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리의 세 십자가/이사야53:4-5/P.1032,누가복음23:39-43/P.137/2011.4.22/금요일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53:4-5/P.1032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23:39-43/P.137 『개역개정』
십자가는 부활과 함께 복음의 핵심이요, 능력이요, 속죄와 구원의 표상입니다. 오늘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갈보리의 세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먼저 중앙의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 입니다.
1)주님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 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고통과 사망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죽음입니다. 사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 만이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음을 나타내 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예수님의 희생이었기 때문입니다.
2)주님의 십자가는 믿는 자들에게 능력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죄악 중에서 태어나서 죄를 짓고 살며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놀라운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씻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흉하고 중한 죄라도, 많은 죄라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회개하면 죄를 사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2.다음에 우편 강도의 구원 받은 자의 십자가 입니다.
1)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 용서의 은총을 주십니다. 어떻게 용서해 주십니까? 용서라는 말의 원어를 보면 4가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시편 78:38절에 나오는 "코팔"이라는 용서는 "덮는다"(to cover)는 뜻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허물과 죄를 덮어버리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써 우리 죄를 용서하시되 그리스도의 의로 덮어서 깨끗하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2> 시편 25:18절에 "나사"라는 용서는 "들어서 없애버린다"(to lift up or away)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악하고 추한 것을 들어서 없애버린다는 의미로 마치 냄새나는 물질을 자취도 없이 치워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3> 레위기 16:10절에 "샬라크"라는 용서는 "보낸다"(send away)라는 뜻입니다. 아사셀 양에게 죄를 전가시켜 광야로 보냄과 같이 아주 멀리 우리 죄를 옮기시고 보내버리는 은총을 말한다. 4> 누가복음 7장 43절에 "카리조마이"라는 용서는 "값없이 주다, 은혜를 베풀다, 갚아야 할 빚을 그 목사가 젊어서 큰 죄를 지었나본데 그가 회개하였기에 그 죄가 다 지워져서 나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귀한 복음의 말씀인가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탕감하다" 는 뜻입니다.
2)믿는 자에게는 십자가가 구원을 이루는 능력이 됩니다. 우편 강도가 42절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네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회개한 강도에게 나타내신 구원의 약속입니다. 이 강도가 평생 동안 한 일은 죄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깨닫고 회개하므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수양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선행에 의한 공로로 얻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달리 구원 받을 길은 없습니다. 구원에 관해 성경 말씀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12)고 하셨습니다.“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강도의 삶은 죄악뿐이었으나 생의 최후의 순간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비록 상급이 없는 부끄러운 구원이겠지만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난 것은 그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믿음과 회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3)우편 강도처럼 십자가의 주님을 믿는 것이 중요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여기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사람은 십자가에서 내 대신 피를 흘려 죽으신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성탄 하신 예수, 병을 고치는 예수, 떡을 나누어주는 예수, 복 받게 하는 예수, 물위로 걸어가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생과 상관이 없지만,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오직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고, 내 죄를 담당하신 예수를 믿을 때에 그 믿음으로 인하여 속죄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믿음의 대상을 똑똑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우편 강도는 우리는 우리의 죄로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음이 없다고 하면서 주님께 자신을 부탁했습니다. 우편 강도의 이 말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주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태복음 9:13)고 하셨습니다.
3.끝으로 왼편 강도의 저주 받은 형틀의 십자가 입니다.
1)왼편 강도는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강도는 양심의 법에도 어긋나고, 국법에도 어긋나며, 하나님의 법에도 어긋나는 죄를 범하다가 국법에 의하여 사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이 죄수는 마음이 완악하여 마지막까지 뉘우치거나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끝내 예수님까지 조롱하다가 죽었습니다. 본문 23:39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하며 주님을 조롱했습니다. 여기 "행악자"는 마태와 마가복음에서는 "강도"로 표현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두 행악자 모두가 예수를 비방하고 욕했습니다. 이 두 강도는 모든 인류를 대표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강도들과 같이 다 죄인으로서 처음에는 모두 예수를 알지 못하고 비방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예수를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과 회개하여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하는 사람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왼편 강도와 같이 끝까지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멸망하는 자입니다. 결국 이 강도는 육신의 생명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그의 영혼까지 멸망하여 지옥의 형벌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2)십자가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시인하는 일은 성령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의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보면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왼편 강도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39절)고 조롱조로 비방합니다. 성령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주님을 바로 볼 수 없고, 구주로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이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의 눈에 비친 예수는 가난한 동네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메시야일 수가 없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나았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일뿐입니다.
3)왼편의 강도의 십자가는 저주 받은 형틀의 십자가 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믿는 자에게는 죄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통해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하고, 죄를 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영육 간에 치유의 능력을 알게 하고, 나아가 부활의 능력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믿고 죄 사함과 영육 간에 치유함을 받고 영생에 참여하는 은총을 받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에 있을 자와 음부에 있을 자,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갈라 놓는 분기점이 되기도 합니다. 십자가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불신앙의 사람, 스스로 사망과 저주를 택한 자들에게는 아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신30:17-20에 보면 "내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했습니다. 왼편에 있는 강도는 생명과 복을 스스로 버린 것이니 그가 진 십자가는 저주 받은 자들이 지는 고통과 저주의 형틀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고난 주간을 맞으면서 "갈보리의 세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대속하는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왼편 강도와 같이 불신앙을 가지고 스스로 사망과 저주를 택하는 어리석은 자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우편 강도처럼 십자가의 주님을 믿고 죄를 회개함으로 구원을 얻고, 십자가의 주님을 사랑하면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다가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는 복 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