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을 끝으로 코로나로 중단되었다는 막영회가 5년 만에 다시 개최됐다. 이번엔 산악영화제까지 함께 개최돼 영화까지 볼 수 있는 행사가 됐다.
설악환영회를 갔다오고 나서 바로 연이어져 짝꿍은 못 간다고 일찍이 만세를 불렀다.
환등회 전, 졸업하자마자 간, 크렉에서 말구를 보며 생전처음 듣고 보도 못 한
캠을 빼느라 10분 동안 씨름을 해서 기운이 다 빠졌다고
엄살은! 그게 언젠데
가야하나 갈등이 됐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지부들이 모이고 처음 경험하는 행사라 가보는 것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이번 설악심화 반에서 만난 울산에서 온 아우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생활조가 꾸려졌다.
고기와 술. 추어탕을 가지고 가겠다니까
천익아우가
김치와 밑반찬까지 가져오란다.
내가 김치를 잘 담근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일급비밀인데...
비밀유지 시스템이 이리 허술해서야...
양주와 와인을 물통에 담고 짝꿍이 교환교수로 있을 때 중국에서 제자가 줬다던
귀한 약재로 담은 담금주를 쎄배해 물병에 담았다.
안 그래도 요즘 영복이가
정력이 떨어졌다고
가져오란다
물병에 담고
빈 술병을 버리는 순간
짝꿍이 들어왔다.
간발의 차이였다.
휴~~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필시 또 한소리 들을 건 빤했다
"뭘 또 그리 바리바리 싸서 가져다 주려고 해?
하여튼 손은 커서!"
추어탕.익은 김치. 겉절이.오이와 마늘피클. LA갈비. 닭갈비. 와인. 양주. 중국술까지 담으니 베낭의 무게는 20k 정도.
매어보니 허리를 펼수 없어 구부정하게 매야 가능했다.
다행히 조카가 텐트를 쳐서
잘 곳이 있다고 해 텐트는 안 가져갔다.
왜 챙겼는지 모르지만
요를 챙기듯 매트는 챙겼다.
이 매트가 나중에 요긴히게 쓰였다.
다음은 시청역까지 갈 교통편. 전철...
이곳으로 이사온 후 전절을 탈 기회가 별로 없어
전철은 나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짝꿍에게 도봉산 역까지 태워주면 택시를 타겠다고 했다.
택시를 타면 시간에 못 맞출 수도 있고
이른 새벽이라 위험하니 전철을 타라고 한다. 중앙역에서 타면
갈아타지 않고 시청까지 한번에 간다고.
중앙역에서 첫 차가 새벽 5시 25분.
1시간 반이 걸린다고 치면 시청역에 6시 55분 도착.
딱 맞단다.
도봉산역까지 데려다 주기엔 피곤해 설명이 길어진다는 합리적 의혹이 들었지만 설득력은 있는 말이라 넘어갔다
집에서 중앙역까지 30분이 걸리니 적어도 4시엔 일어나야한다.
하루를 넘게 집을 비워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어 놓고 알람을 맞춰두고
일찍 잔다고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3시 반에 자동기상. 배낭을 들어준 짝궁이
"아이구! 뭐가 들었기에 이리 무거워!"
"그냥 이것저것 넣다보니..."
얼버무렸다. 짝꿍도 잠이 채 깨지 않아 더 이상 캐 묻지 않았다. 다행이다
춥다는 소식에 두툼하고 긴 롱 파카인 이불까지 입고 배낭까지 매니 북극곰.
차에서 내려 등짐을 진 꼬부랑 할머니처럼
등을 펴지 못하고 뒤뚱뒤뚱 걷는 내 뒤에서 짝꿍이 소리친다
"소요산으로 가는 차가 아니라 인천으로 가는 차를 타야해!!"
그리 걱정이 되면 배낭이라도 들어주고 알려주든지!'
차 안은 한산했다
서울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꽉찼다. 나처럼 배낭을 가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새벽부터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구나'
시청역에서 내려 등짐을 지고 내리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진우국장이 배낭들을 버스 짐칸에 싣느라 바쁘다.
겨우 짐을 벗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새벽 여명을 보며 조용히 사색에 잠겨보고 싶어 앞자리를 택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인생이 어디 뜻대로 마음대로 되던가
차를 타면 전화를 하라는 짝꿍 말에 전화를 거니 비몽사몽
그러면서 전화는 왜 하라고 한겨
몇 번 버스를 탔지만 이번에 버스를 탄 시간들은 내가 태어나서 가장 끔찍한 최악의 시간이었다.
휴게소에서 오물을 씻어내 듯 손을 닦고 또 닦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호두과자를 샀던 것 같다.
그나마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해 별로 막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악몽같은 시간이라도 지나 가게 돼 있다.
오리고기로 점심을 먹었다. 돼지고기도 오리고기도 먹지 못 하는 난 된장국과 아침에 나눠준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막걸리 도가를 찾아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시음했다.
술을 못 마시지만 도리상 한 모금만 맛을 봤다.
탄산맛이 강한 게 재를 넘은 것 같다고 옆에 앉은 지긋한 여자동문님이 점잖게 품평을 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별빛 야영장에 도착했다.
별빛으로선 마지막이니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내년부턴 별빛이 달빛으로 바뀌나?
안내 데스크에서 데크 자리를 배정해 줬다.
데크에서 취사는 절대 금지. 텐트 칠 때 데크에 나사못 쓰지 않기.
나사 못으로 데크를 상하게 하면 하나에 3만원 배상 등등 주의를 받고 배정된 데크로 이동.
차는 배정된 차외에 못 들어간단다.
결국 버스에서 짐을 내려 걸어야했다.
시청까지만 오면 영복이가 배낭을 들어줄 거라는 천익대장 말과 달리
영복은 이미 넘치게 짐을 들고 있었다.
내 짐을 듵어주려면 팔을 하나 더 붙여야 가능했다.
정력이 떨어질만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등짐을 지고 걸었다.
솔길을 따라 들어가니 캐빈하우스도 있고
쭉쭉 뻣은 소나무도 있고 식기세척실에 화장실까지 깨끗하고 조용했다. 앞엔 개울물이 흐르고.
운영진들과 먼저 와 있던 조카와 조카며느리가
데크에 텐트를 치고 있었다.
각자 지정된 데크에 자신들의 집들을 짓느라 바쁘다. 울긋불긋 제법 아담한 마을이 됐다.
식당텐트에 이것저것 가져온 부식들을 꺼내놓으니 배낭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잠은 조카의 텐트에서 자기로 했는데
매트는 도대체 왜 가져온 걸까?
이수연이를 위해서였다. 텐트를 가져오고 매트는 가져오지 않은 우리 수연이에게 내 매트가 기꺼이 푹신한 요가 돼 줬다.
수연인 고을을 구한 걸까?
아니면 나와 같은 뇌를 가진 걸까?
텐트를 치고 난 다음
넓다란 행사장으로 모여 내빈들과 각 지부 소개들을 하고
이번 행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수락산장 헌판식이 있었다
수락산장 안과 밖에 걸
나무에 새긴 멋진 필체의
간판을 변기태 회장님이 받았다
이무성 선배 대신 49기 정혜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들을 먹기 위해 모였다.
조카가 친 식당 텐트에 모여 가져온 부식들로 식사를 했다. 고기 굽는 담당은 천익아우가 맡았다.
천익아우는 계속 고기만 굽다 마지막 한점으로 자신의 몫을 찾았다.
셰프 명관선배 덕분에 호사스런 에피타이저를 맛 봤다.
술도 못 마시고 식욕도 당기지 않아 밥만 조금 먹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회장님과 독거미 선배님이 어둠 속에서 뭔가 열심이다. 세상에!
떡을 쪄도 될만큼의 크기인, 회장님이 이번 막영회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노블레스한 버너 위에 한쪽엔 밥솥이 한쪽은 부대찌개가 놓여져 있었고
세 명의 남자들이 죽을 쑤고 있었다.
"회장님! 세간살이를 준비하기 전에 살림할 여자부터 구해야지!"
밥은 죽도 밥도 아닌 이상한 형태로 밥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부대찌개는 그런대로 끓고있었다.
랜턴을 가져오지 않아 나름 꼼수를 부린, 누구 차인지는 몰라도
내일 밧데리가 아웃돼 퍼질 운명이 될지도 모를 차의 헤드라이트가 식탁을 밝히고.
이곳저곳 급조해 살림을 할 도우미를 찾았고 죽도 밥도 아닌 밥솥에 고딩부터 야영을 한 회장님 기지로 햇반 2개를 넣으니 대충 밥 꼴이 갖춰졌다. 겉절이와 명관선배의 에피타이저까지 갖다놓으니 그런대로 식탁이 꾸며졌다. 울산팀에서 전어회를 가져왔다.
여자가 살림을 맡자
집꼴이 자리를 찾아 부대찌개에 라면을 넣어 맛나게 드시고 있었다.
영화를 본다고 몰려들 갔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어느곳도 조용히 있을 공간을 찾지 못 했다.
그나마 화장실이 가장 조용했다.
울산 영숙이를 만나 뜨겁게 포옹하고 부비부비 볼을 비볐다.
영숙이와 함께 설악심화 때 만난 울산팀을 찾아갔다. 야영장에서도 울산팀이 있는 곳은 한참을 걸어야 했다. 멀었다.
생각보다 야영장 규모가 컸다.
가는 길에 근사하게 불빛으로 장식된 곳에서 영숙이와 사진도 찍고.
벤치에 앉아 어둠을 음미하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 포기했다
드디어 울산팀과 반갑게 조우했다.
타는 듯 뜨거웠던 여름을 함께 나며 고생했던 우린 고성을 지르며 어깨동무를 하고 어린애들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티까지 맞춘 강원도 팀은 새우구이까지 음식도 고급졌다.
왜 설악에 울산바위를 놓아두냐고 가져가라고
울산 영숙이에게 항의한다
술병바위 때문에 못 가져간다나 어쩐다나...
대신 영숙이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줬다
영숙이 목소리는 일품이다
조금 있으니 회장님과 조인복 선배님이 전국지부를 돌다 울산팀으로 와서 일일이 인사를 한다.
회장님 앞에 술대신 사이다가 놓여졌다
그나마 술을 마시지 않아 다행이지 전국을 돌며 한 잔 씩만 마셔도 쓰러지겠네
혹시 그래서 못 마신다고 하는 걸까?
이 쓸데없는 상상력!
산악회 회장하기도 힘들구나!
내 돈 써가며...추운 야밤에 전국을 돌며 얘기까지...
입도 엄청 피곤할 텐데
그거야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니 치쳐 쓰러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알아서 하실 테지
역시 전국을 돌고 있는
동문회장종남이 언니
조남복 원장님과 발목수술을 앞둔 성연수 교무도
만났다
직책을 맡는다는 건 확실히 힘들고 희생을 요하는 일이다
돈 주고 하라고 해도
난 안하지!
다람쥐처럼 바위를 타는 울산 사원이가
어둠 속에 혼자 보낼 수 없다며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날 데려다준다고 나섰다. 혼자가도 아무 문제 없는 나이인데...
역시 신사
사원인 동갑에 설악심화 때 같은 에이스 팀이었던 49기 영달이와 만나 아리랑인지 쓰리랑인지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날 위해 트롤리안 통닭구이까지 경험하게 해준다고
의리의 사원이
난 피곤해 조카 텐트로 들어와 누웠다.
씻어야 잠을 자는 난, 낮잠이라고 뇌가 속아주길 바라며 뜨끈뜨끈한 전기매트에 누웠다.
자리를 뺏긴 조카는 술을 마시고 내 침량에서 떨고 자다 새벽에 춥다고 들어왔다.
아침에 보니 침량카버를 안 쓰고 자서 더 추웠던 것 같다
"이모 침량 너무 추워 바꿔!"
아서라, 내가 또 이런 야영을 하겠냐.
다같이 모여 대충 아침을 먹었다. 북어국과 추어탕이 추운 아침을 녹였다.
이렇다면 굳이 생활조를 편성할 필요가 있나는 생각들을 똑같이 한 것 같다.
늦게 와 행사 때 소개를 못 한 장승필 전 회장님을 뵙고 반갑게 인사했다
가장 최상의 맛은 야영장에서 마시는 한잔의 커피였다.
51기 삼승인 모든 야영도구가 명품이었다.
신기해 이리보고 저리 봤다
온통 빨간 빚을 내는 버너가 예뻤다
물도 금방 끓고
손화로로도 쓸 수 있어 시린손을 녹였다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는 선배가 꺼낸 꽂봉오리처럼 빛을 내는 황홀한 버너도 구경했다
물건 모르면 돈 많이 주고 사면 된다는 말은 명언이다
하룻집이었던 텐트를 헐고 누워있던 잠들과 먹었던 식기들을 닦아 배낭에 꾸역꾸역 쑤셔넣느라 모두 바빴다.
뒷처리들을 하자 관리인이 이곳저곳 데크를 확인하고 떠났다.
3만 원을 내는 사람은 당근 없었지!
순준선배와
종석선배
미량이는
아리랑을 간다고 일찍이 떠났다
이끌어줄 선배가 있다는 건
복 받은 일이다
부럽다
민기는 언제 나을까
부랴부랴 단체사진인
인증샷을 찍고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불고기 비빔밥 집으로. 불고기?
불고기가 몇 점 얹히긴 했다. 고물가 시대에 버스에 점심 두끼를 5만 원으로 해결한 것은 협찬이 있다하더라도 감지덕지다.
점심을 먹고 황희정승의 반구정이 아닌 반구대를 찾았다.
고래를 잡고 그림을 그린 흔적이 바위에 남아있다는 반구대.
그런데 반구대란 이름은 편편한 바위에 거북이가 앉아 있는 거라는데
포경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고래 잡을 때 거북이도 함께 잡은 건지.
반구대 박물관에서 여러 토기들을 보고 설명문들을 읽었지만 읽고 돌아선 순간 깨끗하게 비어주는 뇌.
나이를 이길 장사는 없다.
붉은 간 토기? 붉게 갈은 토기란 뜻 같은데 저리 써놓으면 어찌 알겠나. 세종대왕이 슬퍼할 것 같다.
모두 몰려나가고 텅빈 박물관에서 드디어 조용한 시간을 만난 난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둘러봤다.
딱따구리 소리도 듣고
갈대 바람소리도 듣고
개구리 소리도 듣고.
천천히 나와 돌에 새겨진 석화를 보러 가는 길은 2k가 조금 넘는다.
얏호! 드디어 혼자다!!!
조용하게 걸으며 갈대숲도 보고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도 봤다.
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가 조금 걷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꼴찌로 가서 자세히 봐도 모르겠어서 대충 보고 빠른 걸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반구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군것질 거리를 준다는 소리에 혹해 서명을 했다.
돌아오는 길은 그레이드가 5.12? 5.13?
내 인생 최악의 난이도가 높은 지옥의 귀성길이었다.
내가 탄 차는 38명이 꽉 차게 탔다.
5년 만에 열린 막영대회니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폭탄 소리를 듣는데
참자참자. 농담농담. 웃자웃자.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넘기자넘기자. 초연초연. 티내지 말기.
모두를 위해 좋은 게 좋은 거다. 내가 알고 있는 인내와 극기의 모든 단어들을 끄집어내야했다
휴게소에 2번 쉴 때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먹을 것을 사와 이쪽저쪽 나누었다.
진우국장이 고생하는 게 빤히 보이는 내 좌석이 내게 인내를 요구했는지도 모르겠다.
올라올 때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앞의 단어들로 가득찼다.
모두 내려 잘가란 인사들을 듣는등 마는등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전철이 들어오자마자 무조건 탔다. 그때서야 안심의 숨소리가 나왔다
"나 차 탔어"
"무슨 차?"
"무슨 차는? 전철이지!"
"전철도 여러가지가 있어. 광운대까지 가는 것도 있고.
양주까지 가는 것도 있고
소요산까지 가는것도 있고 소요산행을 타야해"
"아! 무슨 차가 그리 복잡해!"
"왜 그리 소리를 질러?"
"나 지금 기분 엄청 더럽거든!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
"난 여기 있는데 어떻게 당신을 건드려? 좋은 여행하고 와서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 묻지말라고!!"
" 알았어. 알았어. 옆에 사람에게 물어봐. 무슨 전철을 탔는지"
옆에 앉은 두 여인이 내 대화를 듣고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준다
"이 차 광운대까지 가는데 석계역에서 우리랑 같이 내리면 돼요 우리도 거기서 내리니까요"
으 쪽 팔려
"네 고맙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히 인사하고 앉았다
"어휴 배낭을 보니 바위를 하고 오나봐?"
수연의 도움으로 입고왔던 이불을 쑤셔넣으니 부피가 큰 배낭이 된 걸 보고 하는 말이다.
"내 아는 동생도 60이 넘었는데 바위를 타더라고!"
슬금슬금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자는 척 할까?
제발 나이를 물어보지 않기를...
"그러게 바위 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미치면 정신 못 차리더라고. 60이 넘었는데도 펄펄 날아. 눈 앞에 바위가 아린거리고 바위에 갈 날만 기다린대"
"우리도 소요산 자주 갔었어요"
상냥하게 설명까지 한다
"네"
"아이고 자기만한 배낭을 매고 이 체격에 어떻게 바위를 해?"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그 동생은 군살 하나 없이 날씬해. 그래야 바위를 할 수 있대"
나이를 물을지 조마조마
이넘의 석계역은 왜 이리 먼가
다행히 초면에 나이를 묻지 않는 예의를 갖췄다
차림새를 보니 토리버치 핸드백에 한껏 모양을 내고 나이가 들었어도 왕년에 한번 놀았던 듯
온통 반짝이가 붙은 검은 바지에 그런대로 고운 얼굴이다
드디어 석계역에 도착해 두 여인은 양주 가는 차를 타고 갔다.
난 한참을 더 기다려 소요산행을 탈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짝꿍이 배낭을 들어준다
'갈 때 들어주지'
"어이구 왜 이리 가벼워? 먹을 걸 빼서 그렇구나! 대체 얼마나 가져간 거야?"
"집이 망하지 않을 만큼 가져갔으니 걱정 마"
집에 오니 감이 가득이다
가을이 바구니에 4개나 담겼다
"아랫집 교장선생님은 아직 안가져 가고 권사장 집은 두 바구니 가져갔어. 아래 있는 감은 교장선생 거야. 교장이 가져가고 나서 깨진 감은 감식초 담으면 될 거야.내가 사모에게 그리 말해뒀어. "
오랜만에 물을 만난 듯 뜨거운 물에 씻고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이 꼬리를 물어 날밤을 새웠다
아침에 내려가니 교장 사모가 감을 고르고 있었다
"감들이 전부 작은 것만 남았네!"
화가 나 불어터진 목소리다
"그만 담아! 그만 담아! 됐어! 됐어!
암벽까지 배워서 나무에 안정적으로 앉아 감을 따는데 욕심이 하늘을 찔러!"
교장 선생이 거든다
"먼저 감을 따셨다면서요?"
"앞에 있는 거 몇 개!"
"어제 감은 누가 땄어요?"
"교수가 나무에 올라가 털고 우린 줍고 셋이 땄지"
"왜 같이 담지 않으셨어요?"
"난 술 마시고 자는 사이에 다 가져갔던데."
"선생님에게 같이 정리하자는 말 하지 않았어요?"
"했지. 그런데 내가 술을 미시고 잠깐 자는 사이에 가져갔다니까"
"사모님은 그때 뭐 하고 계셨어요?"
"이 사람도 집안 일 하느라 바빠서..."
"그러니까 교수님이 올라가 감을 털고 교장선생님과 권사장님 두 분이 밑에서 감을 줍다 교수님이 같이 정리하자는데 선생님은 술을 드시고 주무시고 사모님은 일이 바빠 안 주었다는 말이지요?"
"뭐... 그런 거지"
조용히 올라와 도끼를 가지고 내려갔다
"도끼는 왜?"
교장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감나무 찍어 잘라버리려고요"
"응?"
"이까짓 감이 뭐라고 한 울타리에 살면서 으르렁대요?
감나무가 문제니 베어버리면 되겠네요!"
"아니, 아니, 됐어 됐어요. 우리가 잘못했어요"
"같이 줍자고 했는데 선생님은 주무시고 사모님은 바빠서 안 줍고, 같이 주웠으면 이런 일 없었을 것 아니에요. 이제 와서 왜 투덜대세요? 두번 다시 감 가지고 난리를 치면 그땐 확 엎어버릴 줄 아세요. 그리고 앞으로 감 딸 땐 하나를 따더라도 내 허락 받고 따세요."
도끼를 들고 돌아섰다. 그렇지 않아도 막영대회 뒤 끝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내 신경을 제대로 건드린 거다.
"아휴. 세상에! 도끼를 가지고 내려오다니. 중국에서 마적들과 함께 독립운동한 아버지 피를 받아서인지 마적단 딸 답네."
"지독해. 이 산골에서 남편 장례를 혼자 다 치르고 유골을 49일 동안 끌어안고 있었다잖아. 동네에선 남편이 죽은 줄도 몰랐대."
"아이구 무서워라. 시신도 자기가 태웠나보네. 독해.독해"
"고라니도 때려 잡았다는데?"
"고라니를 어떻게 때려잡아?"
"도끼 가지고 설치는 꼴을 보니 때려잡고도 남겠어. 도끼로 때려잡았겠지."
"작은 고추가 맵다고 생긴 건 천상 여자인데 저 체구에 어찌 그런 깡다구가 나올까."
"그러니 환갑 진갑 다 넘어 바위를 하러 다니지. 외모만 여자지 남자 저리가라여. 쉽게 보단 큰 코 다쳐. 동네에 소문이 다 났더구만.
쉽게 보고 덤비다 싹싹 빌고 경을 친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라고.
산속에서 장례 혼자 치르고 49일 동안 유골 항아리 껴안고 산 걸 알고 지금은 슬슬 피한다잖아.
지금도 교수가 조금만 잘못해도 온 집안을 싹 다 때려부시고 목에 칼 들이대서 교수도 꼼짝을 못 하고 산대. 조폭이여 조폭.
눈 돌면 물 불 안 가린대. 오히려 체격이 큰 동생이 성격도 좋고 술도 잘 마시고 순하더구만.
딸 8명 중에 제일 작고 제일 독종이라잖아"
"세상에 도끼 들고 내려오는 걸 보면 그러고도 남겠네.
평소엔 상냥하고 그리 친절한데..."
"외모만 여자여.
순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고 깡패여 깡패"
"쉿! 듣겠다"
"안 들려. 학생 때 데모하다 끌려가 뺨을 하도 맞아
청력이 안 좋다잖아."
"데모까지? 여러가지 했네"
"제일 독종으로 했대. 끌려가서도 자기 혀를 깨물려고 해
형사들이 기겁을 하고 입에 천을 넣어두고 살폈다던데"
"아이구 무서라. 그 아버지에 그 딸이네"
"엄마도 만만치 않아.
남편 다리를 톱으로 썰었대."
"그건 무슨 소리야?"
"이따 얘기해.
그런 아버지와 엄마를 두었으니 깡다구와 배포로 집안을 건사하며 기둥으로 살았겠지. 이 근처 나무들도 도끼로 다 찍어 베어버렸다잖아"
"세상에나 저 체구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섬칫하네. 건들면 뼈도 못 추리겠네."
"그래서 다 슬슬 피한다잖아.
성격도 집요해
자신이 모욕을 봤다고 생각하면 기어이 끝을 본대."
저것들이 정말!
눈을 치켜뜨고 확 돌아봤다
도끼를 들고 돌아보는 내 모습을 보면 나도 내가 무서울 것 같다.
"아휴. 이런 말은 또 들리나보네...."
"들렸다 안 들렸다 하나봐."
"그만해 또 듣겠다"
슬금슬금 집으로 들어들 간다
저것들이 정말 유언비어를...
임신했다는 말이
한 사람만 건너가도 애 낳고 키운다더니
세종대왕님이 만드신
조선어는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진 언어다
인간으로서 정도와 도리와 예의를 지키면
내가 얼마나 정의롭고 의리 있고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인데
지들이 잘못 해놓고
내 흉을 봐?
어쨌든 평생 못 잊을 울주막영회는 감과 함께 끝이났다
막영회에서 얻게 된 건 울산 아우들을 만난 것 그리고 수치심과 모욕감.
왜 수치심과 모욕감은 여자들의 몫인가
더 힘든 건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는 게 아니라 더욱 또렷해진다는 거다
은밀하다면 은밀한, 피할 수 없는 밀착된 좁은 공간인 버스를 다시 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버스에 대한 트리우마는 평생을 갈 것 같다
아들이 한 말이 귀에 쟁쟁하다
"엄마 모두를 위해 좋은 게 좋은 거다
꿀떡꿀떡 넘기고 참다참다
뚜껑 열리지 말고
엄마만 생각하고
즉시 엄마 소리를 내.
엄만 참는 게 습관이 됐어.우리에겐
자신이 제일 중요한 존재라고 알려주면서
엄만 왜 그렇게 안 해? 참다참다 나중에 터트리면 오히려 엄마만 이상한 사람 되게 만들어.
그러니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직 엄마만 생각하고
참지 말고 즉시 엄마 소리를 내"
그래야 하는데 역시 난 옛날 사람인 것 같다.
인간은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는 옛말을 비껴갈 순 없는 것 같다
어쨌든 5년 만에 열린 막영회는 모든 지부가 함께 만나게 되고
무사히 끝난 의미 있는 막영회였다.
버스타는 시간만 없었다면 말이다.
첫댓글 무겁게 바리바리 싸오신 술이며 추어탕, 고기를 덕분에 맛나게 고맙게 잘 먹었습니다.
영복아 넌 왜 항상 팔이 모자란겨?
간사람보다 이글읽은 내가 더 디테일하게 안간사람에게 설명해줄 자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동빈전 대장님
못 봬 아쉬웠습니다
곳 작가 탄생 하겠네요....!!!^*^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꽂봉오리처럼 빛을 내는 버너... 주인입니다. 아침 추어탕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천상 여자인데...감 이야기 뒷 얘기가 20KG 배낭을 질 정도라시는게 이해가 가네요. ㅎㅎ. 바위에서 또 뵙지요~
오오
황금복 선배님!
맞아요
불꽃이 황금처럼 빛나 이름과 비슷하구나 생각했는데 내 머리가 ㅠㅠ
퇴근중입니다만.. 선희언니 김치 생각나서 집에가서 김치에 밥먹으려고 합니다. ㅋ
수연아 네 김치 맛도 보고 싶당
선희언니 무거운 20kg 배낭 메고오시냐 고생 많으셨어요 아침에 추어탕 잘 먹었습니다 이번이 네번째 참석인데 추었이 가장 많았던 막영회 입니다~~^^
경숙아우
항상 뒤에서 묵묵히 고생이 많아
서방님을 잘 만나
같이 고생이네 ㅋㅋ