하고 있습니다. 즉 대부여 후, 주 적통은 역시 신한[辰韓] =夫餘지 "예맥족' 북맥족장 해모수 天帝란 기원전 239년에 제1차 대반란으로 수 2096년 대부여 폐관에 기원전 232년 신한 부여 6년 공화정의 수도 장당경을 강제로 무력으로 침략한 침략족으로 동호=匈奴 등 신한계 소호 금천씨의 제1 사업이 몽고리의 예맥족 본거지를 아에 초토화 정복사업이 이루어진 예맥족-몽고리 토착민은 대대척인 정복사업이 동호=匈奴 신한의 군신족 천지화랑 소호 금천씨 정예 3만명의 匈奴 조정으로 북맥 북부여에 고개 숙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94]에 이르기를 구한(九韓)의 첫째는 일본(日夲), 둘째는 중화(中華), 셋째는 오월(吳越), 넷째는 탐라(乇[95]羅), 다섯째는 응유(鷹逰), 여섯째는 말갈(靺鞨), 일곱째는 단국(丹國), 여덟째는 여진(女真)[96], 아홉째는 예맥(穢貊)이라고 하였다.
환단고기 "이 맥"의 태백일사에 "삼한관경제" 등 삼한조선으로 삼한일통은 신한[辰韓] 즉 단군천자 군자 干이 삼한을 일통하는 천자국 군자국의 지방행정조직제도로 나와 있습니다.
단군세기
마한세가
변한세가 [번한세가]
상식적으로 단군세기는? 삼한명으로 "신한[辰韓] 世紀"입니다.
나〮 ᅀᅵᆯ〮(날 일) 衆陽之宗人君之表 | |
ᄃᆞᆯ〮 월〮(달 월) 太隂之精隂不可抗陽故日圎月缺 | |
별〯 셔ᇰ(별 성) | |
별〯 신(별 신) 日月會次又北辰北極也又미르〮진地支屬龍 |
별 신으로 北辰[북신] 즉 北極星으로 단군천자 군자지표로 부여의 夫역시 상두=北斗로 같은 의미로 부여 나라 이름 韓의 경우 夫餘=신한[辰韓] 夫餘다.
어째서 진한으로 秦韓[진한]으로 진나라 노역민으로 凶奴族? 이라고 한 "사마천 고자"의 이야기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 馬韓내 78국의 신한 12국=소읍들이 진나라 노역을 피해? 아니 진나라 始皇이 황제칭한 것은 기원전 221년이고 겨우 15년짜리 기원전 206년이면서 기원전 194년 기원전 57년 신라 건국년도에도 진나라 진시황이 불로장생초 먹고 좃나리 좃가 趙ㅅ가들이야?
신한 조선으로 신조선=신부여=바로 신한[辰韓]=夫餘다.
마한조선내 구한 중 4개 국족명으로 우리는 다 알면서 개소리는 왜 하니? 한민족으로 마고지나 삼한족으로 日本族= 白族이다. 백의민족 신의민족으로 "신라의 별칭이 白木이고 마고지나 三韓입니다.
예맥족은 거란족[丹國]과 함께 몽고리 토착민으로 현 몽고리족 몽골족 蒙古族으로 예맥족이 주족으로 몽고제국=대원제국으로 이 족을 일체 蒙古族으로 한 것이지 달리 한민족을 고려를 몽고제국이 겁박했다고 몽고족 =예맥족 반자이 그건 몽고제국에서 귀화한 라주 범씨 개새기 범장의 개꿈이다.
만주원류고에서 만주원류족으로 고구려 에맥족이 아예 제외되어 있고 거란족[단국]의 대요국도 "만주원류족"이 아니므로 아예 제외된 것을 모른다? 몽고제국 대원제국 박물관에 징기스 칸[干] 황제의 시조는? 고 추모[鄒牟 추나라이름 추로 그 우두머리 고깔모자 모]로 朱蒙은 활 잘쏘는 아이도 있지만 붉은 몽고리 우두머리다.
만주원류고 흠정 사고전서의 내용중 "통일신라시대"의 강역도는 장성북부의 원 신한 조선=부여인 료녕성+길림성+연해주+강동주[한반도]는 원 고조선의 신한 조선=부여라는 이야기입니다.
만주원류고에서 제외된 것이 신.구당서 대륙신라 사방 3000리는 "마한내 신한 12소읍들 즉 12국"한 곳으로 이는 夫餘=신한 부여가 신라건국하면서 당연 신한부여인으로 신라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夫餘, 후한서 夫餘國은 전부 "신한 夫餘"로 바로 신한을 辰國[진국]해도 이는 신한으로 "徐羅"로 新羅다.
신라
#新唐書卷220-列傳第145-新羅-11/01
◉<新羅>, <弁韓>苗裔也. 居<漢><樂浪>地, 橫千里, 縱三千里, 東拒<長人>, 東南<日本>, 西<百濟>, 南瀕海, 北<高麗>. 而王居<金城>, 環八里所, 衛兵三千人. 謂城爲侵牟羅, 邑在內曰喙評, 外曰邑勒. 有喙評六, 邑勒五十二. 朝服尙白, 好祠山神. 八月望日, 大宴賚官吏, 射. 其建官, 以親屬爲上, 其族名第一骨․第二骨以自別. 兄弟女․姑․姨․從姊妹, 皆聘爲妻. 王族爲第一骨, 妻亦其族, 生子皆爲第一骨, 不娶第二骨女, 雖娶, 常爲妾媵. 官有宰相․侍中․司農卿․太府令, 凡十有七等, 第二骨得爲之. 事必與衆議, 號「和白」, 一人異則罷. 宰相家不絶祿, 奴僮三千人, 甲兵牛馬猪稱之. 畜牧海中山, 須食乃射. 息穀米於人, 償不滿, 庸爲奴婢. 王姓<金>, 貴人姓<朴>, 民無氏有名. 食用柳杯若銅․瓦. 元日相慶, 是日拜日月神. 男子褐袴. 婦長襦, 見人必跪, 則以手据地爲恭. 不粉黛, 率美髮以繚首, 以珠綵飾之. 男子翦髮鬻, 冒以黑巾. 市皆婦女貿販. 冬則作竈堂中, 夏以食置冰上. 畜無羊, 少驢․ , 多馬. 馬雖高大, 不善行.
신라는 변한의 후예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자리하여 가로가 1천리이고 세로가 3천리이며 동쪽은 장인에 닿고 동남쪽은 일본이며 서쪽은 백제고 남쪽은 바다에 연하며 북쪽은 고려이다.
역사학자라는 학자 "진리탐구"자라는 사림들이 종교역사학인가? 뭘 그리도 한국의 전통 종교인 무교라고 미신이라고 아니 칠성각, 칠성당 칠성님은? 7대 桓仁=天帝님으로 天帝天宮 즉 칠성별에 계신다. 삼성각 삼성사로 삼성 祖에도 '한민족의 시조는?" 桓因天帝로 제1성 帝釋天 즉 모든 천제의 우두머리 帝釋으로 북두칠성 제1성이 제석천이다. "한민족의 교조 종교의 시조"는 桓雄天王이시다. 한민족의 국조 건국의 시조는 王儉檀君이시다.
天帝天宮
大雄寶殿
檀君巫堂
이러한 종교?냐 巫敎라도 민속전래 동화라도 북두칠성 일월성신 천지신명으로 칠성님 즉 조상신 神靈 神으로 天帝는 하늘나라 천국 환국으로 우리나라 하늘나라로 북두칠성으로 우리는 죽어갈 적에 古人이 故人되어 古 十國=엻국 開國으로 우리나라 하늘나라 古로 갈 적에 칠성판 타고 은하수 아리수 건너 49일 즉 광속으로 49일 가야 가는 북두칠성으로 소호 금천씨는 제4성 문곡성이 고향이다고 하는 누가 역사사실이래 칠성님이 7대 환인천제로 천궁 = 즉 환국을 천국으로 북두칠성별에 설정하고 그래서 북극성이 神으로 古로 삼신일체로 마고 하나님으로 나오는 한국의 조상신령님이 天帝로 칠성님이다 즉 천제-천왕-단군으로 제왕군으로 이미 한민족은? 시조로 삼대의 예로 天帝는 하늘나라 북두칠성에 게시는 칠성님 조상신으로 天帝시다
황제는 칭하지도 않았고 논리적으로 단군천자 군자로 군자의 도로 군도로 도리어 君王으로 단군 단간 즉 干[ㅎ한 칸, 간]인 우리가 우리 단군천자 군자로 干한 것이 史論 역사논리로 이를 무시히고 天帝다? 그럼 칠성님 조상신령 신을 없애라는 소리냐고???
사론(史論)하자면, 신라는 거서간(居西干)이라 칭하는데, 차차웅이 그 하나요, 이사금이 열여섯이요, 마립간이 넷이다. 신라말의 유명한 유학자 최치원이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을 지었는데, 모두 어느 왕(王)이라고 칭하였지, 거서간 등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찌 그 말이 천박하다 하여 이를 칭하기에 부족하다 하는가? 이제 신라의 일을 기록하는 것이니, 방언을 갖춘 것은 또한 마땅하다.
이상하게도 배달임검[倍達壬儉]으로 한문으로 배달나라이름 檀이고 임검 현재 임금 君으로 檀君으로 누가 황제래 삼황오제 신칭이냐고? 누가 천황이래 천제래 천왕도 아니고 그 다음 천제지손 천손 =천군으로 배달나라 천자 王의 아들 儉이니 배달임검으로 天君보다는 단군으로 王 다음이니 干이시다 이게 안되요???
군으로 君王인데 단군 군 천자 왕이나 이를 王 다음이니 "ㅎ한 칸/간"干으로 아니 징기스 칸[干]이고 單干 즉 선우[單于 單干]으로 한다고 천자가 아니고 후자냐?
에맥족은 환단고기 주석에도 몽고리 토착민으로 가장 말단 즉 마한조선의 재서 끝으로 몽고리 구주의 명으로 지명으로 몽고리 내외몽고지역으로 그 족명으로 설유족/궐유족 험윤족에서 맥족으로 에맥족으로 없어진 것이 아니고 거란족과 함께 현 몽고족이다.
戊申(무신, BC2293) 41년. 이때에 설유(猰[24]猶)의 난리가 있었다【설유猰猶는 즉 몽골 토착인인데 험윤獫狁[25]의 족속이다.】. 홍수가 있었을 때에 요행히도 면함을 얻었는데 이에 돌이켜물과 흙으로 인하여 州(주)와 里(리)가 숙연한 것을 보고는 이내 동쪽으로 침략한 것이며 그 세력이 지나치게 사나웠다
[주석으로 예맥족이다 거란족과 예맥족으로 현 몽고족이다고 하고는 몰라요??]
戊午(무오, BC2283) 51년. 홍수가 이미 평정되고 교화가 사방을 덮었다. 북쪽은 大荒(대황)에 미치고 동쪽은 滄海(창해)에 닿으며 남쪽은 海岱(해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獗猶(궐유)[32]를 다스렸으니 동서 5000여리이고 남북으로 6000여리이다.
貊族의 반란 등 맥족 융안 우화충 등 주로 대반란족으로 더러울 穢로 예 와[倭鬼 위, 倭夷 왜]로 이 예 와는 예족 倭로 보면 백제족 해모수 天帝라도 에족 倭族으로 한번싹 중국정사에 왜이 왜족은? 예족으로 봐야지 남단 월지역의 倭族인가? 그게 의문으로 백제족=왜족으로 오월족을 백제왜족이 현 왜족 일본열도의 일본천황가? = 백제천황가라는 백제서기=일본서기라는 주장이 바로 쪽발이의 동조동근론인데 이는 삼한족 신라인은 에맥족 몽고족이 아니다.
이 예맥족 거란족의 재서 마한조선의 재서는 현 내외몽고지역으로 그 강역이 작지 않습니다.
즉 북맥이 대부여 신한 부여 수도 장당경은 아사달주로 현 홍산문명권 "료녕성"의 개원 開坪으로 침략하고 번한 조선 =부여인 료주 졸본주는 바로 산서성이고 동부여=가섭원 분릉/차릉은 현토/임둔 즉 옥저/동옥저로 사방 1800리 "하북성 북부로 이는 동부여-갈사국에서 고구려 철국이고 남단 예맥 예국 등은 황하북부 하북성 濊河=黑河로 현 하북성 호타하로 滄海가 현 천진시 남쪽으로 이는 예국 우수주,우두주로 "연나부"가 있던 곳으로 기원후 494년 고구려가 정복하여 연나부 즉 고구려 맥국으로 이는 신라 진흥왕조 514년 거칠부가 고구려 맥국 10개군을 일거에 정벌하고 고구려 철국이었던 신라 명주[분릉 이라고 강릉한 곳]과 남북관통지로 이는 신라 朔州로 [창해군 삭방군 삭군 등 10개 군명]으로 고려 춘주로 현 춘천이라고 한 세종지리지는 정말 성병군자 똥누다 매화틀에 빠진 전주 목자 개종자들이다.
우리는 하나겨레로 그래도 마고지나 =삼신의 나라이름 한으로 "三韓"으로 신라를 마고지나 삼한 미깡 하고는 삼한정벌 하고는 征韓論이라고 백제족 =왜족이 말하면 이 백제족=왜족은 구한족인데 왜 征韓論이야? 정신라론 정백목론 해야지...
드럽게 백제족이라고 높이고 맥국밥집 돼지[貊]국밥집 쥐새기 백제향 광서장족자치구내 전주 1개 고을 전주가 구주오소경의 구주중 하나인 전주로 대륙시라 남대방군=신라 남원경 고려 남원부 = 조선 남원군으로 현 남원시가 남대방군이면 대방군 해주에 남쪽? 어디 1000리길 400킬로미터의 물길이 있어 남원시 아래 있어요? 호남이야??
거의 언급이 없는 이유는 대역천자 반란족사를 왜 쓰냐고?? 물어본다고...
해모수 天帝 저팔계 더러운 돼지새기 천국의 천제면 에맥족이 시조면 고구려 시조 백제 시조로 니네나 싸워라다.
무슨 천부삼인 부명 古로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이고 일문일자 일자음=한자음으로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 즉 음운언어로 알타이어족인데 무슨 음절언어 片語인 백제족어 지배계층 백제음 왜음인 오음이 본음이야? 그게 부여어냐고 부여가 나라인데? 부여 신한 부여로 북신=북극성이나 부 상투 상두 북두가 북극성 단군천자 군자로 단군조선 단조 조정이 있는 조선=나라 신한 =부여가 그리도 싫냐???
1.이미 단군천자 군자로 군왕 즉 干이지 천제는 조상신 즉 하늘나라 임금으로 칠성님으로 태고로 한국의 하늘나라 천국 천궁=북두칠성에 칠성닝으로 7대 환인천제님으로 천제는 조상신령 신으로 이를 저팔게 천국의 시조 해모수 천제에게 엿팔아먹어라? 이게 한민족이야? 증산천황상제 면 뭐야? 안경전은 천제니 해모수 천제 아들이야? 이게 무슨 한민족시조 桓因天帝까지 능욕하고 질엘이냐고?
이게 무슨 종교로 믿어라 말아라야? 한민족 시조로 칠성각 칠성당 일월성신=천지신명=북두칠성으로 우리나라 한민족 말로 우리 한민족 하늘나라가 북두칠성이니 상투도 상두로 북두고 상징이 상투지 누가 고깔모자래 절풍 뒷머리 빠짝치고 고깔 모자 弁의 고구려 풍속이고 누가 천신이 동굴신 수혈신이고 제천절이 음 10월 동맹으로 수혈신에게 제천이고 한쪽다리 쭉 뻣고 절을 하는게 한민족 큰 절이야? 이게 뭐야????
환단고기 단군세기 이 암의 가필이라도 단군세기면 '단군 干"이면 君하지 않고 干이지 이를 전부 황제 건원칭제랍시고 왕검단군? 聖帝로 다 1자에 제라고 했는데 왕검단군기에도 '황과 제'로 천제는 환국을 천궁으로 북두칠성으로 천국으로 대광명처 환국 즉 天帝다.
惟皇皇, 三神上帝在最高至上一位. 創宇宙, 主全世界, 造無量物, 蕩蕩洋洋, 無物不包, 明明靈靈, 纖塵弗漏.
惟明明, 桓國天帝桓因, 首出萬民, 庶物之上, 用御天宮, 啓萬善, 原萬德, 群靈諸嚞護侍, 大吉祥, 大光明, 處曰桓國.
또한 五加(오가)를 불러 모아 桓國(환국) 天帝(천제)의 묘를 세울 것을 의논한 후에 묘를 조성하였다. 帝(제)는 친히 환국 천제의 묘에 제사지내고 이내 오가와 무리들에게 각자 지극한 정성으로 해와 달과 음양과 사시의 신과 산악과 하천과 마을의 토지의 주인에게 제사지내게 하였고 천하에 큰 제사가 마치니 帝(제)가 크게 고하여 말하기를....
桓仁[市]로 아니 아무리 후례 짱개 도올 흉수라도 天帝로 한민족 시조 환인천제를 발로 밟고서 뭐하니??
이는 天帝가 "하늘나라 신칭인 오제중 帝"로 천제로 칠성님으로 太祖로 한민족의 뿌리시조를 완전 말살하려는 유기견교의 아예 짓밟아 없애려고/ 왜 그래야해? 칠성각아 무너져라, 칠성당아 무너져라 칠성님 탱화는 다 불태워 없애라? 이게 아에 저 북두칠성 하늘아 무너져라 해라 유태인의 하늘나라 예덴동산만이 존재해야 한다 할렐루야? 이게 뭐야 대웅보전 대웅전아 무너지게 하소서???
사찰무너져라'행사에 동영상 축사보내는 이명박
대웅전아 무너져라? 얍. 대웅보전아 무너져라 얍얍 주술하는 좃단 좃가같은 여의도 순뽀끔니 좃국가 좃다용기 대처승에 싸노님단체냐?
아에 다 무너져라지?
天帝天宮
大雄寶殿
檀君巫堂 朝堂으로 똥성기도후 朝餐食堂으로...???
좃단병갑 惑世誣民黨죄 [무당죄]는 최소형이 斬首刑이지???
문제는 안경전이라는 사이코패스 예맥족 돼지새끼족 백제 고구려 안승의 전라도 돼지새끼 에맥족 저팔게 상제교인 천황상제교로 같은 것을 읽어도 왜 해석이 달라? 문맹자인가???
왜 마한이 한반도야 강동주 1개 주냐고?? 신한을 죽어라도 진한 진나라 노예 한이야?
甲申元年. 冊長子丘乙爲太子. 封皇弟烏斯達爲蒙古里汗【王也】. 其後孫繁衍爲內外蒙古族, 卽元皇之祖也
甲申(갑신, BC2137) 원년. 큰아들 丘乙(구을)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皇(황)의 아우 烏斯達(오사달)을 책봉하여 蒙古里(몽고리)의 汗(한)【왕이다】으로 삼았다. 그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내외 몽골족이 되었는데 즉 元帝國(원제국)의 황제의 조상이다.
이게 학자가 할 짓이에요? 제하고는 오직 오사구 단군은 황이고 皇弟 황의 아우?? 뭐야 개족보냐 돼지족보냐???
아니 고조선 사방 3만리로. 각각 사방 1만리씩 셋으로 변한 마한 신한=단군천자 직영지 삼한조선 관경제면 그래도 "사방 3만리 각각 세개의 한으로 그려야지 어디서 마한이 강동주 신한내에 있냐고???
戊午(무오, BC2283) 51년. 홍수가 이미 평정되고 교화가 사방을 덮었다. 북쪽은 大荒(대황)에 미치고 동쪽은 滄海(창해)에 닿으며 남쪽은 海岱(해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獗猶(궐유)[32]를 다스렸으니 동서 5000여리이고 남북으로 6000여리이다.
구려 분하로 수분하 료하의 변한촌 변한의 제후국 구국 구주중 하나로 句麗로 산서성인데? 쩝? 아니 정말 뭘 주해를 했냐고???
余守己(여수기)를 봉하여 濊國(예국) 君(군)이 되게 하였고 黑河[흑하 濊河로 호타하) 근처에 있으며 濊城(예성)에서 다스렸다.
緋天生(비천생)을 南海(남해) 長(장)에 봉하였고 渤海(발해) 위에 있는데 바다의 관문을 지킨다.
夫餘(부여)를 봉하여 餘州(여주) 侯(후)가 되게 하였고 濊(예)의 땅 남쪽에 있다.[34]
夫宇(부우)를 봉하여 眞蕃(진번) 侯(후)가 되게 하였다.
夫蘇(부소)를 봉하여 句麗(구려) 侯(후)가 되게 하였다.
셋째 동생 夫蘇(부소)를 綏芬河(수분하)에 봉하여 句麗王(구려왕)이라 하였다
정말 료하=황하가 아니고??? 분하가 현 료녕성 遼河라고 구려하?? 이게 어디가 구려 =고려 고죽국인지도 모르네???
아한 단군 2년 기원전 1833년...
八月. 帝巡國中, 至遼河之弁韓村, 立巡狩碑, 且下詔天下立石碑于國之四境. 碑面以本國文字刻歷代帝王名號. 傳之後世是爲金石之始也. 長白山興安嶺九月山馬韓村松花江邊遼河之弁韓村平壤之法首橋【朝鮮宣祖 十六年癸未 碑發掘】 沿海州各有古代國文石碑文似梵文【滄海力士黎洪星過遼河題一詩曰村郊稱弁韓別有殊常石臺荒躑躅紅字沒莓苔碧生於剖判初立了興亡夕文獻俱無徵倘非檀氏跡云云】.
8월. 帝(제)는 나라 안을 순행하여 遼河(료하)의 弁韓村(변한촌)에 이르러 巡狩碑(순수비)를 세우고, 또한 천하에 조서를 내려 나라 땅 사방의 경계에 비석을 세우라고 하였다. 비석에는 본국의 문자로 역대 제왕의 이름과 호칭을 새기었다. 후세에 전하여지니 이것이 금석의 시초가 되었다. 長白山(장백산)과 興安嶺(흥안령)과 九月山(구월산)의 馬韓村(마한촌)과 松花江(송화강) 주변과 遼河(료하)의 弁韓村(변한촌)과 平壤(평양)의 法首橋(법수교)【朝鮮(조선) 宣祖(선조) 16년 癸未(계미)년에 비석을 발굴하였다.】와 沿海州(연해주) 각지에 고대의 국문으로 되어 있는 비석이 있는데 글자는 梵文(범문)과 비슷하였다【滄海力士(창해역사) 黎洪星(여홍성)이 료하를 지나다가 시를 한 수 기록하였는데 “村郊稱弁韓別有殊常石臺荒躑躅紅字沒莓苔碧生於剖判初立了興亡夕文獻俱無徵倘非檀氏跡”라고 하였다】.
安寧산맥 대흥안녕이 어디인지도 모르네 태백산이 현 백두산이요???
우리는 그래도 수학은 할 줄 알지요? 한반도 =강동주 사방 3000리 1개 주면? 九州로 하면? 3개주씩 혹은 삼한으로 해도 사방 1만리로 신한은? "대흥안녕산맥 재동" 즉 마한 조선 = 만주, 외민주 "내외몽고지역 = 거란족 +에맥족"이다.
이 간도 즉 신한 사방 1만리로 현재로 "료녕성 + 길림성 +연해주 +한반도[강동주]"다.
마한조선은? "만주+ 외만주+ 내외몽고지역 [더해도 섬서성 감숙성 등 재서].. 사방 1만리로 '여진+말갈족" = 만주족, 그리고 거란족+예맥족 = 험윤족/에맥족 에족 +맥족 해도 현 몽고족"이고 北狄= 突厥족으로 현 투르크족으로 북맥의 재서로 고조선에 복속된 바 없는 북방 재서 민족명이 북적=돌궐족이다.
변한조선 = 사방 1만리로 고려=구려 산서성, 낙랑=하남성 황하북부, 현토=하북성으로 사방 6000리급이고 海 황하를 건너 남하한 마한 내 78국은 사방 4000리다 총 대략 사방 1만리다.
홍산문명권이 신한 부여로 부여 사방 2000리 팔만호로 이는 신한 =부여다. 북방초원문화는 바로 몽고리로 "예맥족 북맥족장 해모수 천제가 동으로 변한 즉 번한 만번한과 신한 부여 수도 장당경을 친 대역천자다.
신.구 당서에 대륙삼국 강역으로..
1. 고구려 "남북 2000리 동서 3100리' 사방 6200리
2. 신라 재동남으로 낙랑을 기점으로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아래로. 동서 1000리 남북 3000리 사방 3000리
3. 백제 신라가 멸하고 재서 백제만 해도 동서 900리 남북 1800리 대략 사방 2000리
[일본 오월로 이 또한 신라에 편입된 것이나 우선 신당서 내용중 재서 백제강역만 사방 2000리]
이 삼국 강역이 총 사방 11,000리로 이는 변한조선 고조선강역으로 변한조선 사방 1만리는 대륙 동쪽동이전의 주무대가 바로 대륙 삼국지다.
이는 주 한민족 으로 하나겨레는 오직 "신라 삼한족"으로 현재도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이 하나경인 줄 몰랐다? 하나겨레다 韓겨레다 한민족이라고 해야 하나겨레지 맨날 예맥족이다 엘리트 엘족이다고 하면? 여호와가 하나님 韓神이 되어 유태귀신국 건국 100주년이 되어있더라다. 안경전 꿀꿀이 호남 돼지천황상제 찐한 돼지똥물에 튀긴 쯩산천황상제교로 예맥족 마한 땅으로 다 봉헌하고 있더라 싸워라 아예 한판하고 찟어져라 백제족 왜족 이겼다 또 겼다다 완전 개똘아이 나라건국 100주년이다 이걸 어쩔럐???
매족 하나겨레 한민족을 고구려족 백제족 에맥족에 다 팔아먹고 뭐하니???
엘족사 할래 엘리트 식민 교육 진보민중 교육감의 진보 엘리트교육 하다하다 별 미친 좃단 요르단 인인성 거믄머리 왜국인 2형제인 유태 욕단 요르단 인성이 韓民族인가 욕단 요르단족인가? 몰라 몰라 송나라 쥐새끼에 노아 태돈에 노아 중국에 임질 기환에 하다하다 완전 박헌영 진보민중 유기견교까지? 완전 다 봉헌하고 치우든지? 무슨 이런 개팔자 나라가 다 있냐고?
왜 년호로 개천기원력 60갑자년호가 년호가 아니고 몰상식의 사주팔자냐?? 점집 년호냐???
북맥 부여면 북한 혹은 맥한으로 2자로 하라고 朝憲=나라로 조선 즉 國憲해도 몰라 몰라 몰라야 해.... 어디서부터가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시무종 무가 잘못되니 무우나 짜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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