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난 수요일에 병원에 다녀 오고 나서 머릿 속이 뒤죽박죽이라는 말씀을 드렸었지요...
생각이 정리는 되지 않았지만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좀 더 나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 생각나는대로 좀 적어 보겠습니다.
우리 이 기스트라는 질환은 과거 수술이라는 외과적으로 종양을 절제하는 방법만이 유일했으나 이제는 글리벡이나 수텐 이라는 약제의 등장으로 치료방법이 더 늘었습니다.
암환자들의 5년 생존율이란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일반 건강한 사람들이 평균 수명이 약 80세라고 가정하면 암환자는 암 선고부터 5년을 생존하며 5년 이상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치료 기술이 발전해서 기적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글리벡이나 수텐과 같은 표적 항암치료제는 이 생존 기간을 늘리는데 목적을 가집니다. 이런 치료를 시작한 환자들이 다 좋은 예후를 가지면 좋지만 실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글리벡을 쓰는 환우중 10% 정도가 내성을 보이며 이 내성 환우들이 다 수텐으로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닙니다. 글리벡이나 수텐이 종양 억제 또는 감소 효과를 가져와도 부작용 증상이 심각해서 약을 제 용량대로 쓰지 못하거나 아예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들께 겁을 드리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치료에 대한 좀 더 정확한 현실을 알자는 뜻입니다. 현실은 이렇지만 다 나을 수 있다는 의지와 의학 기술로 병을 벗어 던지도록 노력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이 모임을 운영하면서 우리 환우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 꼽아 보자면
기스트는 어떤 질환인가? 치료방법들은 무엇이 있는가? 환자는 몇 명이나 되는가? 그 환자 한사람 한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을까? 새로운 치료제나 방법은 연구되고 있는지 그 상황은 어떤지?등등 입니다.
이것은 환자로서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까페를 통해 충분히 서로 주고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모임을 운영하다보니 많은 환우분들을 만나고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부당한 일을 겪거나 치료가 어려운 상황에 계시는 분들을 만나면 이제 위의 개인적인 질문들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음... 이야기를 어떻게 있고 풀어 가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수요일에 병원에서 뵌 분들 이야기를 해볼께요. 아버지 진료시간보다 좀 여유있게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해 있는 정우를 보러 갔습니다. 정우는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할 수 없어 다리에 보조기를 하고 수텐은 중단한 상태입니다. 뭐가 제일 불편하냐고 물으니까 몸 아픈 거랑 병원비가 걱정이라며 웁니다...약성 진통제를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정신이 깨면 자신이 수텐 치료를 할 수 없다는 점과 병원비때문에 자꾸 운다고 합니다.
정우는 26살때부터 아팠습니다. 발견 당시 수술하기엔 종양이 너무 커서 글리벡을 먹어야 했고 그때는 전혀 보험이 되지 않아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작년 그러니까 29살 가을만해도 결혼하겠다던 여자 친구와 모임에 참석할 정도로 잘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우는 뇌와 뼈에 전이가 되고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수텐으로 복부 종양이 줄어 다행이었는데 다리를 다치고 장 천공으로 수텐마저 중단되었습니다. 10월쯤 다시 수텐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 하시는데 이미 수텐을 쓰기엔 너무 병이 번진 상태였고 안타깝게도 다리가 부러져 의사 선생님께서도 너무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정우는 아버지께서 직장 생활을 하시지만 여유있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직장에 다니셨는데 정우가 많이 아프면서 간호하느라 그만 두셨습니다. 정우는 의료급여 1종입니다. 그렇지만 전혀 보험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많아 치료비가 상당합니다.
장루 염증이 심해 입원하신 박종삼님도 뵈었습니다. 제가 뵙기에도 체중이 50kg정도인 것 같은데 뵐때마다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십니다. 금식중이라 기운이 없으실텐데도 걷기 운동을 하시더군요. 4~5년전서부터 편찮으셨고 전혀 경제활동을 못하시는 상태라 사모님께서 직장생활을 하고 이렇게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실때면 금요일 밤에 광주에서 올라오셔서 부군 간호하시고 일요일에 내려 가신다고 합니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지요. 1년에 3~4번은 입원치료하셔야 하고 염증이 심해 평소에도 너무 힘드신다고 하는데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수텐이 중단된다고 들으셨을때도 병실에서 노래를 부르셨다고 하는데 이런 마음가짐이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장루 염증이 심해 왼쪽의 장루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수술을 받기로 하셨다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제가 참 무력해졌습니다.
진료 대기실에서 대전에 계시는 수텐 치료중인 여자 환우분을 만났습니다. 상당히 똑똑하고 젊고 아름다운 분이신데 늘 어머님과 함께 병원에 오십니다. 다른 수텐 쓰시는 환우분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정우에게 도움이 되게 통장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자신을 절대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여기에 알린 것 보고 제가 약속을 안 지킨 것을 아실 겁니다.
며칠 전 소식을 전한 이순녀님의 오빠께서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남은 글리벡이 있어 보내겠다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비보험일때 글리벡을 아껴 드셨다는데 그 말씀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렇게 몇 분을 만나뵙고 나니 머릿 속이 엉망이었습니다. 이제는 이 모임을 어떻게 끌어 가야 할지 우리 환우회의 미래는 어떠해야 할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병문안이라고 다니는 것, 여러분들과 상담하는 것 ... 이런 것들은 다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다른 길에서마저 돈 걱정을 해야 하는 환우들이 있고 그들의 고통을 알게 된 이상 지금까지 해왔던 이모임 유지 하는정도에 그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지사항에서 보셨다시피 암보험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사례를 접수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만이 있을 뿐 뭔가 실제로 일할- 보험회사 직원이나 변호사쪽-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민단체의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 다른 환우회나 시민단체와 교류하고 있습니다. 우리 환우들의 문제나 환우회 운영에 대해 공동 운영자가 없으므로 우리에게 큰 문제가 생기면 물론 여러분들 모두가 나서는 주시겠지만 처음부터 준비하는 공동 운영자가 없으므로 내부에서 도움을 받지 못해 외부 단체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의 이름은 환자 권리를 위한 환우회 연합 모임입니다. 각 환우회에서 환자가 겪는 어려운 일들에 대해 같이 의논하고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말하자면 품앗이 같은 거죠. 우리가 어려울땐 이 연합이 우리 일을 도와 주고 다른 환우회가 어려울땐 기스트 환우회를 포함한 연합이 함께 그 환우회 일을 도와 주는 겁니다.
그러나 우선이 되는 것은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알고 나서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일을 남들에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그리고 이제 앞으로 더 많이 해나가야 할 일들에 대해 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끌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건 이제는 더이상 지금까지 해왔던 치료 정보 교환 정도의 모임 운영만을 계속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어려운 환우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과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대응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좀 고민해보고 정리되는대로 제 생각을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분들도 함께 고민하시고 의견을 적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 의견이 없으면 또 저 혼자 결정하고 여러분들께 함께 해달라고 할 것입니다만 전 이 방법 정말 싫습니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동안 몇 몇 분들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무심히 지나갑니다.
첫댓글 현정씨한테 미안하네요. 저번 집회와 모임때 참여하여 현정씨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았는데, 제가 그동안 몸 상태가 썩 좋지 못해서 ... 참석을 못 했네요. 지금은 8월 31일일자로 퇴사를 하고 쉬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네요. 그동안 많은 일을 하시고 고민하시는데 말로만 돕겠다고 해놓고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많은 힘은 못 되겠지만, 고민이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연락주십시요.
현정씨만 많는짐을 지고있는것 같아 항상 죄송스럽습니다. 저는 약간의 기간만 빼면 보험적용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큰돈이 아니더라도 조금씩만 모아 적정돈이 모이면 위급한사람, 꼭필요한사람부터 의논을 통하여 지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회사에서도 급여의 아주작은부분을 모아 소년소녀가장을 돕듯이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사료됩니다.
처음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창대한 나중이 보입니다! 고지를 향하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