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245]荀子(순자) 禮論(예론)句 54字
荀子(순자) - 禮論(예론)
天地合而萬物生, 陰陽接而變化起, 性僞合而天下治,
天能生物, 不能辨物也,
地能載人, 不能治人也,
宇中萬物生人之屬, 待聖人然後分也.
천지합이만물생, 음양접이변화기, 성위합이천하치,
천능생물, 불능변물야,
지능재인, 불능치인야,
우주만물생인지속, 대성인연후분야.
천지가 화합하여 만물이 생겨나고,
음양이 교접하여 변화가 일어나며,
본성과 인위가 합해져서 천하가 다스려진다.
하늘은 만물을 생장시킬 수 있지만,
만물을 변별하지 못하고,
땅은 인간을 실을 수는 있지만,
인간을 다스리지는 못하며,
공간 중에 있는 만물과 인간의 무리들은
성인이 있는 연후에야 구별이 된다.
荀子集解순자집해(5) 禮論篇제19-136
19-136 故曰 天地合而萬物生하고
陰陽接而變化起하며
性僞合而天下治라하니라
天能生物이나 不能辨物也하고
地能載人이나 不能治人也라
宇中萬物生人之屬은 待聖人然後分也라
詩曰 懷柔百神하여 及河喬嶽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注
引此喩聖人能幷治之라 詩는 周頌時邁之篇이라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결합하여 만물이 생겨나고
陰氣와 陽氣가 접촉하여 변화가 일어나며
본성과 人爲가 결합하여 천하가 다스려진다.”고 하였다.
하늘은 만물을 생성할 수 있으나
만물을 다스리지는 못하고
땅은 인류를 실어줄 수 있으나
인류를 다스리지는 못한다.
우주 가운데 만물과 각종 인류는
聖人에 의해 비로소 적절히 안배되는 것이다.
≪詩經≫에 “뭇 신령 어루만져 고이 달래어
黃河며 泰山까지 감격하였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注
楊倞注:이 시를 인용하여 聖人이 모두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였다.
≪詩經≫은 〈周頌 時邁〉편이다.
역주역주1 辨 : ‘辦’과 통용하는 것으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역주2 喬嶽 : ≪詩經≫ 〈周頌 時邁〉의 〈毛傳〉에 “喬는 高의 뜻이다.
喬嶽은 岱宗이다.”라고 하였다.
岱宗은 泰山이다.
⋇ 本性(본성) : 타고나는 것
⋇ 人爲(인위) 혹은 人僞(인위) : 환경과 배움에 따라 완성되는 것으로
① 習俗(습속)과 환경의 薰陶(훈도) ② 지식과 경험적 학습
③ 수양과 思慮(사려)의 작용이니라’로 보충함직하다.
故曰(고왈): 性者(성자), 本始材樸也(본시재박야);
偽者(위자), 文理隆盛也(문리륭성야),
無性則偽之無所加(무성즉위지무소가),
無偽則性不能自美(무위즉성불능자미).
性偽合(성위합), 然後成聖人之名(연후성성인지명),
一天下之功於是就也(일천하지공어시취야).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자연의 물질이고
후천적인 행동은 예의 법칙이다.
사람에게 단순한 본성이 없으면
인위적으로 가공할 여지가 없고
인위적인 가공 없이는
인간의 본성이 저절로 완성될 수 없다.
인간의 본성과 인위적인 가공이 결합되어야만
성인(聖人)의 명성을 얻을 수 있고
이로써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도 완성 할 수 있다.
故曰(고왈): 天地合而萬物生(천지합이만물생),
陰陽接而變化起(음양접이변화기),
性偽合而天下治(성위합이천하치),
天能生物(천능생물), 不能辨別也(불능변별야);
地能載人(지능재인), 不能治人也(불능치인야);
宇中萬物生人之屬(우중만물생인지속),
待聖人然後分也(대성인연후분야),
詩曰(시왈): “懷柔百神(회유백신), 及河喬嶽(급하교악).”
此之謂也(차지위야).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합해지면 만물이 생기고
음양이 합해지면 끝없는 변화가 생기며
인간의 본성과 인위적이 가공이 합해지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은 만물을 낳을 수 있으나 분별해 다스릴 수 없고
땅은 사람을 양육할 수는 있으나 다스릴 수 없으며
세상 만물과 사람은 성인(聖人)에게 의지하여 분배된다.
시경에서 말하길:
“많은 신령들을 달래고 하천과 산까지 평안하게 하였다.”
바로 이말이다.
荀子, 그는 누구인가
荀子(BC. 325-238)의 명은 況이요, 자는 卿, 또는 孫卿이라 했다.
그는 전국시대 말기 趙나라에서 태어났다.
순자는 일찍이 齊나라의 稷下學宮(제나라 최고의 翰林院)에서
오랫동안 유학 연구와 강의에 종사하여 제나라에서 최고 학자로 받들었다.
그러나 순자는 그 후에 謀陷을 당해 楚나라로 망명하여
陵令(난릉은 지금의 山東 蒼山縣 蘭陵鎭)을 역임하였다.
晩年에는 8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난릉에서 살았다.
그의 著作으로는 <荀子>가 있다.
1. 순자는 儒家의 禮에 대하여 새로운 논리를 폈다.
순자도 공자가 말하는 예를 매우 중시하였다.
하지만 순자가 주창하는 예는 孔子의 예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공자의 예는 周禮였지만 순자의 예는 전국시대의 예였다.
뿐만 아니라 순자는 禮를 法과 결합함으로써 예에 도덕적인 내용 외에도
법적인 내용을 가미시켰다. 순자는 孟子의 仁政을 반대했다.
이에 반해 순자는 제후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 하에서의 仁政의 주장은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耕戰 즉 정책을 동시에 실행하여
부국강병책을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순자의 이러한 사상 관점은 실제로 유가의 禮治 사상에서 법가의 法治 사상으로
향하는 과도기적 입장이었다.
그 결과 순자의 제자 중에는 商鞅, 韓非子, 李斯 등과 같은 유명한 법가가 배출되었다.
이들 법가는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군현제도를 실시하며 봉건제도를 파기했다. 이로써 법치국가를 처음으로 실행했다. 따라서 이들 법가는 근대 국가 형태인
법치국가를 이미 秦나라에서 실시했다.
2. 순자는 맹자의 性善說에 대해 性惡說를 제기하였다.
性惡說은 순자가 주창하는 정치사상의 기초 이론이었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며,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人之性惡, 其善者僞)"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순자는 人性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것이고
선은 후천적으로 배양되거나 교화된 것이다.
순자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하고(好利), 여색을 좋아하며(好色),
편안함을 좋아하고(好逸), 일하기를 싫어하는(惡勞) 등과 같은
생리적인 각종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순자는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순자는 맹자가 주창하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四端
즉 측은지심, 사양지심, 공경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仁義禮智)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고 하나의 윤리적 당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순자는 만약 개인의 욕망이 자유롭게 발전하면 사람과 사람 간에는
반드시 투쟁이 발생하여 사회의 혼란이 조성될 것이며,
따라서 禮와 義로써 인간의 性惡을 교정해야 사회의 혼란을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3. 순자는 하늘과 사람은 별개의 존재임을 주장했다. 사람과 하늘의 관계에 있어서 순자는 공자의 天命觀을 거부하였다. 그는 자신의 天論을 펴 "運命을 人力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人定勝天論을 제기했다. 순자는 天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물로서 그것은 자신의 객관적인 규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로써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사람이 하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주관적인 능동성을 발휘하고 자연의 규율을 이용하여 자연을 개조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순자는 인간의 운명을 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人定勝天)고 보았다. 이 같은 순자의 생각은 객관적인 규율을 인정하면서도 사람의 주관적 능동 작용도 강조한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인간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聽天由命) 사상과는 전혀 새로운 天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늘은 하나의 자연물이요, 인간의 윤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본 순자의 관찰은 옳았다. 하지만 순자는 정통 유학자들의 배척을 받아 이단으로 몰렸다. 그 주동자는 朱子였다.
공자나 맹자가 전통 왕족과 귀족의 욕구를 대변했다면 순자의 이 같은 혁신적인 유교사상은 당대 신흥지주계급과 제후들의 요구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순자는 공맹의 예도와 예치를 법도와 법치로 대치하고, 天命思想을 人定勝天 사상으로 발전시켰고, 성선설을 성악설로 변형시켜 자신의 예도와 天論의 기초이론으로 확립했다. 이 같은 변화는 실로 위대한 사상적 혁명이었다. 하지만 전통 보수적 유가들에 의해 순자는 마침내 異端으로 罵倒 당했다. 오늘날까지도 순자는 유교의 아웃사이더이다.
하지만 오늘날 보았을 때 유학을 가장 변증법적으로 계승발전 시킨 사람은 주자가 주장하는 정통유학파가 아니라 공자의 사상을 가장 현실적으로 발전시킨 순자였다. 禮를 法으로, 性善을 性惡으로, 하늘에 종속시킨 인간을 하늘로부터 독립시켜 해방시킨 사람은 전통유학자가 아니라 荀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자나 맹자가 춘추전국시대 평화를 이루지 못한 것을 순자는 법가를 통해 천하를 통일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볼 때 순자의 사상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객관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자연 현상과 인간의 윤리와는 아무런 상관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에서는 마치 하늘이 인간을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있지 않은 하늘의 의지를 가지고 인간을 지배하려 했다.
<荀子>는 어떤 책인가
<순자>는 周나라 때의 유학자 荀子의 思想을 집대성한 유교경전이다.
처음에는 <孫卿新書>라고 하였다. 현재의 책은 20권 33편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 12권 322편이던 것을 漢의 劉向이 중복되는 부분을 정리하여 32편으로 만들었고,
唐나라 때 楊倞이 20권 32편으로 개편하고 注를 달아 <孫卿子>라 개칭하였다가
후에 <순자>라고 했다.
책 내용은 修身篇 傳承이 6편, 治國篇 9편, 理論篇 6편,
순자 문인들의 雜錄으로 되어 있다.
그중에서 天論, 勸學, 禮論, 性惡論이 유명하다.
孔子 이후 孟子에 의하여 정비된 유교는 윤리적 입장만이 강화되었다. 순자는 이에 반대하여 공자의 禮의 사상을 내세워 諸子百家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객관적 입장에서 유교를 재정비하였다. 순자는 먼저 공자나 맹자에서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어 온 天의 권위를 부정하고 하늘은 인간의 도덕적 활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연의 天空에 불과한 것이라 하여 ‘하늘과 사람과의 분리’를 선언하였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독립선언이었다. 그러나 전통 유학의 입장에서 볼 때는 異端的이었다. 따라서 순자는 독립된 인간의 존엄성은 禮에 의해서만 유지된다고 보았다. 예는 순자의 경우 聖人이 정한 社會規範으로 뚜렷한 객관적 형식이었다. 순자는 그에 따르는 것만이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는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가치도 발휘된다고 보았다. “天有其時 地有其財 人有其治 夫是之謂能參; 舍其所以參 而願其所參則惑矣”-天論.
순자는 인간의 修養은 맹자와 같이 인간의 心性을 善으로 보아 그 선을 발전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禮의 형식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후천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라 하였다. 즉, ‘人性은 惡’이며 ‘날 때부터 利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방치하면 爭奪과 殺戮이 발생하기 때문에 악이라는 본성을 矯正하는 ‘師法의 가르침과 예의의 길’인 僞 즉 人爲에 의해서만 治世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여겼다. 여기에서 맹자의 性善說에 반대하는 性惡說이 태어났다. 宋 代 이후 朱子가 儒敎道統(-공자-맹자-안연-자사-주염계-정이, 정호-주자)을 내세워 성악설과 天·人 分離說을 주창한 순자을 異端視하게 되었다. 그러나 순자의 논리학이나 인식론을 포함한 사상의 과학적 성격은 漢代 유교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와 함께 秦始皇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韓非子와 李斯가 荀子의 門人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富國强兵策의 사상적 근간이 된 법가사상은 순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공자의 덕치사상을 한걸음 발전시켜 현실화한 것이 순자의 禮思想이요, 곧 法思想이다.
순자가 그의 <惡論>에서 말하고 있는 亂世의 徵兆는 다음과 같다.
“亂世之徵 其服組 其容婦 其俗淫 其志利 其行雜 其聲樂險 其文章匿而采 其養生無度 其送死瘠墨 賤禮義而貴勇力 貧則爲盜 富則爲賊 治世反是也”
난세의 징조는 그 복장이 화려하고, 그 얼굴이 여자 같으며, 그 풍속은 음란하고, 그 뜻은 이익을 쫓고, 그 행실이 잡스러우며, 그 음악은 거칠다. 그 문장은 간사하고 화려하며, 양생에 절도가 없으며,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각박하고, 예의를 천하게 여기고 용맹을 귀하게 여긴다.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고, 부자가 되면 남을 해친다. 그러나 태평시대는 이와는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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