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정읍중양교회 김선종 목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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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
슬픔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이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기원전 460-370)는 사람에게 슬픔을 일으키는 요인을 ‘멜랑콜리아’(melancholia), 곧 검은 담즙이라는 체액을 가지고 생리학적으로 설명했지만, 현대 의학에서 이러한 체액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이 슬픔을 느끼는 현상은 단지 생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세상에 대한 낯섦과 타자성이라는 철학과 형이상학의 원인에 기인한다. 시편의 지혜시에 시인은 자신이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으니, 주님의 가르침을 숨기지 말아달라고 기도한다.(시 119:19) 또한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땅에서 ‘거류민’에 불과하기 때문에 땅을 사고팔지 말라고 명령한다.(레 25:23) 위 두 구절에서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번역된 히브리 낱말 ‘게르’는 땅과 집이 없어 떠돌아다니며 더부살이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은 땅에서 잠시 빌붙어 사는 나그네일 뿐이다.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언젠가 떠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이질감과 괴리감을 안고 살아가며, 이러한 인간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임시 거주자로서 세상살이를 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슬픔과 우울감에서 시편의 탄식시가 나온다.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 ‘나의 괴로운 날에’(시 102:2), ‘언제까지’(시 13:1) 등은 고난을 겪는 사람의 비탄을 드러내는 탄식시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탄식은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다. 고통과 괴로움의 감정을 단지 기쁨과 감사라는 감정이 결여된 부정적인 감정으로 볼 수 없다. 마치 중세에 멜랑콜리아를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를 드러내는 ‘아케디아’(acedia)와 같은 것으로 여긴 오류와 같다. 슬픔의 감정을 부인하고, 그저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라는 것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슬픔의 감정을 억압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예수의 죽음
사람이 경험하는 슬픔과 우울감을 영적인 게으름의 결과로 폄하하면, 예수가 십자가 앞에서 느낀 슬픔과 두려움, 그가 겪은 수난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 모든 것을 가상의 것으로 치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기 전과 후에 비탄으로 점철된 기도를 드렸고,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예수가 공생애 기간에 직면했던 사탄과 유대교 지도자들의 시험 가운데 십자가의 두려움에 견줄 만한 것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식사하실 때 심령이 괴로우셨다.(요 13:21) 그날 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다.(막 14:33) 예수는 몇몇 제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인정하며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막 14:34)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에서는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하고 탄식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요 12:27) 이 기도는 마가복음 14:35-36과 마태와 누가의 병행 본문(마 26:39, 눅 22:42)에서는 땅에 엎드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으로 나온다. 괴로움과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누가복음 22:44는 예수가 더욱 간절히 기도할 때 땅에 흘린 땀이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린다.(히 5:7) 기도 가운데 드러나는 그분의 고뇌가 얼마나 격심했는지 알 수 있다. 십자가 위에서는 시편의 탄식하는 기도자처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하고 탄식의 기도를 드린다.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은 예수가 엘리야를 찾는 것으로 생각한다. 엘리야의 멜랑콜리아가 예수에게서 재현된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죽음을 피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날 것을 알고 예고했기에 그의 죽음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고 추상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고통을 가볍게 다루고, 예수가 오래전부터 자신의 부활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의 수난을 가볍게 여기고 부활만 강조하는 것은, 과장하여 말하면 예수는 영으로 왔기에 육체적인 고통을 겪지 않았다는 기원후 1세기 영지주의자의 가현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러한 해석학적 태도는 현대 문학비평의 양식사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기도 하다. 양식사에 따르면 ‘어찌하여’, ‘언제까지’는 탄식시를 이루는 대표적인 의문사이다. 시편 탄식시의 탄식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고백이 나온다. 이것에 대하여 학자들은 아마도 탄식하는 사람이 제사장을 찾아간 뒤, 제사장이 하나님께 구원 신탁(Heilsorakel)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탄식의 기도는 정말로 버림받았음을 문자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자신이 겪는 괴로움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왜 자신을 버렸느냐는 탄식은 단순히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양식사의 짜임새에 따라 당연히 구원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이해는 기도하는 사람의 탄식을 변호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본문을 날것으로 읽는 데는 방해될 수 있다. 죽음의 고통 속에 탄식하는 기도자는 이미 구원받을 것을 알기에 고통을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며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죽음의 공포 앞에 두려워 떨며 기도했을 것이다. 엘리야와 예레미야와 욥이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은 정말 죽고 싶다는 것이고, 왜 자신을 버리셨냐고 예수가 하나님께 탄식하는 것은 정말 버림받았다는 소외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일 탄식시의 양식에 따라 탄식 뒤에 신뢰와 확신과 구원이 뒤따르는 것을 기계적으로 이해한다면, 탄식의 정도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칼뱅은 예수가 죽던 시간에 죄와 지옥의 깊숙한 바닥으로 추락하여 잠겼던 무시무시한 심연을 강조하였고, 루터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인적으로 토성과 악마의 조종을 받는 우울증 환자로 자신을 묘사하였다.1 슬픔과 우울감은 장엄미의 발현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좀먹는 구체적인 현실이다.
예수는 자신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한다. 기도함으로써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자신의 뜻을 굽혀 시험을 이겨낸다. 십자가의 공포와 두려움은 예수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땀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고뇌하며 십자가 고통만큼은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연약한 인간 예수는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과 연결된 샘에서 힘을 얻어 행동한다.2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이끈다. 예수가 유혹을 이겨내도록 한 기도는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이다.(요 12:28) 십자가를 면하게 해달라는 기도 다음에 드린 기도이다. 하늘을 우러러 당신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한 것이 결국 고난을 겪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라는 기도의 응답이다.(마 26:39, 42, 눅 22:42)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예수의 기도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응답받는 역설이다. 예수에게는 십자가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3 예수에게 죽음은 누구나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죄와 고난에 빠져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버리러 온 죽음이다. 이 땅에 오심에 이미 의도되고 계획된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뒤러의 예수
멜랑콜리아의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A. Dürer, 1471-1528)는 예수를 삶과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자로 그린다. 다음 두 작품 모두 그의 대표작인 〈멜랑콜리아 I〉(1514) 이전에 생산해낸 작품이다. 또한 야바흐 제단화의 〈욥과 그의 아내〉(Hiob aufdem Misthaufen, 1504)의 양식과 연속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당시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던 과제로서 구약과 신약의 의인을 신학적으로 연결하여 연속성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었다. 병에 걸려 고통을 겪지만 나중에는 치유받는다는 전통적인 이야기 때문에 욥은 중세 시기 온갖 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의지하는 일종의 성인으로 추앙받았고, 욥기는 이들이 읽는 책이었다. 이후 소개할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이 예수를 고통에 찬 모습으로 그린 것과 달리, 뒤러는 예수를 몽상가, 멜랑콜리커로 묘사한다. 예수는 욥의 자태를 반복하여 예수의 수난사와 욥의 고통 사이에 유사 병행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동일하게 한 손을 턱에 괸 멜랑콜리커를 묘사하는 전형의 역사(history of types)를 따른 것이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작업하고 현재 독일의 카를스루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뒤러의 〈수난의 그리스도〉(Christus alsSchmer-zensmann, 1493)에서 예수는 명상에 잠겨 있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이것은 신체보다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고통을 암시하고 있다.4 바탕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상징하는 가시나무의 윤곽선이 가득하고 새들에게 공격받는 부엉이의 모습도 보인다. 주행성 새들이 야행성 맹금류를 공격하는 것은 대개 선과 악 사이의 전투를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무고한 이가 당하는 박해와 무덤 속 그리스도의 외로움(시 102:7)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편이 더 낫다.5 이후에 뒤러는 『소 수난화집』(Die Kleine Passion, 1511)의 표지에서 예수를 몽상가의 이미지에 덧붙여 고통을 겪는 자로 묘사한다. 좌절과 고통 중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드러내는 매우 복합적인 예수의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수동과 긍정의 이중 표현은 수난을 겪는 예수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6
뒤러는 이러한 몽상가의 자태를 통하여 자신이 이론과 실제, 교리와 현실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을 드러낸다. 뒤러의 작품은, 예수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이유를 받아들이기 힘듦에도 예수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과정을 나타낸다. 뒤러의 그림에서 예수의 눈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눈을 응시한다. 마치 자신의 죽음 앞에 관람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 같다. 이것은 예수의 삶뿐만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의 삶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슬픔과 애수를 피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 피하고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길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와 종교개혁 시대를 살았던 뒤러의 정신적 자화상이다.
홀바인의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은 잔인하고 고통스럽고 비참한 죽음이었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성화상에는 수난을 겪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미화되거나 적어도 고상하게 표현되고 있다면, 스위스 바젤 미술관에 있는 〈무덤 속 그리스도의 사체〉(Der Leichnam Christi im Grabe)에서 16세기 화가 한스 홀바인은 예수의 시신을 끔찍하게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예수는 신의 아들로서 죽음을 극복할 구세주로 그려지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 있다. 홀바인이 묘사한 관 속에 누워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액자에서 죽음의 무거움이 표현된다. 화폭이 높이 30cm밖에 되지 않는 이 그림 위에는 묘석이 그림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어 결정적인 죽음의 인상을 강조한다. 액자에 눌려 있는 예수의 시신은 묘석에 짓눌리고 있어 부활조차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내세의 약속이나 다시 소생하는 자연에 대한 찬미도 없다. 이러한 구성은 시신이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할 것처럼 보이게 하는 간접적인 효과를 낳는다. 이 자가 예수인지 확인시키려는 듯 관 상단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IESVS NAZARENVS REX IVDAEORVM)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신자들은 예수가 삶을 마치는 죽음의 순간에도 사랑과 은혜와 거룩함이 가득한 얼굴을 띨 것으로 기대하지만, 홀바인이 그린 예수의 얼굴과 몸은 그야말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눈은 멍하니 뜬 채로 위를 쳐다보고 있고, 벌린 입은 그가 당한 고통의 극심함을 알린다. 손바닥에 못이 박혀 중지는 오므려 있지 않다. 시신은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그림을 보고 실신했다고 전해진다. 예수의 시신은 부활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성서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데, 네 개의 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의 경우 마지막 16장에서 예수의 죽음 이후 빈 무덤만을 묘사할 뿐(1-8절) 부활과 그 이후의 행적(9-20절)에 대해 묘사하지 않는 사본들이 존재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J. Kristeva)는 ‘만일 그리스도가 처형을 받기 전날 밤의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그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십자가를 향하여, 죽음을 향하여 걸어갈 수 있었겠느냐’고 질문한다.7
죽음이야말로 모든 슬픔이 응집된 것이다. 어떤 것도 신의 죽음보다 슬픈 것은 없다.8 홀바인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통하여 이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의 현실을 알린다.
연재를 마치며
지금까지 여섯 번의 연재를 통하여 방법론적으로는 성서 본문이 문학과 예술에 끼친 영향사(Wirkungsgeschichte)와 수용사(Rezeptionsgeschichte)의 관점에서 구약성서에 나타난 멜랑콜리커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신학자와 성서학자만이 성서의 유일한 해석자가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문명에서 그림이 먼저 주도권을 쥐고 있었음을 전제로 한다.
신앙인이 안고 있는 슬픔, 우울감을 포괄하는 멜랑콜리아를 다시 돌아보자. 욥은 교조주의자 친구들에 맞서 사는 것이 괴롭다고 말했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밀려나 성전 파괴를 눈물로 외쳤다. 엘리야는 서슬 퍼런 권력에 쓰러져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기도하고, 요나는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탄식했다. 이들처럼 예수 또한 마음이 심히 괴롭다고, 왜 나를 버리셨냐고 하나님께 탄식한다. 이번 연재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바울 역시 마음으로는 성령의 법을 따르지만, 몸은 육체의 법을 따라 죽고 싶다고 말한 대표적인 멜랑콜리커이다.(롬 7:24) 그는 차가운 성찰의 능력을 가진 우울 체질로, 천재의 한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근대적인 의미의 성서 해석과 주석이 있기 전부터 화가들은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해석하였다. 이들은 단지 욥을 비롯한 성서의 멜랑콜리커를 화폭에 옮긴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자신의 내면을 그려 넣었고 성서의 인물과 자신을 일체화시켰다. 신앙의 인물과 나를 점차적으로 동일화하는 과정, 이것이 바로 신앙의 기나긴 여정이 아니던가! 부활은 죽음을 죽이는 행위이다. 죽음이 죽음을 죽인다. 죽음 안에 생명이 있고, 슬픔이 슬픔을 구원한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받으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히 2:18)
* 김선종 박사님의 “구약성서에 나타난 멜랑콜리아”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내주신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편집부
주(註)
1 줄리아 크리스테바, 김인환 옮김, 『검은 태양: 우울증과 멜랑콜리』(동문선, 2004), 151.
2 안셀름 그륀, 신동환 옮김, 『지친 하루의 깨달음』(가톨릭출판사, 2020), 82-83.
3 필 라이큰, 구지원 옮김, 『그들도 우리처럼 괴로워했다』(생명의말씀사, 2017), 164.
4 스터파노 추피, 최병진 옮김, 『뒤러: 인문주의 예술가의 초상』(마로니에북스, 2008), 34.
5 노르베르트 볼프, 김병화 옮김, 『알브레히트 뒤러』(마로니에북스, 2008), 28.
6 신준형, 『파노프시키와 뒤러: 해석이란 무엇인가』(사회평론, 2013), 88.
7 줄리아 크리스테바, 앞의 책, 139.
8 줄리아 크리스테바, 위의 책, 19.
김선종|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욥기』, 『덤불 속 두 돌판』, 『레위기 성결법전의 신학과 윤리』, 역서로 『아가 주석』이 있다. 호남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였고 현재는 정읍중앙교회 담임목사와 한일장신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