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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수업 개선 무엇이 문제인가 |
학교교육 논의는 교육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뻔한 이치의 일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논쟁을 하다보면 본질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지엽적인 문제가 전체를 좌우하는 일을 자주 대한다. 작게는 개인의 대인 관계에서 크게는 국가 간의 국제 분쟁에 이르기까지 지엽적인 것이 본질을 호도하는 일이 흔하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교육자이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교육열이 높아 잠시도 교육 문제가 논쟁의 초점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무엇을 위해 왜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학교 교육의 논의가 교육의 본질과는 먼 것들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학교교육은 청소년의 삶이며 미래이며 어떤 이유로든 청소년 문제가 어른들의 이기적인 목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교육 논의는 청소년의 미래와 삶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교육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초·중등 교육은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다
학교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행복한 미래를 열어가는 발판이 되어야 하고, 교육활동은 청소년들의 내·외적 요구를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에는 이 시대는 이러한 사실들을 간과해버리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이들이 크면서 싸우기도 하는데 그 싸움이 옛날보다 심해진 것이 아닌데도 학교폭력, 교실 붕괴가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마치 학교가 폭력을 행사하고 학교가 무너지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요즈음 평준화 논쟁과 함께 특목고 문제가 자주 등장하지만 교육하면 대학입시가 전부인 것처럼 해마다 대학 입시가 주요 쟁점이 되며 대선에서도 빠뜨리지 않고 선거공약으로 대학 입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어제는 입시 교육의 병폐를 이야기하다가 오늘은 입시교육을 잘못 한다고 질타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공교육을 믿지 못하고 외국에 나아가 외국의 학교에서 공부하는 청소년이 많고 기러기 가족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사교육비의 부담이 커서 가계가 휘청거리고 학부모의 희생을 걱정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초·중·고교가 대학 진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국에 나아가 공부하는 것이나 사교육에 의존하는 이유 대부분이 우리나라 대학 진학의 불안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의 학과 보다는 일류대학교라는 간판이 목표가 된다.
교육과정 중심의 학교를 그렇게 강조하지만 교육과정을 보고 고교를 선택하기보다는 어느 학교가 대학 진학률이 좋으냐가 고교 선택의 초점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독서논술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대학입시에서 독서논술이 차지하는 비중을 부각시키는 것도 단적인 예가 된다.
학교선택의 기준이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청소년의 미래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 운영이어야 한다면 교실수업개선을 통한 교육현장 개선 의지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표현활동을 강조하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
교실수업 개선이라는 말이 교육 논의의 쟁점이 된 지도 오래의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실 수업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수업은 표현하고 이해하는 활동이 중심을 이룬다. 교실 안의 풍경을 바라보면 표현보다는 이해에 치중해 오지 않았나 싶다.
수학능력 시험도 이해의 정도를 묻고 있는 것이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평가가 이해의 정도를 묻고 있다. 이원 목적 분류표를 만들며 지식, 이해, 적용으로평가 개념을 분류하지만 지식이나 이해에 치중하고 있음을 본다. 한때 토론 수업을 수업 개선의 주안점으로 했는데 이것은 이해를 중심으로 하는 수업 방법을 표현을 주로 하는 수업 방법으로 바꾸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영어 교육의 방법에 개선 논의도 읽고 듣는 이해에 치중해 온 활동을 말하고 쓰는 표현 활동 수업으로 강화하자는 말이 아닌가 싶다. 교실 수업이 읽고 듣는 활동보다 말하고 쓰는 활동이 주가 되어야 한다.
수업의 전문성을 높이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좋은 수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의 준비와 노력이 외적 환경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좋은 여건과 훌륭한 도구와 같은 외적 환경이 잘 갖추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 교사의 좋은 수업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업의 방법도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변해야 한다. 과거의 수업은 연필과 책, 그리고 칠판과 분필로도 가능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의 학교 현장에서는 신문과 잡지, 컴퓨터, TV 등 다양한 교육 매체를 활용하는 NIE나 ICT 등과 같은 새로운 교육 방법이 하루가 다르게 소개되고 있다.
수업 연구를 통하여 자신과 동료 교사의 교수 전문성의 신장을 도모할 수 있다. 수업 연구는 자신이 터득한 새로운 교육 방법을 소개하고 동료 교사 사이에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과거의 수업연구라면 신임교사나 경력이 낮은 교사가 지명되어 선배나 동료교사, 그리고 교장, 교감, 장학사 앞에 수업을 해 보이고, 다음 수업협의라 하며 수업의 기술에 관한 평가를 듣는 의례적이고 외양적인 면이 강조되어 학습목표의 도달을 위한 논의와는 거리가 멀게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수업 연구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외양적인 행사가 아니라 학생에게 감동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내실 있는 행사로 전환되어야 한다.
학교는 잘 가르치는 교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학교는 말 그대로 풀이하면 배우는(學) 집(校)이다. 교실에서 교사는 교수 활동을 하고 학생은 학습을 한다. 학교 교육에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교실의 수업이며 교실 수업이 나아지고 향상되는 것이 교육 발전의 요체인데도 교실 수업 논의는 뒷전에 있다. 학교 수업은 잘 되고 있는가와 같은 교육의 본질에 접근하는 논의가 활발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시설이 있고 교재가 있다 해도 잘 가르치려는 교사가 없으면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없다. 현행 우리 교사 양성 교육에서 잘 가르치는 기법이 학교의 외형 변화만큼 발전되어 왔는가를 반문하고 싶다. 또한 그 동안 좋은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까닭을 교육 여건의 미흡으로 돌리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육 목표를 분석하고 그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계속한다면 다소간의 교육 환경의 미비도 극복하고 학생들에게 의미 있고 효과적인 수업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학교에서 잘 가르치려는 교사가 존경받고 학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
이덕진 교육장은 경기도 여러 지역의 초·중·고교에 교원으로 재직하여 학생을 가르쳐 왔다. 교육전문직으로 경기도교육청 교육과정 담당 장학관,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 평생교육부장, 교육정보운영부장을 거쳐 현재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교육장으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