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탐방
스님들의 가장 큰 배경은 수행력
- 26회 총동문회장 동언스님 탐방기 -
덕운 / 사교과(3학년)
겨울비가 내리는 날 아침 공양을 서둘러 마친 후 도반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전에 위치한 금종사는 오래된 주택가 사이 경사진 오르막길에 앞 전경이 환하게 보이는 단아하고 고전적 느낌의 절이었다. 마치 화단처럼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담장의 심우도 앞에서 우리는 인증샷 한 장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찍 왔네요. 아침 공양도 제대로 못 먹었죠?"
"저희는 오늘 쉬는 날이라 잘 먹고 왔습니다."
"요즘 강원은 쉬는 날도 있어요?"
선배님은 유쾌하게 저희를 맞이하시며 차와 다과를 내주셨고, 어느새 우리는 당신의 오랫동안 수행하며 살아오신 세월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불교에 참선법이 없었다면 출가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강원에 다닐 때도 선방에 앉아야만 공부가 되는 줄 알아서 경전 보는 것은 허송세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전은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해줄 뿐이지, 실천을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컸어요. 몇 번이고 마음의 보따리를 싸고 풀면서 강원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여기서 끝을 못 보고 선방에 가면, 이런 시기가 또 올 때는 진짜 갈 곳이 없어 것 같아 하나라도 끝을 맺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경전 공부를 열심히 다 하고 선방에 가서 참선을 하게 되었지요."
"수행자의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러 가지 여쭈려 온 우리에게 거꾸로 스님께서 이런 질문을 덧지셨다. '신심' , '도반' , '지혜; 등 여러 답변이 나왔지만 스님께서 생각하셨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사람들한테 종종 '스님은 무슨 배경이 좋아서 그렇게 당당하냐?' 는 질문을 받아요. 그럼 '중이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뭐 있나요?' 하고 답변을 건네지요.
세상 사람들은 명예와 지위가 큰 배경이라고 하지만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스님들의 가장 큰 배경은 수행력이라고 생각해요. 수행은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경전에 말씀으로 일러 놓으신 것들을 증험 증득하는 것이예요. 수행력을 기르려면 업이 녹고 복이 쌓여야 하며, 불보살의 힘을 빌려서 기도를 많이 해야 되죠. 아니면 번뇌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끝나요. 안과 밖을 여법하게 잘 가꾸어 가면서 수행을 잘하면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고 하늘이 옷과 음식을 준다 했어요.
그리고 배부르고 등 따시면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뭐든지 수용을 많이 하게 되면 탐과 착이 생겨서 공부에 진전이 없고 장애가 생기지요. 저는 선방에서도, 미얀마나 인도에서 공부할때도 제 이름 새겨진 옷 한 벌 없었고, 택배 한 번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바나나 박스 2개가 전부에요.'
오로지 정진력으로 가려던 길을 잘 찾아가셔고, 그 길이 행복하기만 하신 스님께서는 공부 얘기에 눈이 반짝반짝하시며 여전한 열의를 뿜어 내셨다.
"공부도 해본 사람이 그 맛을 안다고, 해봐야지만 갈증을 느끼고, 하려고 하는 의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선방에 앉아 '이뭣고' 만 한다고 수행이 되는 게 아니에요. 앉아 있는다고 성불할 것 같으면 저 산을 지키는 바위들은 성불하고도 남았겠죠.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참선參禪엔 수구삼요須具三要니 一은 유대신근有大信根요 二는 유대분지有大憤志요 三은 유대의정有大疑情이라 구궐기일苟闕其一하면 여절족지정如折足之鼎하야 종성폐기終成廢器하니라. 공부工夫는 여조현지법如調絃之法하야 긴완緊緩에 득기중得其中이니 근즉근집착勤즉則近執着하고 망즉낙무명忘則落無明이니라. 참선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고, 둘째는 큰 분심이며, 셋째는 큰의심이라. 만약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될지니라.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고 느슨함이 알맞아야 하니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되니라.
대부분 선방에서 화두를 염念하고만 있지, 의심疑心이 안 들어서 한 철 헛사는 경우가 많아요. 선방에서 용맹정진할 때 서로 등을 지고 있는데 어른 스님이 누가 망상하고 있는지, 졸고 있는지 다 보인다고 했어요.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수행을 오래 하고 그 자리에 가 보니 정말 다 보이더라고요. 저도 우리나라 선방 안 가본 데가 없고 옛 조사 스님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해본 방법들을 흉내는 다 내본것 같아요. 무문관, 위빠사나, 밀교 수행에 묵언, 불식은 기본이고, 잠을 깨기 위해 턱 밑에 바늘도 놓고 해봤어요. 그러나 졸면 찔릴까봐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뒤로 젖혀지더라고요. 지금은 행주좌와行住座臥 어묵동정語默動靜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순간순간 대상을 만나면 물 흐르듯 항상 젖어 있고 함께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가 있어요."
아무래도 선방이나 간화선 수행에 대해서는 강원의 어른 스님들에게도 간혹 들은 기회가 있었지만 밀교나 위빠사나 수행은 우리에게 생소했기에 선배 스님의 다양한 수행 체험기는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55세가 되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오체투지를 생각보다 훨씬 전에 하게 되셨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서 하고 계신 스님의 이야기는 정말 큰 감동을 안겨줬다.
"미안마에서 수행을 할 때 집중수행 기간이 있었어요. 스님들은 일부이고 일반 재가불자들이 많은 이 모임은 사부대중 앞에서 질문하고 답하는 공개 인터뷰 형식이에요. 단계별로 1주일에 한 번, 3일에 한 번 또는 매일 인터뷰를 해야 했어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밤을 세워 공부를 해야만 했죠. 안 하면 말 한 마디도 못하니까요. 선방에서 『아함경阿含經』과 다른 경전을 틈틈히 공부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강원에서는 목욕날에 무조건 삼천배를 하였고 선방에서도 600배를 했어요. 평소에 절을 많이 해서 무릎이 좋지 않아 너무 나이 들기 전에 오체투지를 꼭 해보리라 원을 세웠어요. 우연히 연꽃마을 각현스님이 20년 자원봉사자 팀을 이끌고 가는 성지순례에 인연이 되어 따라 가면서 원을 세웠던 시점보다 훨씬 전에 오체투지를 하는 곳에 가게 되었어요.
인도 보드가야 사선정四禪定 자리에서 동안거 동안 하루에 삼천배 오체투지 절을 했어요. 새벽 3시에 수건 7~8개 말아 챙겨 가서 시작하면 5시 30분에 짜이 한 잔 받아 마시고 저녁 9시 30분까지 절을 했어요. 오전에 삼분의 이는 해 놔야지 오후에는 더워서 속도가 절반으로 떨어지거든요. 하루 한 끼, 공양도 최소한으로 하고 물만 마셔 가며 절을 하니 하늘이 노랗고, 날씨는 덥고, 수건을 짜면 땀이 줄줄~~, 빨지도 못하고 그대로 말려서 다시 사용햇어요. 사람들이 오고 가며 카운팅한 것을 보고 '코리아 아니(비구니), 참 잘해요.' 하며 칭찬하고 응원해 주더라고요. 한국 절보다 오체투지가 훨씬 하기 쉬워요. 내려올 때 몸을 꺾지 않고 일자로 바로 뼏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겁을 내서 잘 못해요. 그런데 팔힘으로 하기 때문에 무릎이 아파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그때 그렇게 해본 오체투지를 통해 저의 한계점이 어디가지인지를 체험 해 본 것 같아요.
그렇게 외국에서 오랫동안 닦아온 수행을 지금은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가르치고 지도해 주시며 지내신다. 대한민국에서 불교가 가장 자리 못한 곳을 찾다가 머물게 된 지금 이곳, 금종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쭤보았다.
"3년 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화재가 크게 나서 절이 완전히 소실되었어요. 그전에는 제대로 갖춘 절이었는데 재만 남아 다시 불사를 해서 지금의 금종사가 되었어요. 평생 걸망 하나 지고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으로 떠돌며 살아던 제가, 조계종에서 떠날 기회를 주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제가 몸담고 있을 때 화재가 났는데, 여기 사람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었어요. 저로 인해 전체적인 불교에 대한 이미지가 깎이면 안 되니까, 그리고 스님들은 쉽게 떠나다는 불신이나 배신감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어요. 불탄 재만 치우는 데 3천만 원이 넘었어요. 매일 아침 눈이 떠지는 것이 감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참 많은 어려움과 역경이 있었지만 이런 작은 토굴이라도 불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정성과 관심이 모여 큰 힘이 된 결과인 것 같아요."
경전으로만 배웠던 부처님 가르침을 평생 선객으로서 몸소 체험하며 살아오신 스님의 말씀은 아주 귀한 보물과 같았다. 짦은 시간 내에 온 힘을 다해 공부하고 수행하며 체득하신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신 스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인사를 올렸다. 선배님께 받은 에너지 덕일까? 하루 만에 다녀와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운문사로 돌아오는 길에 피로함이라고는 없었다. 수업 중에 제일 안 졸고 열심히 들었던 선가귀감 구절도 다시 접하니 새삼 반가웠고, 그때는 이해 못했던 말들이 마음속 깊게 스며드는 것 같았다. 벌써 이 겨울이 지나면 졸업반이 되어 걱정과 기대에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부처님께서 알려 주신 네번 째 성스러운 진리, 즉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그중 나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아 이번 생이 끝날 때까지 올인해보려 한다. 선배 스님의 걸어오신 발자취를 우리도 성성력력惺惺歷歷하고 밀밀면면密密綿綿하게 열심히 수행 정진하며 따라가기를 발원해본다.
이 글은 불기2567년 雲門지 겨울호에 있는 글을 퍼왔습니다.
그리고 운문사 홈폐이지 계관운문에서 더 자세히 볼수 있습니다.
운문사 사리암 도반 법우 여러분 나반존자님의 가호 가피 많이 많이 받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사리암소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_
늘 감사합니다
시원한 풍경과 소식 감사합니다.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